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마귀론

속이는 자 마귀
말씀. 계12:9


오늘부터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 하는 사탄(마귀)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초자연적인 존재의 하나로 마귀에 대해서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영적 생활과 실제 삶에서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확히 알아야만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마귀에 대한 성경적 진리를 거의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관계로 영적으로 패배하는 삶을 살고, 열매 없는 삶을 살며, 무기력하고 공허한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 빈곤은 곧 실제적 삶의 빈곤과 실패로 드러납니다. 영적 전쟁에서의 패배는 영적인 문제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존재들이기 때문에 삶의 전반적인 모든 문제에 골고루 영향을 미칩니다. 가족, 친구, 직장, 사업, 교회 문제 등에서 육신의 열매들이 맺히며, trouble이 생깁니다. 지성적인 그리스도인일수록 마귀의 존재를 부인하고 무시합니다. 무식한 그리스도인은 마귀를 지나치게 무서워합니다. 마귀에 대한 무지로 인해 마귀를 무시하고, 부인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고, 마귀의 존재를 지나치게 무서워하는 것도 잘못된 일입니다. 마귀는 우리 몸 속에 들어올 수 있으며 각종 정신 질환, 육체적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화를 일으키는 말을 내뱉어서 인간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전도하러 병원에 갔는데, 옆에 있던 환자가 “예수 지옥에나 가라고 그래, 성경 그것 전부 거짓말이야!”하고 큰 소리를 칩니다. 그는 평생 성경을 한번도 읽어 보지 않았으면서 성경을 거짓말이라고 단정 짓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해 놓고 나서 자신이 한 말을 돌이켜 보니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머리에 생각하지도 않는 말이 전도자를 향해 튀어 나왔습니다. 그는 자신 안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후에 그가 마귀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분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을 150회나 읽었고, 10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한 Peter Ruckman 박사가 거듭나기 전의 일화입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나를 알아야 하고, 다음에는 적을 알아야 합니다.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는 국가 정보원이나 첩보국을 운영합니다. 정보는 곧 국력이기 때문입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안을 생명으로 여기면서 치열한 정보 전쟁을 전개합니다. 적을 알기 위해서 치열한 노력을 전개합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의 선봉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적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전쟁터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형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부터 전하는 말씀은 일종의 병법서요, 전쟁 교본을 숙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저희들을 훈련하시고 예리한 영적 분별력을 갖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귀의 올무에 걸릴 수 있습니다. 마귀는 올무를 놓습니다. 목자의 임무 중 하나는 성도들이 죄에서 벗어나도록 책망함으로써 마귀의 뜻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의 뜻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회복시켜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려 함이라.](딤후2:26). 자존심이 강한 성도들은 자신이 마귀에게 사로 잡혔고, 마귀의 올무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는 마귀가 처음부터 범죄하기 때문이라](요일3:8a)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죄를 범할 때 마귀에게 패배하는 것이요, 사로잡히는 순간입니다. 이때 회개함으로써, 진리의 말씀으로 일깨움을 받음으로써 마귀에게 벗어나 승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해야 합니다(엡6:11).

어떤 이들은 마귀는 성도들의 머리 카락 하나 건드릴 수 없다는 논리를 펴는데 이는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초신자를 집사로 세우지 말 것을 권면했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초신자는 아니 되나니 이는 그가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질까 염려함이라.](딤전3:6). 마귀의 정죄에 빠질까 염려해서입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마귀의 정죄에 빠집니다. 감독의 자격 요건으로 좋은 평판을 받는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귀 때문입니다. [또한 감독은 반드시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하나니 이것은 그로 하여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딤전3:7).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봐 그런 자격 요건을 정한 것입니다. 이런 요건을 준수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교회들의 집사나 감독들이 마귀의 정죄에 빠지고, 마귀의 올무에 빠지는 일은 허다한 일입니다. 마귀는 집사, 감독을 가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마귀들의 이용물이 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것은 사탄으로 하여금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는 우리가 그의 계략들을 모르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고후2:11). 우리는 자신이 사탄의 이용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언행을 문제 삼아 판단하고 이용합니다. 그래서 형제들에게 걸림돌을 두지 않았는지 늘 점검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몇 가지 명령을 주셨는데 기도하라, 전도하라, 서로 사랑하라와 동일한 명령으로 “속지 말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속지 말라는 것은 속이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속임수는 놀음판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기꾼들에게 속아도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속이는 자는 영적 존재들인 마귀입니다. 마귀는 에덴에서부터 사람을 속여 왔는데, 그의 속임수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속임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탄의 속임수, 간계, 궤계에 대해서 바른 조명을 주는 유일한 책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군사들은 영적 세계에 대해서 알아야 하며, 적에 대해서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심을 받은 전사들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고난을 견디어 내라. 전쟁을 치르는 자는 아무도 이 /세상/ 삶의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자기를 군사로 택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우리는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군사들이요, 싸움터에 있는 전사들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용맹무쌍함, 하늘을 찌르는 사기, 사령관의 명령에 대한 절대 복종, 뛰어난 무기 체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력입니다. 군인에게 정확한 정보는 곧 승패와 직결됩니다. 적을 바로 아는 것, 그리고 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승패와 생명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적 마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소스(source)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수도 없고,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른들에게 물어 보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마귀의 작전과 계략을 아는 것 역시 그리 쉽지 않습니다. 마귀는 속임수의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지상 최대의 사기꾼입니다. 마귀의 속임수는 사기 당하는 사람이 사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며, 사기를 당한 후에도 사기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고도의 기만과 책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마귀의 정체, 마귀의 계략, 마귀의 기원과 운명,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방법 등이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는 유일한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마귀가 누구인가? 마귀는 어떤 활동을 하는가? 마귀는 어떻게 역사하는가? 그들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마귀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등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만 지혜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인간에게 성경만 빼앗을 수 있다면 자신의 정체는 노출되지 않을 것이고, 절대로 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진리를 왜곡하고 닫아 버릴 수 있다면 마귀는 사람을 영원히 자신의 종으로 부려먹는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습니다. 성경을 보지 않는다면 항해사가 나침반과 지도를 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군인이 총을 빼앗긴 것과 같습니다. 마귀의 일거수 일투족, 그 속 마음에 있는 모든 것까지 다 드러나게 하는 것은 성경 뿐입니다. 복음서에는 수많은 마귀들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귀 들려 앞을 못 보는 사람, 마귀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 딸을 둔 과부 이야기 등이 많이 있습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마귀들과 무관하게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마귀 들린 사람이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귀 들린 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에는 18년간이나 병에 걸린 병자의 기사기 있습니다. 이 여자의 병명은 의학적으로 무엇이라고 하던 간에 원인은 마귀였습니다. [보라,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약(病弱)하게 하는 영에 붙잡혀 몸이 구부러지고 전혀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니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병약한 것에서 풀려났느니라, 하시며](눅13:11~12). 이는 주님께서 친히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면, 보라,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그 매인 것에서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눅13:16). 여인은 병원의 의사나 약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이는 마귀가 그 병의 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의사들이 이 사실을 알고, 주사나 약만 놓을 것이 아니라 기도도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마귀들려 생긴 병이란 진단이 전혀 없다는 것은 마귀가 그만큼 잘 속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의사들은 쉽게 불치병, 난치병,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라고 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이런 병은 대부분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물리쳐야만 합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에서는 모든 병은 다 마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는 무지한 자들이 있고, 마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다 영적 무지의 결과이며,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군인에게 주적이 누구인지 바로 알고 대비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적과 아군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면 이미 그 전쟁은 하나 마나입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對敵)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政事)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엡6:12). 우리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제도나 체제, 신념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사들, 권능,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마귀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약4:7). 성경은 우리가 싸워야 할 주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對敵)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알기 때문이니라.](벧전5:8-9). 베드로는 ‘너희 대적 마귀’라고 함으로써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의 대상이 마귀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기가 싸워야 할 대적을 바로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귀들과 전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외에 누구도 마귀의 대적이 될 수 없고, 마귀를 적으로 두지 않습니다. 마귀는 영적 영향력이나 사상이나 힘이 아니라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지닌 영적 존재입니다. 그는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엄연히 실재 존재하고 있으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요, 성도들을 참소하고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혜롭기가 사람들을 훨씬 능가합니다. [보라,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사람들이 네게 숨길 수 있는 은밀한 일이 없나니](겔28:3). 그는 능력이 많아 이적과 표적,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런 마귀와 싸우기 위해 우리는 마귀보다 지혜롭고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신문과 뉴스를 통해 지구촌 곳곳에서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에 벌어지는 전쟁 소식을 늘 접합니다. 회사와 회사 간의 무역 전쟁, 개인과 개인의 싸움도 끊이지 않습니다. 총, 칼 들고 싸우는 전쟁은 아니더라도 성도들에게 이 땅은 마귀와의 한 판 전쟁을 벌이는 영적 싸움터란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은 마귀의 home ground입니다. 우리는 적진에서 싸우는 군인들입니다. 문제는 싸움터가 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에도 있고, 가정 내에도 있고, 내 마음 속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싸우는 것과 안에서 싸우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우리의 마음은 마귀와 전쟁이 벌어지는 전쟁터입니다. 여러분은 수시로 전면전을 벌이고, 때로는 국지전을 벌일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전쟁과 싸움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속에서 싸우는 정욕(情欲)들로부터 나지 아니하느냐?](약4:1). 어디서? 너희 지체 속에서. 우리의 마음 역시 전쟁터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세상에서도 이길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 갈등과 번민과 고뇌로 지친 성도가 밖에서 힘있게 싸울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해짐으로써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할 수 있는 진지가 구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말씀의 씨앗을 뿌림으로 생명을 주십니다. 열매를 주십니다. 그 때 마귀는 잠자고 있지 않습니다. 말씀을 빼앗아 먹으러 옵니다.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마음 속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자들이요,] (막4:14~15). 주목해 보십시오. 말씀을 들었을 때에- 이때가 믿음이 생기는 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기 때문입니다(롬10:17). 그러나 사탄이 즉시 와서 마음속에 뿌려진 씨앗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마귀는 도둑질을 합니다. 그는 말씀을 도둑질함으로써 우리 안에 믿음의 씨앗을 통째로 앗아가 버리며, 영적 생명을 도둑질 해 가버립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요10:10a).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한 후에도 아무런 믿음의 변화가 없고, 하나님이 주신 영적 생명이 충만해 지지 않는 성도들은 이미 자신 안에 있던 말씀의 씨앗을 마귀에게 도둑맞지 않았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속에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다른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하늘의 왕국은 마치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가매 잎이 나고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그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주인에게 이르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나이까? 하매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하니 종들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모으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인이 이르되, 아니라. 가라지를 뽑아 모으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같이 자라게 두어라. 추수하는 때에 내가 거두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함께 모아 불태우게 단으로 묶되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들이라, 하리라](마13:24-30). 여기서 밭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 즉 마음 밭입니다. 마귀는 세상에서 우리와 대적해서 싸우기도 하고, 우리 안에 들어와 전쟁을 벌이는데 후자가 훨씬 어려운 전쟁입니다. 싸우더라도 빈터나 남의 집에서 싸워야 이기든 지든 피해가 적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 마음속에 가리지를 뿌림으로써 계속 전쟁이 있게 합니다. 육신과 성령은 서로를 거스리고 대적합니다. 마음 속의 전쟁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5:17). 마귀는 육신을 control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속사람을 control 합니다. 우리의 혼은 이 둘의 전쟁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속에 악한 씨앗을 뿌려 놓음으로써 말씀의 씨앗이 자라지 못하도록 합니다. 세상의 염려, 재물에 대한 욕심, 교만, 시기심, 탐심 등의 씨앗을 뿌려 놓으면 말씀의 씨앗은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는 먼저 마음 속에서 마귀를 몰아내야 합니다. 마귀가 뿌려놓은 씨앗들을 모조리 뽑아 버려야 합니다. 묵은 땅을 갈아 엎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씨를 뿌려도 자랄 수가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로 거두며 너희의 묵은 땅을 부술지니 이는 지금이 곧 [주]를 찾을 때이기 때문이라. 마침내 그분께서 오사 의를 비같이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너희가 사악함을 경작하여 불법을 거두고 거짓의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들의 많음을 신뢰하였음이라.] (호10:12~13). [[주]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의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말라.](렘4:3).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마귀를 환영하고, 마귀의 지시를 따르는 육신의 정욕과 같은 고정 간첩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우군들이 늘 잠복하고 있으며, 마귀의 뜻을 왕성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분명 가인 속에 있는 시기심, 자신의 제물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 불만, 적개심 등의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만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건을 기록하기를,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 그는 저 사악한 자에게 속하여 자기 형제를 죽였으니 무슨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 행위는 악하되 자기 형제의 행위는 의롭기 때문이라.](요일3:12). 가인은 사악한 자에게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귀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전쟁, 싸움, 다툼은 우리 속에 있는 정욕을 자극하는 마귀로부터 시작됩니다. 부부간의 문제, 친구간의 문제, 교회 내의 문제 등에서 다툼과 싸움이 있는 것은 외부적인 문제 이전에 내 마음 속에 침투한 마귀와의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마귀를 이기지 못하면 세상에서 마귀와의 싸움은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5:17). 마귀는 우리의 육신을 자극하고, 충동질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거스르게 함으로 범죄하게 만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마귀의 공격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휴전이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장 마귀적인 요소는 육신적인 생각입니다. [그 까닭은 육신적인 생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참으로 그리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롬8:7). 여러분이 생각을 장악하지 못한 채 마귀에게 빼앗기면 전쟁은 백전백패입니다. 주님은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시고(딤후1:7),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고, 생각의 영을 새롭게 하라고 말씀하심으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십니다. 생각에서 패하면 그것이 곧 말로 나오고, 입으로 나온 말은 곧 이어 현실로 결과가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 전쟁입니다. 마귀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쟁은 영적 전쟁입니다. [비록 우리가 육신 안에서 행하나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고후10:3). 전쟁의 성격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영적 전쟁을 육신적으로 수행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영적 전쟁을 자신의 육신으로 수행했습니다. [보라,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손을 내밀어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의 귀를 베어 버리니](마26:51). 칼로 남의 귀를 벤 것은 바람을 손으로 잡으려는 것과 같이 영적 전쟁을 육신으로 수행하려 한 베드로의 무지를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사람을 때리고, 죽인다고 이기는 전쟁이라면 기독교는 회교도들처럼 종교전쟁을 치르고, 성전(聖戰)을 선포하며 피흘려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상 2000년 교회사는 성도들이 총칼을 들고 전쟁을 수행한 적이 없습니다. 죽이면 죽임을 당했고, 추방하면 추방당했는데, 복음을 전할 때는 사자처럼 용맹했다가도 관원들 앞에서는 파리처럼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는 영적 전쟁을 영적으로 수행했지 결코 육신으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마는 어떻습니까?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자기 동료 제자들에게 이르되, 우리도 그분과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요11:16). 그의 이 말은 목숨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발언 같지만 실제는 두려움과 공포로 점철된 불신의 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지배된 제자들은 주님이 나사로를 살리러 유대로 들어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도마는 주님이 가신다면 “우리 다 같이 올라가서 주님과 함께 죽어 버리자”와 같은 혁명 투사와 같은 동지애를 호소한 것입니다. 그는 이미 영적 전투에서 완전히 패배한 사람이었습니다. 죽으러 가는 사람이 승리자일 수 없습니다. 그는 인간적 신의와 의리를 지키고자 하는 충성심은 있었지만 영적 전쟁을 수행할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도마처럼 훌륭한 인간적 신의와 충성심을 가진 사람을 본 적도 별로 없었지만 때로 “목사님, 저는 이 교회에서 뼈를 묻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목사님을 힘껏 돕겠습니다.”라는 정도의 말은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이들의 이런 말은 매우 힘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영적인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육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참으로 허망하기 그지없습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금식하고, 끊임없이 말씀을 읽고, 모이기를 힘쓰는 성도들이 바로 영적 동역자들이요, 전우들입니다.

영적 전쟁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맹렬한 불을 끄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싸움에서 용맹하게 되어 외부의 군대들과 싸워 물리치기도 하며](히11:34).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원한 생명을 붙들라. 이것을 위하여 너 역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을 하였도다.](딤전6:12). 영적 전쟁이란 사실을 안다면 육신의 힘과 무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 무기가 필요하고, 영적 강건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영적 무기로는 의의 흉갑, 화평의 복음,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엠6:13-17), 믿음과 사랑의 흉갑, 구원의 소망의 투구(살전5:8) 등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마귀를 방어할 수도 없고,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마귀를 향해 공격을 가할 수도 없습니다. [순수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성령님과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과 오른손과 왼손에 든 의의 병기로 그리하며](고후6:6~7). 이런 것들이 영적 전쟁을 하는데 갖추어야 할 영적 무기들이며, 전쟁을 치르는 병사들의 기본 장비입니다. 육신의 무기를 사는 데는 금과 은과 같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적 무기를 구하기 위해서는 돈 대신 기도가 필요합니다. 육신의 무기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체력 단련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적 무기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육신의 무기를 잘 다루는 데는 힘이 필요하지만 영적 무기를 다루는 데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하고, 마음에 지혜와 지식이 가득하다면 이미 두려울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적 전투에 관한한 백전노장이었던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이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또한 지금도 내 안에 있음을 듣는 바니라.](빌1:30).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모든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큰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골2:1). 사도 바울은 자신이 싸운 싸움이 우리에게 훌륭한 교본이요, 모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역시 동일한 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훌륭한 싸움꾼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영적 싸움을 명하고 있습니다. [아들 디모데야, 전에 너에 관하여 주어진 대언들에 따라 내가 네게 이것을 명하노니 곧 그것들을 힘입어 선한 싸움을 싸우며](딤전1:18).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싸우지 말고 평안하게 지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적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이요, 휴전도 평화협정도 없는 것이기에 싸울 것을 독려한 것입니다. 싸우십시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노라.](히12:4). 싸움을 피하면 죄의 노예 밖에 되지 못합니다. 싸움을 해서 승리하십시오. 기도로 싸우고, 금식으로 싸우고,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몸의 행실을 죽이십시오.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롬8:13). 적과의 전쟁에서 자비란 없습니다.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사소한 인정을 베풀어서는 안되며, 죄와의 전쟁에서 여지를 남겨 주어서는 안 됩니다. 육신을 철저히 죽여 버려야 합니다. 사울 왕처럼 자기 마음대로 적을 살려 주어서는 자신이 망합니다.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이집트 맞은편 수르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족속을 치고 아말렉 족속의 왕 아각을 산 채로 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와 살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그것들을 진멸하려 하지 아니하였으나 나쁘고 가치 없는 것은 다 진멸하니라.] (삼상15:7~9). 구약의 아말렉은 육신을 예표합니다. 주님은 사울에게 철저히 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각을 산 채로 잡고 살려 주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이 술, 담배는 끊으면서도 몇 가지는 취미니 습관이니 하면서 여전히 죄를 즐기는 것과 같습니다. 사무엘을 보십시오. 사울이 살려준 아각을 어떻게 했습니까?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족속의 왕 아각을 여기 내게로 이끌어 오라, 하니 아각이 기분 좋게 오며 이르되, 분명히 사망의 괴로움이 지나갔도다, 하니라. 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로 하여금 자식이 없게 한 것같이 여인들 가운데서 네 어미가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사무엘이 길갈에서 [주] 앞에서 아각을 찍어 토막을 내니라.](삼상15:32-33). 사울과 사무엘의 차이는 육신을 처리하는 성도들의 차이입니다. 육신적 성도들은 자기가 아끼는 것들은 멸하지 말자,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자, 잘만 사용하면 좋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귀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반면 영적인 성도들은 남김없이 깨끗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철저히 죽여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肢體)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골3:5). 마귀는 언제나 우리 속에 육신의 정욕들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철저히 멸해 버려야 합니다. 아까와 하거나, 미련을 남기지 마십시오.

마귀에 대항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준비사항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너희가 마귀의 간계(奸計)를 능히 대적하고 서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胄)를 입을지니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對敵)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政事)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것은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여매고 의의 흉갑(胸鉀)을 입고 화평의 복음을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며 이것으로 능히 저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엡6:11~17). 군인이 방탄복을 입듯이 마귀를 대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어야 하는데 전신갑옷의 재료들을 보십시오. 쇠나 방탄 유리나 특수 섬유와 같은 물질이 아닙니다. 영적 전투에서 필요한 것은 영적인 갑옷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허리 띠는 진리요, 흉갑은 의요, 신발은 화평의 복음이요, 방패는 믿음이요, 투구는 구원이요, 칼은 말씀입니다. ‘진리, 의, 복음, 믿음, 구원, 칼’이 전투하는 군사들의 완전 무장인 것입니다. 이 외에 다른 것은 불필요합니다. 이렇게 입고 있으면 로보캅이나 로봇태권 V 속에 조종사보다 더 튼튼히 무장한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준비가 완벽히 되었으면 이제 마귀의 작전을 알고, 대책을 세우고 싸움에 임하면 됩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인류의 시작부터 마귀는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이 속임수입니다. 마귀의 핵심 전술은 속임수입니다. [이에 그 큰 용이 내쫓기니 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계12:9). 모든 전쟁에서 속임수보다 더 효과적인 전술은 없을 것입니다. 적을 속이는 일은 거짓이 아니라 전술이며, 작전이며, 지혜입니다. 마귀는 에덴에 있는 여자를 속였습니다. 여자는 범죄한 후에 주님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속이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매](창3:13). “뱀이 나를 속이므로”- 뱀은 여자를 속였고, 여자는 속임을 당했습니다. 이 말은 변명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러나 뱀이 그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변질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고후11:3). 사도 바울은 뱀이 그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였다고 증거합니다. [또한 아담이 속지 아니하고 여자가 속아 범죄 가운데 있었음이라.](딤전2:14). 여자는 속아서 범죄 했습니다. 속임수, 이것은 마귀가 온 세상을 향해 펼치는 장기(長技)이며, 인류 역사 6000년 동안 변함없이 애용하는 전술입니다. 알면서 속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뻔히 알면서도 속는 경우가 성도들이 마귀에게 당하는 수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권능과 지혜가 그분께 있고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분께 속하였으므로](욥12:16)란 말씀입니다. 어떤 속임수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속는 자와 속이는 자는 모두 주님께 속하였습니다.

마귀는 어떻게 속이는가? 말씀을 빼앗기 위해 속입니다. 적의 무기를 빼앗을 수 있고, 화력을 무기력화 시킬 수 있다면 이미 전쟁의 승패는 끝이 난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전쟁 무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검투사가 칼이 빼앗기고, 보병의 손에 총이 빼앗겼다면 다음 수순은 묶여서 포로로 끌려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마가복음 4:14-15을 보십시오.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마음 속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자들이요](막4:14-15).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 갑니다. 새가 밭에 뿌려진 씨앗을 주워 먹어 버리면 거기에는 싹이 나고, 열매가 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 밭에 하나의 말씀이 뿌려지면 그것을 노리는 사탄이 즉시 나타납니다. 말씀을 빼앗겨 버렸다면 그는 칼을 빼앗긴 것입니다. 마귀를 공격할 무기를 빼앗긴 사람들이 어떻게 전쟁을 할 수 있습니까?

마귀가 사람들로부터 성령의 검(칼)을 빼앗을 수 있는 4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기독교 초기 역사에 주로 사용한 방법인데 성경을 소유한 사람을 성경과 함께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성경과 함께 불태워진 시대는 A.D 1400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는 마귀의 전술 전략이었습니다. 앞으로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시대에 다시 한번 이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는 성경이 금서로 지정된 나라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요, 성경을 읽으면 처벌을 받는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의 손에 성경이 쥐어지는 것을 막아 버리고, 그들의 손에서 성경을 빼앗아 버립니다.

●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검을 빼앗는 두 번째 방법은 말씀 가운데서 64,000단어를 빼버리는 것입니다. 중요한 단어와 구절들을 빼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말씀으로 바꾸어 버리고, 더해 버립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을 빼거나 더하는 일을 엄중히 금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신4:2). 에덴의 동산에서 여자가 마귀에게 속은 것은 말씀을 더하고 빼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이는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창2:16~17). 그러나 마귀가 물었을 때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더하고 빼 버렸습니다. [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산 나무들의 열매를 먹을 수 있으나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매] (창3:2~3). ‘마음대로’(freely)란 말씀이 빠졌습니다. “만지지도 말라”는 말이 더해졌습니다. ‘반드시 죽을 것임이라’는 말씀이 ‘죽을까 염려하노라’는 말씀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짧은 구절 속에 말씀이 빠지고, 더해지고, 변개되는 모든 일이 다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거기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지니라.](신12:32)고 엄히 명하셨습니다. 이 모든 속임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하거나 빼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종파들에서 이런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 외에 외경을 더합니다. 외경은 말라기* 대언자 이후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 하나님*의 말씀이 없던 시간 동안 기록된 것으로, 위의 예순 여섯 권의 책과는 달리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그분의 말씀이 아닙니다. 단순히 사람이 기록한 역사적 기록, 소설, 교훈, 혹은 전설입니다. 외경에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자선을 통한 속죄", "자살과 노예 제도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기독교의 교리와 충돌하는 구절도 있고, 내용면에서도 모순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나 하나님*의 사도들 중 어느 누구도 외경을 인용한 적이 없습니다. 천주교 성경은 '에스드라 상하'서와 '므낫세의 기도'를 뺀 나머지 책들을 "제 2정경"으로 인정하여 이것을 구약 성경의 일부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성경을 보시면 "수산나"와 "벨과 뱀", "아사랴의 기도"는 "다니엘"서에 같이 들어있으며, "그리스어 에스더"가 정경의 "에스더서" 뒤에 합쳐져 있고, "예레미아의 편지"는 "바룩"서의 6장으로 같이 들어있습니다. 일부 영어 천주교 성경에는 "마카베오하(이)"에 이은 "마카베오삼· 사서", "시편 151편" 같은 외경도 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은 초판에서는 외경 본문을 "부록"으로 제공했으나, 이것은 KJV 번역자들이 당시 성경 번역자들의 관례를 따른 것이었지 외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수록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는 일은 그 자체가 마귀에게 속임을 당한 것이요, 거짓말쟁이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지니 이는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실 터인즉 네가 거짓말쟁이로 드러날까 염려함이라.](잠30:6).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자세를 갖지 못함으로써 수많은 속임수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꿈, 환상, 방언, 계시, 예언, 통변 등 다양한 은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자들을 속이는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모든 사역자들은 이런 명령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주]의 집 뜰에 서서 [주]의 집에서 경배하려고 오는 유다의 모든 도시들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전하라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렘26:2). 여기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그는 마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에게 재앙과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 버리면 하나님께서 생명 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빼 버리시리라.] (계22:18~19). 이는 무섭고도 엄중한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자신의 당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고 부패시키는 자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많은 사람들 같지 아니하고 오직 진실함에서 난 것같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같이 하나님의 눈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기 때문이니라.] (고후2:17). 이미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강단에서도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감추어 둔 정직하지 못한 일들을 버리고 간교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속임수로 다루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눈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게 우리 자신을 추천하노라.](고후4:2). 말씀을 속임수로 다루는 사람들이 마귀의 일꾼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의의 사역자들인 줄 알고, 주님 앞에서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이런 일 저런 일을 했다고 말하겠지만 주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하고 저주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신화다, 요한 계시록은 상징이다. 성경은 영적 교훈적 진리이지 역사적 진리는 아니다.]라는 식으로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때로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들의 입을 통해 "이 부분은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또는 "이것이 더 좋은 번역입니다만..."라고 말함으로써 말씀을 듣고 있는 성도는 성경의 무오성과 신뢰성에 대한 믿음이 파괴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고침으로써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성도들의 마음 속에서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만약 아내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의 말을 자주 고쳐 주면, 자녀들은 곧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아버지의 음성을 자주 고치면, 그리스도 안에서 아직 영적으로 어린 아기들은 더 이상 그분의 말씀에 두려워 떨지 않을 것입니다(사66:5).

● 마귀가 앞에 말씀드린 세 가지 방법으로도 빼앗지 못한 사람들, 즉 킹제임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우리들의 검을 빼앗는 방법은 매일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성경을 읽지 않고, 어렵다며 읽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읽지 않고, 계속 책장 위에만 성경을 두면 그는 영양을 섭취하지 않는 어린 아이처럼 약해지고 말 것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는 그 자체가 마귀에게 속임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모든 것 되신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다음에는 우리의 대적자 마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무기는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엡6:17).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를 공격하는 유일한 공격 무기요, 얼마나 강력한 검인지 자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권능이 있어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骨髓)를 찔러 나누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니](히4:12). 말씀을 마음 속에 지니고 묵상하고, 사용하고 그 말씀으로 권면하고 기도한다면 여러분은 마귀를 능히 대적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말씀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면 그는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양날 선 예리한 검은 어린 아이들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어떤 농부가 읍내 농기구 가구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보고 당장 자동톱을 하나 샀습니다. 그 포스터에 자동톱을 선전하는 광고 문구가 이 농부의 마음을 사로 잡았는데, ‘이 자동톱은 두 시간에 5그루의 참나무를 벨 수 있음’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부가 그 톱을 가져가서 참 나무를 베는데 하루 종일 베어도 5그루도 벨 수 없었습니다. 땀만 나고 애만 먹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그 톱을 들고 시장에 가서 “물어 주시오. 이 톱을 가지고 죽도록 애를 써도 하루 종일 참나무 5그루도 벨 수 없었소”라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물건 판 주인은 말하기를, “그럼 나와 같이 갑시다.” 같이 와서 참나무가 있는 곳에 와서 스위치를 켜니까 톱에 달린 모터가 돌아가면서 두 시간 내에 참나무 5그루를 베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전기 톱이라도 스위치를 걸지 아니하면 인간의 힘으로 베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스위치를 켜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믿음의 전선을 통해 말씀의 능력을 동력으로 사용해야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말씀이 마음 속에 있지만 내 힘으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의지하고 그것만 사용하려고 하니까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잘 안되는 것입니다. 마귀와의 영적 전쟁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우리 주님의 능력과 지혜를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계속 하겠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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