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의 속임수(히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서로 날마다 권면하여 너희 중에 하나라도 죄의 속임수를 통하여 완악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3:13). 죄는 사람을 속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임에도 불구하고 죄에는 쾌락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속습니다. 죄에는 심판이 있지만 그 징계가 속히 임하지 않기 때문에 심판은 없는 것처럼 속습니다. 죄의 속임수를 대처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성도의 영적 교제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친밀하게 영적 교제를 나누고, 진리의 말씀으로 서로 권면하고 훈계하고 가르치고 교제해야 함으로 죄의 속임수에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로가 뜨겁게 기도해 줌으로써 죄의 올무에서 피할 수 있고, 죄의 권능을 파할 수 없습니다.
● 마귀의 속임수(계12:9).
마귀는 거짓의 아비요, 속이는 자입니다(요8:44). 마귀는 온 세상을 속이고 성도들을 속입니다. *마귀의 간계, 속임수는 너무나 간교해서 성경의 빛 안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마귀는 때로 말씀을 들고 오는데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 아니라 교묘히 빼고, 더하고, 바꾸어서 의심을 심어 주고, 죄를 짓게 만듭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가장 큰 적이 마귀입니다.
● 재물의 속임수(마13:22).
재물은 누구나 소중히 여깁니다. 재물을 신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심히 어렵습니다(막10:24). 재물을 사랑하는 자들은 믿음에서 파선하며 많은 근심과 염려로 자신을 찔러 꿰뚫습니다. 재물을 섬기는 자들은 주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재물의 속임수는 성도들이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가시나무 사이에 씨를 받은 자 또한 말씀을 듣되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로 인해 말씀이 숨이 막혀 열매 맺지 못하는 자라.](마13:22). 영적 성장을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성경적인 경제관, 돈에 대한 바른 교리를 확립해야만 합니다. 돈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성도들에게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 불의의 모든 속임수(살후2:10).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이 속는 속임수입니다. 복음을 거부함으로써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은 아무리 똑똑한 척해도 이미 불의의 속임수에 당한 자들입니다. 사탄의 활동을 보십시오. [저 사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권능과 표적과 거짓 이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로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이니 그 까닭은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살전2:9-10). 오늘날 모든 종교, 모든 종교인들이 진리를 찾고 수행한다고 하지만 모두 불의의 속임수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 사람의 속임수(엡4:14).
사람들은 서로 속고 속입니다. 이것은 영적 성장을 통해서 해결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간교한 술수로 속이고자 하는 자들의 온갖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엡4:14). 영적 어린 아이들은 쉽게 속지만 믿음이 자라면 사람들의 속임수는 밝히 분별이 됩니다.
● 철학의 속임수(골2:8).
어느 시대나 시대를 주도하는 철학이 있습니다. 지금은 인본주의,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사람 중심”이란 말이 가장 고상한 철학입니다. 뉴 에이지 운동은 사람을 신으로 끌어 올리는 교만의 종교입니다. 인본주의는 만물의 척도가 인간이란 종교입니다. 실용주의, 합리주의, 과학과 교육을 신성시하고 높이는 것 등이 모두 철학의 속임수입니다. 더 살기 좋은 세상,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데 종교, 과학, 사회, 정치, 교육, 문화가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통합의 정신이 이 시대의 철학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골2:8).
● 타락한 마음의 속임수(렘17: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사악한 것입니다.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렘17:9).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자신을 속입니다. 교묘하게 위장하고 합리화하고 변명하면서 죄를 숨깁니다. 사람의 양심과 이성은 절대 기준이 아닙니다. 나의 이성이나 감정 역시 절대 기준이 아닙니다. 자신을 신뢰하라!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을 존중하라! 등등 타락한 마음은 자신을 속입니다.
● 정욕과 향락의 속임수(딛3:3).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제일 목표, 최고의 가치를 ‘행복’이라고 믿습니다. 행복이 삶의 가장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성도들은 행복이란 거룩과 의를 추구하는 삶의 결과요, 현상으로 믿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고 불순종하고 속임을 당하고 여러 가지 정욕과 향락의 종이 되어 섬기며...](딛3:3a).
● 하나님의 속임수.
아합의 예를 보십시오. 하나님께 속은 사람들. *가장 무서운 속임수입니다. 주님께서 강한 미혹을 보내시거나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시면 속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진리의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고, 마음에 주님 두기를 싫어하고, 배척할 때 주님은 그들을 내 버려 두십니다. 그 후에 ‘거짓말’을 보내셔서 거짓을 믿게 하십니다. 이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출처: 말씀침례교회 /고린도전서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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