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할 때 그는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오래 참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고난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나를 따르라고 말할 때 먼저 그들에게 보여 준 본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권한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요, 다만 우리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따르게 하려 함이었노라.](살후3:9). 바울은 말로만 성경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본’을 보여 주어 가르쳤습니다. 사람을 따르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첫째, 섬김의 본입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막10:45). 주님께서 친히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런즉 너희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내가 너희에게 본보기를 주었느니라.](요13:14-15).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주님이 본을 보이신 목적입니다.
둘째, 고난의 본입니다.
[참으로 너희가 심지어 그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나니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남기사 너희가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벧전2:21). 주님이 고난을 받았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그 길은 “고난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입니다.
셋째, 용서의 본입니다.
바울이 가장 크게 긍휼을 입은 것이 바로 주님의 용서입니다. 주님은 교회의 핍박자요, 성도들의 살인자인 바울을 향해 오래 참으셨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과 오래 참으심, 용서의 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런 까닭으로 긍휼을 얻었나니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내 안에서 심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앞으로 그분을 믿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 전1:16). 우리는 모두 바울과 같이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들을 향해 오래 참고 용서해야 합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으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엡4:32). 용서할 때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이 기준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할 때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 하면 됩니다.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넷째, 자기 부인의 본입니다.
자기 부인이란 ‘자기, 내’란 말 뒤에 ‘아니하고, 마옵시고’가 붙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신의 뜻대로 산 것이 아니라 ‘자기 부인’의 삶을 사셨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대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복된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주님은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5:30a). 이것이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마음 자체가 없으셨습니다. [....내가 내 뜻대로 하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5:30b). ‘나’란 말 뛰에 반복되는 한 마디는 “아니하고”입니다. [나는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느니라.](요 6:38). 우리 주님께서 이런 삶을 사셨기에 우리를 향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보여준 자기 부인의 본을 따라 자기 부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적 생활이란 ‘자기’가 아닌 ‘그리스도’가 전부인 생활입니다.
다섯째, 희생의 본입니다(요12:24).
주님은 자신을 한 알의 밀알로 희생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홀로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이 시대는 모두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시대지만 누군가의 희생없이는 그 누구도 이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핵심은 자기 희생입니다. 헌신 역시 희생을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한 ‘희생물’로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안에서 걸으라.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헌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주님의 희생을 본 받아 우리 역시 주를 위해, 형제를 위해, 아내를 위해 심지어 원수들까지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생명을 내 놓아야 합니다. 바울은 주님의 본을 받아 자신을 희생 헌물로 드렸습니다. [참으로 너희 믿음의 희생과 섬김 위에 나를 헌물로 드린다 할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모두와 함께 기뻐하리니](빌2:17). 우리 역시 주님께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롬12:1).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사랑, 헌신, 희생, 섬김, 고난, 자기 부인, 용서 등 모든 부분에서 적용됩니다.
따르는 것은 *모방이 아닙니다.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마음 속에 말씀을 받아 믿음과 순종함으로 행위로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imitation of God vs followers of God.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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