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도 사람과의 관계에 원칙이 있다. 이것만 알면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의 차이도 알 수 있고, 비성경적인 이단들도 다 가려낼 수 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1. 결혼을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특히 성직자에게)불교, 천주교 등 “종교”들은 전통적으로, 제도에 의해 성직자의 결혼을 금해 왔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니므롯/세미라미스의 바빌론 신비 종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기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 구약 유대교의 제사장들도 결혼하고 아이를 뒀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은 1절이 말하듯이 문맥도 한정되어 있을 뿐더러,“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독신으로 살면 더 적은 제약으로 하나님을 더 편하게 섬길 수 있다는 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결혼을 강제로 안 해 가면서까지 하나님을 섬기란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가정부터 잘 꾸려야 교회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목사, 집사가 되려면 책망받을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 독신은 정말 독한 사람, 타고난 사람, 아니면 사도 바울처럼 정말로 하나님의 일에 미친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성경은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존귀한 것이라고 말하며, 정상적인 남녀 결혼 외에 야기되는 모든 성적 결합을 처절하게 정죄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정상적인 성욕이 억압받는 조직엔 어떤 형태로든 성 문란, 부패와 타락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평생을 독신 상태로 건전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겁니다. 속지 마십시오!
2. 채식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육식은 노아의 홍수 이후 사형 제도와 함께 하나님이 인류에게 허용하셨습니다. 채식만 하고 살기에는 지구 환경이 너무나 척박하고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온갖 부정한 짐승 규례가 있었던 구약 유대인들도 그런 금지된 것만 안 먹으면 되고 육식 자체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신약 교회 시대가 도래하면서 하나님은 유대인인 베드로에게조차도 모든 음식을 감사함으로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은 쇠고기든 개고기든 무엇이든 먹을 것에 연연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뉴에이지라든가 명상, 이상한 영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밀교 같은 데서 채식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채식만 하는 사람이, 부리는 영(familiar spirit; 레 19:31, 레 20:6)에 더 잘 접촉한다는 통계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엄금하는 것입니다.
3. 자기 피부에 손을 대고 몸을 학대하라고 하지 않습니다.귀고리를 포함한 피어싱, 성형수술, 문신, 그리고 더 나아가 자살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형태와 명분으로든 자해는, 모두 우리 몸을 지은 하나님에 대한 큰 반역입니다.
바알 신을 섬기던 제사장들은 자기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자 칼로 피부를 그으며 자해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왕상 18:28) 성경을 잘 읽어 보십시오. 그건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들 종교의 교리에 따른 공식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불교야 말할 것도 없고, 천주교에는 숫제 서로 채찍질을 하면서 소위 고행, 단련이라는 것을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삼보일배를 하고, 무릎을 까고 어딜 몇 바퀴 돌면 연옥에서 괴로움 당하는 기간이 줄어든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 대신, 자기 의를 내세우기 좋아하는 세상 종교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상을 가진 자들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케 한다”를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로, 성경까지 바꿔 놓았습니다. (고전 9:27)
조폭들 세계에나 비밀 단체, 일부 사이비 종교에서는 혈서를 쓰고 심지어 새끼손가락을 잘라서 맹세나 응징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기독교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오히려 육체의 생명이 담긴 피를 마시는 것은 잔인하고 이교도들이 하는 행동인지라 신· 구약 성경이 공히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피를 그렇게도 중요하게 다루는 기독교는 오히려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행동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우리 몸을 단정하고 소중하게 가꾸라고 명령하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요소만으로도 성경의 기독교는 세상 종교들과 구분됩니다.
4. 페미니즘을 가르치지 않습니다.가장 먼저, 성경의 하나님은 남성입니다. 예수님도 남성, 그리고 모든 천사들도 성인 남성입니다. 어린아이나 여성이 결코 아니고, 그렇다고 중성도 아닙니다. 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기(롬 8:15; 갈 4:6) 싫어하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찬송가 가사와 성경 구절들을 성에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특히나 언어에 성 구별이 뚜렷한 영미권에서)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여신! 천주교에서 하늘의 여왕,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떠받드는 마리아를 비롯해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 그리고 ‘승리의 여신’ 같은 관용적인 표현에서까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여신 숭배가 있고 금혼에 여성 성직자가 있는 우상숭배 종교에는 어떤 형태로든 성적 타락이 있습니다. 여신은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그릇된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개념입니다. 여신, 아니면 각종 엘프(요정)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게임들의 배경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신약 기독교회에서는 결혼하여 가정을 잘 꾸리는 남자만이 집사나 목사 같은 직분을 맡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공부하고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는 남녀 구분이 없으며, 연로한 여자는 젊은 여자들을 가르칠 수 있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룬 가정과 교회 내부에는 창조 질서에 따른 남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가끔씩 여대언자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런 직분은 유대인도 아닌 지금의 신약 성도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드보라* 같은 그런 여대언자들이 활동한 시대의 배경을 보십시오. 사회가 극도로 타락하고 남자들이 일차적으로 영적 지도자 구실을 제대로 못할 때 예외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런 여성들을 친히 쓰신 것입니다.
5. 자신과 믿음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해코지하거나, 기독교를 박해하는 공권력에 맞서라고 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는 사람, 혹은 교회에 있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을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미워하고 괴롭히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단자들을 신의 이름으로 처단한다”는 신약 교회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교리이며, 역사적으로 오히려 크리스천들이 마귀 종교들의 이런 교리에 무참히 희생돼 왔습니다.
성경도 없고 복음도 없는 천주교가 과거에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끔찍한 만행을, 그것도 소위 하나님을 팔아서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성경의 기독교까지 배척하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슬람 교의 경전에도 “이단자들은 죽여야 한다”(Qur'an Sura 9:5)를 찾을 수 있으며, 이런 교리가 순진한 아랍 청년들을 자폭 테러의 희생양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마치, 좌익 세력들이 자기는 손 하나 까딱 안 하면서 순진한 농민, 노동자들을 영웅으로 선동해서 노동 운동의 ‘불화살’로 만들어 놓는 것처럼!
이것만 봐도 기독교와 다른 이단 종교 조직은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기독교가 참되며 이처럼 아량과 자유를 많이 주니, 오히려 불신자들이나 불신자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어린 크리스천들이 이걸 오· 남용하는 게 더 문제입니다. 성경대로 모든 일을 판단하고 이단들을 가려 내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 자체까지 이단시하고 천주교의 마녀 사냥, 종교 재판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학교, 직장, 군대, 국가 정부의 권위를 철저하게 인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나라에서 기독교를 금지하는 등 성경적으로 따를 수 없는 정책을 내놓으면 거기에 불순종하는 대신 나라에서 내리는 벌을 스스럼 없이 받았습니다. 선거, 집회 등 합법적으로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 이상으로 반정부 투쟁, 정권 타도 운동을 벌이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의도가 아닙니다.
6.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로 사람을 놀래키지 않습니다.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면서도 이 원칙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얼마나 미혹에 빠져 속고 있는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직업적인 종교인이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이나 염불을 중얼거리면서 평신도들을 기죽이고, 뭔가 자기네만 할 수 있는 일을 행하는 것처럼 꾸미는 건 천주교, 불교를 포함해 세상 모든 종교에 존재하는 개념입니다. 심지어는 무아지경에 빠져서 입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것만치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감을 조성하고 종교에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게 어디 있을까요?
천주교 사제가 빵을 예수님의 몸으로 바꾼다는 사악한 화체 “마술”을 행할 때도 주문을 외웁니다. 거기에다 천주교가 왜 죽은 언어인 라틴어를 한동안 끝까지 고집해 왔을까요? 이런 악한 누룩이 오늘날 교회에 소위 방언 은사라는 명목으로 그대로 들어와, 성도들을 온통 악한 영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방언은 마귀가 들어와 입을 움직여도 나올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저런 짓은 구약 유대교 제사장들도 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성령을 받은 신약 사도들이 구사한 ‘방언’은 이상한 잡소리가 아니고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온전한 외국어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들이 뜻도 모르는 말을 갑자기 쏼라쏼라 지껄여서 놀란 게 아니라, 외국인의 입에서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나와서 놀랐습니다! (행 2:8) 신약 시대에 하나님은 언어와 민족을 불문하고 이방인들을 써서 교회를 세우길 원하셨기 때문에, 예전에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언어 장벽을 친히 일시적으로 극복해 주신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이적도 아무에게나 허락하신 게 아닙니다. 원래 표적을 보고 믿는 유대인들에게 또다른 표적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라고 보여 주신 것일 뿐이지(행 2, 10, 19 세 번), 같은 교회 안에서 서로 내공을 자랑하고 뻐기는 용도가 절대로 아닙니다. (부흥회 가서 방언 받고 나면 사람이 얼마나 교만해지는지!) 성경 66권이 완성되었고 전세계가 언어 장벽도 영어의 주도하에 무너져 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지금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방언 같은 걸 또 주셔야 할 이유가 도통 어디 있단 말입니까?
고린도전서를 보세요. 설령 진짜 외국어를 한다고 하더라도 교회에서는 통역자가 없으면 공개적으로 나불대서는 안 되고 혼자서만 조용히 해야 합니다. 즉 뻐길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외국어는 많아야 두세 사람만 말해야 하고 여자는 아예 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자국어 다섯 마디가 외국어 일만 마디보다 낫다고 하고, 외국어보다야 대언을 하라고 합니다. 외국어에 대해 어디 긍정적인 표현을 찾을 수 있어야지요?
사람의 언어가 걸린 ‘방언 은사’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은사인 반면, 사람을 걷잡을 수 없이 미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 성도들이 타 언어를 이용한 말장난에 속을 일이 없게 만반의 대비를 다 해 놓았습니다. 알아듣질 못하는 말은 어차피 하나도 소용없다고 못을 박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도 헛된 반복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말로 할 말만 또박또박 간결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얼마나 질서 있고, 고맙고 건전합니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언어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으셨다면, 성경조차도 영어로 된 최종 권위 성경을 남겨 주시지 않았겠지요. 히브리, 그리스어 말장난을 하는 신학자들에게 속을 수밖에 없게!)
7. 개인 사생활의 앞날을 미리 보여주지 않습니다.하나님은 사람이 앞날을 알 수도, 대비할 수도 없는 불안한 상황에서 자기를 의지하며, 하나님이 결국은 계(system)의 전체 관점에서는 선을 이룰 것이라고(롬 8:28) 믿는 그 믿음을 보길 원하는 분입니다. 이건 철칙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겪을 온갖 어려움, 고난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겁이 나서 하나님을 더 믿으려 하지 않겠죠.
이것만 알면 속을 일이 없는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생활의 앞날을 알려고 하다 보니 기도원까지 특히나 입시철만 되면 온통 예언기도니 뭐니 하면서 점쟁이 굿판으로 변하고, 죽은 사람 흉내를 내는 마귀에게서 예언을 받으려고 안달이 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통탄할 현실입니까.
크리스천들은 장난으로라도 점, 궁합, 운세 같은 덴 얼씬도 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부리는 영을 지닌 자들과 슬쩍 엿보고 중얼거리는 마술사들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마땅히 자기들의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사 8:19)
8. 사람의 정신과 자기 의식을 비우라고 하지 않습니다.와~ 어쩜 이렇게 다른 종교들과 정반대일까!
마음을 비우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가만히 명상을 하는 거, 아니면 혼이 빠질 정도로 아무 의미 없는 기도문이나 주문을 묵주 돌리면서 끝도 없이 중얼중얼거리는 거...!! (‘만트라’ 상태)
다 사람 혼을 빼 놓으려는 짓입니다. 사람이 정신을 비우면 그 속엔 마귀가 들어갑니다. 유체이탈, 최면 같은 것도 다 이런 사악한 영과의 교접 행위입니다. 뉴에이지를 비롯, 세상 종교에는 이런 행위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 마음을 비우고 주관을 잃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늘 깨어서 맑은 정신으로 질서 있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은 결코 자기를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사람의 정상적인 정신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끼칩니다.
뉴에이지 사상을 좋아하거나 그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성경까지 바꿔 놨죠. 예수님이 하나님이면서 스스로 백의종군하듯 무명한 자가 되었다(빌 2:7. KJV)고 되어 있는데 자기를 비웠다고(개역성경) 변개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사람의 양심을 찌르기 때문에 인간의 죄성과 갈등, 다툼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그 요구는 사람의 다른 본성을 거스르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무엇보다도 “건전합니다.”
2006년 2월 6일
출처: http://moogi.new21.org/av1611/godforbid.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