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3 대 원수는 마귀, 죄, 세상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실체는 육체의 정욕이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체의 정욕보다 영적 생활을 방해하는 것은 없다.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하는 힘은 정욕에 있다.
정욕이란 참으로 광범위한 말이다. 욕자로 끝나는 말 중에 좋은 말이 별로 없다.
성취욕, 탐욕, 명예욕, 권력욕, 색욕, 음욕, 물욕, 식욕, 야욕, ...
요한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구분했다(요일2:16).
야고보는 모든 전쟁과 싸움의 원인이 정욕에서 나는 것이라고 했다.
[너희 가운데 전쟁과 싸움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속에서 싸우는 정욕(情墉)들로부터 나지 아니하느냐? ](약4: 1).
탐욕은 그 자체가 우상 숭배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遲體)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 ](골3 :5 ).
육체의 정욕은 성령을 거슬러 싸운다. 그래서 반드시 이 부분을 처리해야만 영적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성도들이 흔히 간과하는 육체의 정욕에 대해 성경은 늘 엄중히 경고한다.
-육체의 정욕은 하나님의 말씀을 숨 막히게 한다.
[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와 다른 것에 대한 정욕(情墉)이 들어와 말씀을 숨막히게 하여 열매 맺지 못하게 되는 자들이요, ](막4: 19).
-육체의 정욕은 성령을 거슬러 대적한다.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갈5 :17.)
- 육체의 정욕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는다.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 까닭은 육신적인 생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참으로 그리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 ]( 롬8:6-7).
육체의 정욕은 세상 사람들의 삶의 동기요, 목적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육체의 정욕에 대한 영적 지식이 매우 빈약하여 빈곤이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육체의 정욕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정욕은 죄, 세상, 마귀와 더불어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육체의 정욕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육체의 정욕은 죽음 외에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육체의 정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함께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육체의 정욕대로 살지 말라.
베드로전서4:2-3, [그런즉 그는 자기 육체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리라. 이는 우리가 색욕과 정욕과 과음과 환락과 연회(宴會)와 가증한 우상 숭배 속에서 걸어 이방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한 것이 우리 삶의 지나간 때로 족하기 때문이라.](벧전4:2-3). 우리는 이방인들처럼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색욕, 정욕, 과음, 환락, 연회, 가증한 우상 숭배 이 모든 것들이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요, 그들의 삶입니다. 물질주의는 물신 숭배란 종교입니다. 자본주의란 맘몬 숭배란 종교입니다. 인본주의는 철학이나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척하고 인간을 만물의 중심에 두는 종교입니다. 자신을 하나님 보다 앞에 두고 위에 두는 종교입니다. 이제는 이런 육체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육체의 정욕들에 맞추지 말라.
[/너희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알지 못하던 때에 따르던 정욕들에 너희 자신을 맞추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행실에서 거룩할지니] (벧전1:14~15).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 따르던 정욕이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열정이란 정욕(情慾)의 불꽃입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학문을 통해 자신의 욕구에 따르고자 할 때 학구열에 불탄다고 합니다. 예술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성취하고자 할 때 예술혼에 불탄다고 합니다. 스포츠를 통해, 연예계를 통해서 나아가려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많은 돈을 벌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식이나 남을 뒷바라지함으로써 자신의 정욕을 채우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자신 속에 있는 정욕들에 자신을 맞추어서 달립니다.
셋째,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순례자인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벧전2:11). 육체의 정욕은 혼을 거슬러 싸웁니다. 성령을 대적합니다.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5:17). 그래서 우리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은 물욕, 명예욕, 색욕, 탐욕 등 이름만 다를 뿐 본질은 하나입니다. 우리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욕들을 하나하나 처리할 수 없습니다. 육신은 죄의 소욕을 실질적으로 생산해내는 공장과 같습니다. 방법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대로 살면 죽습니다.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롬8:13).
넷째,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
[오직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롬13:14). 육신의 정욕은 언제나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활동합니다.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는데, 어느덧 마음속에는 염려, 근심, 걱정, 불안, 공포 등이 엄습합니다. 육신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엡4:27).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고, 함께 하지 말아야할 친구들과 교제하고, 듣지 말아야 할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 발을 금해야 할 것들에 가서 앉는 것 등이 모두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육신이 있어야 할 곳은 갈보리 십자가이며, 요셉의 동굴 무덤입니다. 싸워야 할 것들은 싸우되 피해야 할 것들은 피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마음 속에 끊임없이 말씀을 담아두고 묵상함으로써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죄에게 순종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하여금 너희의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안에서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롬6:12). 우리는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대적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이 발동할 때 단호히 죄와 대적하십시오.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주님이 있기 때문에 싸울 때 승리가 주어집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대적하면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죄는 육신의 정욕을 자극합니다. 깨웁니다. 그래서 이방인들과 똑같은 삶을 살게 하고, 구원받기 이전의 행동과 가치관을 유발시킵니다. 신앙 생활하다 좀 좋아지나 싶기도 하다가도 자꾸 쓰러지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신과 함께 그 애착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肢體)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골3:5). 이방인들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나의 육신과 함께 그 정욕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그렇지 않는가? 입니다. 비록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육신의 정욕대로 살면 구하는 모든 것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