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하라. 이대로 믿으라는 뜻이 아니다. 창조 과학회도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과학자들이 있구나란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현대우주론과 창조섭리
제1회 지동식 박사 기념강좌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영욱 교수 /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복음주의적인 크리스천이며 동시에 천문학자인 나는 기독교와 현대과학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의 원인이 사실은 아주 큰 오해라고 느낀다.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한다. 창세기의 인간 창조 부분을 읽으며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이 진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드셨다고 상상한다. 일반인들이 경험한 것이라곤 초등학교 때 찰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본 경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TV나 영화에서 마술사가 그러하듯 순식간에 뚝딱 만드셨을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그것보다 더 빨리 천지를 창조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의 “땅의 먼지로 인간의 형태를 이루셨다(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는 표현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알 수가 없다. “땅은 모든 생물을 내라(Let the land produce living creatures)”는 표현은 마치 진화론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창조의 방법은 어떤 것일까? 창세기 1장의 “날”도 우리는 당연히 오늘날 우리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해석한다. 일반인들은 시간이란 변화 없이 항상 일정하고 절대적이라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굳이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의 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금으로부터 이미 100년 전에 아인슈타인이 발견하고 그동안 수많은 실험과 관측으로 증명된 상대성이론은 시간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관측자의 속도나 중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단지 지구에 있는 일반인들은 그것을 느낄 기회가 없을 뿐이다. 따라서 창조주의 입장에서 기술된 창조과정의 하루는 100%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오늘 인간의 시간으로는 얼마든지 수십억 년이 될 수도 있다. 연대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이란 어떤 것인지 이해해야 하며,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시간에 구애 받지 않으신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이 모든 우주만물을 창조 하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우주와 생명창조의 자세한 과학적 과정을 과학적 언어로 기술할 목적으로 쓴 책이 아니기 때문에 창조 과정의 구체적인 과학적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한권의 책인 자연과 우주를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
로마서 1장 20절과 시편 19편을 포함한 신구약 성경의 여러 말씀들이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증거 한다. 크리스천 과학자들에게 과학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이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모든 과정에서 항상 신의 자리는 침범 당하지 않았다.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우리는 단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을 뿐이다”라고 고백하듯이 과학 연구는 신의 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신의 성품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다.
행성의 운동법칙을 발견한 17세기의 독실한 크리스천 천문학자 케플러는 자신은 ”천문학의 제사장”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과학은 신의 창조섭리를 발견하는 또 다른 구도의 길이다. 우주와 생명의 진화론을 포함한 여러 과학 이론 중, 수많은 관측과 실험을 거쳐 철저하게 검증을 받은 정설은 바로 하나님이 우주와 자연을 창조하신 구체적 방법과 섭리로 받아들이면 된다. 보다 일찍 이러한 자세를 가졌다면 과학과 기독교의 쓸데없는 갈등은 진작부터 없었을 것이다. 복음이 침범 당하지 않는 한, 현대과학과 신앙의 문제에서는 그 어느 것보다도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창조 방법은 현대과학이 일부 발견한 것과 같이 우리네 일반인이 상상할 수 있는 그것보다 훨씬 고상하고 다른 차원의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교회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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