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시간에 “행위와
열매”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좀 독특한 제목을
다루고자 합니다. “...이시다 vs ...되시다.”입니다. 이는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구분해야 할 매우 중요한 교훈이기
때문에 반드시 한 번 다루고 넘어가고자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에게 무엇이며, 무엇이 되십니까?
이것을 아는 만큼 영적 성숙은 깊어집니다. 여러분에게 누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영적 의사,
죄인들의 친구...하여튼 아는 대로, 마음 속에 있는대로 답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주일 오후에 주님이 누구신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은 우리들의
목자이시다.”라고 답을 한다면 우리는 좀 더 공부해서 “한
목자”(요10:16). “양들을 위해 생명을 주는 선한 목자”(요10:11,14),
“다시 오셔서 상급을 주실 목자장”(벧전5:4). “혼들의
목자”(벧전2:25)와 같이 다양하고 폭넓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단편적인 지식의 조각들로서 뿐만 아니라
깊은 친교와 인격적인 앎이 필요합니다.
모세와 다윗이 주님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주]는 나의 힘이시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 되시는도다. 그분께서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분께 처소를 예비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분을 높이리로다. [주]는
전사(戰士)시요, [주]가 그분의 이름이시로다.](출15:2,3).
이런 사실은 그들이 출애굽의 과정을 통해서 말씀과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서 안 인격적이고도 깊은
앎이었습니다. 이것은 피상적인 신학 지식이 아니라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객관적인 지식이 나의 삶과 인격에
파고들어 옴으로써 아는 그런 지식입니다. [이제 내가 [주]께서
모든 신들보다 크심을 알았으니 이는 그들이 교만하게 행한
일에서 그분께서 그들 위에 계시기 때문이로다, 하고](출18:11).
우리는 실제적으로 아무 것도 모르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쨋든
사실입니다. 내가 믿지 않는다고 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사실이 나에게 다가와서 참된 나의 지식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내가 믿고, 믿지 않고에 따라서 주님이
영향을 받거나 변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이시다.”란 사실을
알아야 하고, 동시에 “주님은 ....이 되신다”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의 예를 보겠습니다.
시3:3 [그러하오나, 오
주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이시니이다.]
[이 일들 후에 [주]의
말씀이 환상 속에서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防牌)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報償)이니라, 하시니](창15:1).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바로 자기 계시였으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엇이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시10:16 -왕
시16:5 [[주]는 나의
상속과 나의 잔의 몫이오니 주께서 나의 몫을 지키시나이다.]
시18:2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신뢰할 나의 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니이다.]
시23:1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7:1 [[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28:7,8 [[주]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그분을 신뢰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분을 찬양하리로다. [주]는 그들의 힘이시요, 자신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구원하는 힘이시로다.]
시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고난 중에 즉시 도우시는 도움이시라.]
시89:18 [이는 [주]께서
우리의 방벽(防壁-defense)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께서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이니이다.]
시118:14 [[주]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어떤 아이에게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저분이 너의
아버지이시냐?” “아닙니다.” “그럼, 저분은 너의 무엇이
되느냐?” “예, 저의 보호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인 것”과 “된 것”의 차이를 모르고 지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이런 일은 매우 흔합니다. 가족
관계이든 친구 관계이든 직장 생활에서든지 이런 예는 매우
흔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성경이
최고의 가치와 믿음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 하나님이 되신 적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죄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저주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인 것”과 “된 것”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되시지’
않으시고 단지 ‘...이시기’만 하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거룩이시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견이 있을 수 없고,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 사실에
찬양을 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러한 속성이 나와
무슨 관련이 맺어지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그림 속의 떡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이 되셨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모든 피조물의 주(Lord)이시지만 모든 사람의 구주(Saviour)가
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주님(LORD)이십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아버지(Father)가 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만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제
하나님이 무엇이 되셨는가?에 대해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 인간이 되신 주님-
성육신 하심으로
요한복음 1:1,14,
디모데전서 3:16을 보겠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예수님은 본래부터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실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이란 사실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이분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獨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크도다 경건의 신비여, 논쟁의
여지가 없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지사
영접을 받으셨느니라.](딤전3:16).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는
진리이며, 교회는 바로 이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이 신성한 진리는 역사 속의 한
획으로 자리 잡을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가슴속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 죄가 되신 주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고린도후서5:21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죄와 전혀 상관없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죄가 되셨습니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인간이 되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거룩함과
의로움만을 간직한 채 계시다가 다시 승천해 버리셨다면
우리에게 도덕적 감화를 주고, 새로운 종교를 주실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죄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죄가 되심으로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 저주가 되신 주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갈라디아서 3:13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대속(代贖)하셨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는 다 저주받은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저주에서 풀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인류에게 임한 모든 저주를 주님께서 풀어 주셨습니다.
미녀와 야수의 이야기는 흉칙한 야수를 어떤 여자가 사랑해
주고 입맞추어야 저주가 풀리지만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셔서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 풀리는 무섭고
끔찍한 저주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살아온 인간은 이제 자신이 저주의 고통에 갇혀
있는 줄도 모를 만큼 영적 감각은 죽어 버렸고,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광스럽고 복된 피조물이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로
전락한 채, 율법의 저주 아래서 허무하게 굴복한 채
살아왔기에, 죽음을 이기는 인간을 보아 온 적도, 들은 적도
없기에 자포자기로 살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심으로 우리의
저주는 일거에 다 풀렸고, 마법보다 더 강한 주님의 권능이
우리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진정으로 역사를 아는
역사가라면 지난 2,000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과
잃어버린 인간이 이 땅에 함께 살던 시대”라고 적어야 할
것입니다.
◆ 벌레가 되신 주님-우리의
죄를 가지고 지옥에 가심으로.
예수님은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되신 것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죄와 저주가 되셔서 마침내 벌레가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지옥에 가심으로 주님은 벌레가
되셨습니다. 이는 더 이상 내려 갈래야 내려 갈 수 없는
극단으로 치달으신 것입니다. 가장 존귀하신 분께서 가장
비천한 것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오니 사람들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멸시거리이니이다.](시22:6).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의 결국은 마귀의 형상대로
변해갑니다. 이는 인간이 꿈꾸는 진화는 정반대로 점점
퇴화되어 간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지옥은 뜨거운 불로
인하여 사람이 벌레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지옥에
대해서 세 차례에 걸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66:2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나가서 나를 대적하여 범죄한
자들의 사체(死體)를 보리니 이는 그들의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들의 불이 꺼지지 아니할 것임이라. 그들이 모든
육체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이 구절은 예수님은 무려 세
번에 걸쳐 인용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44,46, 48입니다. [거기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9:44,46,48).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오셔서 죄와 저주가 되시고, 결국 지옥으로
가셔서 벌레가 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 살려 주는 영이 되심-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첫 사람 아담의 몸은
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코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 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지은 피조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사 살려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고전15:45). 주님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몸이 아니라 죽은 영을 살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현재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영이 거듭나고 혼이
구원받아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거룩하고 흠없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 지혜와 의와 성별가
구속이 되심-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聖別)과 구속(救贖)이
되셨으니](고전1:30). 이 구절은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가장 존귀한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첫째, 지혜가 되십니다. 둘째, 의가
되십니다. 셋째, 성별이 되십니다. 넷째, 구속이 되십니다.
“...되신다”는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돈 많은
부자가 너의 재정보증인이 되어 주겠다고 하면 마음 놓고
사업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힘있는 용사가 나의 body guard가
되어 주겠다고 하면 나는 신변의 위험에서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아주 똑똑한 책사(策士)가 나의 비서나 참모가
되겠다고 한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능한 나에게 전능한 주님이 오셔서 “내가 너의 지혜가
되어 주마”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리석게 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은 후에도 어리석게 생각하고,
어리석게 말하고, 어리석게 행동하고, 어리석게 판단하여
죄를 지을 때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은
죄요, 비웃는 자는 사람들에게 가증한 자니라.](잠24:9)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나의 지혜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 어리석음을 가려 주고, 씻어 주심으로 죄 아래
있지 않게 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지혜가 되시기에 지혜를
구할 때마다 후히 주시고, 나에게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의(義)가
되시기에 [모든 불의는 죄니라.]는 말씀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 주십니다. 주님이 나의 의(義)가 되심으로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의(義)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의(義)는
파산한 사람의 credit과 같습니다. 내가 가진 의(義)는
파선당한 배가 항구에 도달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의(義)는
고사하고 선(善)함 조차 찾아 볼 수 없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의 의(義)야 말로 구원의 근거요, foundation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아서 우리의 <모든-all>
의는 다(X)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불법들이 우리를 바람같이 몰아가나이다.](사64:6).
주님은 "우리의 모든 의"(all our righteousness)를 더러운
누더기 같다고 말씀하심으로 여지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비교하는 상대적인 의(義)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마귀는 “너는 죄인”이라고
송사할 때마다 나는 “그렇다. 그러나, 주님은 나의 의(義)가
되신다.”라고 응수하십시오. 주님이 나의 의가 되신다는 이
신성한 진리는 이 세상의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절대 무오한
진리입니다.
주님은 나의 거룩함이
되십니다. 주님은 나에게 거룩하라고 요구하시는 동시에
거룩함이 되십니다. 레위기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입니다. [이는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이기 때문이라. 그런즉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서 기는 것
즉 기어다니는 그 어떤 것으로 인하여 너희 자신을 더럽히지
말지니라.](레11:44). 거룩함은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살전4:3a).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벧전1:15).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모든 피조물에게 변함없이
요구되는 기준입니다. 주님은 단 한번도 자신의 기준을
낮추시거나 바꾸시지 않으셨습니다. 저 하늘에는 끊임없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라는 찬양이 울려 퍼집니다.
이사야 6:3과 요한계시록 4:8을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크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사6:3). [네
짐승이 저마다 자기 둘레에 여섯 날개를 가졌고 안쪽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 오실 이시라, 하고](계4:8).
우리에게 의가 되신 주님은 동시에 우리에게 거룩함이
되셔서 나의 모든 부족한 부분을 넘치도록 채우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속이
되십니다. 죄의 형벌을 감당할 수 없고, 죄값을 치를 능력도
없는 저희들을 주님은 자신의 피를 주고 사셨습니다(엡1:7,
골1:14, 히9:12, 고전6:20, 고전 7:23). 이 값은 너무나 커서
가격을 메길 수 없어서 “값없는 선물”(priceless blood)이라고
합니다. 이는 값이 없는 무가치한 것이란 말이 아니라 값을
메길 수 없을 만큼 가치가 큰이란 뜻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구속이 되심으로 우리의 구원은 영원히 안전한 것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모든 것이시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되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주님이 여러분의 무엇이 되어 드리면 됩니까?
마음이 상심되고 낙담되십니까? 주님은 여러분의 wonderful
counsellor이십니다. 오셔서 상담을 받으십시오. 곧바로
위로자이신 성령을 통해 위로해 주십니다(요14:26,15:26). 요즘
들어 힘이 없고, 지치십니까? How can I help you? How may I help you?라고
물으시는 주님 앞에 도움을 구하십시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돕는 helper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helper)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히13:6).
돈이 필요하십니까? 친구가 필요하십니까? 아니면 나와
영원히 함께 할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십시오. 무엇이든지
구해 보십시오. 주님은 응답하십니다(막6:22,23; 요14:13,14,16:13).
우리는 때때로 주님의 너무 크신 약속에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되셨는지 배웠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그리스도를 위해 어떻게 만드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습니다(고후5:21).
죄의 몸을 멸하여 죄를
섬기지 않도록 하셨습니다(롬6:6).
자유하게 하셨습니다(요8:32,
36, 롬8:2, 갈5:1) → made us free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고전4:9).
살게 하셨습니다(고전15:22)
→ made alive
새 언약 상속자의 유능한
사역자로 삼으셨습니다(고후4:6).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딛3:7)
→ made heirs
참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히3:14)→
made partakers
하나님과 가깝게 되게
하셨습니다(엡2:13,14) →made nigh
왕과 제사장으로 되게
하셨습니다(계1:6,5:10).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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