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향을 태우되
요절: 출애굽기 30: 성막에는 두 개의 제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막의 성소 입구에 있는 놋 제단입니다. 놋 제단은 번제 헌물을 태우는 곳입니다. 하나는 성소 안 지성소에 들어가는 휘장 바로 앞에 있는 금 제단인데 이는 향을 태우는 분향 제단입니다. 이 둘은 모두 시팀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번제단은 놋으로, 향 제단은 금으로 둘렀습니다. 크기 역시 약간 다릅니다. 제단이 예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향을 태울 제단(분향 제단)을 통해 성경적 진리를 배우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 되는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9장에서 ‘너희는 제사장의 직분으로’ 주님을 섬기라는 명령이 떨어진 바로 다음에 향을 태울 제단이 나오는 것은 제사장들이 주님 앞에 드려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제사장이요,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제사장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항상 주님을 섬기는 것이지 관습적으로, 어쩔 수 없이, 종으로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제일 큰 업무가 무엇입니까?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영적 희생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주 임무입니다. 자신의 개인 업무 아니면 가정사, 집안 일, 회사 업무 기타 잡무들 때문에 제사장이 직무를 망각한다면 그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오늘날 입만 살아 있는 사이비 목사들 못지않게 교회를 해롭게 하는 존재들이 사이비 신자들입니다. 사이비 신자들은 교회를 다니지만 결코 주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제사장 직분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취미 생활로 주님을 섬깁니다. 자기 할 일 다 한 후에 유람 오듯이 교회 나오고, 모든 스케줄에서 맨 후순위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기도 모임에 오는 것이나 성경 공부 모임은 아예 스케줄에 집어넣지도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제사장 직무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며, 자격도 없습니다. 1절입니다. [너는 향을 태울 제단을 만들되 시팀나무로 만들고](1). 주님은 향을 태울 제단을 만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제단을 ‘분향 제단’이라고 말합니다. 향을 태울 제단이란 우리 주님께서 드리는 기도와 찬양, 중보 사역을 예표 합니다. 제단 자체는 언제나 우리 주님을 예표 합니다. 놋 제단은 성소 밖에 있습니다. 향 제단은 성소 안, 지성소 바로 앞에 있습니다. 제단이 성소 안과 밖에 있다는 것은 우리 주님의 사역이 이 땅과 저 하늘에서 모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리를 위해 놋 제단이 되시고, 그 위에 어린 양으로 놓이셨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 헌물을 태웁니다. 그 불을 가지고 성소 안에 들어가 분향 제단의 향에 불을 붙입니다. 그러면 그 향기는 향기로운 향이 되어 하나님 앞에 열납 됩니다. 분향 제단이 지성소 앞 휘장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향기로운 향기는 지성소 안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성경에서 향이란 기도를 말합니다. 성도들은 모두 향을 태울 제단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가 주 앞에 향을 올려 드림같이 되며 나의 손을 들어올림이 저녁 희생물을 /올려 드림/같이 되게 하소서.](시141:2). 기도를 드리는 행위는 제사장이 향 제단에서 향기로운 향을 태워 올리는 것같이 해야 합니다. 실제 우리의 기도는 향을 태우는 분향 제사와 같은 것입니다. 이는 단지 기도의 자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주님 앞에 드려지는 향입니다. 여러분이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는 것은 단지 필요를 아뢰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기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소에서 제사장들이 드리는 분향 제사입니다. [그분께서 그 책을 취하시매 네 짐승과 스물네 장로가 저마다 하프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들을 가지고 어린양 앞에 엎드리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계5:8). 주님은 땅에서 올라오는 성도들의 기도를 모두 금 대접들에 담아 두십니다. 분향 제단이 금으로 만들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금 향로를 가지고 와서 제단 앞에 서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것은 그로 하여금 그 향을 모든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왕좌 앞에 있는 금 제단 위에 드리게 하려 함이더라](계8:3). 저 하늘에도 제단이 있고, 향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향이며, 그 향은 금 제단 위에 드립니다. 기도는 우리가 주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얻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향이란 사실에 눈을 떠야 합니다. 향을 태울 제단에 드려져야 하는 향료는 특별한 제조 방법이 있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향기로운 향료와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을 취하고 이 향료들을 순수한 유향에 섞되 각각 같은 무게대로 넣어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약제사의 제조법대로 함께 섞어 순수하고 거룩한 정제물이 되게 하고](출30:34-35). 주님 앞에 드려지는 향은 향기로운 향료,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에 순수한 유향을 같은 무게 비율로 섞어서 약제사의 제조법대로 약을 만들듯이 만들었습니다. [또 그가 약제사의 제조법대로 기름부음에 쓸 거룩한 기름을 만들고 또 향기로운 향료로 순수한 향을 만들었더라.](출37:29). 당시 약제사의 제조법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몸의 상처가 났을 때 발라도 아무 부작용 없이 쓸 수 있는 정도의 깨끗한 향을 제조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 앞에 드려져야 할 향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모두 거룩한 산 제물로 주님께 드려져야 합니다(롬12:1). 구원 그 이후에 필요한 한 가지는 헌신(獻身)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롬12:1). 여기서 [섬김(Service)]이란 말이 구약에서 제사장들이 드리는 예배의 직무를 말합니다. 자신을 드리지 않는 섬김은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자신을 드리지 않은 채 드리는 어떤 기도나 찬양이나 헌물도 주님께 향기롭게 올라가지 않습니다. 사울은 제사를 드렸지만 자신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제물이 없을 때에도 먼저 자신을 드렸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차이도 이것입니다. 주님은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는데 제물 이전에 가인 자신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주님께 드리지 않는 예배는 종교일 뿐입니다. 우리 주님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안에서 걸으라.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헌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주님은 자기 자신을 향기로운 헌물과 희생물로 드리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주님 앞에 드림으로써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자의 자격 요건은 어떤 방법이나 요령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 열심, 재물, 시간 등을 얼마나 많이 바치는가? 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몸을 주님께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렸다면 합당한 섬김(예배)을 한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불완전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나 멸망하는 자들 중에서나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이기 때문이니 멸망하는 자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사망의 냄새요, 구원받은 자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냄새라. 누가 이런 일들을 감당하리요?] (고후2:14~16). 저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를 강하게 맡을 수 있습니다. 그 향기는 오랫동안 제 마음 속에, 뇌리 속에 박혀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런 독특한 향기입니다. 전적으로 헌신된 성도들에게서 나는 그리스도의 향기는 세상에서나 육신적인 교회에서는 결코 맡을 수 없습니다. 빛이 없는 등, 맛을 잃은 소금, 향기가 없는 향, 동력이 없는 엔진, 생명이 없는 육체는 매 한 가지입니다. 아무리 보기에 좋은 꽃이라도 생명이 없는 조화(造化)는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드리는 헌물은 달콤한 향기입니다. [오직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니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보낸 것을 받았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것은 달콤한 향기요,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요, 하나님을 심히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4:18).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 선교 헌금, 헌물을 보내었는데 그것을 일컬어 바울은 달콤한 향기요,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성도들의 섬김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의 행위와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사랑의 수고 곧 너희가 지금까지 성도들을 섬기며 지금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라.](히6:10). 선교 헌금이나 구제 헌금이나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은 성도들이 주님께 향 제단에서 향기로운 향을 올리는 일과 동일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구제와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구원받기 전이었지만 그의 기도와 구제를 기억하셨습니다. 성도들이 행하는 기도와 구제는 모두 주님 앞에 향기로운 향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지니라.](갈6:10). 베푸는 삶이 성도의 삶이요, 향기를 뿜는 삶입니다. [선을 행하게 하며 선한 일들에 부요하고 베풀기를 좋아하고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라.](딤전6:18).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복됩니다(행20:35). 힘이 있는 한 선을 베푸십시오. 그것은 강한 향기를 내는 향료요, 주님 앞에 상달되는 향기를 뿜습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그것을 받을 자들에게 선 베풀기를 금하지 말며](잠3:27). 다시 1절을 보십시오. [너는 향을 태울 제단을 만들되 시팀나무로 만들고](1). 금 제단에서 드려지는 향은 우리 주님의 기도 사역이며, 성도들의 기도 사역입니다. 저 하늘에서 주님은 항상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 그 까닭은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仲步)하시기 때문이라.](히7:25).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내 자신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분이 저 하늘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고(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위치), 이 땅에서 내 안에(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 거하십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롬8:34). 주님의 중보 사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의 바로 곁에 당신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못 느껴도 됩니다. 그것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단지 그 사실을 알고 믿으면 됩니다. 나의 중보자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측근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요동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성도들 안에서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롬8:27).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배우자나 자식이나 부모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나의 가장 가까운 곳, 나의 가장 깊은 곳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중보 하시는 기도 역시 금 제단에 올려진 향입니다. 향기로운 향은 기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찬양 역시 제단 위에 드려진 희생물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밝히 보이고 교회 가운데서 주께 찬양을 드리리이다, 하셨으며](히2:12). 히브리서 13:15절에는 찬양의 희생물이라고 말합니다. 향을 위한 제단을 만드는 것은 향은 제단 위에 놓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제단이십니다. 2절입니다. [그 길이를 일 큐빗, 넓이를 일 큐빗으로 하여 네모 반듯하게 하고 높이는 이 큐빗으로 하며 제단의 뿔들을 제단과 하나가 되게 하고](2). 놋 제단과는 크기가 다릅니다. 놋 제단은 5큐빗, 5큐빗에 높이 3큐빗이었습니다. 그러나 금 제단은 일 큐빗 일 큐빗에 높이는 이 큐빗입니다. 놋 제단이 금 제단보다 큽니다. 놋 제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희생물이 되시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라면 금 제단은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중보하시는 사역을 예표합니다. 3절입니다. [또 제단의 윗면과 사방의 옆면과 그 뿔들을 순금으로 입히고 제단에 돌아가며 금테를 두를지니라.](3). 뿔은 권능을 상징합니다. 성전에 나오는 일곱 개의 가구 중에서 금테를 두른 것은 모두 세 개입니다. 언약궤, 전시하는 빵을 놓는 테이블, 그리고 향 제단입니다. 금테라고 번역된 이 부분이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CROWN OF GOLD입니다. 금관입니다. 언약궤에 금관이 있는 것은 말씀의 권위를 말해 줍니다. 전시하는 빵을 놓는 상에 금관이 있는 것은 친교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12개의 빵은 이스라엘 모든 족속을 가리키는데 재림 때에 주님과의 친교가 회복되어 민족들의 머리가 될 것임을 예고해 줍니다. 분향 제단에 금관이 있는 것은 성도들이 나아갈 은혜의 보좌를 말해 줍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요, 구속자를 통해 은혜의 왕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4,5절입니다. [너는 제단의 금테 밑의 두 모퉁이에 금 고리 두 개를 만들되 두 면에 만들지니 이 고리들은 제단을 나르는 데 쓸 막대들을 놓을 자리니라. 너는 시팀나무로 /운반/ 막대들을 만들어 금으로 입히고](4-5). 성막은 이동용이기 때문에 운반할 막대기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순례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인도하시는대로 순례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주님은 성막의 기구들을 옮기는 일을 천사들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레위 지파의 사람들, 제사장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집트에서 나올 때 모두 동일한 조건으로 나왔습니다. 다른 11지파는 자기 가족들, 자기 물품들만 가지고 가는데 레위 지파는 성막의 기구들을 어깨에 메고 다녔습니다. 이들도 자기 짐이 있고, 식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메야 할 성막 기구를 다른 지파 사람들에게 대신 메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섬기는 일들을 팽개칠 수 없습니다. 집안 일, 직장 일이 많다고 지역 교회의 일을 팽개치고 순례의 길을 걸을 수는 없습니다. 지역 교회는 성도들이 순례의 길을 마치는 그 날까지 져야 할 이동용 성막과 같습니다. 가정없는 가족이 존재할 수 없듯[외톨이? 고아? broken family?], 지역 교회 없는 성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6절입니다. [그 제단을 증거/판/ 위에 있는 긍휼의 자리 앞 곧 증거궤 옆에 있는 휘장 앞에 둘지니 이 긍휼의 자리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니라.](6). 분향 제단의 위치입니다. 이 구절은 29:42절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너희 대대로 주 앞에서 회중의 성막 문에서 항상 드릴 번제 헌물이니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출29:42). 주님은 성막 문에 있는 놋 제단에서 드려지는 번제 헌물을 받으시고 거기서 백성들과 만나고 거기서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와 만나 주시는 분향 제단입니다. 놋 제단이 십자가의 희생을 예표하는 곳이요, 우리와 주님이 처음 만나는 장소라면 분향 제단은 기도로서 주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주님과 만납니다. 주님과 대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7-8절입니다.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태우되 등잔들을 정비(整備)하면서 그 위에 향을 태울 것이며 또 아론이 저녁에 등잔들에 불을 붙일 때에 그 위에 향을 태울지니 이것은 너희 대대로 [주] 앞에 드려야 할 영속하는 향이니라.](7-8). 향은 아침, 저녁으로 태워야하며, 대대로 주 앞에 드려야 할 영속하는 향입니다. 이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과 일치합니다.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과 성령께서는 쉬지 않고 기도하십니다. “등잔들을 정비하면서”란 말은 성령의 역사를 예표합니다. 등잔불과 향을 태우는 관계는 성령과 기도의 관계로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너희 자신을 세우며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고](유1:20). [/성/령 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엡6:18). 아침마다, 저녁마다 등잔들에 불을 붙일 대에 그 위에 향을 태웠는데 여기에 사용된 불은 주님의 불이었습니다. 제단의 불이라고 말하면 맨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이사야의 불결함을 태운 불입니다. [그때에 그 스랍들 중에서 하나가 부집게로 제단에서 불타는 숯을 취하여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 그것을 내 입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술에 닿았으니 네 불법이 사라지고 네 죄가 깨끗하게 되었느니라, 하더라.] (사6:6~7). 향기로운 향을 태우는 불은 죄를 사하고, 불법을 제거하는 불입니다. 이 불이 어떤 불인가에 대한 설명을 보십시오. [주 앞의 제단에서 불타는 숯불이 가득한 향로를 취하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가득 담아 휘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주 앞에서 불 위에 그 향을 두어 향의 연기가 증거판 위 긍휼의 자리를 덮게 할지니 그리하여야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레16:12-13). 놋 제단에서 사용된 불입니다. 우리의 죄를 처리한 번제 희생물을 태운 불입니다. 이는 주님의 속죄 사역이 전제되지 않고는 분향 제단의 향을 태울 불도 없다는 점입니다. 만약 이 불이 아닌 다른 불로 주님 앞에 나오면 죽임을 당했는데 아론의 아들들이 그 예입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각 향로를 가져다가 그 안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놓되 주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한 다른 이상한 불을 그분 앞에 드렸더니 불이 주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주 앞에서 죽으니라.](레10:1-2).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주님이 명하시지 않는 불, 제단에서 번제 헌물을 태운 그 불이 아닌 다른 불은 주님이 받지 않으시듯이 갈보리 십자가를 통하지 않는 어떤 희생도 예배도, 기도도 그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며 도리어 영원한 지옥 불에 자신이 삼켜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주님이 명하지 않는 이상한 불을 향로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놓았다가 죽은 아론의 아들들처럼(*이들은 제사장들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보존되고 순수한 말씀인 킹 제임스 성경이 아닌 이상한 다른 성경으로 예배를 보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지옥 불에 삼켜질 것입니다. 만약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고전3장, 고후5장을 참조하라.). [각 사람의 일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그 일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 일이 불로써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것인지 시험할 것임이라. 누구든지 그 기초 위에 일을 세웠는데 그 일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보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일이 불타면 /보상을/ 잃게 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로써 받는 것 같으리라.] (고전3:13~15). 이상한 불은 여러분을 태우든지, 여러분이 한 일을 태우든지 반드시 무엇인가를 완전히 태워 버리고, 삼켜 버릴 것입니다. 7절에 아침과 저녁에 향을 태운다는 것은 하루 온 종일을 말합니다. 결국 우리의 기도 생활이 아침과 저녁이라면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무리 짓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의 기도는 항상 주님 앞에 드려져야 합니다. 성도들은 늘 놋제단과 분향제단 이 두 제단들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번제단 앞에서는 죄가 사해지고, 분향 제단 앞에서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 만군의 주,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참으로 참새도 집을 찾았고 제비도 제 새끼를 둘 보금자리를 스스로 찾았사오니 곧 주의 제단들이니이다.](시84:3). 9절입니다. [너희는 그 위에 다른 이상한 향을 드리지 말며 번제 헌물이나 음식 헌물을 드리지 말고 음료 헌물을 붓지 말지니라.](9). 분향 제단 위에는 어떤 희생물도 올려서는 안 됩니다. 이상한 향을 드리지 말라는 것은 주님이 정해 주신 향을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불을 드렸던 아론의 아들들이 즉사했듯이 분향 제단에서 이상한 향을 드리는 것 역시 금지 사항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께서 드리셨던 기도와 연관된 기도가 아니면 모든 기도는 이상한 향입니다. 분향 제단에 사용된 불은 놋 제단에서 나온 불로만 점화할 수 있습니다(레16:12,10:1). 하늘의 하나님께서 번제단에 올려진 어린 양 위에 내린 진노의 불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제거할 수 있으며, 그 불로 분향 제단의 향을 태워서 그 향기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어떤 희생물도 받지 않으시며, 어떤 기도나 예배도 열납하지 않으십니다. [오 땅아, 들으라. 보라, 이 백성이 내 말들과 내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거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위에 재앙을 가져오리니 /이것은/ 곧 그들의 생각의 열매니라. 무슨 목적으로 스바에서 향을 가져오며 먼 나라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오느냐? 너희의 번제 헌물들은 내가 받을 수 없으며 너희의 희생물들은 내게 향기롭지 아니하니라.](렘6:19~20). [내가 너희의 명절들을 미워하고 멸시하며 너희의 엄숙한 집회들에서 냄새를 맡지 아니하리라.](암5:21). 분향 제단은 문자 그대로 향기로운 향을 올리는 것이므로 다른 무엇으로 대신하거나 섞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어떤 다른 희생물도 상한 마음에서 주님께 드려지는 기도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대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습니다. 회개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물이 없습니다. 돈으로, 물질로, 소나 양으로 기도와 회개를 대신할 수 있고, 상한 마음을 대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이는 주께서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시기 때문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으리이다. 주께서는 번제 헌물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희생물은 상한 영이라. 오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51:16-17). 구약의 희생물을 드리는 제사 제도가 있지만 그것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보다 낫지 못합니다. 어떤 번제물도 순종하는 것보다 낫지 못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주]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시겠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10절입니다. [아론이 한 해에 한 번 이 분향(焚香) 제단의 뿔 위에서 속죄하되 속죄에 쓸 죄 헌물의 피로 할 것이요, 너희 대대로 한 해에 한 번 그 뿔 위에서 속죄할지니라. 이 제단은 [주]께 지극히 거룩하니라.](10). 분향 제단은 주께 지극히 거룩합니다. 다른 기구들에 대해서 ‘거룩하니라’라고 한데 반해 ‘지극히 거룩’이라고 한 것은 지성소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성소를 영어로 the most holy 또는 holy of holies라고 하는데 동일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분향 제단의 뿔 위에서 속죄에 쓸 죄 헌물의 피로 일년에 한번씩 속죄를 하라고 하십니다. 지극히 거룩한 분향 제단조차 피로 속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이는 분향 제단을 통해 드려지는 우리의 기도, 찬양, 구제, 헌신 등이 정결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깨끗하지 못합니다. 순결한 기도를 드린다고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속죄에 쓸 죄 헌물의 피로 씻어야 합니다. 어떤 설교자가 고백하기를, ‘나는 기도할 때 죄를 짓는다. 나는 설교할 때 죄를 짓는다. 내가 회개하는 바로 그 회개조차 회개를 필요로 하는 회개이며, 내가 흘리는 눈물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아야 할 눈물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분향 제단의 뿔 위에서 죄 헌물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속죄하게 한 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 우리의 섬김과 헌신이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아래 있어야 함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헌신조차 주님의 피로 씻겨 지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러운 것입니다. 이런 예는 지난 시간에 배운 적이 있습니다. [또 너는 그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아론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모든 거룩한 예물로 거룩하게 하는바 그 거룩한 물건들에 대한 불법을 담당하게 할지니라. 그 패가 항상 아론의 이마에 있으므로 주가 그것들을 받으리라.](출28:38). 아론은 백성들이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물건들에 대한 불법을 담당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피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물들에 들어있는 죄조차 모두 담당하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두 주님 앞에 향기로운 향을 태우는 제사장이요, 우리 자신을 통해 주님의 향기가 하나님께 드려지고, 온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주제별(글) > 성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두멍 (0) | 2005.06.29 |
---|---|
속죄 돈 (0) | 2005.06.29 |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게 하라 (0) | 2005.06.28 |
제사장을 위한 희생제물(II) (0) | 2005.06.27 |
제사장을 위한 희생 제물 (0) | 2005.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