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랫동안 기독교계에서 헷갈려 했던 내용 중에 하나는 성령 침례, 성령 충만, 성령의 기름부으심, 성령의 인침 등 성령에 관련된 교리였습니다.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영적 분별력이 약한 교회들이 이런 것을 구분하기는 애당초 무리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다른 것을 같은 것이 아닌 줄로 알 때 남의 아들을 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분별력과 판단력은 영적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선악, 옳고 그름,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 성경적인 것과 비성경적인 것의 기준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에 대한 기준이 있을 수 없으며, 건전한 신앙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은사주의 교회를 비롯한 많은 교회에서 성령 충만과 성령 침례를 오해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성령의 인침을 받았느냐? 성령 침례를 받았느냐? 심지어 성령을 받았느냐?는 말까지 합니다. 반대로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성도들은 자신이 성령을 받았는지 긴가민가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성경을 통해 이 사실을 명확히 규명하여 진리의 지식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펴 보십시오. 12:1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형제들아”하고 부르며, “영적인 은사들에 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않노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영적 은사들에 대해서 잘 알기를 원하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제 성경적 진리들을 가르쳐 줍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말하는 자는 아무도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님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바울은 성도들에게 알게 한 것은 성령 충만의 비결이라든지, 방언을 받는 법, 신유를 받는 법, 만사형통하는 법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인들과 저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을 받은 것이란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한다면 그것은 이미 성령을 힘입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에 이르기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일4:2)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동일한 사건이며, 동일한 시간 대에 일어나는 동시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것을 네 마음 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롬10:9).
7절을 보십시오.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각 사람(EVERY MAN)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2:7). 성령도 주시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성령을 받기 위해서 금식 기도가 필요하다거나,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거나, 신령한 사람으로부터 안수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다 거짓말이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받은 형제들에게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해 주었습니다. 속지 마십시오. 성령을 받는 것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이며, 우리 안에 주어진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다양하게 역사하시는 것이 성령의 나타나심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같은 한 /성/령께서 행하사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11). 주님은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믿는 자 모두에게 주신 것이며, 그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주십니다. “자신의 뜻대로”란 말에 유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의 뜻대로 나에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는 것이 성도의 첫 번째 의무이며, 주신 은사들을 활용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이 우리의 특권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주신 은사보다 자신이 원하는 은사를 구하느라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13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WE ALL) 한 /성/령에 의하여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요, 곧 /한 성령에 의하여/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라.](고전12:13). 바울은 분명히 "우리 모두(WE ALL)" 한 성령에 의하여 침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고린도 교인들을 포함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 침례는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받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말해 줍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거나, 주님의 특별한 은총을 더 받은 사람이나, 내가 좀 더 영적이거나, 경건하거나, 열심을 부렸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성령 침례입니다.
로마서 6장을 펴시기 바랍니다. 3절,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가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리스도인이 아직 성령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구원받은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어디서도 성령 침례를 받도록 촉구한 적이 없습니다. 이는 이미 구원받은 순간 자동적으로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것이기에 “알지 못하느냐?”는 강한 책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곳에 아직도 자신이 성령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거나, 성령 침례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먼저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성령 침례를 받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침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4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성령 침례의 두 가지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성령 침례는 주님과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줍니다. 둘째, 성령 침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됩니다. 4절,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심을 받은 것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바로 나의 죽음과 부활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분 혼자만의 죽음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성령 침례를 통해 믿는 우리에게 동일한 역사를 일으킴으로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침례 안에서 그분과 함께 묻혔고 또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하나님의 활동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침례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일으킴을 받았느니라.](골2:12). 성령 침례를 받는 것은 바로 주님과 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완전한 연합의 관계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는 생명의 관계이며, 유기적 연합입니다.
셋째, 성령의 침례는 부활의 소망을 줍니다. 5절, [이는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될 것임이라.](롬6:5). 우리는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 주님과 한 영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될 것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광스런 몸을 입을 수 있는 소망이 바로 성령 침례를 통해서 이루어 진 것입니다.
넷째, 성령 침례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됩니다. 로마서 7:1-4, 고린도후서11:2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법이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를 지배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남편 있는 여인이 자기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여 있으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자기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니라. 그런즉 만일 그녀가 자기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간부(姦婦)라 할 것이로되 그녀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나니 다른 남자와 결혼할지라도 간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게 되었으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다른 이 곧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신 이와 결혼하게 하려 하심이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라.](롬7:1-4). 3절에서 여자는 남편이 살아 있는 한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다른 남자와 결혼할 자유가 주어집니다. 핵심은 4절입니다. 우리는 성령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와 결혼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것은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켜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고자 함이라.](고후11:2).
다섯째, 성령 침례를 통해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됩니다. 이는 의(義)의 옷입니다. 왕에게는 왕복이 있고, 군인에게는 군복이 있듯이 하나님 앞에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만이 설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27, 28을 보겠습니다. [또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음이라.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으니 이는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라.](갈3:27,28). 성령 침례를 통해서 여러분은 값을 주고 살 수 없는 최상의 옷을 입게 된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 옷의 개념이 많이 변질되었지만 옷은 그 사람의 신분과 지위와 인품을 드러냅니다. 하인이 주인의 옷을 입지 못하며, 신하가 왕복을 입을 수 없고,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지 못하고,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지 못합니다. 세월이 지나 성의 구분이 없어지고, 가치관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옷의 구분도 없어져 가는 것 같지만 아직도 옷의 구분이 분명한 곳은 많이 있습니다. 회사마다 유니폼을 제작해서 입히거나, 학교에서 교복을 입히는 경우, 경찰이나 소방 공무원에게 입히는 제복이나 의사나 간호사가 입는 옷은 구분이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모두 자기들의 옷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녀가 승복을 입고 성당에서 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마승이 청바지를 입고 불당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옷은 신분이며, 지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값을 주고 치장을 한 옷을 입는 대신 성령 침례를 통해서 내적인 옷을 입습니다. 로마서12:14, 골로새서 3:10, 에베소서 4:24을 보십시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롬12:14).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골3:10).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었도다.](엡4:24). 주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급하신 이 옷을 입지 않은 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령 침례에 대한 오해
물 침례와 혼동하지 말 것. 사도행전 2:38은 성령 침례와 물 침례에 대해 가장 자주 오해하는 구절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 구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물 침례를 성령을 받는 조건으로 가르칩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회개하여 죄들의 사면을 얻고 너희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베드로는 이 구절을 말하기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죄를 지시고 지옥에 가신 사실 (31), 승천(33)과 성령 강림(33), 그리고 이분이 바로 주요 그리스도란 사실(36)을 강력하게 증거하였습니다. 결과 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고, 구원의 길을 물었습니다. 이들은 37절에서 이미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예수를 믿었습니다. 만약 믿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자리에서 스데반을 죽이듯이 베드로를 죽이고 말았을 것입니다. 2:38은 사도행전 2:41을 전제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魂)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41).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기쁘게 받아 들인 사람들입니다. 물 침례를 받아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에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간증한 것이 바로 침례입니다.
사도행전 19:1-7도 은사주의자들이 안수를 통한 성령 침례를 주장하기 위해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문맥을 완전히 놓치고 있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는 동안에 바울이 윗지방들을 두루 다니고 에베소에 이르러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성령님이 계신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노라, 하거늘--->무엇을 믿었는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해서는 들은 적도 믿은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배제된 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3절,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요한의 침례라, 하매--이로써 이들은 유대인이요, 요한의 제자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은사주의자들이 “믿은 이래로...”란 말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도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속입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란 점을 고의적으로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4절, 바울이 이르되, 참으로 요한이 회개의 침례로 침례를 주며 백성에게 말하되 너희가 내 뒤에 오시는 분을 믿어야 하리라 하였으니 이분은 곧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하거늘--이것이 바로 변함없이 증거한 복음입니다. 이들은 요한의 제자들이었고, 요한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의 변증이나 설득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5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그들은 바울이 요한의 증거를 인용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침례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로 믿었기에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6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when) 성령님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므로 그들이 타언어들로 말도 하고 대언도 하니--이들은 모두 바울의 도움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침례를 베풀면서 그들에게 안수를 했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은 바울의 안수를 통해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울의 안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을 때(when)라고 말함으로, 즉 성령이 임한 시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7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물론 그들이 믿고 침례를 받을 때 바울이 손을 얹지 않았더라도 성령은 임했을 것입니다. 성령은 바울의 안수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증거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성령 침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 보았습니다. 잠깐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령 침례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됩니다.
성령 침례는 누가 받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받습니다.
성령 침례는 언제 받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주어집니다.
성령의 인침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성령의 인침이란 성령 충만이나 성령 침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를 구별하시기 위해 자신의 소유로 표시한 행위입니다. 이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의 소유를 확증할 때 도장을 찍는 행위와 같습니다. 아직도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서명보다는 도장을 사용하여 계약을 하고, 자신의 뜻을 나타내 보이며, 맹세합니다. 성령의 인침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과 관련되어 있으며, 나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1:13,14, 보겠습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를 구원하는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고 또한 그분을 믿은 뒤에 저 거룩하신 약속의 영으로 인치심을 받았나니 이 영께서는 우리의 상속의 보증이 되사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대속을 받기까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엡1:13,14).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소유권의 문제는 확실하지 않을 때 늘 다툼과 전쟁의 원인이 됩니다. 마귀와 하나님 사이에 이런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나와 하나님 사이에 다툼이 있습니다. 나와 마귀와 이런 다툼과 전쟁이 있습니다. 헌신이란 내가 나의 소유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승리와 성화의 길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은 채 하나님 앞에 나아옴으로써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종을 부리듯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산 물건이 여러분의 뜻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여러분이 값을 주고 산 개나 고양이가 여러분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 여러분에게 나아올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먹이를 주고 귀여워 합니까? 아니면 한 대 패서 정신을 차리게 하거나 길을 들입니까?
예전에 시골에서 이런 광경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장에 가서 힘센 소를 한 마리 사왔습니다. 이 소는 덩치에 비해서 값이 적게 나갔는데 이유는 길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의 말을 잘듣고 일을 잘하는 소는 비쌉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세도 말을 듣지 않는 소는 인기가 없습니다. 주인은 우시장에서 값을 치르고 나서 집에 데려오자 마자 강변의 모래 사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말을 들을 때까지 길을 들입니다. 쟁기 하나를 달아서 몰면 제 아무리 힘센 소도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사장에서 견디질 못합니다. 그렇게 하면 삼일만에 길이 들여지지 않는 소가 없습니다. 사람도 값주고 산 소를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순종할 때까지 길을 들여서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사신 여러분을 버리거나 결코 폐기 처분하지 않습니다. 대신 혹독한 징계와 시련으로, 때로는 오랫동안 광야에 방치해 두심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이 참된 신앙의 길이란 사실을 빨리 깨우치면 깨우칠수록 시간을 아끼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셨나니](행20:2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는 반드시 감독자를 세우사 양들을 먹이게 하십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의 감독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기대하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목자를 제쳐두고 엉뚱한데서 조언을 구한다면 그 사안에 관한 한 하나님께서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미국적 가치관이나 한국적 가치관을 여러분에게 가르치려고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저는 성경적 가치관을 말하고 가르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이기에 감독자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농구나 야구, foot ball을 보십니까? 지역마다 각 구단이 있습니다. 구단주는 돈으로 구단을 삽니다. 그리고, 필요한 선수들을 값주고 삽니다. 각 선수마다 연봉 계약을 체결합니다. 다음엔 구단주가 값을 주고 산 선수들을 가르치고, 양육하고, 이끌 감독을 세웁니다. 감독은 구단주의 지시를 받아 그 구단의 모든 선수를 관리, 감독하여 우승을 향해 달려갑니다. 만약 감독의 지시를 어기는 선수는 아무리 비싼 연봉을 받는 선수라도 징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이며, 이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신 감독자가 필요합니다. 교회 또한 성령께서 인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9,20, 7:23을 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殿)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9,20). 하나님의 소유로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신앙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거기서만 그치면 안됩니다. 마음 뿐만 아니라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으니 너희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7:23). 성령의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은 사람들의 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대신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지켜야 할 많은 명령들을 주셨고, 수행해야 할 임무를 부여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30, 고린도후서 1:21,22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救贖)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인치시고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느니라.](고후1:21,22).
성령의 사역은 우리의 몸으로부터 혼을 갈라내어 구속의 날까지 영과 혼을 인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친 것은 누구도 넘볼 수 없으며, 손댈 수 없습니다. 이는 봉투 속에 편지를 넣고 우표를 붙인 후 그 위에 소인(消印)을 찍어서 보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봉투가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편지는 개봉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계약서나 서류에 누구의 서명이 되어 있는지를 통해 그것이 누구의 소유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유 아니면 마귀의 소유물입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실 때마다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해 둡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인(印)침입니다. 저와 여러분 위에는 이런 인침이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 침례와 성령의 인침에 대해서 그 차이를 알아보았습니다. 이 둘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배운 진리의 지식이 성도 여러분의 신앙 생활에 유익이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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