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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을 위한 희생제물(II)

말씀: 출애굽기 29:15-29
요절: 출애굽기 29:15-29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을 위한 희생 제물에 대해서 계속 공부하겠습니다. 레위 지파의 제사장은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었고, 동일한 죄를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을 위한 희생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주님은 제사장들이 자신들을 위해 드려야 할 희생 제물이 무엇이고,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를 상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이란 사실을 기억하고 이 말씀들을 한 절 한 절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죄 헌물로 소를 드리는 것과 양을 드리는 것의 차이점을 살펴 보겠습니다.

15절입니다. [또 너는 숫양 한 마리를 취하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 것이며](15). 대제사장의 사역과 관련된 희생 제물은 소였습니다. 반면 그들의 개개인의 죄 문제를 위해 드리는 희생 제물은 소가 아니라 양입니다. 레위 지파의 제사장은 주님을 섬기는 사역을 위해서도 희생물이 필요했고, 자신들의 죄 문제를 위해서도 희생물이 필요했습니다. 어린 양은 속죄의 희생물을 예표합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한 어린 양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했는데 안수는 자신들의 죄를 전가하는 행위입니다. 그들의 손을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하는 순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있던 모든 죄를 숫양이 대신 담당합니다. 이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는 모습과 일치합니다.

오늘날 스스로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이해시키기 어려운 진리 가운데 하나는 대속의 진리입니다. 저 역시 저의 죄를 제 자신이 담당하지 않고 다른 누가 대신 담당해서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고,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그 뒤에는 영원한 불 못이 있습니다. 스스로 죄를 감당할 수 있다면 대속은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죄를 감당할 수 없기에 대속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나의 죄가 다른 사람에게 전가될 수 있는가? 죄는 죄를 지은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지 대신 죄를 지게 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론은 ‘합당하다’입니다. 주인이 지은 죄를 종이 대신 감당하는 일은 부당합니다. 반면 종이 지은 죄를 주인이 감당하면 합당한 정도가 아니라 넘칩니다. 상관이 부하가 저지른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아내가 진 빚을 결혼한 남편이 모두 갚아 주는 일은 합법적이며, 누구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진 빚을 누가 대신 감당해 주면 채권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누가 대신 변상하는 일이 전가입니다. 그런데 돈의 문제나 재산상의 피해가 아니라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할 경우는 누가 대신 변상하거나 변제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생명은 벌금과 같이 돈으로 변상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분명히 말하기를, [...네가 생명은 생명으로](출21:23b), [네 눈이 불쌍히 보지 말라. 오직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을지니라.](신19:21)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누가 대신 돈을 내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대신 죽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죽어 줍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누구를 대신해서 죽어야 한다면 인류는 씨가 마르고 맙니다. 대신 죽어 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예외 없이 모두 자신을 대신해 죽을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와 양들을 대속물로 삼게 하셨습니다. 물론 소나 양에게 손을 얹어서 전가한다고 해서 그들의 죄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습니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히10:4). 소나 양의 생명이 사람의 생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소나 양은 완전한 희생물이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일시적인 모형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동물을 통해 희생물을 드리게 하신 것은 대속[전가]의 원리를 보여 주시고 소와 양을 대신할 완전한 희생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줄 것이란 예언을 그들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날마다 제사를 드렸지만 이런 제사가 자신들의 죄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함을 잘 알았습니다. [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들을 드리되 이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거니와](히10:11). 사람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뿐입니다. 자신의 죄를 위해 또 다른 희생물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죄를 완전히 담당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사람, 죄없는 사람, 자발적으로 스스로 담당하려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 세상 끝에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음이니라.](히9:26b). 우리의 모든 죄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되었고, 제거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이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었듯이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는 다 전가되어 남김없이 완전하게 깨끗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너는 그 숫양을 죽이고 그 피를 취하여 제단 위에 돌아가며 뿌리고](16).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양에게 손을 얹은 다음 자신들의 죄가 전가된 그 숫양을 죽였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죄가 죽음에 해당하는 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가 자신 안에 그냥 그대로 있다면 자신이 죽어야지만 그 죄가 양에게 전가되었다면 그 양이 죽어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자신들이 손을 얹은 소나 양을 죽일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런 죽음을 당해야 할 죄인들이란 사실을 절감(切感)했습니다. 손을 얹은 소나 양이 죽을 때마다 그 죽음은 실상 자신들이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 담당한 것임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와 같이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 살고 있습니다.

숫양을 죽인 다음에는 피를 취해서 제단 위에 돌아가며 뿌렸습니다. 제단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불이 활활 타고 있습니다. 진노의 불입니다. 피는 육체의 생명입니다. 제단 위에 뿌려진 피는 모조리 불태워졌습니다. 이것은 죄인의 운명을 보여 줍니다. 대속물이 죽든가 본인이 직접 죽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나를 위해 그 자리에서 죽었다면 나는 삽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없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마음과 정신의 영역이 아니라 실제적인 우리의 운명입니다. 주님께서 죽지 않으셨으면 우리 자신이 그런 죽음을 당했고, 지옥의 불에 그렇게 타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양을 손에 얹은 후에 양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죄를 처리하시는 주님의 공의로운 모습, 죄를 미워하시며 분노를 쏟아 부으시는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했던 것입니다.

17-18절입니다. [그 숫양을 여러 조각으로 자르고 그 내장과 다리는 씻어서 조각 낸 고기와 그 머리와 함께 두고 그 숫양의 전부를 제단 위에서 태울지니라. 이것은 [주]께 드리는 번제 헌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니 곧 불로 예비하여 [주]께 드리는 헌물이니라.](17-18). 번제 헌물은 제사장들이 날마다 드리는 헌물입니다. 희생물을 태우는 것은 냄새를 위한 것입니다. 번제 헌물의 향기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향이신데 이는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의 예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안에서 걸으라.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헌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주님은 자신을 번제 헌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번제 헌물은 모조리 다 태워졌습니다. 숫양의 전부를 태우는 것은 주님의 완전 속죄를 의미합니다. 또 한 가지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라면 ‘육신’은 모조리 태워져 없어져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육신으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은 아무리 잘 나도 육신입니다. 육신은 죄의 법을 섬기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성령과 다툽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며, 육신의 정욕대로 살면 죽습니다. 육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처리되어야 하는 쓰레기와도 같습니다. 주님께 우리 몸을 산제물로 드릴 때, 육신의 정욕과 애정은 제단 위에서 완전히 태워집니다.

주님은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을 다 불에 태우십니다. 주님은 옛 창조에 속한 현재 있는 하늘과 땅까지 모조리 다 불태워 버리십니다(벧후3:9-14). 흙에서 난 첫 사람 역시 새롭게 창조되어야 합니다. 먼저 영이 새롭게 태어나야 주님이 오실 때 새로운 몸이 주어집니다. 영적 거듭남이 없으면 영적 몸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려야 하는데 우리는 죄를 속함 받기 위해 산 제물로 내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죄 문제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죄 문제는 주님이 모두 대속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섬김과 예배, 감사와 찬양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나 멸망하는 자들 중에서나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이기 때문이니](고후2:14-15).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빛이요, 혀에 닿는 소금이요, 코로 들어가는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어디에서? 모든 곳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그곳이 어디있든지 간에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기려면 먼저 말, 인자한 행실, 복음에 합당한 삶의 자세, 가치관 등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약의 제사장들이 드리는 번제 헌물의 향기입니다. 성도 상호간에 물질의 나눔과 섬김 역시 신약의 제사장들이 주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번제 헌물입니다. [오직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니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보낸 것을 받았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것은 달콤한 향기요,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요, 하나님을 심히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4:18). 우리는 소와 양을 잡아서 태움으로 주님께 향기로운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통해서 서로 나누고 섬기는 삶을 통해서 향기로운 헌물을 드리는 영적 제사장들입니다.

처음에 주님은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가져 오게 하셨습니다(3). 바구니에 와퍼와 케익도 가져오게 하셨는데 이것은 요제 헌물과 거제 헌물을 드릴 것들입니다. 이제 수소 한 마리와 숫 양 한 마리를 처리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숫양 한 마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19-21절입니다. [너는 다른 숫양을 취하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 것이며 너는 그 숫양을 죽이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에 바르고 또 그들의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제단 위에 돌아가며 그 피를 뿌리고 제단 위에 있는 피와 기름부음에 쓸 기름을 취하여 아론과 그의 의복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의복들에 뿌릴지니라. /그리하면/ 그와 그의 의복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의복들이 거룩하게 되리라.](19-21). 이것은 양으로 드리는 죄 헌물입니다. 22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는 숫양(for it is a ram of consecration)](22)이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성결을 위한 양이란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 한 마리 양을 속죄용 양으로 잡았고 또 한 마리의 양은 [성별의 양(a ram of consecration)]입니다. 이전에는 양을 잡아서 피를 취해 제단 위에 뿌리고, 고기는 잘라서 전부 다 태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약간 다릅니다.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죽인 후에 피를 취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모든 피를 다 제단 위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그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오른 쪽 귓불, 오른 손 엄지, 오른 발 엄지에 발랐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는 전적으로 죄를 전가 받은 대속의 양이 죽고 그 피를 제단 위에 뿌림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구속을 통한 영 단번(once for all)의 속죄를 예표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원 그 이후의 삶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생활이 있습니다. 속죄의 양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성별의 양(a ram of consecration)]이 필요한 것입니다. 의롭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는 여전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죄로부터 정결하게 된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들을 가졌은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 무엇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렇습니다. 구원의 기초가 피이듯이 성별의 기초 역시 피인 것입니다.

숫양의 제물이 취해지기 전에 피가 먼저 취해집니다. 성결은 피를 통해서 옵니다. 모든 것은 피를 통해서만 정결하게 됩니다. 피는 죄사함, 성결, 구분, 깨끗함을 위한 것이고, 죽음은 죄의 몸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읽어보면 십자가와 피의 강조점이 예리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를 깨끗하게 하는 피입니다. [수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9:13~14). 죄는 죽음으로서 씻는 것이 아니라 피로써 씻습니다. 죽음은 죄의 근원이 되는 육신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피는 죄의 현상, 결과들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피는 죄를 씻기는 화학 약품입니다. 그래서 외과 의사 출신의 복음 사역자 M.R 디한 박사는 The Chemistry of Blood란 책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어떻게 죄를 씻기는가? 를 상세하게 기술했습니다. 두 구절을 비교합니다. [우리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하여 대속(代贖)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엡1:7). 이것이 첫 번째 양을 죽여서 피를 취하여 제단 위에 뿌린 피입니다. [만일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요일1:7). 이것이 두 번째 양을 죽여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몸에 바른 피입니다. 우리 주님의 피는 속죄를 위한 피인 동시에 성별을 위한 피입니다. 성별의 양의 피는 제사장에게 바르고, 그 의복에 뿌렸습니다. 숫양의 피를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오른 쪽 귓불, 오른 손 엄지, 오른 발 엄지에 바른 것에 주목하십시오. 귓불, 손, 발은 의복으로 가리지 못하는 부분들입니다.

오른 쪽 귓불에 발랐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듣는가? 어떻게 듣는가? 에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 건전한 교리, 영적인 음악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들은 것을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요즘 주로 무엇을 어떻게 듣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귀가 피에 적셔지면 입은 저절로 처리됩니다. 혀를 재갈 물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귓불에 주님의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입 조심이 안 되는 사람은 먼저 귀를 조심하는데 주의하면 됩니다. 오른쪽 발 엄지에 피를 바른 것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주의 이름을 위한 의의 길이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주님 보시기에 기쁘신 일들을 하는 데만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오른 손 엄지에 피를 바른 것은 피 흘리는 손이 되지 않고 주님을 위해 일하라는 것입니다. 손과 발과 귀는 신체의 가장 먼 부분들입니다. 그렇지만 모두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온 신체에 피와 기름을 뿌렸는데 몸에 직접 뿌린 것이 아니라 입고 있는 의복에 뿌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온 몸의 신체 모든 부위에 피를 뿌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2절입니다. [또 너는 그 숫양의 기름과 꼬리와 그 내장을 덮는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오른쪽 어깨를 취할지니 그 까닭은 이것이 거룩히 구분하여 드리는 숫양이기 때문이니라.](22). 주님께 드려졌던 부위를 보십시오. 숫양의 기름, 꼬리와 내장을 덮는 기름, 간위의 꺼풀, 두 콩팥, 그 위의 기름과 오른 쪽 어깨입니다. 주님께 드려진 희생 제물의 각 부위는 가장 좋은 부분입니다. 주님께서 언급하신 속의 모든 부분은 양의 피를 순수하게 조절하는 기관입니다. 오른 쪽 어깨는 사람에게 비유하면 물건을 나를 때 짐을 얹는 곳입니다. 어깨는 권능을 상징합니다(사9:6).

수소와 두 마리의 양은 말씀대로 다 드려졌습니다. 바구니에 가져온 빵, 케익, 와퍼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이것들은 음식 헌물입니다. 흔들어서 드렸기 때문에 요제 헌물이라고 하기도 하고, 들어 올려서 드렸기 때문에 거제 헌물이라고 합니다. 음식 헌물은 주님과의 화평 헌물입니다. 이 헌물은 주님과 화평의 관계를 갖고, 감사하는 희생물입니다(레7:11-15).

23-24절입니다. [또 [주] 앞에 있는 바구니 곧 누룩 없는 빵 바구니에서 빵 한 개와 기름 바른 빵 한 조각과 얇은 과자 한 개를 취하고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의 아들들의 손에 놓고 그것들을 흔들어서 [주] 앞에 요제(搖祭) 헌물로 삼을 것이며](23-24). 요제(搖祭)는 주로 농산물을 제물로 드릴 때 사용하는 제사 방법입니다. 흔들 ‘요’를 써서 주님 앞에서 제물을 흔들어서 드리는 것입니다. 누룩없는 빵은 순결을, 기름 바른 빵은 주님과의 친교를 나타냅니다. 이 헌물은 화평 헌물을 드리는 모습입니다. 주님은 누룩 없는 빵이셨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 드려지는 희생물이라면 누룩 없는 빵이 되어야만 합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뜨게 함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이는 우리의 유월절(逾越節)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의와 악독의 누룩으로도 말며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빵으로 하자.](고전5:6-8). 기름 바른 빵은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예표합니다. 이 헌물은 죄 헌물을 통해서 주님과 화평의 관계를 갖게 되었으며, 주님의 화평이 임한다는 의미입니다. 죄 헌물을 주님께서 받으시면 죄 헌물을 드린 사람은 누구나 주님과 화해하게 되고, 주님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Peace with God-->Peace of God]. 이 순서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어린 양을 번제로 죄 헌물을 드리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화평 헌물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제사는 타국인은 참여할 수 없었으며 자신을 더럽힌 자들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25절입니다. [너는 그것들을 그들의 손에서 받아 제단 위에서 번제 헌물로 태울지니라. 이것은 [주]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불로 예비하여 [주]께 드리는 헌물이니라.](25). 요제 헌물, 화평 헌물, 음식 헌물로 불리는 이 제물들은 모두 태워서 주님께 번제 헌물로 드렸습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헐으시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허무시며 모든 원수된 것들을 성령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고, 화평케 하신 분이심을 예표합니다. [이는 그분께서 우리의 화평이시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사 우리 사이의 중간 벽을 허무시고](엡2:14). 주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26-27절입니다. [너는 아론의 거룩히 구분하여 드리는 숫양의 가슴을 취하여 [주] 앞에 흔들어서 요제 헌물로 삼을지니 이것은 네 몫이니라.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한 숫양 곧 거룩히 구분하여 드리는 숫양에서 취하여 흔드는 것과 들어올리는 것 즉 요제(搖祭) 헌물의 가슴과 거제(擧祭) 헌물의 어깨를 거룩히 구별할지니라.](26-27). 숫양의 가슴은 제사장들이 먹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보상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주님은 먹을 것을 주시고, 그들의 수고에 따라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28절입니다. [이것은 거제 헌물이므로 영원한 법규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취하여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줄지니 그 까닭은 이것이 거제 헌물이기 때문이라. 이것은 거제 헌물 곧 이스라엘 자손이 화평 헌물로 드리는 희생물 중에서 취한 헌물로서 [주]께 거제 헌물이 될지니라.](28). 거제 헌물은 들어 올리는 것인데 헌물을 주님 앞에 들어 올리는 제사 형식에서 나온 말입니다. 음식물은 흔들거나[요제], 높이 들어 올리는[거제]가 전부입니다. 흔드는 헌물은 앞뒤 아니면 좌우로 흔들고, 들어 올리는 헌물은 위 아래로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합성해 보십시오. 제사장이 흔들고 들어 올리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십자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허공에 십자가가 분명하게 그려집니다.

오늘 말씀을 예표론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번제 헌물로 드려진 양을 통해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없이는 성별이 없습니다. 죄를 대속한 어린 양이 죽고, 그 피가 제단 위에 뿌려져야 합니다.

  2. 제단 위에 있는 피와 기름부음에 쓸 기름을 제사장들에게 뿌렸습니다(21). 기름부음에 쓸 기름이 함께 뿌려졌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피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3. 귓불, 오른 쪽 엄지 손가락, 오른 쪽 엄지 발가락에 피를 바른 것은 우리의 몸을 주님께 거룩한 산제물로 드려야 함을 말해 줍니다. 우리의 지체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4. 성별은 피로써만 유지된다는 사실입니다.

  5. 가장 좋은 부분들은 주님께 드려졌습니다(22-24).

  6. 진정한 성별은 구원만큼이나 깊은 영적 경험을 수반합니다. (18절과 25절을 비교해 보라.) the ram of burnt offering vs the ram of consecration

  7.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보상이 있다(27).


쉽고 단순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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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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