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행하지 않는 일은 무엇이나 다 위선이며 거짓이지만 특히 구제, 기도와 금식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주님은 구제에 관해서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기도는 은밀한 골방에서, 금식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며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너희는 금식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슬픈 표정을 짓지 말라. 이는 그들이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기 얼굴을 흉하게 하기 때문이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이미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오직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마6:16-17). 바른 금식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금식할 때 하나님은 은밀히 보시며, 드러나게 갚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네가 금식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보이리니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마6:18)./개역에는 ‘금식’이란 말 삭제. 사람들은 얼굴의 슬픈 표정과 얼굴을 흉한 것을 보고 금식을 한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드러나게 갚아 주시는 것을 봄으로써 금식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금식을 하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은 잘못된 금식입니다. 자기의 종교심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자신이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욕망에 금식을 한다면 헛된 금식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어했던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했습니다. 주님은 정기적으로 금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이 땅의 모든 백성들과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가 그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곡하였거니와 그 금식한 것이 조금이라도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슥7:5). 여러분이 금식할 때 주님은 여러분에게 ‘그 금식한 것이 조금이라도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라고 물으십니다.
둘째, 바른 행함이 없는 금식은 헛된 금식입니다.
종교적인 사람일수록 금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신성한 의무처럼 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 침례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을 했습니다.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자주 금식하거니와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하니](마9:14). 그들은 습관적으로 금식했던 것입니다. 금식(禁食)은 종교 의식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식(禁食)은 율법이 정한 것처럼 가르치고 행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금식은 율법이 아닙니다. 금식은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입니다. 금식은 믿음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금식의 회수는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이런 금식은 헛된 금식입니다. 습관적으로 금식을 한다고 해서 믿음이 성장하고 영적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금식이 자부심이요,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들의 당당한 자랑을 들어보십시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금식하였으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우리 혼을 괴롭게 하였으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는도다. 보라, 너희의 금식하는 날에 너희가 쾌락을 구하며 너희를 위하여 모든 수고를 강요하는도다.](사58:3). 주님은 그들의 금식이 전혀 금식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금식이라면 차라리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함은 다툼과 논쟁을 위함이요, 사악한 주먹으로 치기 위함이니 너희가 이 날에 하는 것같이 너희 목소리를 높은 곳에 들리게 하려면 금식하지 말지니라.](사58:4). 금식은 혼을 괴롭게 하는 것이요, 혼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금식이 무엇입니까? [이러한 금식이 내가 택한 금식이겠느냐?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 혼을 괴롭게 하는 날이겠느냐? 이것이 어찌 갈대같이 자기 머리를 숙이고 자기 밑에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이겠느냐? 너는 /과연/ 이것을 금식이라 하겠으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날이라 하겠느냐? 내가 택한 금식은 이것이 아니겠느냐? 곧 사악함의 결박을 풀어 주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며 학대당한 자를 놓아 자유로이 가게 함으로 너희가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5-6). 주님의 택한 금식은 먹을 것과 마실 것만 금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의로운 행위, 선한 행실, 복음에 합당한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금식은 금식이 아닙니다. 회개 없는 기도가 헛된 기도이듯이 회개 없는 금식, 바른 행실이 없는 금식은 헛된 금식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굶는가? 왜 먹지 않고 굶는가? 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을 하는 동기와 이유, 금식에 담긴 의도와 목적을 보십니다. 유다가 죄 가운데 거하면서 전혀 회개치 않고,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금식을 하며 기도할 때 전혀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그들이 번제 헌물과 봉헌물을 바칠지라도 내가 그것들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오히려 칼과 기근과 역병으로 그들을 진멸하리라, 하시니라.](렘14:12). 주님은 단지 굶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돌보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종교적 의(義)요, 자기 의(義)에 불과할 뿐입니다.
셋째, 혼의 주림없는 금식은 헛된 금식입니다.
금식은 몸을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혼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바른 금식은 음식을 금하기 전에 탐욕을 금해야 하며, 배를 주리기 전에 먼저 혼을 주려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금식보다 더 급한 것이 혼의 주림, 의에 목마름, 주를 찾는데 갈증을 느끼는 그런 것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면에서 단연 본을 보인 사람은 다윗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기에 목이 타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보이리요?](시42:1-2). 그는 육신의 빵과 물의 부족을 호소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혼의 금식으로 허기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현재 식사를 굶기 전에 영적인 금식이 있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라오디케아 교회의 특징은 너무나 부요해서 금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이 가장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가련한 것과 비참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혼의 주림이 없이 물질적 풍요 가운데서 금식을 하는 것은 헛된 금식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 주님을 갈망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금식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내가 새벽에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내 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사모하오니 이것은 내가 성소에서 주를 뵈온 것같이 주의 권능과 주의 영광을 보고자 함이니이다.](시63:1-2). 모든 성도들은 이런 금식을 해야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성도들! 이들이 하는 금식이 진정한 금식이며, 이것을 위해 하는 금식이 참된 금식입니다. 성경적인 지역 교회의 설립과 혼들의 구원과 성장을 위해 갈망하며 금식하는 것, 형제들의 세움을 위해 금식하는 것, 교회의 순결과 열매맺음을 소원하며 금식하는 것, 이런 금식이 참된 금식입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고, 성령의 열매를 사모하여 몸이 쇠약해질 정도로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금식입니다. [내 혼이 주의 뜰을 사모하여 참으로 쇠약하게 되었사오니 나의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2). 이렇게 금식할 때 주님은 혼을 만족시켜 주시며, 우리가 금식한 소기의 목적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는 그분께서 사모하는 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혼에게 선하심으로 채워 주시기 때문이로다](시107:9).
넷째, 겸손함이 없는 금식은 헛된 금식입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 마음을 겸손하게 꿇는 것입니다. 마음을 징계하고 , 혼을 괴롭게 하는 것이 바른 금식입니다. [나로 말하건대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로 내 옷을 삼고 금식하며 내 혼을 낮추었더니 내 기도가 바로 내 품에 돌아왔도다.](시35:13). 주님은 금식하며 혼을 낮추었을 때 즉시 기도 응답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찬송도 많이 했지만 그는 참으로 금식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자주 금식을 했는데, 금식으로 인해 몸이 쇠할 정도였습니다. [내 무릎은 금식하므로 쇠약하며 내 살은 기름기가 없나이다.](시109:24)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로 인해 자식이 병들어 죽게 되자 일주일 동안 울며 금식했습니다. 그는 회개 기도와 금식 기도의 본을 보여 주었는데,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간절한 영적 소원을 두고 금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