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제사장을 위한 희생 제물



말씀: 출애굽기 29:1-14
요절: 출애굽기 29:9 

오늘은 제사장의 직무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구약의 제사장이 아니라 신약의 제사장입니다.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헌물을 드리고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어느 곳에서나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제사장들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제사장 체계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이는 제사장 체계가 변하였은즉 율법도 변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요,](히7:12). 성경에는 두 종류의 제사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멜기세덱의 계열에 따른 대제사장이고, 하나는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입니다. [이는 우리 {주}께서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 이 지파에 대하여는 모세가 제사장 직분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의 모습을 따르는 다른 제사장이 일어나신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이분은 육신에 속한 명령의 율법에 따라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요, 무궁한 생명의 권능에 따라 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증언하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음이라.](히7:14-16). 예수님은 유다로부터 나셨기에 레위 지파의 제사장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모두 레위 지파였고, 신약의 제사장은 모두 멜기세덱의 계열에 따른 제사장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종신직이긴 하지만 대를 이어서 누군가 계승해야 합니다. 이는 사람의 수명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신약의 대제사장은 영원합니다. 누군가에게 승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으로 그 제사장들의 수가 많은 것은 그들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로되 이 사람은 항상 계시므로 변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소유하고 계시느니라.](히7:23-24).

구약의 대제사장은 스스로 허물과 약점, 죄가 있기 때문에 먼저 자신의 죄를 위한 헌물부터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대제사장은 허물과 죄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위한 어떤 희생 헌물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는 이러한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분이셨기 때문이니 그분은 곧 거룩하시고 해가 없으시고 더러움이 없으시고 죄인들로부터 분리되시고 하늘들보다 더 높이 되신 분이시라. 그분께서는 저 대제사장들과 같이 먼저 자기 자신의 죄들로 인하여 날마다 희생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들로 인하여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을 드리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행하셨기 때문이요,](히7:26-27). 구약의 대제사장이 드리는 헌물은 불완전했기 때문에 날마다 반복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대제사장이 드리는 헌물은 완전하기 때문에 한 번에 영원히 드리셨고, 두 번 다시 같은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들을 드리되 이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하여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히10:11~12). 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우리는 죄를 위한 희생물을 드리기 위해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제사가 아닙니다. 캐톨릭 사제들은 매일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도 구약의 제사를 답습하고, 구약의 제사장 제도를 그대로 적용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주님이 단번에 영원히 드린 희생물을 무효로 만들며 짓밟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죄를 인한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단번에 영원히 완전하게 드리신 희생을 믿고 감사하며, 그 기초 위에서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의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얻고 영적 교훈을 얻기 위해 공부합니다. 먼저 제사장의 자격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비롯한 레위 지파만이 될 수 있습니다. 구약은 믿는 이의 만인 제사장이 아니라 주님께서 특별히 임명한 사람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란 표현이 4,9,10,15,19,20,28,32,35,44절에 줄줄이 나옵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민수기 17장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부활하신 주님의 예표입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믿는 신자들의 제사장 직분을 예표합니다. 28장에서 제사장이 입어야 할 의복의 규례를 정해 주신 다음에 29장은 제사장 직분을 섬기기 위해서 그들에게 행할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사장 직분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1-3절입니다. [네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도록 하기 위해 네가 그들에게 행할 일이 이러하니라. 어린 수소 한 마리와 흠 없는 숫양 두 마리를 취하고 누룩 없는 빵과 누룩을 넣지 않고 기름을 섞어 만든 납작한 빵과 누룩을 넣지 않고 기름을 발라 만든 얇은 과자를 밀가루로 만들고 그것들을 한 바구니에 담고 그것들을 바구니에 담은 채 그 수소와 두 마리 숫양과 함께 가져올지니라.](1-3).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누구나 거룩해야 합니다. 특히 제사장으로 주님을 섬기려면 거룩하게 되어야 하는데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단지 옷만 입는다고 거룩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이들을 거룩하게 위해 모세와 아론에게 행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수소 한 마리, 흠없는 숫양 두 마리를 취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룩 없는 빵, 누룩 없이 기름을 섞어 만든 납작한 빵, 누룩을 넣지 않고 기름을 발라 만든 얇은 과자를 밀가루로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것들을 바구니에 담아서 수소와 숫양 두 마리를 함께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누룩없는 빵, 케익, 와퍼”는 주님 앞에서 흔드는 요제 헌물로 사용되었습니다(23-24). 어린 수소와 숫양은 번제 헌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레위기 8장에 상세하게 나옵니다.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고 허리띠를 띠워 주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입히고 에봇의 정교한 허리띠를 띠워 주고 에봇을 몸에 묶으며 그 위에 흉패(胸牌)를 붙이고 또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또 그 관 위 맨 앞에 금 패(牌)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레8:6-9). 맨 먼저 한 일은 물로 씻기는 일이었습니다. 다음에 속옷을 입히고, (속옷용) 허리 띠를 차고, 겉옷을 입히고, 에봇을 입습니다. 다음에 허리띠를 차고, 에봇을 몸에 묶고, 흉패를 붙이고, 우림과 둠 밈을 거기에 넣습니다. 머리에 관을 쓰고 마지막으로 금 패를 붙이는데 [주께 성결]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아론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 내용은 4절부터 나오는 것과 동일합니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중의 성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의복들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입히되 속옷과 에봇에 받쳐입을 겉옷과 에봇과 흉패를 입히고 또 정교하게 만든 에봇의 허리띠를 띠게 하고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에 거룩한 관을 씌우고](4-6).

주님은 제사장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맨 먼저 한 일이 성막문으로 데려다가 씻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딛3:5). 성도들 역시 중생의 씻음이 맨 먼저입니다. 죄로 더러워진 양심, 마음은 반드시 씻겨야 합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시고 정결하게 하시며](엡5:26).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깨끗하게 되었으니](요15:3) 라고 하셨습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갠지스 강에서 자신의 몸을 씻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을 신성하게 여겨 갓 태어난 아이들을 이 물로 씻겼습니다. 이것이 이교도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오늘날 캐톨릭과 개신교도들이 행하는 유아 세례의 기원입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에서 구약의 전통을 물려받은 것처럼 가장한 이교도들의 풍습을 정확히 분별해 내고 없애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으며, 주님이 말씀하신 가증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몸의 때를 씻기는 것이 전부이지만 말씀의 물은 죄를 씻어냅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정결한 물로 씻겨졌으니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히10:22). 말씀의 물과 어린 양의 피로 죄를 씻는다는 원리는 시대가 변해도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에게 이르되, 장로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이르되, 이 사람들은 큰 환난으로부터 나온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로 자기 예복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4).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물로 씻겼듯이 우리 역시 그렇게 씻음 받는 것이 영적 제사장으로서 주님을 섬기는 첫 번째 임무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식사하기 전에 우리는 손과 얼굴을 씻습니다. 옷을 입기 전에 씻어야 합니다. 너무 바빠서 씻지 못하고 일을 나가거나 학교를 가면 종일 찝찝합니다. 세상일을 하는데도 씻는 일부터 시작되는데 하물며 영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이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 채 교회로 출발하고, 자기 일터로 나가는 것은 뭔가 좀 모자란 행동입니다. 여러분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자신을 씻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합니다.

두 번째 해야 할 일은 주님인 주신 옷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시간에 대제사장의 복장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이 무엇인지도 공부했습니다. 말씀의 물과 어린 양의 피로 씻은 성도는 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 옷은 우리가 만들어 입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옷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지어서 만든 옷을 입어서는 안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만들어 입은 옷은 금방 시들어 버리는 무화과 나무 잎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양으로 만든 가죽 옷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옷은 의의 옷입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게 당시 왕이나 고관들이나 입을 수 있는 채색 옷을 지어 입혔듯이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그녀가 수놓은 옷을 입고 왕께로 인도되며 그 뒤를 따르는 그녀의 동료 처녀들도 왕께로 인도되리니](시45:14).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아침의 태(胎)에서 나오는 거룩함의 그 아름다운 것들로 /옷 입고/ 자원하리니 주께는 주의 청춘의 이슬이 있나이다.](시110:3).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입은 옷으로는 주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제사장의 옷은 주님이 따로 준비해 두셨고, 주님이 만들어 주신 것을 입어야 합니다.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기뻐 외칠지어다.](시132:9).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골3:10). 주님이 주신 옷을 입지 않으면 아무도 주님이 계신 그곳에 들어가 주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왕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때에 거기서 결혼식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결혼식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거늘](마22:11-22). 주님은 자신이 마련해 준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을 지적하셨고 내어 쫓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라고 하는 많은 건물에는 말씀의 물과 어린 양의 피로 씻음 받지도 않고, 주님이 주신 옷을 입지도 않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격 미달인 사람들이 교인이라며 앉아 있습니다. 이들 중에 어떤 이는 집사, 장로의 직분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이는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양의 옷을 입고 있는 이리들이 있습니다.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이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으로는 약탈(掠奪)하는 이리니라.](마7:15). 이들은 긴 옷을 입기를 좋아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자신의 가르침으로 그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과](막12:38). 부드러운 옷, 화려하게 차려 입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아니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하게 차려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눅7:25). 그러나 이런 옷 가운데 주님이 지어 입히신 옷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dress code를 주셨습니다. 교회에 반바지를 입고 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매들이 나시를 입고 오거나 속이 들여다보이는 옷을 입고 와서도 안 됩니다. 이는 교회에서의 옷차림이 아니라 집안에서, 일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화려한 치장을 하고 fashion 감각을 자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인 단장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너희가 단장(丹粧)하는 것은 머리를 땋고 금으로 치장하며 옷을 차려 입는 외적인 단장으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감추어진 사람으로 하되 썩지 아니하는 것 곧 온유하고 조용한 영(靈)의 장식으로 할지니 이것은 하나님의 눈앞에서 지극히 값진 것이니라. 이는 옛적에 하나님을 신뢰한 거룩한 여자들도 이런 방식으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여 자기를 단장하였음이니] (벧전3:3~5).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겉 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입니다. 자매들의 옷차림을 보면 영적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가주 마켓을 갔는데 실내에서 짙은 썬글래스에 짙은 화장을 하고 걸을 때마다 찰랑이는 옷을 입은 아주머니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옷 차림이었는데, 마주 오는 아주머니가 같은 교회를 다니는지 손을 잡으며 “연예인 같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참으로 치욕적인 욕인데, 당사자는 기분이 꽤 좋아 보였습니다. 그 남편이란 사람은 “이 사람이 본래 옷에는 감각이 좀 있지요.”라고 좋아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저 옷 차림이 바뀌기 전에는 거듭나도 거듭난 것이 아니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한 옷으로 자기를 꾸미되 얌전하게 맑은 정신으로 하고 장식한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하지 말며 오직 (경건함을 고백하는 여자들에게 합당한) 선한 행위로 하기를 원하노라.] (딤전2:9~10). 신약에서는 자매들도 남자와 동일한 영적 제사장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조용한 영으로, 얌전하게, 맑은 정신으로, 경건함을 고백하는 선한 행위로 옷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21). 7절을 보십시오. [기름부음에 쓸 기름을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를지니라.](7). 모세는 성전에 사용하는 올리브기름을 아론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예표합니다. 아론에게 기름을 부으셨듯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고후1:21). 사도 요한도 말하기를, [그러나 너희는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주님께서 취하시고(taken out), 회중의 성막으로 데려다가(bring), 씻기시고(wash), 입히시고(clothed), 기름 부으시고(anointing) 구별하셨습니다. 이는 신약에서 그대로 재현됩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세상에서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보리 십자가로 데리고 가셔서-[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나니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켜 세우리라.](요6:44), 그 피로 씻기시고-[전에는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김을 받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고전6:11), 의로 옷 입히시고(사61:10),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요일2:27).

다시 7절을 보십시오. 아론은 회중들과 아들들이 보는 앞에서 기름 부어졌습니다. 아론의 머리 위에는 기름이 부어졌고(pour out), 아론의 아들들의 머리에는 기름이 뿌려졌습니다(sprinkled). 마찬가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이나 성도들이 받게 될 기름부음과는 차원이 다른 기름부음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을 주에게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이다, 하시고](히1:9).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원하시는대로 은사를 나누어 주시고 분량을 정해서 필요한 만큼 주시지만 주님은 한량없이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말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께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이라.](요3:34). 물론 후에 아론의 아들들은 아론처럼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아버지에게 기름을 부은 것같이 그들에게도 기름을 부어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게 할지니라. 이는 그들의 기름부음이 그들의 대대로 반드시 영존하는 제사장 직분이 될 것임이라, 하시매](출40:15). 그러나 아론이 살아 있는 동안 아론과 동시에 동일한 기름부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이적을 행하고, 마귀를 내어 좇고 병자를 고치는 능력을 발휘했지만 그들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승천하시고 그들 위에 임한 성령은 뿌린 정도가 아니라 부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임을 받으시고 아버지께로부터 성령님을 약속으로 받으셨으므로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33). 아론의 아들들이 아론이 죽고 난 후에 그들의 머리에 아론과 같이 기름을 부음 받았듯이,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 은혜는 사도들에게만 임한 은혜가 아닙니다. 믿는 신자들에게 다 부어 주셨습니다(뿌린 것이 아니다). [할례에 속한 자들로서 믿는 자들 곧 베드로와 함께 온 자들이 이방인들 위에도 성령님을 선물로 부어 주시는 것으로 인하여 다 심히 놀라니](행10:45). 베드로는 자신이 복음을 전했지만 이방인들 위에도 자신들처럼 성령을 부어 주실 줄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지라 심히 놀랐습니다. 성령을 부어 주셨다는 것은 이미 씻음 받았고, 옷 입혀진 상태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은 중생의 씻음,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에 성령이 선물로 부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이미 말씀드렸듯이 주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을 주시는 것도 제한적이지 않으십니다.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구약의 제사장, 왕, 대언자에게만 부어졌던 그 기름부음이 저와 여러분 위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럽습니까?

아론은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는 왕으로서의 직무를 말합니다. 이는 신정 국가에서 왕이 없던 시절에 제사장이 왕의 임무를 겸했습니다. 신약의 성도들 역시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2:9). 천년 왕국 때 우리는 모두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겸직을 하게 됩니다.

기름은 성막과 성막 기구들 위에도 부어졌습니다. [모세가 기름부음에 쓸 기름을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들을 거룩히 구별하고 또 제단 위에 일곱 번 뿌리고 또 그 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거룩히 구별하고](레8:10-11). 왜 주님은 아론의 머리가 아닌 성막과 성막 가구들에 기름을 부으신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순절에 주님은 성령의 기름을 주님의 몸된 성전들 위에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의 성전들입니다(고전6:19).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얻을 교훈이 있습니다. 아론은 단 한번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더 이상 기름이 부어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막에는 물 대야가 있습니다. 물 대야에 손을 씻는 일은 매일 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단 한번 성령을 받습니다. 단 한번 성령으로 거룩히 구별됩니다. 그러나 날마다 발을 씻듯이(요13:10) 우리는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개의 눈물, 말씀의 물은 자신을 씻는 일입니다.

8-9절입니다. [너는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옷을 입히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허리띠를 띠게 하며 모자를 씌울지니라. 제사장의 직분이 영속(永續)하는 법규로 그들의 것이 될지니라.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거룩히 구분할지니라.](8-9).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와 동일합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이고,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주님은 제자상 직분을 임기제로 만들거나 순환제로 하지 않으시고 영속하는 법규로 만드셨습니다. 한번 제사장은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아론의 아들들도 아론처럼 의복을 입히고, 모자를 씌웠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일반 백성들과 거룩히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사장은 제사장으로서의 직무가 있고, 거룩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여야 하리니 이는 제사장이 만군의 [주]의 사자(使者)이기 때문이니라.](말2:7).

10-14절입니다. [너는 수소 한 마리를 회중의 성막 앞으로 끌어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소의 머리 위에 안수할 것이며 너는 회중의 성막 문 옆에서 곧 [주] 앞에서 그 소를 죽이고 그 소의 피를 취해 네 손가락으로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서 옆에 쏟을 것이며 내장을 덮은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취하여 제단 위에서 태우되 그 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은 진영 밖에서 불로 태울지니 이것은 죄 헌물이니라.] (출29:10~14). 주님은 죄 헌물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수소의 머리 위에 안수를 했습니다. 안수는 손을 얹는 행동인데, 무엇인가를 위임하거나 전가하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소의 머리 위에 안수한 것은 자신들의 죄를 소에게 모두 넘겨주는 것이며, 전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앞에서 소를 죽였는데 이는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대속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이것입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가 아니라 대속물이 대신 죽습니다. 그리고 대속물이 된 제물의 피는 뿌려졌습니다. 이는 피로써 모든 것이 정결하게 되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희생 제물은 모조리 태워졌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 불에 들어가신 것을 예표합니다. 이는 개역 성경을 비롯한 현대 역본에 완전히 가려진 진리입니다. 일반 교회들에서 평생 동안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죄 헌물은 죄를 담당한 채 죽고, 피를 뿌리고, 마지막은 모조리 불에 태워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은 죽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불 속에 들어 가사 지옥의 고통을 맛 보셨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소의 머리에 안수했듯이 백성들은 레위 사람들에게 안수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을 [주]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레위 사람들에게 안수하게 한 뒤에](민8:10). 백성들의 모든 죄를 레위 지파 제사장이 담당합니다. 그러면 레위 사람들은 다시 죄를 희생물에게 전가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수소들의 머리에 안수하고 너는 한 마리는 죄 헌물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 헌물로 [주]께 드려 레위 사람들을 위해 속죄하고](민8:12). 그러나 우리는 중간에 제사장이란 중보자가 아니라 곧 바로 우리의 죄를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전가하면 그만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여기서 잠깐 안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안수는 손을 얹는 것인데 우리 주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 주로 하셨던지라 오늘날 많은 교회들에서 안수 기도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 사역을 할 때 목사 안수를 받았느냐? 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목회한지 거의 1년이 지난 후에야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고, 동일한 성경관, 동일한 교회관, 동일한 믿음을 지닌 성경대로 믿는 Leo Dutton 목사님으로부터 안수를 받았습니다. 안수가 목회의 기준이나 목자의 자격 요건은 아닙니다. 다만 안수가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고, 구약은 물론이고 초대 교회와 지역 교회들에서 실행되었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안수는 권위의 위임을 말합니다. 사도들은 초대 교회의 일곱 명의 일군을 뽑아 안수를 해 주었습니다(행6:6). 이 안수는 사도들이 해야 할 임무를 이양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처음에 예수를 믿고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았고, 선교사로 파송될 때 바나바와 더불어 안수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안수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게 된 하나님의 은사를 네가 불붙이게 하려고 너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노니](딤후1:6). 이는 디모데를 후계자로 삼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안수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에게나 선뜻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죄들에 가담하지 말며 네 자신을 순결하게 지키라.](딤전5:22). 사역자를 임명하여 위임할 때 임명장보다는 주의 종으로부터 안수를 필요로 합니다. 집사, 교사, 선교사 등의 직무를 줄 때 안수를 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 아론이 희생 제물에게 안수하는 것은 위임이 아니라 전가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왜 희생물이 ‘양’이 아니라 ‘소’일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죄 헌물에 사용된 제물이 양이어야 할 것 같은데 소인 것이 의문인 적이 있습니다. 소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실한 주의 사역자가 바로 소입니다. [이는 모세의 율법에, 너는 곡식을 밟는 소의 입에 마개를 씌우지 말라, 기록하셨음이니 하나님께서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시는 것이냐? 아니면 전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냐? 정녕 우리를 위하여 이것을 기록하셨나니 밭을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소망을 가지고 타작하는 자는 자기의 소망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마땅하리라. 우리가 너희에게 영적인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둔다 해도 이것이 대단한 일이겠느냐? ](고전9:9-11). 그렇다면 아론을 비롯한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직무를 위해 대속해야 할 제물이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소입니다. 사역, 사역자들과 관계된 희생 제물은 소입니다. 반면 각 개개인의 죄인들을 위한 희생 제물은 양입니다. 소는 사역자들의 희생 제물이고, 양은 개인의 희생 제물입니다. 20절에 나오는 양의 피는 아론 개인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소는 성막에서 드려진 최초의 희생물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한 이 희생물의 드림없이는 백성들의 어떤 희생물도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 없고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첫 희생물입니다. 이 희생 없이는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희생물도 드릴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의 희생물이 주님께 받아들여지면 백성들은 제사장을 통해서 자신들의 희생을 드릴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물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후 주님을 통해 우리는 영적 희생물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는 제단의 뿔들에 손가락으로 바른 후에 전부를 제단 밑에 뿌렸습니다. 제단 아래는 문자 그대로 피의 땅(bloody ground)였습니다. 숫양의 좋은 부분은 모두 주님께 드려졌습니다. 다만 냄새가 나는 부분(고기, 가죽, 똥) 진영 밖에서 태우게 했습니다. 희생 제물은 좋은 냄새와 악취를 동시에 풍겼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멸망하는 자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사망의 냄새요, 구원받은 자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냄새라. 누가 이런 일들을 감당하리요?](고후2:16). “진영 밖에서” 태운 것에 대한 본문의 영적 해석은 성경이 스스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짐승들의 피는 죄로 인하여 대제사장이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것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그런즉 우리가 그분의 수치를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로 나아가자. 이는 여기에서는 우리에게 영구(玲久)한 도시가 없고 오직 우리가 앞으로 올 도시를 찾기 때문이니](히13:11-14). 피는 성소 안으로, 몸은 진영 밖으로. 주님은 피를 흘리셨을 뿐 아니라 자신이 친히 임명하신 레위지파 제사장들에 의해 하나님께 드려진 완전한 희생물이 되셨습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들은 자신들도 알지 못한 채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그들이 드려야 할 마지막 희생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성경이 얼마나 정교한가를 살펴보십시오. 이들은 유월절에 유월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께 희생물로 드린 것입니다. 이로써 구약의 제사장 직분은 종결을 고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의 제사장들이 주님께 영적 희생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 (벧전2:5). 이제 저와 여러분은 소와 양의 피가 아닌 영적 희생물을 날마다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자리에 그 희생물을 드리러 따로 시간을 내어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희생물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것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하는 것과 나누어 주는 것을 잊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이 같은 희생을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이니라.] (히13:15~16). 찬양과 감사, 선을 행하는 것과 나누어 주는 구제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날마다 서서 성전에서 주님을 섬겼듯이 여러분은 몸된 성전으로 찬양을 드리고, 감사하십시오. 선을 행하고 구제하십시오. [너희는 말씀들을 가지고 [주]께로 돌이키며 주께 아뢰기를, 모든 불법을 제거하시고 은혜를 베푸사 우리를 받아 주소서. 우리도 우리 입술의 송아지로 희생물을 드리리이다.](호14:2). 모든 일에 감사하는 일은 기본입니다. [감사의 희생물로 희생물을 드리며 기뻐함으로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밝히 보일지어다.](시107:22). [내가 주께 감사의 희생을 드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시116:17). 매사에 언제나 감사하십시오. 일단 감사한 후에 생각하십시오. 구제 역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왜 일을 합니까? 선을 행하고 필요한 자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수 일을 해서 도움을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드릴 영적 희생물은 기도입니다. [오 [주]여, 주께 간청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 헌물들을 받으시고 주의 판단들을 내게 가르치소서.](시119:108). 내 입이 드리는 헌물이란 기도, 찬양, 회개, 고백, 감사가 다 포함되지만 여기서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받아 주시도록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 앞에 올라가는 향입니다. 아무쪼록 늘 기도의 제물을 주님께 드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몸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롬12:1). 몸은 살아 있는 희생물입니다. 의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일할 수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몸을 통해 자신의 성품과 능력과 지혜의 풍부함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시고자 하십니다. 우리 입술을 통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발을 통해 화평의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의 손을 통해 일을 하십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구제 헌금을 드리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하였을 뿐 아니라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5). 이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몸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영적 제사장이 드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희생물임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너희 지체(肢體)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며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 사도 바울은 몸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는 이제 내가 /내 자신을/ 헌물로 드릴 준비가 되었고 내가 떠날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라.](딤후4:6). 제가 가장 존경하는 죠지 휫필드 목사님은 한 달에 100 차례 넘게 설교한 적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분의 설교는 한번에 2-3시간이 보통이었기에 그의 몸은 쇠약해 질 수 밖에 없었고, 늘 과로로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은 휴식을 권했지만 “나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기를 원한다”며 쉼없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가 죽을 때는 설교를 마친 후에 교인들과 악수를 나누다가 너무 피곤하여 좀 누워야겠다며 그대로 죽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닳아서 없어졌습니다. [너희를 더욱 넘치게 사랑할수록 내가 덜 사랑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위하여 /가진 것을/ 기꺼이 쓰고 또 나 자신까지도 쓰리라.](고후12:15). 주를 위해 몸을 바치는 사람은 형제들을 위해 모든 것을 쓰며, 자신을 기꺼이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생명을 내어 놓는 것이 마땅하니](요일3:16). 이것이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표지이며, 영적 제사장의 sign이요, mark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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