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연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대속도 죄사함도
모두 관념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저
편에 무엇인가 있을 것이란 막연하고도 희미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고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인
욥기에는 욥이 육체적 부활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
이는 내가 알기에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이니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시리라. 내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한 뒤에도 내가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 콩팥이 내 속에서 소멸될지라도 내가
직접 하나님을 보리니 다른 것이 아니요, 내 눈이
바라보리로다.](욥19:25-27). 구약의 선지자들은 부활에
대해서 분명하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대가
흘러갈수록 부활에 대해서 점점 희미해지고 이 땅에서 먹고
살 것에 대해서만 신경 쓰는 짐승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부활 신앙이 없는 삶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혜요,
명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감(音感)이 뛰어난 사람이란
음의 미묘한 차이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구분할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색감(色感)이 뛰어난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 같아 보이는 색깔을 다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색감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은 훌륭한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미각만으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을 감고 혀끝으로 수백 가지 와인의 맛을 감별해 내고,
무엇이 더 들어가야 하고, 무엇이 덜 들어가야 하는지
압니다. 그런데, 이런 고도의 감각(感覺)을 가진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들에게는 모두 절대
음감, 절대 색감, 절대 미감, 등 절대적인 기준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양한 것을 광범위하게, 세밀하게 구분할
능력은 절대적인 감각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절대 선(善)에
대한 감각이 내 안에 자리잡은 사람만이 죄와 허물, 과오를
예민하고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절대 진리에 대한
개념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지 않는 이상 우리는 교리의
풍조에 밀려다닐 수밖에 없고, 마귀의 유혹과 육신의
연약함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저와
여러분에게 바로 절대 선, 절대 진리를 가르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죄와 허물, 선과 악에 대한 모호한
개념을 없애고 분명한 차이를 제시해 줍니다.
이곳에 계신 성도들이라면
구원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여기서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풍성한 은혜와 생명 가운데 열매맺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믿으면서도,
풍성한 삶을 사는 것에는 실패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죄 가운데 살던 사람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죄사함 받는 것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에 대해서 알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주위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부러워할 정도로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은 그리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 가운데
일어난 단회적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모든 신자들 안에 잔잔히 흐르는
생명이요, 힘이요, 능력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이 부활의
생명이 살아 역사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은 욕구 불만에
가득한 성난 어린아이처럼 인상을 찌푸린 채, 짜증나는 교회
생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꿈을 체념해 버린 죽음 직전의 노인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되어진 풍성한 삶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하고
체념한 그리스도인들을 너무나 자주 만납니다. 왜 그렇게
초라하고 비참하고 파리한 삶을 삽니까?
이는 우리의 예배에
문제가 있고, 우리의 기도에 문제가 있고, 우리의 성경
읽기에 문제가 있고, 우리의 교회 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에 은혜가 없고, 신령하고 복된 영적인
생명이 메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살고 있는
수준의 삶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구하십시오. 골방에서 눈물로 요를 적시고, 가슴을 치며
엎드린 채 그리스도 예수 안에 마련된 풍성한 은혜와 진리를
주시도록 구하십시오. [
또한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이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오늘 기도 모임에서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되겠습니까? 어떤 그리스도인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거룩한 삶, 성령이 주시는 기쁨, 평안, 승리,
능력...이런 것들은 세상에서 그냥 바라만보다 죽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운명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새롭게
경험한 이후로 이런 것들을 나의 삶 속에서 체험하고
간증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때는 예배가 끝나고
전도하러 가는 성도들이 불쌍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손에는
성경과 전도지를 집었는데 어깨는 축 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통계 조사에 따르면
매일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은 100명 중 3명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말씀을
통해서 깨우침을 받으며, 은혜를 누리지 못할 때 형식과
틀만 있을 뿐 참된 능력이란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며, 풍성한
열매를 맺고자 하는 영적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을 읽고 공부하십시오. 주님께 자신의 혼을 쏟아 놓고
기도하십시오. 교회의 예배를 부흥시켜 주시도록, 죄의
자백과 회심이 있는 예배, 혼이 소생하고 영적 능력이
충만해 지는 예배, 첫 사랑이 회복되고 복된 소망으로
넘치는 예배, 참된 기쁨과 감격이 있는 예배, 진리가 힘있게
선포되고 거기에 무릎꿇는 예배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설교와 성경 공부가 단지
교리적이고 관념적인 성경 이론이 아니라 말씀의 갈증을
느끼는 성도들의 양식이 되고 생수가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는 날마다 지식의
빈곤을 느끼며, 허기를 느낍니다. 주님의 장엄한 능력을
동반한 진리가 선포되어지고, 성도들은 그 진리를 깨닫고 그
권세에 압도당함으로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
오늘 선포되는 이 부활의
설교는 지식과 은혜가 함께 넘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다 같이 머리를 숙이고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고 기록했습니다(전9:5). [
살아 있는 자들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거니와 죽은 자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 잊혀졌기 때문이라.] 하지만
신약 성경의 계시는 이것을 훨씬 능가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어둠과 무지 가운데
있지 않고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환히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믿는 신자들에게 한 일입니다.
사복음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마다
제자들이 매우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불평을
했고, 어떤 때는 따지고 들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 꾸짖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본질적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에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복된 소망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지각력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말은
제가 제자들이나 선지자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희들이 그들보다 더욱 믿음이 좋다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쉽고
정확한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계시해 주셨다는 것도 진리의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 하시면서 모든 진리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요16:13). 이런 축복은 이전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도 미친 적이 없는 영광스런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구절들은
단지 일반 부활(general resurrection)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눈여겨보면 콤마(,)를 사이에 두고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땅의 티끌 가운데
잠자는 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 얼마는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겠고, 얼마는 수치와 영존하는 치욕에 이를
것이며](단12:2). 성경은 두 가지 부활, 두 부류의 사람들의
다른 부활에 대해서 말합니다. [
이 말에 놀라지 말라. 이는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기
때문이니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영벌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예수님의
지상 사역 당시 사람들의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였지만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에 대한
개념은 없었습니다.
예) 요한복음 11:23 [네
오라비가 다시 일어나리라]--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
요한복음 11:24 [마르다가
그분께 이르시되, 마지막 날 부활할 때에는 그가 다시
일어날 줄 내가 아나이다.]--죽은 자들의 부활.
부활이 없다고 믿었던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대해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저 세상과 죽은 자들로부터(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부활을 얻기에 합당한 것으로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지도 시집가지도 아니하고](눅20:35).
예민한 성경 독자는 성경
어휘들의 단, 복수를 통해서, 시제를 놓치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놓치지 않습니다. 어떤 성경 독자는
성경의 모든 말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는 말인 줄 알고
담대히 하나님께 구하지만 아닌 것은 절대 응답될 수
없습니다. 예민한 성경독자는 성경의 본문이 어느 시대에
적용되는 말인지 놓치지 않습니다. 신학적으로
세대주의자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차이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구약과 신약은 다릅니다. 신약과 환난
시대 역시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차이점을 예민하게
나누어 볼 때 하나님의 영적 진리를 깊이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고 성경의 힘과 생명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부활에 대해서 성경의 나타난 진리들을 비교하고 그
차이점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부활”(resurrection)이란
죽었다가 살아 나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먼저 구분하셔야
할 부활은 “죽은 자들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the dead)과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습니다(롬1:4,행4:2).
성도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할 것입니다. 반면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습니다. 이는 악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기 위해서 모두 일으킴을 받는 부활입니다. 이 두
부활은 같은 부활이 아닙니다. 대상이 다릅니다. 시기가
다릅니다. 주님은 이 부활을 유대인들의 추수 방법과
일치시키셔서 설명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추수 방법은 3가지
서로 다른 시기가 있었습니다.
1. 첫 열매들(firstfruits)1)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들
2. 수확(harvest) - 교회
시대의 성도들의 휴거 및 부활
3. 이삭 줍기(gleanings)- 환란
성도의 휴거 및 부활
뜰이나 정원에 만약
토마토를 심어 보신 분이라면 이 수확 방법을 금방 이해하실
것입니다. 처음에 첫 열매들이 열립니다. 예쁜 토마토가 몇
개 열린 것을 보면 주인이 와서 따 줍니다. 이는 더 많은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곧 여름이 접어 들면서
엄청나게 열매를 맺습니다. 이 때는 매일 따도 매일
열립니다. 이 때를 수확기라고 합니다. 가을이 접어들면서
수확기는 끝이 납니다. 하지만 주인은 뽑지 않습니다.
햇살이 따스한 동안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적지만 계속해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삭줍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수확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는 성도들을 3번에 걸쳐
거두어들이십니다.
1. 첫 열매들
주님의 자기 표현 가운데
한 가지는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입니다. 주님이 부활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은 자동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로부터의 첫번째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일어나실 때 구약 성도들의 무덤이 열리면서 함께
일어났습니다(마27:52,53). [
무덤들이 열리니 잠든 많은
성도들의 몸이 그분께서 부활하신 뒤에 일어나 무덤 밖으로
나와서 거룩한 도시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니라.](마27:52,53).
이 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숨을 거두자마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의 일입니다.
이들은 구약의 성도들로서 자신들을 구속할 메시아를
믿음으로 기다리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셔서 승천하실 때 무덤에서 나와
예루살렘을 걷던 사람들과 아브라함의 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저 하늘로 데려 가셨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
이 세상은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마귀(히2:14)의 권세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내려 하심이라.](히2:15)는
말씀대로 모두 건져내신 것입니다. 첫 열매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엡4:8)
a. 첫 열매들은 십자가의 승리에 대한 노략물입니다. [정사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spoiled)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골2:15).
b. 신약의 성도들은 더
이상 지하로 내려 가지 않고 바로 저 하늘의 낙원으로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고후12:1-4). 누가복음 16장의 아브라함의
품이 지하에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볼 것.
c. 첫 열매들은 곧 수확이
올 것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현재 구약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을 했고, 이제 남은 것은 신약의
성도들입니다.
2. 수확(harvest)
이 사건은 교회 시대가
끝날 무렵에 있을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3-18), 살아 있는 성도들은
그분과 같은 모양으로 변화되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요11:26).
그리스도인은 죽음이 없습니다. 성경은 성도들의 죽음을
잠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는 신약 성도의
부활에 대해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게 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니](고전15:51,52).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소망하고 기다리는
사건이 바로 이 수확입니다.
3. 이삭 줍기(gleanings)
성경은 앞으로 있을 죽은
자들의 부활이 한 번 더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1:11,12에 [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명의 영께서 그들 속에
들어가시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 이 두 대언자가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
큰 음성이 나서, 이리로 올라 오라,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구름 속에서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바라보더라.] 이들은 환란 중에 죽은 성도의 부활과
휴거를 보여 줍니다.
계시록 7장에서 우리는
144,000명의 증인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보호하심을 받아 이
땅에서 주의 일을 합니다. 이들은 계시록 14:1-3에서 하늘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 직전에 있을 환란
성도들의 휴거와 부활이 바로 마지막 수확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이 3가지 서로 다른 시점에 발생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요약합니다. 첫째, 마태복음 27:52에서 발생 둘째,
주님께서 오실 때 마지막 나팔 소리(고전15:51,52), 셋째, 환란
성도의 부활 및 휴거(계11:11,12). 성경은 이 셋을 가리켜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이 바로 첫 번째
부활인 것입니다. 계시록 20:5,6절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니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이들을 다스리는 권능이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계20:5,6).
반면 악인 가운데 부활한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말에 놀라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을 행하는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영벌(永罰)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죽은 자들의 부활이란 바로
천년 왕국이 끝난 후에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석 앞에서
심판을 받기 위해 나오는 심판입니다. 여기서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영원히 불타는 불 못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한번 죽고 부활 한 후 심판을 받아서 또 한번 영원한 고통
가운데로 던져짐으로 또 한번 죽습니다. 심판을 받기 위한
부활이 바로 [죽은 자들의 부활]입니다.
어떤 unitarian(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보편적 구원론을 믿는 사람들)이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말하기를 “물론입니다.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문제는 어디서 영원히 사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사람은 모두 부활합니다.”-
“물론입니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부활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상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한 단어(from vs of)의
차이로 빚어지는 엄청난 차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다른 것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소망을 지닐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성도와
살아 있는 성도를 하늘로 부르시는 이 세 가지 방법을 첫
번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셋이 하나가
되는 증거들을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현재
신자들에게 주는 실제적인 유익은 무엇입니까? 성도들은 이
부활 신앙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고 미래의 소망일 뿐 현재 내가 사는 일상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재현되고 체험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명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고난과 고생의 눈물을 각오하라는 비장한 심정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날마다 부활의 승리와 기쁨과 능력을
부여하시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주님의 십자가는
단회적인 사건이었지만 내가 질 십자가는 “날마다”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부활은 단회적 사건이었지만 “내가
누릴 수 있는 부활은 매일입니다.” 이 명령에 가장 잘
순종해서 본을 보여 준 사람은 바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31에서 [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바울의 성령 충만한 삶과 그의 열매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매일 십자가를 지는 삶은
고행의 길이 아니라 부활의 길입니다. 매일 십자가를 지는
삶은 겉 사람은 썩어 없어지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입니다(고후4:16).
많은 사람이 아직도 부활을 머리로만 알고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 실생활에 적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구원, 비참한 현실의 모순 가운데 살아간다면
이제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하고 upgrade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부활은 현재 나의 삶을 영광스럽고, 풍요롭게 해
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