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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참 신자와 거짓 신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내에 참 신자와 그렇지 않는 거짓 신자를 어떻게 구별하는가? 고민 아닌 고민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은 하는데 정말 거듭났는지, 그의 혼이 구원받았는지 의심이 갈 때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곳 교포 사회에는 참 신자가 아닌 거짓 신자들이 교회의 행정을 관여하고, 집사나 장로가 되고 경건한 척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지역 교회는 순수한 양 무리들의 모임이 아니라 이리와 개와 돼지들이 들끓는 동물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떠나자 마자 들어닥칠 이리(늑대)들에 경고했습니다. 사도행전 20:29, [이는 내가 알거니와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임이요](행20:29). 지역 교회 형제들에게 누누이 당부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2, [개들을 조심하고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며 살을 베어 내는 자들을 조심할지니](빌3:2). 개는 믿지 않는 남자 불신자들을 지칭합니다. 반면 돼지는 믿지 않는 여자 불신자들을 말합니다(벧후2:22).

그러나, 이런 현상은 부득이한 것이며,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밭에는 주인이 뿌리지 않는 잡초들이 함께 자라듯이 교회에는 주님의 피로 씻음 받지 않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신자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는 비단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계시록의 천년 왕국까지 전 세대에 다 걸쳐 공통적으로 있는 현상입니다. 마태복음 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왕국의 자녀들이로되 가라지는 저 사악한 자의 자녀들이라.](마13:38). 왕국의 자녀들과 사악한 자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태어난 주님의 자녀가 있고, 마귀를 아버지로 둔 마귀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요한 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말하거니와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8:44). 사악한 자의 자녀, 마귀의 자녀들이 세상에 그냥 동떨어져 살면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자녀와 섞여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이 사실을 늘 확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이미 그 사실이 예언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알곡과 가라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많은 경우에 설교나 성경 공부를 통해서 태만한 신자들에게 경고나 권면을 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이 구절은 구원받은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분하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았지만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위선자나 자신을 속이는 기만자들에게 적용할 말씀이 아닙니다. 아예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종교적으로 사는 것과 구원은 받았는데 타락하여 육신적으로 사는 사람은 무척이나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경을 통해 모든 일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형제의 육신적인 행동이든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종교적 행위이든지 성경적인 것과 비성경적인 것에 대한 기준과 판단력은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교회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15, [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거짓 신자들은 늘 있습니다. 창세기 4:3-5, [시간이 흐른 뒤에 가인은 땅의 열매 중에서 헌물을 가져와 주께 드렸고 아벨도 자기 양떼의 첫 새끼들과 그 기름 중에서 가져왔더니 주께서 아벨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가지셨으나 가인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갖지 아니하시므로 가인이 몹시 분하여 침통해 하니](창4:3-5). 하나님은 그들이 가지고 온 헌물보다 먼저 그들을 보셨습니다. “가인과 가인의 헌물에”(순서를 주의할 것) 관심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의 아들 둘 가운데 하나는 바른 믿음의 소유자였지만 하나는 거짓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가인이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가인은 종교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히려 아벨보다 더 정성을 들여서 자신의 땀흘려 수고한 땅의 소산물을 취해서 주님께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가인의 제사가 아벨의 제사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이 가르쳐 준 본을 따라 드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가인의 후예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다서 1:11a, [화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이는 이들이 가인의 길로 갔으며....](유11a). 가인은 종교 행위에 익숙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은 없는 잃어버린 자들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출애굽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이집트를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2:38, [섞인 무리와 양떼와 소떼와 심히 많은 가축도 그들과 함께 하였더라.](출12:38). 재앙의 땅 이집트를 떠나려는 무리들이 덩달아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끼여들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후에 약속의 땅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는 이스라엘을 여러 번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민수기 11:4-6, [그들 가운데 썩여 사는 무리가 탐욕에 빠지매 이스라엘 자손도 소리내어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까? 우리가 이집트에 있을 때에 마음대로 먹었던 물고기와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양파와 마늘이 생각나거니와 이제 우리의 혼이 메마르고 이 만나 외에는 우리 눈앞에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민11:4-6).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썩여 사는 무리들이 표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표시가 났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같이 이집트를 떠났고, 같이 홍해를 건넜으며, 같이 만나를 먹었고, 같이 모세의 지도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양무리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탐욕에 이끌렸고, 불신에 빠졌고, 큰 시험에 빠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교회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행7:38).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섞여든 이들을 솎아 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의 신앙을 따라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언제나 기록된 말씀과 하나님 앞에 정직한 믿음만이 자신을 지켜 줄 수 있습니다.

섞여 사는 무리를 분리해낸 것은 느헤미야 때의 일입니다. 느헤미야 13:3, [이제 그들이 이 율법을 듣고 섞여 사는 모든 무리를 이스라엘에서 다 분리시켰느니라.](느13:3). 유대인들은 후에 바리새인들이라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란 분리주의자들이란 뜻입니다. 성경에서 바리새인들이 출현하게 된 것은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이렇게 분리를 시작하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바리새인은 아주 나쁜 의미로 성도들에게 각인되어 있지만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충실하고, 헌신적이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한 열정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분리된 자, 즉 바리새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바리새인이 율법의 외양을 율법의 정신보다 중시하는 잘못을 범하여 우리 주님과 침례인 요한에게 정죄를 받았지만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2중적인 잣대가 문제이지 바리새인의 취지와 전통을 매우 본받을 만한 것입니다. 교회의 순수성은 개혁을 통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분리를 통해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바빌론 포로 이후 유대인들이 이전처럼 우상 숭배의 죄에 빠져들지 않고, 지금까지 2,000년 동안 단일 민족을 지켜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바리새인들의 철저한 분리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배교자들을 색출하고, 이교도들과 결혼한 자녀들을 추려내어 그 수가 점점 감소하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율법에 철저하게 순종함으로써 성경과 세상 역사에 주인공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는 많은 이단들이 있고, 거짓 교사들이 있으며, 마귀의 일꾼들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현실적으로 이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13-15절, [이는 그러한 자들이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며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이는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사탄의 사역자들도 또한 의의 사역자로 가장한다 하여도 결코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의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3-15).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도 예외가 없습니다. 지금 현제 거짓 사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심지어 사탄의 사역자들이 의의 사역자로 가장하여 강단을 점유하여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완전한 성경은 없다.” “모든 성경은 번역본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성경은 영적, 도덕적으로는 가치가 있지만 역사적, 과학적 오류는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누구의 음성인 것 같습니까? 주님의 사역자들의 음성입니까? 의의 사역자로 가장한 마귀의 음성입니까? 어디 이뿐입니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문자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경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을 너무 많이 공부하면 교회 문제만 일으킨다.” 이것은 누구의 음성입니까? 조용하게 기독교 인본주의를 강조하는 목사들은 결코 의의 사역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부활, 승천, 대환란, 문자적인 재림, 천년 왕국등 원색적인 복음 사역에 전념하지 않는 모든 사역자는 의의 사역자가 아닙니다. 갈라디아 교회도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4, [이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이들이 몰래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엿보아 우리를 노예로 삼고자 함이로되](갈2:4), 거짓 형제들은 모든 예배와 기도 모임, 성경 공부, 봉사 활동 등 할 것은 다 하지만 구원받은 형제가 아닙니다. “은혜와 믿음만으로 거저 얻는 구원, 구원을 이렇게 쉽게 만들면 곤란하다”고 주장하며, 엄격한 율법주의와 행위 구원을 주입하는 자들이 바로 거짓 형제들입니다. 베드로후서 2:1-2, [그러나 백성 가운데 거짓 대언자들이 있었던 것같이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영벌 받을 이단 교리들을 몰래 들여와 심지어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기까지 하고 자기들 위에 신속한 파멸을 가져오는 자들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악독한 길을 따르리니 그들로 인하여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을 것이요](벧후2:1-2). 교회 내에는 거짓 교사들도 있습니다. 마귀의 사역자, 거짓 형제, 거짓 교사 골고루 있을 것은 다 있는게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도 참과 거짓이 섞여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전도 여행을 다니고, 병을 고쳐주고, 왕국 복음을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구원받았다가 구원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구원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복음서에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26:22과 25절을 비교해보십시오. 제자들은 저마다, “주여, 나니이까?”라고 물었지만, 가룟 유다는 “선생님이여, 나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배반하던 날에도 주님이라고 부르는 대신 “선생님, 선생님”하고 불렀습니다(막14:45). 참 신자와 거짓 신자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요, 그리스도로 믿고 받아들이는가? 그 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 믿고 받아 들이는가?입니다.

마귀에 사로잡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진리를 말할 수 있고, 진실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 예를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6:17,18절을 보십시오. 바울 일행이 기도하러 가는 중에 점치는 영에 사로잡힌 소녀를 만났습니다. [그 소녀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라, 하며 여러 날을 이같이 하거늘 바울이 근심하여 몸을 돌이켜 그 영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령하노니 그녀에게서 나오라 하매 그가 즉시 나오니라.](행16:17-18). 그녀는 분명히 진실과 진리를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이 때 바울이 “음, 이 소녀도 동일한 믿음의 소유자이군! 우리를 알아보는 영적인 안목을 가졌군!” 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일이 매우 어렵기에 우리는 모든 일을 입증해 보아야 하며, 영들을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성도들이 자기 자신의 믿음부터 입증해야 합니다. 고린도 후서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13:5). 다음에는 영들을 시험해야 합니다. 요한 일서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나와서 세상에 들어왔음이라.] 초자연적인 것은 무조건 다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교인들은 마귀에게 쉽게 속임을 당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사역을 흉내내며, 거의 흡사하게 역사 합니다. 마귀는 표적과 기적, 거짓 이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방언을 줄 수 있고, 점을 칠 수 있고, 병을 고쳐 줄 수 있습니다. 마귀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시험해(prove) 보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1,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살전5:21).

신자는 그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거짓 신자는 입으로 고백한다 해도 그 안에 생명이 없습니다. 이는 행위의 차이 이전에 생명의 차이입니다. 행위의 문제에 앞서 생명의 문제가 바로 참과 거짓의 차이입니다. 요한 일서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신자는 주님으로부터 받을 상급이 있습니다. 거짓 신자는 주님으로부터 받을 정죄와 저주가 있습니다. 거짓 신자들은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와 줄 수 있고, 병원을 지어 줄 수 있고, 학교를 지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갑니다. 마태복음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였노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니라.](마7:21-23).

스스로 믿고 사도들을 따라 다녔지만 결코 구원받지 못한 예가 나옵니다. 사도행전 8:13, 21 [시몬 자신도 믿고 침례를 받은 뒤 빌립과 함께 머물며 그 이루어진 기적들과 표적들을 보고 놀라니라. 하나님의 눈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일에는 네가 차지할 몫도 없고 나눌 것도 없느니라.](행18:13,21) 사람은 얼마든지 믿음을 가장하고, 믿는 자들과 어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시몬은 마술사로서 자신보다 더 강한 성령의 능력으로 행해지는 기적들과 표적들에 관심이 있어 믿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침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어떻게 사도들처럼 자신도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여 기적과 표적을 일으킬까? 이전에 마술사로 행세했던 것보다 한 단계 위의 마술을 행할까? 돈으로라도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는 거짓 신자였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시몬과 같은 불순한 동기로 교회를 오고, 신앙을 가지고, 예수를 외칠 수 있습니다. 사업 때문에, 가정의 평안을 위해, 또는 다른 어떤 이유로 교회를 오고,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이 바로 마술사 시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된 자신을 발견하고,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에서 나를 대속하신 피의 속죄와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으로 믿지 않는다면 그의 믿음은 헛된 메아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종교인들은 자신을 잘 점검하고, 속히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사랑하셨으며, 그 사랑을 갈보리에서 확증하셨습니다(요3:16, 롬5:8).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위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고, 세상에 주셨습니다(요일2:2).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누구나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죄는 용서받습니다(엡1:7, 행10:43). 예수를 믿지 않고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듣지 않고는 그분을 부를 수 없습니다. 누구나 진리의 말씀, 즉 구원을 복음을 듣기 전에는 그분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형성된 믿음이 아니라면 그는 거짓 신자요, 마음이 아니라 입으로만 고백하는 PROFESSING CHRISTIAN에 불과할 뿐입니다. 에베소서 1:13,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를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을 믿은 뒤에 저 거룩하신 약속의 영으로 인치심을 받았나니](엡1:13).

우리가 각별히 주의하고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런 지식으로 형제들의 구원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판단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 영역이며, 그분의 권한입니다. 다만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진리의 지식을 바르게 공부하고, 그 원칙을 마음 가운데 새겨 두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내에는 부득이 이단이 있고, 거짓 형제들이 있고, 거짓 교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19, [이는 너희 가운데서 인정받는 자들이 밝히 드러나려면 너희 가운데 반드시 이단 파당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전11:19).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교회의 영적 순결성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교회 내의 악을 근절하고, 거짓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에베소 교회는 이 점에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계시록 2:2, 6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사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스스로 사도라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알아낸 것과](2), [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곧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그것을 미워하노라.](6). 이 시대에 사도라 자칭하는 자, 대언자라고 자칭하는 자들, 사도의 표적을 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란 사실을 밝혀 낼 수 있습니다. 성직자 제도와 평신도 제도를 나누고, 교회 내에 계급 제도를 만드는 것 역시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그들이 하는 행위를 통해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구원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위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다수가 선한 교리를 버리고 배교해 버리면 자신이 분리해야 합니다. 교회 내의 문제를 개혁하겠다고 설치지 말고, 그곳에서 나와야 합니다. 로마서 16:17,18 [형제들아, 이제 내가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를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실족하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이는 이 같은 자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 배만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기 때문이니라.](롬16:17,18). 주님께서는 분리주의자이시며, 자기 백성들에게 분리를 명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또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성경에서 주의해야 할 말씀들이 몇 구절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는 결코 교회 시대의 믿던 신자가 구원에서 떨어지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 믿는 척했던 거짓 성도들을 예표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 성도들의 구원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러나, 환란 시대의 성도들은 믿음과 더불어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자라야 구원을 받습니다. 끝까지 견디지 못한 자들을 예표하는 것입니다(마25:11,12). 히브리서 6장에 나오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 6:4-6, [이는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님께 참여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권능을 맛본 자들이 만일 배교하면(fall away)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니 그 까닭은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 놓고 그분을 모욕하기 때문이라.] 이들은 처음부터 거짓 신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제대로 믿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교회 시대의 성도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믿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뼈가 아닙니다. 그들은 환란 성도들이며, 믿음과 더불어 끝까지 견뎌야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구절들을 교회의 성도들에게 교리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법 적용으로 판결하겠다는 재판관이나 행정 관료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영적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들의 신앙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believers vs professors? 여러분은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입니까? 믿지 않으면서 믿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까? 영혼을 두고 도박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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