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말씀: 느헤미야 9:1-10:39
요절: 느헤미야 9:38

[우리가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이제 확실한 언약을 세우고 그것을 기록하며 우리의 통치자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이 언약에 날인(捺印)하나이다, 하였느니라.]

오늘날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다 같이 인정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교회는 썩었으며,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양적 팽창은 있었을 지언정 교회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 봉사, 섬김, 청지기적 삶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물론 외부인들의 이런 비판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지만 사실로 인정합니다. 교회가 썩었다! 이는 냉장고에 든 음식물이 썩은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몸 어느 한 부위가 썩었거나, 현재 부패해 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전도를 해 보면 교회에 가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교회의 부패를 이야기 합니다. 이제 교회는 개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저희들이 먼저 영적 부흥의 작은 밀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떻게 교회가 부흥하는가?” 에 대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각 개개인이 영적 순결을 유지하고 부흥하지 않고서 교회의 부흥은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왔다 갔다 하지만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자신에게 헌신하도록 요구합니다. 이는 마치 종이 주인에게 자기 뜻대로 해 주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꼴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꼴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저희들이 주(主)이시지 종(從)이 아닙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지 손, 발이 아닙니다.

열왕기상 18:21에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의견 사이에 머뭇거리려느냐? 만일 주께서 하나님이면 그분을 따르고 만일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one word-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께 헌신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무엇이 다릅니까? 헌신이란 간단한 말로 “...에 목맨 사람”이란 말입니다. 돈에 목을 매든, 명예에 목을 매든, 권력에 목을 매든, 성공에 목을 매든, 가족에게 목을 매든... 뭔가에 목을 맨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목을 매고 있습니까?

오늘 설교를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 영적 부흥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간구드립니다.

“인간이 역사로부터 배우는 유일한 한 가지는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란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저희들이 배울 수 있는 영적 진리들의 창고입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용서와 긍휼, 인간들의 끝없는 실패와 배반이 반복되는 가운데 참된 영적 부흥의 교훈을 얻기를 원합니다.

70년간의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느헤미야의 지휘 아래 허물어진 예루살렘의 성벽과 성전 재건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70년간 하나님의 율법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서기관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 책을 펴들고 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처음으로 장막절을 지켰습니다. 먼저 느헤미야 7:18을 보십시오. [에스라는 첫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들은 이레 동안 명절을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대로 엄숙한 집회를 열었느니라](7:18)

영적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는데서 출발합니다. 말씀이 없는 부흥이란 없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고 울부짖고 성령이여 임하소서! 아무리 외쳐도 말씀 없이는 안 됩니다.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귀를 돌이켜 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되느니라](잠28:7)고 하셨습니다.

I. 백성들의 준비 (9:1-3)

첫째, 주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금식을 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 달 이십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말씀을 깨닫고 나서 자신들의 죄를 발견한 사람의 특징이 바로 금식입니다. 금식은 하나님께 떼를 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기도를 관철하기 위해서” 금식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금식은 그런 것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하는 것이 금식입니다. 성경에는 금식한 예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때 금식을 합니다. 국가나 가정이 위기에 봉착할 때, 마귀와 싸울 때, 교회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금식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3:2,3에 보면 “그들이 주를 섬기며 금식할 때에 성령께서 이르시기를....” “그들이 금식하고 기도한 후에...” 바나바와 사울을 안수하고 보냈습니다. 사도들은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선임하고 금식 기도하며 주님께 자신들을 의탁했습니다(행14:23). 바울은 자주 금식을 했습니다(고후11:27). -“...여러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 부부간에도 금식과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서는 합의상 잠시 떨어질 수 있습니다(고전7:5). 다윗은 금식의 대가였습니다. 그는 “그 때에 내가 울며 금식을 하며 내 혼을 징계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내게 모욕거리가 되었으며”(시69:10)- 여기서 볼 때 금식은 혼을 징계하여 겸손하기 위한 수단임을 볼 수 있습니다.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쇠약하며 내 살은 기름기가 없나이다”(시109:24). 뱃 살 나온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교회와 자신을 위해서라도 기도와 금식을 자주 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교회의 각 가정들을 보면 기도와 금식이 참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둘째, 겸손입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먼지를 뒤집어 쓰며” 베옷은 슬픔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20:31,32에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긍휼이 많은 왕들이라 하니 원하건대 우리로 하여금 굵은 베를 허리에 두르고 밧줄을 머리에 묶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나아가게하소서.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그들이 굵은 베를 허리에 두르고 밧줄을 머리에 묶고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말하기를 원하건대 나를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하니...” 겸손은 재앙을 막는 힘입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손히 행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손히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의 시대에는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고 ...”(왕상21:29). 겸손은 은혜를 입는 첩경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더 많은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하시느니라.”(약4:6).

겸손은 기도 응답의 지름길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 땅을 고치리라”(대하7:14). 주님은 겸손하셨습니다. 저희도 겸손해야 겠습니다.

셋째, 분리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씨가 모든 타국인으로부터 자기들을 분리하고...” 하나님께로 나아 오기 위해서는 죄와 세상으로부터 분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전의 친구들과 분리되어야 하며, 악한 습관과 분리되어야 합니다. 분리를 하는데는 상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친구나 친지들의 멸시를 받을 수도 있고, 직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가끔은 불신자인 배우자와 싸워야 합니다. 때로는 불신자인 부모와 싸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세상과 끊지 못한 무엇이 있다면 이 시간 분리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십시오. 그는 먼저 아버지와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다음은 조카 롯과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아내 하갈과 자식 이스마엘과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이삭을 바치게 함으로써 완전히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분리를 하지 않으시면 하나님께서 강제로 분리를 시키실 것입니다. 이는 질병, 죽음, 사고, 파산, 이혼, 따돌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분을 강타할 것입니다.

넷째, 죄의 고백입니다.

2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일어서서 자기들의 죄와 자기 조상들의 불법을 고백하니라” 죄의 고백은 용서의 첫 걸음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시작입니다. 저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깨끗함을 입었지만 날마다 짓는 죄들을 고백하는데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요한일서 1:9은 그리스도인들이 향유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약속입니다. 이는 믿음의 문제인 동시에 늘 순종하고 실천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여러분 가운데 고백해야 할 죄가 있다면 이 시간 바로 고백하십시오. 지체하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들은 낮 1/4, 즉 6시간을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보냈습니다.(유대인들은 낮을 열두 시간, 밤을 열두 시간으로 보았음. 예수님께서 “낮에 열두 시간이 있지 아니하냐”--요11:9라고 말씀하심).

다섯째, 성경을 읽었습니다.

3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또 그들이 낮 사분의 일 동안에는 자기 자리에 서서 주 자기들의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3a). 율법 책은 읽으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내린 주님의 명령은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수1:8). 성경은 일단 읽는 것입니다. 묵상, 믿음, 순종은 그 다음 단계입니다. 신명기 17:18,19에는 왕이 된 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자기 왕국의 왕좌에 앉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 있는 그것에서 이 율법을 책으로 한 권 필사하여 평생토록 자기 곁에 두고 읽어(서) 주 자기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법규를 지켜 행할 것이니라” 저희들이 바로 왕같은 제사장이며, 미래의 왕들이 될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구원받은 사람이 바로 이디오피아 내시입니다. 주님은 성경을 읽는 그를 축복하사 빌립을 보내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3에는 “이 대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셨습니다. 하박국 2:2에는 주님께서 “너는 이 환상들을 기록하고 판들위에 분명하게 새겨서 사람이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성경 읽기를 촉구했습니다. “곧 그분께서 계시로 내게 그 신비를 알게 하셨나니 (이는 내가 전에 몇 마디 적은 것과 같으니라. 그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너희가 깨닫게 되리라.)”-엡3:3,4. 성경 읽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꾸준히 신실하게 성경을 읽으십시오. D.L 무디 목사님이 말하기를, “여러분이 성경을 읽지 않음으로 성경이 죄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해 주지 못하면, 죄가 여러분을 성경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섯 째,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이들은 6시간 동안 성경을 읽고 6시간 동안 죄를 고백하며 주 자기들의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경배는 예배와 같은 말입니다. 한국 말로는 경배, 예배, 숭배가 다 다른 말이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동일한 worship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예배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가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요4:24). 영이란 성령으로 거듭난 영을 말합니다. 자연인은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주님을 경배할 수 없습니다. 진리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대문자 Spirit인 성령이 있고, 소문자 spirit인 사람의 영과 마귀의 영과 짐승의 영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된 말씀들, 성경의 단어들이 바로 영이란 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라.

II. 백성들을 위한 기도 (9:4-31)

레위 사람들은 경배로 그들의 기도를 시작합니다. 오늘 이 기도는 성경에 기록된 가장 긴 기도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주 자기들의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일으켜 세워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인도했습니다. “너희는 일어서서 영원무궁토록 주 너희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송할 것은 주의 이름이 모든 찬송이나 찬양보다 높임을 받았음이니이다.

그리스도인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늘 찬양하는 입술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혼자 있거나 걸어 갈 때나 입술에서 찬송가가 흘러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입술에서 유행가나 흘러 간 옛 노래가 슬며시 나오면 영적 힘이 다 떨어졌다고 생각하시면 정확합니다. 이 때는 다시 충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것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6절부터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6절은 주님께서 창조주이시며, 보존하시는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주님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지금은 그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붙드시며...”(히1:3). 지금 저와 여러분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늘의 군대란 말은 하늘의 있는 모든 별들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주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7절부터 30절까지는 역사의 하나님,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7절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이름을 주셨습니다. 우상 숭배의 도시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시고 인도하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부름을 받았는지,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이 시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중요한 4가지 성품을 배웁니다.

첫째, 주님은 마음이 주 앞에 신실한 사람을 복주십니다(8).

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의 마음이 주 앞에 신실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맺으사...이제 그 말씀들을 이루셨사오니 이는 주께서 의로우심이로소이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능력이나 인격이나 교육 수준이나 지성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보신 것은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주님은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교회사에 기록된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은 신실함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길지어다.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할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전4:1,2)

9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할 때든 죄를 지을 때든 항상 보시고 들으셨습니다. “---보시며....들으시고” 주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세수하고 머리 감을 때 욕조에 몇 개의 머리카락이 빠졌는지도 다 세시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을 불러내셔서 바른 법도와 참된 율법과 선한 법규와 명령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13). 세상으로부터 저희를 불러내신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셨고, 성령을 주셨으며,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굶주린 자에게 기적적으로 먹여 주십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15). 40년을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고 나무 열매도 열리지 않는 사막에서 40년을 여행만 하며 산 민족이 지구 역사상 누가 있습니까? 주님은 하늘에서 양식을 내어 주시고 바위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부족함 없이 물을 마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두시고 걱정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먹고 살 것이 걱정되어 주님을 섬기지 못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2).

셋째, 하나님은 항상 용서해 주시는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17). 16,17절을 읽을 것. 이스라엘은 항상 반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용서하셨습니다. 주님의 용서는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더라”(눅23:34). 지금 이 시대는 은혜의 시대입니다. 지금은 마치 따스한 햇볕이 싫어 손등으로 눈을 가리며 그 손 등 위로 여전히 빛이 비추는 시대입니다. 내가 등을 돌리면 내 등에 빛이 비췹니다. 그러나 죽고 나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습니다.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이 계시면 이 시간 주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용서해 주십니다. “오직 주는 항상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진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큰 친절을 베푸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17)

넷째, 주님은 은혜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31). 끊임없는 반역과 범죄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주의 긍휼이 크시므로 그들을 진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이는 주께서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니이다.”(31)

III. 백성들의 약속 (9:32-38)

레위인들은 좀 더 깊은 헌신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새롭고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문서로 계약을 맺고 거기에 인(도장)을 쳤습니다. 언약에 인을 친 사람들의 명단이 느헤미야 10:1-27절까지 나옵니다.

9:38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이제 확실한 언약을 세우고 그것을 기록하며 우리의 통치자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이 언약에 인을 치나이다.” 하나님 앞에 문서를 만들어서 도장을 찍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맹세를 하고, 문서를 만들어도 스스로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록된 모든 말씀을 지키십니다. 저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분명한 결단입니다. 이 시간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언약을 세우고 기록해 보십시오. 한 가지라도 분명하게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설령 내가 지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은 그 언약을 새롭게 기억하도록 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저는 처음 구원받았을 때, 한 가지 주님 앞에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성경을 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이후 매일 성경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약속을 다시 기억나게 하셔서 저는 회개하고 다시 성경을 읽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언약을 했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주님께 언약을 맺고 기록하고 인을 칩니다.

① 매일 성경을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②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③ 매일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④ 양들을 신실하게 먹이고 교회를 돌보겠습니다.

결론

영적 부흥은 바로 죄의 고백과 겸손과 회개와 성경을 읽고 주를 찬양하며, 역사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을 돌아보고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을 인식하는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정확히 알고,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이며, 반역과 죄악을 반복하는지 깊이 깨닫고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 앞에 믿음의 선한 결단을 내리시기를 빕니다.

전부 머리를 숙이시고 잠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롭게 주님 앞에 언약을 세우고 결단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