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첫째, 사람들의 모든 입을 막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인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한 것입니다. 법이 없으면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모두 자신은 의롭고, 경건하고, 선하고, 거룩한 줄로 압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죄에 대한 변명, 합리화, 자기 의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 기준이 되고 법이 되어서 만물의 척도로서 행세합니다. 의와 불의, 선과 악, 죄와 불법 등에 대한 모든 기준을 마음대로 정해 버립니다. 죄인들은 양심의 외침을 무시해 버립니다. 본성이 가르치는 것을 외면해 버립니다. 종교인들은 저마다 자기들의 교리를 바탕으로 종교적 기준을 제시하고, 철학자들은 철학을 중심으로 도덕적 기준을 선포합니다. 민족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고, 집단마다 표준이 다릅니다. 마치 미터법이 제정되기 전에 지역마다, 나라마다 도량형이 다르듯이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 생각을 기준으로 삼아 버립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심으로 확고한 하나님의 기준을 보여 주셨고, 사람들이 임의로 가치 기준으로 삼는 모든 것들을 막아 버리셨습니다. 율법을 통해 누구나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불법인지, 무엇이 해서는 안 될 일인지 다 기록해 두심으로 사람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제 생각에는...우리나라 관습에는...전통입니다. 죄가 아니라 본능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어쩌구 저쩌구’ 하는 모든 말들을 막으셨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을 하나님은 그것을 ‘음행, 간음, 죄’라고 말하십니다. 사람들은 구국의 결단이니, 대의를 위한 희생이니 자랑할 때 하나님은 ‘살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義) 즉 하나님의 기준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앞에서는 자기 의를 주장할 수 없고, 자신의 선함과 의로움, 거룩함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주신 두 번째 목적은 온 세상이 유죄가 되게 하려 함입니다(19b).
법이 없는 곳에는 죄를 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가 되게’ 하십니다. 주목하십시오. 법이 없을 때는 범법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죄도 없기 때문이니라.](롬4:15). 생각해 보십시오. 이곳 미국에는 ‘간통 죄’를 지은 사람이 없습니다. 탁월한 도덕성이 있기 때문이거나 청교도 정신이 흘러 넘치기 때문이 아닙니다. ‘간통’에 관련된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 가면 중혼(重婚), 첩혼이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 나라 법은 ‘일부다처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법은 이렇습니다. 합법과 범법, 유죄와 무죄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변하지 않습니다. 바뀌거나 폐해지거나 떨어지지 않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확고부동(確固不動)합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유죄가 되었습니다. 율법을 기준으로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면 ‘의인’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율법이 주어진 순간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유죄’가 됩니다. 그래서 사면이 필요하고 긍휼과 은혜가 필요합니다.
율법을 주신 세 번째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20절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20). 사람은 율법으로 죄를 알게 됩니다. 바울은말하기를,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니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욕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7:7). 우리는 흔히 자연스런 본능이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나 행동들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건을 탐하고, 사람을 탐하는 것은 본성처럼 보입니다. 어떤 것은 한 두 번 보았을 뿐인데 미치도록 갖고 싶은 마음이 들고, 훔쳐서라도 가져야겠다는 욕망이 듭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본능, 본성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탐욕, 탐심’이라고 말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골3:5)라고 말합니다. 율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것을 죄라고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왜 죄인지 잘 모릅니다. 그 죄가 왜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죄를 알게 하십니다.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매일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다 유죄다’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된 성경을 읽는 이들은 죄에 대해 민감하고, 죄가 무엇인지 잘 깨닫습니다. 행위 이전에 양심과 마음 중심에 있는 것까지 다 살필 줄 알기 때문입니다.
넷째, 율법을 주신 목적은 혼을 회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시키고](시19:10). 누구든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즐거워할 때 그의 혼은 순수하게 되고, 회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세상의 법전과 달리 그 자체에 혼을 회심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를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을 보십시오. 역대기하 34:19, [왕이 율법의 말씀들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으니라.](대하34:19). 요시야 왕은 주의 율법 책을 통해 완전히 회심하여 주의 말씀을 따르고자 결단하였으며, 자기를 낮추었습니다. 참된 회심이란 말씀을 통해서 죄를 발견하고 자신들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란 바로 이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로 자신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자 결단하는 것입니다. 꾸준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깨닫기를 기도하십시오, 놀라운 변화가 임할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 주의 법의 경이로움에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율법을 주신 목적은 ‘사랑’입니다.
디모데전서 1:5, [이제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1:5). 율법은 단지 행위를 통제하고, 정죄하고, 벌을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율법의 가장 큰 목적은 순수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흔히 구약은 율법의 시대, 신약은 은혜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율법의 가장 큰 목적은 ‘사랑’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을 단 두 계명으로 요약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마태복음22:36-40입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서 어느 명령이 크니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둘째 명령은 그와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달려 있느니라.](마22:36-40). 주님께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율법과 사랑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는 사도 바울의 증언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로마서 13:10,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하나님은 냉혹한 법치주의자가 아니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긍휼과 동정심과 연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여섯째,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訓育)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갈3:24). 율법은 다가 올 것들의 그림자요,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증거를 받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성취자요, 완성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해 ‘율법의 끝마침’이 되셨습니다. 로마서 10:4,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롬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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