*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논할 때 주의점.
-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딤후2:15) 성경을 공부한다고 하는 이들 가운데 신, 구약을 나눌 때 구약은 행위의 법이고, 신약은 마음을 다루는 법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십계명을 비롯한 법은 행위와 육체를 다루는 법이지 마음이나 양심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 대신 신약은 몸의 행위 이전에 마음을 다룬다는 식의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 [나 [주]는 마음을 살피며 속 중심을 시험하고 각 사람의 길과 각 사람의 행위의 열매대로 각 사람에게 베푸느니라.] (렘17:10).
-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이는 [주]가 보는 것이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삼상16:7).
-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기를,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완전한 마음과 자원하는 생각으로 그분을 섬길지어다. 이는 [주]께서 마음을 다 살피시고 생각으로 상상하는 바를 다 아시기 때문이니 네가 만일 그분을 찾으면 만날 것이로되 네가 만일 그분을 버리면 그분께서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28:9)고 했습니다.
- 이 말씀대로 솔로몬이 말년에 우상을 숭배했을 때 주님은 솔로몬의 행위를 책망하기 이전에 그의 마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솔로몬이 늙었을 때에 그의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그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주] 자기 하나님께 완전하지 못하였으니](왕상11:4). [아비얌이 전에 자기 아버지가 자기 앞에서 행한 모든 죄 가운데 걸으며 그의 마음이 자기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주] 자기 하나님 앞에 완전하지 못하였으나](왕상15:3). 죄를 언급하실 때 행위의 문제를 다루기 전에 주님은 그의 마음의 문제를 언급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책망은 언제나 그의 마음이 먼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했을 때, 범죄했을 때도 그들의 마음이 갈라진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나뉘었으니(divided) 이제 그들이 잘못한 자로 드러나리라.](호10:2 a). 마음이 온전한가? 그렇지 않는가? 이것이 주님이 보시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신약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매우 신약적입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신약의 명령이고, 구약에서는 "복수하라"가 율법인 줄 아는 이는 성경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다르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틀린 말입니다. 구약에 기록된 주님은 신약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행위 이전에 마음의 생각과 중심을 살피시고 영을 달아 보시는 분이십니다. 율법의 외적 행위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란 사실은 구약 곳곳에 증거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행위, 율법, 몸이 중요하고 신약은 마음, 동기, 믿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너는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결코 몸을 죽이지 말라는 행위 규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속에는 형제들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는 것은 신약에서 새롭게 주어진 더해진 명령이 아니라 본래부터 율법이 그러했지만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이 그렇게 가르치지 못했던 것을 주님이 본래부터 그러하였다는 점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는 구약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 속으로 미워하지 말며 어떤 식으로든 네 이웃을 책망하여 죄가 그에게 임하지 못하게 하라. 너는 원수를 갚지 말고 네 백성의 자녀들에게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주]니라.] (레19:17~18). *구약의 율법 역시 내적인 것이 우선이다.
"구약에서는 몸으로만 간음하지 않으면 간음이 아니고 신약에서는 마음으로 하는 간음만 간음이다!" 이것은 성경을 1/100도 보지 못한 해석입니다. 주님께서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둘 다 마음 속에 간음을 간음으로 보십니다. 마음 속에 형제를 미워하는 것을 살인으로 보십니다. 다만 몸으로 행하지 않는 간음, 몸을 죽이지 않는 살인에 대해서 몸에 형벌이나 심판을 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곤고함, 마음의 황폐함이나 영의 메마름은 모두 다 동일하게 있습니다. 평안, 자유, 안식을 잃어 버리고, 구원의 기쁨을 잃어 버리는 일은 신구약 동일합니다. 몸에 대한 형벌은 형법으로 하나님의 사역자들인 왕들로부터 행정관들에게 맡겨 놓으시고 심판하게 하십니다. 이들이 공의롭게 율법대로 심판하지 않을 때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우리는 직접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고(렘19:18, 잠20:22), 행정관들은 철저히 공의롭게 심판을 집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약에서도 똑같습니다.
주님은 율법을 주시면서 율법에는 외적 행위의 준수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 이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음이라.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저것도 행하지 않은 채 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마23:23).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는 '공의, 긍휼, 믿음' 등입니다. 이는 외적 행위가 아니라 영적이고 내적인 것입니다. 사랑, 긍휼, 공의, 믿음 등은 신약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약에서도 핵심입니다.
명령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제 이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1:5). 율법은 외적 행동을 규제하는 것보다 내적, 영적, 마음에 더 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때로 어설픈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어설프게 말씀을 혼잡케 하는 꼴을 자주 봅니다. 말씀을 가볍게 보고 도식화하는 일은 올바로 나누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의할 것은 이런 글에서 음식 규례, 성전 규례, 희생제, 절기 문제, 안식일 등을 들먹이는 율법주의자들은 성경에 관한한 눈먼 자들이요, 빛이 없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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