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 길들을 깊이 생각할지니라.](학1:5,7).
주님은 ‘너희 길들을 깊이 생각할지니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강력한 도전의 말씀입니다. 회개는 바로 마음의 생각이 바로 잡히는데서 출발합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이 생각이 어떠한대로 그 사람도 그러한즉...”(잠23:7) 생각은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인격을 낳고 인격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명언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고 했습니다. 생각의 변화없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설교 언제 끝나나?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육신을 따르는 육신의 일을, 성령을 따르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는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참으로 그리할 수도 없음이라.](롬8:5-7). 저와 여러분은 거듭날 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푸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너희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어”(엡4:23). 우리가 구원받을 때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해 주셨기 때문에 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자기의 죄들을 생각하고 회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대를 video 문화 시대라고 합니다.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 시대! 읽는 사전이 아니라 보는 사전! 그림이 문자를 대신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다보니 생각이 점점 얕아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너희의 길들을 깊이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가는 길이 주님이 말씀하신 생명의 길인가? 십자가의 길인가? 좁고 협착한 길인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지금 가는 길이 고난의 길, 순례자요 나그네의 길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인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죽음의 길인가? 자기 영광의 길인가? 넓고 광대한 길인가? 방랑자의 길인가? 불순종과 죄악의 길인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길은 옳게 보이는데 가보면 아닌 길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게 됩니다. 잠언 14:12과 잠언 16:25에 이르기를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하였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16)라고 말씀하신 주님 외에 모든 길은 아무리 곧고 바르게 보여도 그 끝은 사망의 길들입니다. 지금 자신이 사망의 길에 들어 서 있는지 생명의 길에 서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분들은 이 시간 주님의 말씀대로 “너희는 너희 길들을 깊이 생각하라!”
저와 여러분이 이 시간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성경이란 투명하고 맑은 거울 앞에서 냉철하게 자신의 길들을 돌아보고 판단하고 입증해 보시기 바랍니다.
① 주의 작품을 깊이 생각합니다.
“주의 하늘들 곧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작품과 주께서 규정하신 달과 별들을 내가 깊이 생각하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깊이 생각하시오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찾아 오시나이까?”(시8:3-4) 여러분이 만약 이 창조 세계의 모든 주의 작품들을 깊이 생각하신다면 주의 은혜를 충분히 깨우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해, 달, 별들... 이 모든 것이 지구에 사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별이나 태양이 지구보다 먼저 만들어지거나 더 오래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지구가 만들어지고 지구를 위해 모든 것들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자연을 깊이 관찰하기만 해도 우리는 그 속에 깃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볼 수 있습니다.
② 동, 식물 세계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 공급하심을 깨우칠 수있습니다. “너희가 어찌 옷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이 어떻게 자라는가 깊이 생각해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6:28). 들의 백합이 자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입는 문제에 대한 염려는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 문명에서 매일 매연을 뿜는 자동차와 공장,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를 생각하면 절대 염려가 점점 자라납니다. 자동차, 아파트 생각하지 마시고 들의 백합이 어떻게 자라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까마귀를 깊이 생각해 보라”(눅12:24) 왜 까마귀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을까요? 백로나 독수리나 아름다운 새들이 많이 있는데 왜 까마귀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까마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흉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까마귀조차 주님은 먹이고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까마귀를 깊이 생각해 보라. 씨뿌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창고도 없고 곳간도 없으되 하나님께서 먹이시나니 너희는 날 짐승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아니하냐?”(눅12:24). 까마귀를 깊이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은 먹는 문제에 대한 염려를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③ 성경을 통해 주께서 행하신 역사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어떤 때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알고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주고 어떤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셨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깊이 생각해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하는 날에는 기뻐하고 역경을 당하는 날에는 깊이 생각하라...](전7:13-14).
④ 무엇보다 예수를 깊이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형제들 곧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아,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히3:1)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주로 누가 생각나십니까?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길은 바른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번에 돈을 많이 벌었는데...누가 이번에 승진을 하는데...누구를 손 좀 봐 줘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신다면 회개하고 예수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이 인격, 그분의 생애, 그분의 약속, 그분의 명령, 섬김, 고난의 본, 사랑, 겸손, 눈물, 사랑...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찬송가 85:1)
⑤ 특히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참을 수 없는 일을 당해서 울분이 쌓인 분들은 더욱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너희는 죄인들이 자기에게 이같이 거역한 것을 견디어 내신 분을 깊이 생각할지니 이는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아니하게 하려함이니라.](히12:3). 사람이 제일 견디기 힘든 일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일 것입니다. 피해자가 졸지에 가해자로 몰려 손해 배상 물고, 길 가다가 용의자로 몰려 경찰서에 잡혀가고(삼청 교육대만 그런게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있다 사기꾼으로 몰려 재판정에 서고, 내 배에서 난 자식이 덤벼들 때, 남과 싸잡아 욕얻어 먹을 때, 주님 일을 하는데 근거없이 비방받을 때 주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주님은 가장 모순덩어리를 견디어 내었습니다. 죄인들이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이신 분을 때리고 침뱉고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습니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모순입니다. 종이 주인을 때린다? 자식이 부모를 때린다? 학생이 선생을 때린다? 그것보다 몇 천배 더 모순된 행동을 견디어 내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⑥ 이제 우리는 서로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형제에 대한 배려, 자매에 대한 배려가 없이 형제애는 싹틀 수 없습니다. [서로를 깊이 생각하여(consider-살펴보고/개역,한킹, 흠정역)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되](히10:24) 그 다음 구절에 유념하십시오.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말고 오직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서로를 생각하면 연락도 하게 되고 자주 만나게 됩니다. 생각이 없으면 그럴 일이 없습니다. 교회는 모이는 곳입니다. 모여서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고 덕을 세워주는 곳입니다.
글.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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