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은사와
은혜"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사(선물)을
주시는 에베소서 4:11-13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며 2)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3)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이로써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長成)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엡4:11-13).
하나님께서 은사를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들을 이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은사 중에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해 표적으로
주어진 일시적인 은사가 있으며, 거짓 은사도 있음을
배웠습니다. 성도들은 이런 은사들을 구하느라 시간과
정열을 낭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날 은사주의 교회를
중심으로 많은 교회들에서 성령의 은사를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거나,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보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될 때
성도들은 마귀에게 속습니다. 교회는 거룩함과 경건의
능력이 급격히 사라지고 육신적인 다툼과 세상을 방불하는
악행들이 발생합니다.


오늘 저희는 육신의
일들과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공부할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은사와 은혜와 열매가 서로 같은 것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구령을 은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은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성도들이 지닌 의무요,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은사가 아니라 성도들의 의무요, 특권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온 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b). 첫째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고,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 거듭남을 말합니다. 둘째,
풍성한 삶 즉 열매맺는 삶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열매없는 빈약한 삶을 사는 것은 결코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5:8과 15:16을
보십시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15:8).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우리가 은사를 많이 받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마땅히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생명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열매맺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제일 관심은 그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제일 관심은 그들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이러하다면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관심도 동일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관심이 이 두 가지를 최우선으로 하는데 가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이 시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나의 생각이 어느덧 열매맺는 삶보다 돈버는 삶,
안정적인 미래, 육신의 즐거움을 향해 눈 길이 가 있다면
나는 이미 많이 타락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남아 있게 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다 주시게 하려 함이라
.](요15:16).
여러분과 저의 온 관심이 열매를 맺는 삶에 가 있다면
우리는 힘들고, 어렵고, 이해되지 않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
환경들에 불평과 불만대신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릴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 가지치기 작업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열매맺는데 불필요한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일은
우리 편에서 볼 때, 견디기 힘든 고통일 수 있지만 이는
잠깐입니다. 그것이 가정의 파탄이든지, 자녀의 탈선이든지,
배우자의 부정이든지, 가출이든지, 경제적으로 파산이든지,
사고이든지, 억울한 누명이든지, 때로는 신체적 불구나,
사별일 수도 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내 안에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깨끗하게 하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느니라.
](요15:2). 열매맺는 성도는 하나님의
간섭을 더 많이 받습니다. 인생의 계획들을 짜놓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해도 주님은 내가 짜 놓은 모든 계획들을 X
표로 그어 버리시고, 자신이 친히 새로 기입하실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새로 계획표를 써
오라고 하십니다. 제대로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란 원망이 터져 나오는 것을 자주 봅니다.
저는 저의 인생을 돌아 볼 때 unplaned life, unexpected life입니다.
“주님, 이것저것을 이렇게 해 보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축복을 구하면 그 때마다 X 표를 그으셨습니다. 어느 날,
정말 막다른 코너에 몰려 주님께 두 손들고 나아갔습니다.
제가 사역을 시작할 때, 다른 사람들처럼 안수 받고, 축복
기도 받고,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열렬한 성원이나 후원
같은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비아냥과
냉소, 조롱만이 사방에 둘러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입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한
주님의 손길입니다. 사역을 시작한 후에도 하나님은 원하는
부흥과 원하는 성도들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은 내게
배우면서도 교회는 다른 곳에 출석하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떨어져 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한 손길을 멈추지 않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주님이 정하신 그 길을 가도록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열매맺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꾸준히 거합니다. 우리가 나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가 뿌리 내려야 할 토양입니다. 나무가
어디에 뿌리를 내렸느냐가 생명에 가장 중요하듯이,
성도들의 믿음을 어디에 뿌리 내리느냐가 성장과 열매맺는
일에 가장 핵심입니다. 열매맺는 성도들은 물가에 심기운
나무같습니다. [[주]의 나무들에는 수액이 가득하니 곧
그분께서 심으신 레바논의 백향목이로다
.](시104:16). 저와
여러분은 바로 주의 나무들입니다. [이는 그가 물가에
심은 나무 같아서 그 뿌리를 강가에 뻗치고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아니하며 그 잎이 푸르르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으며 열매맺는 일을 그치지 아니할 것임이라.
](렘17:8).
이들이 누굽니까? 주를 신뢰하고 주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렘17:7). [그는 강가에 심은 나무가
제 철에 열매를 맺으며 또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형통하리로다.
](시1:2).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사람들이 바로 강가에 심기운 나무들입니다. 열매맺는 삶은
결코 은사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많은 은사를 자랑하던
고린도교회에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찾아 볼 수 없었듯이, 은사는 열매가 아닙니다. 특히 거짓
은사들이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해 표적으로 주어진
일시적인 은사들을 가지고 성령의 열매인 것처럼 가장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요, 어둠의 일이며, 육신적인
일입니다.


로마서 6:22, 7:4, 골1:10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끝은 영존하는 생명이니라.
](롬6:22). 구원받은 성도는
누구나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게 되었으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다른 이 곧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신 이와 결혼하게 하려
하심이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라
.](롬7;4).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
](골1:10). 이미 말씀드린
대로 열매맺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2:4). 성도들은 여기에서 그치면 안됩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는 많은 형제, 자매들이
성경의 가치에 눈을 뜨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매우 선한
일이며,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진리의 지식에 이르는 것뿐만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일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과
더불어 /너희는/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1:5-8).
이 순서를 기억하십시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지식은 반드시 덕에 쌓아야 하며, 절제에 의해
다스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건전한 성경적, 영적
지식을 갖추고도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고, 파괴적이고,
육신적이고, 다투고, 싸우며, 적이 아닌 아군과 전쟁을
합니다.


열매맺는 것은 성경의
일관적 명령입니다. 창세기 1:28, 49:22, 시편1:3, 계22:1,2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창1:28). 하나님은 첫 피조물인 아담과
이브에게 열매맺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저와 여러분은 처음
피조물이 받은 명령과 같이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요셉은 열매가 많은
가지, 곧 샘 옆의 열매가 많은 가지라. 그 가지들이 담을
넘었도다
.](창49:22). 하나님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요셉에 관련된 예언들을 성취하시기를 바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저와 여러분에게 생수를 주실 뿐만 아니라 저희
안에 생명의 샘을 주셨습니다.


[그는 강가에 심은
나무가 제 철에 열매를 맺으며 또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형통하리로다
.](시1:3).
하나님은 신자들이 시편에 기록된 이런 축복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또 그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을 내게 보여 주니라. 그 도시의 거리 한가운데와
강의 양쪽에는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내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그 민족들을
치유(治癒)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1,2).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원에서 생명 나무가 하는 역할을 빛의
자녀들이 지금 이 세상에서 하기를 바라십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열매는 은사와 행위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 죽지 않고서는
맺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행위는 살아야 합니다. 반면
성령의 열매는 육신이 죽어야 맺을 수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오늘날 저와 여러분을 비롯한
교회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단연 첫 번째 이유를
꼽으라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대속의 죽음은 믿고 이해할지
몰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함께 죽음”에 대한
믿음과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믿음과 경험의 부재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걸어야 하는 제자의 삶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세상에 대해서 “나도
못박혔노라”는 승리의 선언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믿음의
좁은 길 대신 성공의 대로를 갈망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대신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형통하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성도들 사이에서 주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찾는다는 것은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 아래서
열매를 찾으시다, 찾지 못하신 주님의 모습을 연상시킬
뿐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모인 교회에 사람이 모여든다 해도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살이 찐 비만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의 소원들과 간구를 적은 기도
제목을 펼치는 대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노트에 적어가면서 기도해 보십시오. 지금까지와는 분명
다른 열매맺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나의 종으로
부리지 말고, 내가 주님의 종이 되리라는 정상적인 관계를
먼저 설정해 보십시오. 이는 분명 축복된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요15:4,5).


성령에게 순종해야 합니다.(롬6:19-22).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관례(慣例)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함과 불법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이는 너희가
죄의 종이었을 때에 의로부터 자유로웠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들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일들의 끝이 사망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끝은 영존하는 생명이니라
.]


성령의 열매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갈라디아서 5:22,23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주의할 것은 성령의 열매들(복수)이
아니고 성령의 열매(단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개개인에게 종류대로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들(복수)과는
달리 성령의 속성이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물을 주듯이 내 안에 사랑, 화평, 희락, 인내, 오래 참음,
믿음 등을 한 가지씩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안에 거하며, 주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때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성품이 나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성령의 열매를 마치 성령의 은사들 처럼 오해해서 나는
사랑은 있는데, 절제가 없다는 둥, 인내심은 있는데 양선이
없다는 등의 말은 있을 수 없는 소리입니다. 어떤 분이 “오늘밤에
저의 성질이 돌출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제게 온유를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하나님은
물건을 나누어주시듯이 온유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성령께 순종케 하심으로 나를 온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찬양은 입술의 열매입니다(히13:15). 선행도
열매입니다(골1:10). 로마서 15:28은 헌금을 열매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삶도 열매입니다(롬6:22). 혼을 이겨오는 것은 가장
귀한 열매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는 목적을 열매를 거두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전도의 열매입니다.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어떤
열매를 얻고자 하여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이제껏
막혔도다.)
](롬1:13). [거두는 자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것은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같이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요4:36).


신약 성도의 모범으로
기록된 바울 사도의 고백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열매맺는 비결이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3:21,
골로새서 1:29을 보겠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엡3:21).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이며, 고행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권능에 따라”서 필요한 것을 구하고,
건전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성령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그분을 선포하여 각 사람에게 경고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자로 드리고자 함이니 이것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의 활동을 따라 힘쓰며
수고하노라.
](골1:28,29). 바울은 자신의 모든 애씀과
수고가 자신 안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의 활동을
따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드린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십니다. 헌신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썩은 송장 냄새와 높아져 있는 종교적 가식과
위선 뿐입니다.


빌립보서 2:13, 히브리서
13:21을 펴 보십시오.


[이는 너희 안에서
일하시며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
.](빌2:13).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십시오.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시며, 소원을
주시고, 열망을 불러 일으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 가운데 한 가지는 매우 인격적이시며, 무례히 행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내어 드리지 않을 때 일하실 수 없습니다. [모든
선한 일에서 너희를 완전하게 하사 자신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자신의 눈앞에서 매우 기쁜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히13:21).


성경은 성령에 관련된 3
가지 금지 사항을 일러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30, 살전5:19,4:8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시느니라
.](엡4:30). 내 안에 계신 성령은 성령의
명령에 불순종할 때 슬퍼하십니다. 하라고 하는 일들,
성경적 명령들에 순종하지 않을 때 성령을 슬프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억누르지 말라](살전5:19).
이는 성령께서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을 함으로써 성령을
억누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 죄악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함으로써 성령을 소멸시키고 맙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함으로써 성령을
억누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증거되는 복음을 믿지 않고
배척함으로써 성령을 대적합니다(행7:51).


[성령을 멸시하지 말라](살전4:8).
이는 주님의 몸된 성전을 더럽히거나, 다른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무시할 때입니다.


에베소서 5:18절과
골로새서 1:9을 펴 보십시오. 대신 우리는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And be not drunk with wine,
wherein is excess; but be filled with the Spiri
t; Eph 5:18. 성령은 내
자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보듯이 이는 수동태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채우셔야 합니다. 이는 내가 전적으로 성령께 자신을 내어
드림으로써 가능합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에 충만히 거하게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의지를 주님께 굴복하고
내 몸을 주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의
첩경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도 그것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이것을/
원하였노니
(여러분의 진정한 원함은 무엇입니까?)
너희로 하여금 모든 지혜와 영적인 깨달음에서 그분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게 하시고
](골1:9).


골로새서 1:27, 고전3:16,17,
벧후1:3,을 보겠습니다. 우리 안에는 현재 누가 거하고
있습니까? 무엇이 거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거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기에 앞서, 열매를
맺게 하시기에 앞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골1:2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이는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
](고전3:16,17)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하여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나니
].
주님은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저는 주 안에서 신실했던
한 형제님이 쓰신 글을 여러분들에게 읽어 드리고자 합니다.


한때는 축복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주님일세.


한때는 감정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그의 말씀일세.


한때는 은사들을 원했지만
이제는 주님 자신만을 원하네.


한때는 치료를 원했지만
이제는 치료자 자신을 원하네.


한때는 고통스러운
노력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한 신뢰일세.


한때는 절반의
구원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한 구원일세.


한때는 내가 원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주님의 말씀일세.


한때는 계속해서 구하기만
했지만 이제는 쉼없는 찬송일세.


한때는 나의 일이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일일세.


한때는 내가 주님을
이용하려 했지만 이제는 주님이 나를 사용하시네.


한때는 능력을 원했지만
이제는 능력많으신 그분을 원하네.


한때는 영광을 위해서
일했지만 이제는 그분의 뜻만을 위해서 일하네.


(F.E Marsh, Discipler's Manual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