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디모데후서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오늘은 새 신자 성경공부 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성경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성경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란 제목으로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불행하게도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모든 성경에서는 공부하다, 연구하다란 뜻의 study란 말을 없애 버림으로써 성도들에게 성경 공부를 면제해 주는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을 공부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I.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
디모데후서 3:16,17을 펴 보십시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먼저 교리를 가르쳐 줍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하나님과 이 우주와 영적 세계와 인간과 자연 세계에 관련된 모든 분야를 정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연구와 관찰, 실험의 결과로 얻어진 결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주어진 진리의 지식이 바로 성경입니다. 인간의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바로 교리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계시가 없을 때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누구인지, 창조주가 누구인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지 해답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몸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몇 천년간 반복해서 보았지만 우리의 몸이 흙으로 지음 받았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아야 할 교리를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이 교리를 통해 우리는 주님을 통해 엄중한 책망을 받습니다. 사악하고 더러운 생각과 이기적인 자아의 모습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신의 본성에 대해 성령께서는 우리를 책망하십니다.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책망을 하시는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우리는 그 책망을 받아들임으로써 바로잡힙니다. [보라,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시는 자는 행복한 자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욥5:17). [내 아들아, 너는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분께서 바로잡아 주심을 싫어하지 말지니 이는 주께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바로잡아 주시기를 마치 아버지가 자기가 기뻐하는 아들을 바로 잡아 주는 것같이 하시기 때문이라.](잠3:12).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은 주님으로부터 바로잡히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로 교육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반복적인 죄에 빠지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 교육이 없는 신앙은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의가 없는 은혜는 감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두 완전하게,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나를 깨끗하게 하며, 나를 거룩하게 하며, 나를 완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합니다.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했으면서도 구령 상담조차 하지 못하고, 삶의 문제가 터졌을 때 영적 분별력이 전혀 없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처음 신앙 생활을 할 때나 몇십 년이 지난 지금이나 구원받았다는 한 가지 사실 외에는 성장이 없다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을 알아야 하며,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잠언 15:28을 펴 보십시오. [의로운 자의
마음은 대답을 얻으려고 연구하거니와
베드로전서3:15을 펴 주십시오. [오직 너희 마음 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며] 이는 위에서 말한 잠언 15:28절과 짝을 이루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전도자로서,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를 빛나게 해야 할 그분의 제자로서 성경적인 답변을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로 대신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할 기회가 왔을 때 세상 이야기와 자기 이야기로 대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잠언 22:17-21을 펴 주십시오. [네 귀를 기울여 지혜로운 자의 말씀을 들으며 네 마음을 내 지식에 쏟을지어다. 네가 만일 이것들을 네 속에 간직하면 그것이 즐거운 일이니 그것들이 어울려서 네 입술에 꼭 맞게 되리라. 내가 너로 하여금 주를 신뢰하게 하려하여 이 것을 이 날 곧 네게 알게 하였느니라. 내가 모략과 지식에서 심히 뛰어난 것들을 네게 기록함은 너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들의 확실함을 알게 하며 또 너에게 사람을 보내는 자들에게 답변하게 하려 함이 아니겠느냐?] 성경에 마음을 쏟는다면 여호와의 증인이든 몰몬교든 카톨릭이든 누구를 만나도 성경을 펴서 대답해 줄 수 있고 그들을 온유함으로 바로 잡고 일깨워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을 지식에 쏟는다면 성경의 경이로움과 말씀의 능력으로 인해 마음은 늘 기쁨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성경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성경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려웠으나 성경을 알고 난 후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 진리의 말씀들의 확실함을 안 후에는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로마서 15:14을 펴 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내가 또한 너희에 대하여 확신하노니 너희 역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충만하여 능히 서로를 훈계할 수 있느니라.] 성경을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형제, 자매들이 서로 서로 영적 지식으로 덕을 세워 줄 수 있으며, 잘못을 바로 잡아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된 진리보다 인간적인 정(情)과 의리가 앞서기 시작할 때 교회는 분열이 생깁니다. 성경을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제자도(弟子道)를 익히고 실천함으로써 영적 지식은 항상 지행합일(知行合一)을 말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신약 성도들 가운데 우리가 본받아야 할 본(本)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다 함께 나를 따르는 자가 되고 또 너희가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같이 그렇게 걷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3:17). 우리가 따라야 할 본으로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모든 것을 확실히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빌3:8). 이제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과 이유를 알았습니다.
II. 그러면 이제 어떻게 성경을 공부할 것인가?
디모데후서2:15을 펴 보십시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하나님은 이 한 구절에서 성경 공부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바로 “올바르게 나누어”
아담 |
노아 |
아브라함 |
모세 |
예수 그리스도 |
공중재림 |
지상재림 |
양심 |
대홍수 |
족장세대 |
율법세대 |
은혜세대 |
환란 |
천년왕국 |
전 인류 |
택함받은 개인 |
유대인 |
교회 |
유대인 |
전인류 |
세대를 올바르게 나누어서 공부하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율법 세대에 적용될 구절들을 은혜의 세대에 적용하는 것은 nonsense입니다. 우리는 지금 아무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성전에 가서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문제 삼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의 기록이 바뀌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죄가 되었던 것이 지금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바뀌었습니까? 아닙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히브리서 13:8절인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을 인용해서 나누기를 거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문제는 그분의 역사 방법도 동일하냐?입니다. 성경은 역사서인 동시에 예언서입니다. 작은 회사일지라도 분기별로, 년차별로 운영 계획이 다릅니다. 부모는 아이를 키울 때도 취학 전, 취학 후, 학교 졸업 후, 결혼 전, 결혼 후에 따라 관계 설정이 다릅니다. 취학전과 학업을 마친 후에 똑같이 대한다면 그는 정신병자일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는 월별, 계절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자신의 섭리적인 계획 가운데 사람을 부르시고, 율법을 수여하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성경의 미리 말씀하신 예언대로 펼쳐질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나누어야 할 것은 대상별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33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게나 실족하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10:31-33). 바울은 대상별로 유대인들, 이방인들, 하나님의 교회로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향한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모두 회개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민족들의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오래 참으심과 사랑의 풍성함을 오는 세대에 보여주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향한 계획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묶어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천년 왕국 이전에 환란 중에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대해 주었느냐를 기준으로 양과 염소로 나누셔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주신 말씀을 교회에 적용하면 큰 혼란이 생깁니다. 이들은 분명히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는 영적 유대인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냥 유대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유대인들과 교회를 나누기 싫어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이는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무지의 소치에 불과합니다.
유대인들과 교회는 침례 받는 방식이 틀립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습니다.”(행2:38).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습니다.”(마28:19). 이는 유대인들은 아버지와 성령을 이미 믿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핵심은 [회개하라]입니다. 이는 그들이 이미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핵심은 [믿으라]입니다. 이방인들은 돌이킬 것이 없습니다. 이방인들이 회개할 것이 있다면 그들의 삶의 방식을 돌이키는 회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약속의 땅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지상 메시야 왕국을 세울 것입니다. 교회는 왕국에 대한 약속이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왕국, 즉 영적 왕국만이 주어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temple)이 있습니다. 교회는 만찬(table)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외에도 유대인과 교회의 차이를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상별로 올바로 나누는 것은 성경을 공부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말씀의 성격에 따라 사실, 명령, 약속 , 교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적 사실과 예언적 사실로 되어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의 이해의 영역과 상관없이 사실입니다. 창세기 1:1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노아의 홍수 역시 역사적 사실입니다. 창세기 6장의 천사들과 인간들의 결혼으로 인해 나온 용사들 역시 사실입니다. 사람이 믿든 믿지 않든 이것은 불변입니다. 구약은 불신자들과 신자들 모두에게 내용의 사실성에 대해 비평과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이라고 해도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란 것 역시 사실입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들이란 사실 역시 불변입니다. 사실은 기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실은 믿음으로 향유해야 할 찬양의 대상입니다. 성경에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들을 찾아서 공부하기만 해도 넘치는 영적 부요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약속입니다. 주로 [...하라, 그러면...]이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믿음과 더불어 순종의 대상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란 말씀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믿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믿는다면 당장 구해야만 합니다. 구하는 것까지는 내가 할 일이고, 뒷 부분은 주님이 할 일입니다. 성도들을 향한 성경의 약속은 약 860여 가지나 됩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약속들을 찾아서 공부하십시오. 그리고, 그것들을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나와 친한 사람이 한 약속도 신뢰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음은 명령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대상도 감사의 대상도 아닙니다. 주님의 명령은 이유 없이 순종해야 하는 순종의 대상입니다. 명령이 주어지면 복종 이외의 어떤 것도 주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거리를 만들어 불순종을 일삼지만 주님의 명령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명령이 이미 저희들에게 하달되었습니다. 순종은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 불합리해 보이는 명령으로 인해 고통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며, 터무니없는 명령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몇 일간 금식을 해 본 후에 결정을 하겠다던가, 다른 것으로 대신 하게 해 달라고 타협안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명령은 지엄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주님의 명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면서 나의 기도는 들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다음은 교훈입니다. 성경은 어느 구절에서라도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15:4을 읽어 보십시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곧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성막은 나와 상관이 없는 이야기 같지만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약의 각종 제사나 명절들은 지금 우리와 별로 상관이 없지만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되었습니다. 삼손의 이야기나 에스더의 이야기, 코라의 반역 등은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 모두 훌륭한 교훈을 주며, 의로 훈육할 소재가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가르칠 때 실제로 구약을 이용하여 가르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6-11을 펴 보십시오. - 다 같이 읽겠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2:13을 펴십시오. [또한 우리가 이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곧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비교하느니라.](고전2:13).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words)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된 모든 어휘를 말합니다. 사람의 지혜는 잠재의식이라고 가르치지만 성령의 지혜는 죄성이라고 가르칩니다. 사람의 지혜는 성적 욕망이라고 가르치지만 성령의 지혜는 정욕이라고 가르칩니다. 전에 어떤 사람이 “Dr. 지바고”란 영화를 보고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사람의 지혜로 답을 하면 “전쟁이란 시대 상황 속에서 눈꽃같이 꽃핀 수채화 같은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가 됩니다. 성령님께서 가르치는 말로 하면, “간통, 음행”이 됩니다. 성경 공부에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철학 용어, 의학 용어, 과학 용어, 컴퓨터 용어 대신 킹제임스 성경 용어를 사용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때로는 무식해 보이고, 무례해 보인다 해도 성령께서 가르치신 말로 가르치십시오.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비교한다는 말은 성경의 어휘를 어휘와 비교한다는 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Strong Concordance 한 권이면 충분합니다. 뒤에 부록으로 있는 헬라어와 히브리어 정의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킹제임스 성경의 어휘만을 연결해서 보십시오. 자신이 알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그 어휘를 찾아서 신, 구약 전체를 쭉 훑어 버리면 답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성경은 살아 있는 책이기에 생명의 유기체처럼 서로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저는 전에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faith란 단어와 believe란 단어를 모조리 다 찾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faith(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의 열매이며, 믿음의 말씀으로 생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반면 believe(믿다)는 나의 의지를 사용해서 믿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은 비슷하지만 같지 않았고, 누구든지 믿음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서 믿을 때(believe)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직접 비교와 비교를 통해서 배운 것입니다. 천사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천사란 단어를 찾아서 서로 비교해 보십시오. 어떤 형제님은 주의 천사(the angel of the Lord)란 단어를 다 찾아서 비교해 보고 나서 성경에서 말하는 주의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란 결론을 내리고 그 내용을 책으로 쓴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 공부의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이와 같이 비교를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해 낸 후 그 내용을 반복해 버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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