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지금이 곧 주를 찾을 때임이라.



말씀: 호세아10:1-5
요절: 호세아10:12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로 거두며 너희의 묵은 땅을 부술지니 이는 지금이 곧 주를 찾을 때이기 때문이라. 마침내 그분께서 오사 의를 비같이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대언자 예레미야가 남 왕국 유다에 대해 예언하며 울었다면 호세아는 북 왕국 에프라임에 대해 예언하며 울었던 사람입니다. 특별히 호세아서는 성경에서 아마도 가장 이상한 책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호세아로 하여금 "음란한 아내를 취하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자신의 종 호세아를 부정한 아내와 결혼하게 하여 주님을 져버리고 끊임없이 음행과 간음을 일삼는 북 왕국 때문에 번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혼인 관계로 자주 비유하셨습니다(사62:5,호2:19, 렘3: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신약의 교회를 자기의 신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엡5:32). 주님은 호세아의 결혼을 통해 그가 이스라엘에 전해야 할 말씀의 살아있는 본을 삼으셨습니다.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호세아와 같이 하라는 명령이 없는 것으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대언자 호세아를 통해 장차 이스라엘에게 임할 모든 일들을 예언하고 궁극적으로 회복을 이루실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북 왕국을 계속 에프라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에프라임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가장 먼저 타락한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신약 성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성경 중에 하나입니다. 그는 앗시리아의 침입을 예언했고 B.C 721년 이 예언이 성취되어 북 왕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자신이 속한 민족의 파멸을 예언하는 한 대언자의 음성을 통해 오늘 저와 여러분이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텅 빈 포도나무요, 자기를 위하여 열매를 맺는 /나무/로다. 자기 열매가 많은즉 그가 제단들을 많게 하였으며 자기 땅이 좋은즉 그들이 좋은 형상들을 만들었도다.](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텅빈(empty) 포도 나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친히 심으신 포도 나무인데 어떻게 해서 지금 헛된 포도 나무가 되었습니까? 이 나무는 열매를 맺기는 하는데 ‘자기를 위하여’(자기에게) 열매를 맺었습니다. 포도 나무는 포도 나무를 심은 주인을 위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자기를 위하여 열매를 맺는 나무’라고 말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도 찍혀 불에 던져지겠지만 자기를 위하여 열매 맺는 나무 또한 아무런 쓸모 없는 나무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에게 열매를 맺습니까? 예수를 믿고 바른 말씀을 들었다는 자부심만 가지고 자기에게 열매를 맺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자신을 일컬어 ‘참 포도나무’라고 하시고 저와 여러분을 일컬어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원래 포도나무 가지의 역할은 열매 맺는 일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지는 스스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핌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뿌리로부터 오는 진액을 받아서 열매를 맺으면 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단 한번도 열매를 맺기 위해서 몸부림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서는 그냥 주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시편 80:8에 보면 [주께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이집트에서 가져다가 이교도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시80:8).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친히 심으신 포도나무였습니다. 하지만 이 포도원에 심기운 포도 나무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울타리를 두르고 돌을 주워 내고 최상품의 포도나무를 심고 그 한가운데에 망대를 세우고 또 그 안에 포도즙틀을 만들었도다. 포도원이 좋은 포도 내기를 그가 바랐더니 들포도를 내었도다. 오 예루살렘 거주민들아, 유다 사람들아, 청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해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었으랴? 그 안에서 내가 행하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포도원이 좋은 포도 내기를 내가 바랐거늘 들포도를 냄은 어찜이냐?](사5:2-4). 주님께서 포도원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시고 돌보셨는데 뜻하지 않은 들 포도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씨의 문제가 아니라 밭의 문제입니다. 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이 가꾼 포도원에서 들 포도가 나온 것은 성령을 받은 성도가 육신을 따라 사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과 성령대신 육신을 따라 사는 성도들은 언제나 성령의 열매대신 육신의 열매를 맺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온갖 정성으로 먹이고 입히고 교육을 시켰는데 기대와 어긋나게 행동하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만약 친지나 친구에게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고 돌보아 주었는데 배반하면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혹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배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보배,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입은 찬양의 예물을 드리며, 복음을 증거하여 혼을 이겨오는데 쓰십니까? 만약 그냥 좋은 성경, 좋은 교리, 좋은 책, 좋은 교회를 외치며 신앙 생활을 하고 계셨다면 여러분은 텅빈 포도나무요, 자기를 위하여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열매는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거짓이 있고, 속임수가 있지만 열매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열매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면 반드시 제단을 많이 만들고 좋은 형상들을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내면에 참된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고, 은혜가 없고, 평안이 없다면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마음이 나뉘었으니 이제 그들이 잘못한 자로 드러나리라. 그분께서 그들의 제단들을 파괴하시고 그들의 형상들을 못쓰게 하시리니](2). 타락의 원인과 결과는 모두 마음에 있습니다. 처음에 순수했던 믿음이 점점 세상으로 향하면서 마음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스케이트 선수가 양방향으로 달릴 수 없듯이 우리의 마음은 두 가지를 섬길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나뉘었으니”. 나뉘어진 마음은 악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마음을 싸매시고, 치유하시지만 나뉘어진 마음은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마음이 상한 성도들을 가까이 하십니다. [[주]는 상한 마음을 가진 자들을 가까이 하시며 통회(痛悔)하는 영을 가진 자들을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주님은 마음이 상한 성도들을 고치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147:3).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마음이 상한 자를 싸매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주} [하나님]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온유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하게 하셨음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를 싸매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감옥에 결박된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61:1). 이 말씀은 회당에서 주님이 처음 읽으셨던 말씀이며, 이 날 너희 귀에 성취되었다고 하신 말씀입니다(눅4:17-21).

주님은 분명히 “마음을 다하여”(with all your heart) 주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all'이 아니면 'zero'입니다. 주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습니다. 엘리야는 우상을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단을 요구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의견 사이에서 머뭇거리려느냐? 만일 주께서 하나님이면 그분을 따르고 만일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17:21). 하나님은 두 마음을 품은 자를 아주 싫어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그들의 길에 안정이 없습니다. [이르되, 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하늘에나 땅에나 주와 같은 하나님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 앞에서 걷는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을 베푸시나이다.](대하6:14).

열왕기하 17:33과 41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그들이 주도 두려워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민족들을 사로잡아 왔든지 그 민족들의 풍속대로 자기들의 신들도 섬겼더라.](왕하17:33). [이와 같이 이 민족들이 주를 두려워하고 또 자기들의 새긴 형상들을 섬기더니 그 자자손손이 자기 조상들이 행한 대로 행하여 이 날까지 이르니라.](왕하17:41). 이는 비단 이스라엘의 죄 문제만이 아닙니다. 저는 크리스챤 집시들을 많이 봅니다. 용하다는 기도원 찾아다니고, 신령하다는 목사님 찾아다니며 은사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뿌리가 없어 흔들리는 겨와 같은 신앙 생활을 하는 비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온 마음을 주님께 뿌리내리지 못하면 이미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나뉘어지고 자기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 줄 선생들을 많이 둡니다. YMCA, YWCA, 국제 라이온스 클럽, 기독교 윤리 실천 위원회,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과 사회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쌓은 제단들과 형상들을 주님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부에 대한 끝없는 동경’, ‘온 몸과 마음에서 피어 오르는 정욕의 불길’, ‘평탄한 삶에 대한 갈구’와 같은 그런 것들이 솟아나지 않습니까? 주님은 double mind를 싫어하시는 대신 single eye를 좋아하십니다. 여러분의 눈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쳐다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흘리신 피와 고난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가슴 속 깊은 곳, 마음 한 가운데서 솟아 올라 눈으로 쏟아지는 눈물만이 그런 모든 불길들을 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육체로 계시는 동안 “강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을진대 저와 여러분이 메마른 눈으로 매 순간 순간 침투하는 육신의 정욕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리요? 할 것임이라.](3). 이스라엘의 타락한 가장 큰 원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모든 타락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한 마디로 무법천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운 사람도 없으니 무법천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때 항상 내세우는 구호가 바로 “정의 사회 구현”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정의 사회를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없던 조상들이 오늘날 법치시대보다 더 정의롭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 떠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란 이런 것입니다.

첫째,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잠8:13).

둘째,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정직하게 행하는 것입니다(잠14:2)

셋째,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식의 시작입니다(잠1:7).

넷째,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견고한 신뢰가 있습니다(잠14:26).

다섯째,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의 덫에서 벗어나게 하는 생명의 샘입니다(잠14:27).

여섯째, 주를 두려워하면 장수하게 됩니다(잠10:27).

일곱째,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의 시작입니다(잠9:10).

여덟째, 주를 두려워하면 복을 주십니다(시115:13).

아홉째, 주를 두려워하면 천사의 보호를 받습니다(시34:7).

열째, 주를 두려워하면 부족함이 없습니다(시34:9).

열한 번째, 주를 두려워하면 선택의 순간에 길을 가르쳐 줍니다(시25:2).

열두 번째,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 사람의 보배입니다(사33:6)

열세 번째, 주를 두려워하면 주의 보살핌을 받습니다(사66:2).

열네 번째, 주를 두려워하면 말씀이 내 안에 굳게 섭니다(시119:38).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비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를 두려워 하므로 내 육체가 떨며 내가 주의 심판들을 무서워하나이다.](시119:120).

모든 죄인들의 공통적인 특징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눈 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 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8).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제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신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든 무엇을 했든 간에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은 완전히 타락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두려워 할 줄 아신다면 자녀들에게도 주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세대주의, 캘빈주의, 언약 신학과 같은 신학적 지식은 죄를 이기게 해 주지 못하지만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악을 피하고 떠나게 해 줍니다. 요셉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유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죄를 피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언약을 맺을 때에 거짓으로 맹세하며 말들을 하였나니 그러므로 심판이 밭고랑의 독초같이 일어나리로다.](4). 죄는 죄를 낳습니다. 이들은 언약을 맺을 때에 거짓으로 맹세하여 말들을 하였습니다. 마치 정적을 제거하려고 술수를 부리는 정치인 마냥 거짓말을 했습니다. “언약을 저버리는 것”은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가 하는 일입니다. 그는 평화의 언약을 맺었다가 3년 반 만에 깨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서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4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그러므로 심판이 밭고랑의 독초같이 일어나리로다” 농사를 지어 보신 분이라면 밭고랑 사이에 독초가 어떻게 자라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심지도 않았는데 자랍니다. 제초제를 뿌리고 김을 메고 밟고 다녀도 자라납니다. 결국 북 왕국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시리아에 멸망당합니다. 여러분, 생활 가운데 사소한 죄를 지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하루, 한 주, 한달, 일년이 지나면 두려워하십시오. 주님은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징계하십니다. 휴지통에 휴지가 다 차야 버리는 것처럼 심판은 그렇게 임합니다. 매일 매 순간 기억날 때마다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자신을 씻어내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5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의 거주민들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인하여 두려워 하리라.그 백성이 그것을두고 애곡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그러하리니 이는 그것의 영광이 그것을 떠났음이라.](5). 사마리아인들은 송아지를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섬기던 우상이 그들에게 어떤 위로나 힘도 주지 못했습니다. 북 왕국은 처음부터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제단을 쌓고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거기서 예배드리게 했습니다(왕상19:29-30). 이스라엘은 끝없이 우상을 숭배하는 죄악에 빠졌고 징계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이들처럼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는 일 대신 마음의 우상을 섬기는 일을 많이 합니다. 마음 속 한가운데 깊이 우상을 숨겨두고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골3:5). 현대인들에게 탐욕은 구약의 성도들이 형상을 만들어 섬겼던 어떤 이방 신들보다 더 강력한 우상입니다. 우상 숭배는 구약에서 주어진 경고처럼 여전히 신약에 주어진 강력한 계명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들을 멀리하라. 아멘.](요일5:2). 많은 사람들이 넘어져 타락하는 이유는 마음 속에 우상을 두고 하나님께 나아오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우상을 수시로 끄집어내어 보고 또 집어넣기 때문에 죄로부터 단절될 수가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공급받을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모두 탐욕이요, 우상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 송아지도 아시리아로 옮겨져서 야렙 왕을 위한 예물이 되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 계획을 부끄러워하리로다.](6). 자신들이 신으로 섬기던 송아지들이 앗시리아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자기들을 지켜 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앗시리아로 끌려가 야렙 왕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현대인들 가운데도 부적이나 행운의 악세사리를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앙의 때에, 심판의 때에 그 부적이나 악세사리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모두 당황하며 다 같이 혼동에 빠질 것이로되, 이스라엘은 주 안에서 영존하시는 구원으로 구원을 받으리니 너희는 세세 무궁토록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당황하지 아니하리로다.](사45:16-17).

7절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입니다. [사마리아로 말하건대 그녀의 왕이 물 위의 거품같이 끊어졌도다.](7). 예후 왕조의 4대 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1대, 아들 여호아하스 제 2대, 손자 요아스 제 3대, 증손자 여로보암 2세 제 4대, 고손자 스가랴. 호세아의 아들이 출생할 당시, 예후 왕조의 제 3대 왕 여로보암 2세가 치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왕조의 종말도 멀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물론 예후 왕조의 몰락은 스가랴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스가랴는 즉위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살해되었습니다(왕하 15:12).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한 이스라엘의 죄 곧 아벤의 산당들은 파괴될 것이요, 그 제단 위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서 사람들이 산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를 덮으라, 하며 작은 산들에게 이르기를,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8). 이들은 본래 일년에 3번 예루살렘에 가서 절기를 지키고 주님을 섬겨야 하는데 마음대로 산당을 지어 놓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들의 산당들은 다 부서지고 그 위에 가시와 엉겅퀴만 무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앗시리아 군대가 얼마나 처참하게 약탈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게 칼날이 내리치자 산사태와 같은 자연재해로라도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죽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죽지는 못하고 삶은 너무나 힘들 때 벼락이 내 머리 위에 내리쳤으면 하는 그런 적이 있습니까? 지나가는데 저 건물이 폭싹 내 위로 무너졌으면 하는 그런 심정 가운데 지내 본 적이 있습니까? 우상을 섬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게나 혹독하고 처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산이 무너져 거기에 깔려 죽는 것이 하나님께 받는 심판보다 더 낫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로다.”(히10:31) 했습니다. 이 자리에 혹시 구원받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 주님을 믿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어찌 감당하시겠습니까?

9절은 이스라엘이 성적으로 엄청난 타락을 했음을 보여 줍니다. [오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의 시대로부터 범죄하였도다. 그들이 거기에 서 있었더니 불법의 자녀들을 치려고 /일어난/ 기브아에서의 전쟁이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였느니라.](9). 기브아 사건이란 사사기 20:1-8에 나오는 기사로써 레위 사람의 첩이 베냐민 지파 땅 기브아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해 죽자 몸을 12조각을 내어 이스라엘 각 지파로 보냅니다. 이 일로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열한 지파가 전쟁을 벌여 베냐민 지파가 멸절을 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내의 음행을 제거하고자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도 아직 여전히 그 죄를 범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죄는 육신이 살아 있는 한 같이 살아 있습니다. 내 숨이 끊어지면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살았으나 죽은 자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연합의 죽음입니다. 십자가 외의 어떠한 방법으로도 죄는 단절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죄를 이기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늪에 빠져드는 발처럼 더 깊이 죄에 메인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바로 나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여러분의 죄의 법으로부터 완전한 자유함을 얻을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원하는 바는 그들을 징계하는 것이라. 그들이 자기들의 두 밭고랑에서 자기들을 묶을 때에 만백성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10). 주님은 이들을 징계하기를 원하십니다. 징계는 바로 잡음을 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두 밭고랑이란 유다와 에브라임을 말합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로 자신들을 묶었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송아지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 아름다운 목 위로 넘어갔도다. 이제 내가 에브라임에게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는 밭을 갈고 야곱은 흙덩어리를 부수리라.](11). 에브라임과 유다가 모두 등장합니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손자이며 유다는 아들입니다. 주님은 에브라임의 목 위에다 사람을 태웁니다. 이는 앗시리아를 태우겠다는 말입니다. “유다는 밭을 갈고 야곱은 흙덩어리를 부수리로다.” 딱딱한 밭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작업입니다. 어느 누가 갈지도 않는 밭에 씨를 뿌리겠습니까?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로 거두며 너희의 묵은 땅을 부술지니 이는 지금이 곧 [주]를 찾을 때이기 때문이라. 마침내 그분께서 오사 의를 비같이 너희에게 내리시리라.](12).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로 거두며”- 사람이 무엇을 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이든지 심는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를 심는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을 멈추고 매사에 선하고 옳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과 거두는 것은 일을 하는 것과 삯을 받는 것처럼 늘 같이 다닙니다. [속지말라. 하나님은 조롱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갈6:7-9). [오직 내가 말하려는 바는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후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후하게 거두리라 하는 것이라.](고후9:6) [씨 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시는 분께서 너희의 양식으로 빵도 주시고 너희가 뿌린 씨도 번성하게 하시며 너희의 의의 열매도 늘어나게 하시나니](고후9:11).

긍휼로 거둔다는 것은 주님의 긍휼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풍성하신 긍휼로 인해 저희들은 지금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기뻐하느니라](약2:13).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웃에게 동일한 긍휼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을 얻을 것임이요](마5:7).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므로 우리 역시 받은 긍휼대로 긍휼을 베풀 때 복된 성도가 됩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8).

“너희의 묵은 땅을 부술지니”. 이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 밭을 갈아 엎으라는 말입니다. 딱딱한 땅은 씨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황무지가 아닌 농토가 딱딱하다면 그 땅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밭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여러번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가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아직도 굳어 있느냐?](막8:17) 마음이 굳어 있으면 영적인 진리들을 듣고 보아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역사와 말씀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막16:11), “....이에 그들이 가서 남은 사람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13) 주님은 이들의 불신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일어난 뒤에 자기를 본 자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아니함이더라.](막16:14)

묵은 땅위에는 물을 대어도 물이 땅에 스며들지 않고 그냥 고여 있습니다. 말씀의 물을 아무리 공급해도 땅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계속 그 위에 머물러 있거나 다른 곳으로 흘러 가 버립니다. [너희의 묵은 땅을 부술지니 이는 지금이 곧 주를 찾을 때임이라. 마침내 그분께서 오사 의를 비같이 너희에게 내리시리라](12). 타락과 죄로 인해 책망과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에게 주님은 부흥을 말씀하십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었는데 그 순간 비가 와 보십시오. 가장 부드러운 땅으로 변합니다. 그 곳에 의의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내 마음을 갈아엎지 않고 그 위에 아무리 씨를 뿌리고 비가와도 온전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말씀 앞에 냉철하게 자신을 관찰해 보십시오. 나의 마음 상태가 어떤가 생각해 보십시오.

①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없을 때 그 마음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②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을 때

③ 가족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고 성도들에 대해 관심이 없어질 때

④ 세상의 오락과 재산과 명예에 관심이 기울여지기 시작할 때

⑤ 자기 부인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때

⑥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자꾸 미루거나 하지 않을 때

⑦ 잃어버린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 무관심해 질 때 묵은 땅을 부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묵은 땅을 갈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찾는 일곱 가지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마음을 다하여- “그러나 네가 거기서 주 네 하나님을 찾게 되리니 만일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여 그분을 찾으면 만나리라”(신4:29)

ⓑ 계속해서(대상16:11)- “주와 그분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continually) 그분의 얼굴을 구할지어다

ⓒ 겸손한 마음으로(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 땅을 고치리라.”

ⓓ 기도로(대하7:14)

ⓔ 죄에서 돌이킴으로써(대하7:14)

ⓕ 마음을 예비함으로써(대하19:3)-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곧 왕이 작은 숲들을 이 땅에서 제거하고 마음을 예비하여 하나님을 구한 것이니이다.”(선견자 예후가 여호사밧에게)

ⓖ 부지런히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그분께서 자신을 열심히(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사악함을 밭 갈아 불법을 거두고 거짓의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들의 많음을 신뢰하였음이라.](13). ‘사악함을 밭 갈아’란 말씀은 사악한 자의 쟁기질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거만한 눈빛과 교만한 마음과 사악한 자의 쟁기질은 다 죄니라](잠21:4)하셨습니다. [불법을 뿌리는 자는 헛된 것을 거두리니 그의 진노의 막대기가 쇠하리라.](잠22:8) 악인들은 무엇을 해도 악한 것입니다. 불법을 거두고 거짓의 열매를 먹었던 에프라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처절하게도 완전히 멸망당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그들이 흥하고 망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봅니다. 성경은 그들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서, 외침으로, 국내의 정치 상황이 불안정해서, 군사력이 약해서...등을 원인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망하는 것은 항상 그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군대의 많은 사람으로 구원받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많은 힘으로 건짐을 받지 못하는도다.](시33:16) 히스기야를 보십시오(왕하19:14-20).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사람을 신뢰하며 육체를 자기 무기로 삼고 마음이 주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렘17:5)

14,1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네 백성 중에서 소동이 일어나며 네 모든 요새가 노략을 당하되 곧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노략한 것 같으리라. /그때에/ 어머니가 자기 자식 위에서 산산조각 났느니라. 너희의 사악함이 크므로 벧엘이 이와 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하루/ 아침에 완전히 끊어지리라.](14-15).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타락에서 마음을 돌이켜 영적인 부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결국 멸망당하고 맙니다.

여러분의 지금 마음이 어떻습니까? 부흥이 없으면 멸망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자신을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며 묵은 땅을 부수고 주님을 찾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고자 하십니다. 지금은 진정으로 부흥에 목말라 하고, 부흥을 주시기를 간절히 구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묵은 마음을 부수고, 주님만을 신뢰하며, 주님을 찾는 진지한 자세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부흥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영적 부흥은 부흥에 갈급해 하고, 목말라 하는 혼들에게 오는 것입니다. 부흥을 위해 기도합시다. 모두 영적 부흥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