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시편 76-119편
요절: 시편 119:
시편 76편입니다. 아삽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가르쳐 줍니다. 이 땅의 사람들, 통치자들, 왕들의 분노는 결코 두려워 할 것이 아닙니다. 10절, [참으로 사람의 진노가 주를 찬양할 것이요, 그 진노의 남은 부분은 주께서 억제하시리이다.](10). 이 구절의 성경적 실례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에서의 분노는 야곱으로 하여금 먼 곳으로 도망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라헬을 만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창 27:4-45/29:10). 요셉의 열한 형제의 분노는 그를 이집트의 노예로 끌려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후에 총리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창 37:23-28/41:38-44). 후에 요셉은 다음과 같이 그의 형제들에게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상기시켰습니다. [오직 당신들로 말하건대 당신들은 나를 해치려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이 선한 것이 되도록 계획하사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구원하게 하셨나니 ...](창 50:20). 모압 왕 발락이 성을 내어 선지자 발람을 고용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였지만, 이는 결국 그리스도에 관하여 아름다운 예언을 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습니다(민 22:1-6/24:17). 하만의 노여움은 교수대를 세워서 한 유대인 모르드개를 매어 달려고 하였지만, 하만 자신이 그 교수대에 매어 달려 죽음으로써 그 유대인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에5:12-14 /7:10). 한 이스라엘 왕의 노여움으로 하나님의 책이 불태워졌으나, 그 책은 왕의 운명에 대한 예언까지 포함하여 다시 기록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습니다(렘36:22,23,27-32). 바리새인들의 분노가 그리스도를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게 했지만, 이로 인하여 죽어가던 강도가 구원받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눅2 3:39-43). 로마 황제의 노여움은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그를 외딴 섬 밧모로 추방했지만, 이로 인하여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케 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계 1:9). 하나님은 사람의 진노를 주의 찬양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나 나를 향해 진노하는 이웃이 있거나, 진노하는 상사가 있다면 기뻐하십시오.
시편 80편입니다. 계속해서 아삽의 시편입니다. [요셉을 양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주는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이여, 주는 빛을 비추소서.](시 80:1). 아삽은 주님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언급하는 동시에,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그룹은 저 하늘의 그룹들에 대한 말씀이지만 실상 지성소 안에 놓인 언약궤의 속죄소 위에 서 있는 약 4.5m 높이의 두 금 그룹상이 실재의 존재를 대리하는 것으로 보고 읊은 것입니다. 그룹은 성경에 64번 가량 언급되어 있습니다. 모세와 솔로몬 모두 그룹을 지성소에 두었습니다(출 25:18/왕상 6:27). 하나님께서 그룹 사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민 7:89). 히스기야가 그룹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왕하 19:15). 에스겔은 나르는 네 그룹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겔 10장). 천년왕국의 성전에는 그룹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겔 41:17-20). 그룹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늘 함께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이집트에서 가져다가 이교도들을 쫓아내시고 심으셨나이다.](시 80:8). 그룹에 관해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제외한다면 아삽의 이 기도의 시편은 "시들어가는 포도나무의 시"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성경에서 흔히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아삽이 이 포도나무에 대해서 말한 것에 유의하여 봅시다. 하나님은 포도나무를 이집트에서 가져오셨습니다(시 80:8).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땅에 이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시 80:8). 하나님께서는 이 포도나무를 위하여 땅을 말끔하게 손질하고 기경(起耕)하셨습니다(시 80:9). 포도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얼마동안 성장했습니다(시 80:9). 포도나무는 산들을 가리우고 백향목과 같이 높게 자라났습니다(시80:10). 그 가지가 대해와 유프라테스 강까지 뻗어나갔습니다(시 80:11).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 포도나무를 보호하는 담을 헐어버리셨습니다(시 80:12). 다른 사람이 그 포도나무의 열매를 약탈했습니다(시80:12). 멧돼지가 그 포도나무를 상하게 하고 들짐승들이 포도를 따먹었습니다(시80:13). 마침내 적들이 그 포도나무를 찍어 불태웠습니다(시80:16). 지금 포도원과 포도나무에 대한 일대기적 기술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의 포도나무를 이렇게 대하셨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분명합니다(사 5:1-4/렘 2:21/호10:1 참조). [이제 나는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를 부르되 그의 포도원에 관하여 내가 사랑하는 자에 대한 노래를 부르리라.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으니 열매를 풍성히 내는 작은 산에 있도다. 그가 울타리를 두르고 돌을 주워 내고 최상품의 포도나무를 심고 그 한가운데에 망대를 세우고 또 그 안에 포도즙 틀을 만들었도다. 포도원이 좋은 포도 내기를 그가 바랐더니 들포도를 내었도다. 오 예루살렘 거주민들아, 유다 사람들아, 청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해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었으랴? 그 안에서 내가 행하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포도원이 /좋은/ 포도 내기를 내가 바랐거늘 들포도를 냄은 어찌된 일이냐?](사5:1-4). 예레미야 2:21, [그런데 내가 너를 귀한 포도나무 곧 온전히 올바른 씨로 심었거늘 네가 내게 이방 포도나무 곧 변질된 초목이 됨은 어찌된 까닭이냐?](렘2:21). 호세아 10:1, [이스라엘은 텅 빈 포도나무요, 자기를 위하여 열매를 맺는 /나무/로다. 자기 열매가 많은즉 그가 제단들을 많게 하였으며 자기 땅이 좋은즉 그들이 좋은 형상들을 만들었도다.](호10:1). 하나님께서는 이 선택받은 포도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어 주위에 있는 굶주린 나라들을 먹일 수 있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이 포도나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쓸모없는 들포도로 변했고, 텅빈 나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악한 바리새인들을 향한 한 강론에서 비통한 마음으로 이러한 거부의 뜻을 엄숙하게 천명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버지께서/ 너희로부터 하나님의 왕국을 빼앗아 왕국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시리라.](마 21:43). 세상에 계실 때,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축복받은 포도나무였으며(사 53:2), 이적과 비유와 기도 그리고 설교들을 통해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으셨습니다. 그러나 그후 때 가 되어 그분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는 포도나무가 되어 아버지의 하늘 포도밭으로 다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누가 이 지상에서 아버지의 포도 열매를 맺을 것인가? 이 감동적인 계획은 요한복음 15장 1-8절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상세히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이스라엘이 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열매를 맺고, 더욱더 많이 맺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기도),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도록(성경공부) 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그분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한 것입니다. 가지는 열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맺기만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최선의 길입니다. 이 포도나무 가지는 건물을 짓는 데나 가구를 만드는 데 사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땔감으로 사용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다만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나누어주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시편 81편입니다. 이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그러나 내 백성이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이 내게서 아무것도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에 버려 두었더니 그들이 자기 계획 안에서 걸었도다. 오 내 백성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스라엘이 내 길들 안에서 걸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하였더라면/ 내가 곧 그들의 원수들을 정복하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對敵)들을 쳤을 것이요,](10-14).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주님이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이스라엘은 정욕 가운데 버림받았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3:37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보시면서 이와 같은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대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병아리를 자기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들을 함께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23:37).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소원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죽은 우상처럼 모시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큰 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넘치도록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구하지 않음으로써 얻지 못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시편 84편입니다. [주께 힘을 얻는 자는 복이 있나니 주의 제단들에 이르는 길들이 그의 마음에 있나이다. 그들이 바카 골짜기를 지날 때에 그곳을 샘으로 만드니 비도 그 연못들을 채우나이다. 그들은 더욱 더 힘있게 나아가 각 사람이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나이다.](시 84:5-7). 사람의 내적 힘은 아무리 강해도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힘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 힘으로 기도하고, 전도하고, 악을 이기고,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주께 힘은 얻는 것이 바로 영적인 힘입니다. 육신의 힘을 자랑하지 말고, 영적인 힘을 얻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주님이 주시는 힘은 피곤한 자, 무능한 자, 어린 소년이라도 독수리처럼 솟아오르게 합니다. 주님께 힘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주님을 우러러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사야 40:28-31, [¶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영존하시는 하나님, [주] 곧 땅 끝들을 창조하신 이는 기진(氣盡)하지 아니하시고 피곤하지 아니하시며 그분의 명철(明哲)은 찾을 길이 없도다. 그분께서 기진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힘이 없는 자에게는 힘을 주시나니 소년이라도 기진하고 피곤하며 청년이라도 완전히 쓰러지되 오직 [주]를 우러러 바라는 자들은 힘을 회복하리니 그들은 독수리같이 날개 치며 올라갈 것이요, 달려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며 걸어가도 기진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28-31). 참조 구절-(사 41:10/시 27:1/28:7/29:11/43:2/46:1/81:1/118:14/119:28/빌 4:13/벧전 5:10/엡 3:16/롬 5:6/딤후 4:17/고후 12:9 참조).
시편 85편입니다. 이 시는 부흥을 위한 시편입니다. 죄와 허물로 징계를 받고 약해진 성도들이 회개하고, 주님이 주시는 부흥을 위해 기도합니다. 6절은 바로 부흥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하여금 주를 기뻐하게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6). 부흥을 위한 기도만큼 하나님의 귀를 기쁘시게 하는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부흥될 수 있습니다. 죄인들은 부흥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거듭나야 하며, 구원받아야 합니다. 조국의 교회는 복음화가 필요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교회들은 부흥이 필요합니다. 죽은 자는 부흥될 수 없습니다. 산 사람만 부흥할 수 있으며 또 부흥해야 합니다.하박국은 부흥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오 [주]여, 내가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두려웠나이다. 오 [주]여, /주는/ 주의 일을 이 /고난의/ 수년 중에 회복하시옵소서. 이 /고난의/ 수년 중에 알리시옵소서. 진노하실 때에라도 긍휼을 기억하시옵소서.](합 3:2). 하나님은 부흥을 위한 영혼의 기도에 속히 응답하십니다. 시편 기자의 노래대로 부흥을 위한 참된 소원은 먼저 부흥을 필요로 했던 바로 그 죄의 상태를 과감히 떨쳐버리는 결심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내가 [주]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임이라. 오직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짓으로 돌아가지 말지어다. 참으로 그분의 구원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로다](8-9). 성경에는 부흥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 모든 부흥은 기도나 성경공부 둘 중 하나, 그렇지 않으면 이 두 가지 방법 모두를 통해서 촉진되어졌습니다.1)
10절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義)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10). 예수 그리스도는 긍휼과 진리를 동시에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베푸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의와 화평은 서로 입맞추었습니다.
시편 90편입니다. 이 시편은 "죽음의 시" 또는 "첫째 아담의 시"로 일컬어져 왔습니다. 이 시편은 모세가 쓴 것입니다. 인간의 수명이 평균 칠십 세라고 한 10절의 말씀에 유의해 보십시오. 이는 창세기 5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옛 사람들의 나이에 비하면 물방울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을 만큼 짧은 것입니다. [우리의 햇수의 날들이 칠십 년이요, 강건하면 팔십 년이라도 그 햇수의 위력은 수고와 슬픔뿐이니 이는 그 위력이 곧 끊어지매 우리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니이다.](10).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아껴 써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즉 우리에게 우리의 날수 세는 것을 가르치사 우리의 마음을 써서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12). 자신의 날 수를 세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날 수를 세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5:16, [시간을 되찾으라. 이는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엡5:16), 특히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는 더욱더 그러해야 합니다. [바깥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걷고 시간을 되찾으라.](골4:5).
시편 91편입니다. 이 시는 "생명의 시" 또는 "둘째 아담의 시"로 알려져 왔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아들을 지키심에 대해 기록한 최초의 말씀입니다. 시편 91편 11절은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대한 책무(責務)를 주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임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 왜곡되이 인용했던 구절입니다. 실제로 천사들은 우리 주께서 세상에 계실 때 책무를 맡아서 주님을 섬기고, 지키셨습니다. 천사들은 주님의 탄생을 알렸습니다(눅 1:26-38/2:8-14/마 1:20-23). 천사들은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광야에서(마4:11)에서 그러했고 올리브 산에서도 그러했습니다(눅22:43). 부활하실 때, 무덤들의 돌을 굴려냈습니다(마28:2).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렸습니다(마28:6). 승천할 때 좌우에 함께 있었으며 올려다 보는 회중들을 향해 재림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행1:10-11).
시편 94편입니다. 이 시편은 성도들의 영원한 안전에 관해 가르쳐 주는 시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 발이 미끄러진다, 할 때에, 오 [주]여, 주의 긍휼이 나를 붙드셨사오며](18). [[주]께서 선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가 넘어질지라도 완전히 쓰러지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자신의 손으로 그를 붙드시기 때문이로다.](시37:23, 24 참조).
시편 100편입니다. 이 시편은 "백번째의 옛 시"로 알려져 왔으며, 그 아름다운 문체와 내용은 시편 23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시편입니다. 내용 역시 비슷합니다. [[주] 그분께서 하나님이심을 너희는 알지어다. 그분은 우리를 만드신 이시요, 우리는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요, 그분의 풀밭에 /거하는/ 양이로다.](시100:3).
시편 103편입니다. 이 시편은 지금까지 작시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장대 하고 훌륭한 시일 것입니다. 이 시편에서 다윗의 열정은 그 절정에 이릅니다. 그가 도달한 곳은 더욱 높은 곳이며, 그의 생각은 더욱 깊고, 그의 노래는 한층 더 감미롭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송축한 다른 어떤 기도보다도 더욱 큰 감동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오 내 혼아, [주]를 찬송하라.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아,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찬송하라.](시103:1)로 시작하여 20-22절의 끝맺음 역시 ‘주를 찬송하라’로 마칩니다. 주를 찬송하는 것은 우리 입술의 열매입니다(히13:15). 주를 찬송하는 것은 주께서 받으실만한 희생물입니다. 호세아는 우리 입술의 송아지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말씀들을 가지고 [주]께로 돌이키며 주께 아뢰기를, 모든 불법을 제거하시고 은혜를 베푸사 우리를 받아 주소서. 우리도 우리 입술의 송아지로 희생물을 드리리이다.](호14:2)
시편 107편입니다. [이는 그분께서 사모하는 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혼에게 선하심으로 채워 주시기 때문이로다. 어둠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이 고난과 쇠/사슬/에 매인 것은 ...폭풍을 고요하게 하시므로 그 파도들이 잔잔하게 되는도다.](시107:9,10, 29). 우리 주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이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성취하셨습니다. 시편 107편 9, 10절 말씀을 마태복음 4:16절과 히브리서 2:14,15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시편 107:29절의 말씀을 마태복음 8:26절에서 성취하셨습니다.
시편 111편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는 다 큰 명철(明哲)이 있는 자니 그분을 찬양함이 영원토록 지속되리로다.](10). 성경에서(특히 이 말이 백 번 이상 사용된 시편에서) "주를 두려워하라"란 말은 기도와 찬송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를 두려워할 때 얻을 수 있는 복은 성경에 너무나 많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8). 하나님은 자신의 택한 백성들이 주님을 두려워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신명기 10:12, [¶ 이제 이스라엘아,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오직 [주] 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분의 모든 길 안에서 걷고 그분을 사랑하며 또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섬기고](신10:12).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그러므로 이제 [주]를 두려워하며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그분을 섬길지니라. 너희 조상들이 강 저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다른 신들을 제거하고 너희는 [주]를 섬기라.](수 24:14)고 강력하게 권면했습니다. 주를 섬기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며 섬기고 떨며 기뻐할지어다.](시2:11). 주님을 경배하는데도 역시 주님을 두려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로 말하건대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긍휼을 누리고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두려워하며 주의 거룩한 전(殿)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시 5:7). 주 앞에서 기념책에 기록된 성도들은 주님을 두려워 한 자들입니다. [그때에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서로 자주 말하매 [주]께서 귀를 기울여 그것을 들으시고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과 그분의 이름을 깊이 생각하는 자들을 위하여 주 앞에서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3:16). 주님을 두려워 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오늘날 오순절 교회에서 주장하는 축복보다 백배 이상은 더 많은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오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위하여 주께서 쌓아 두신 주의 선하심 곧 사람들의 아들들 앞에서 주를 신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베푸신 그 선하심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시31:19).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돌보시며, 불쌍히 여기십니다.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같이 [주]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시103:13). 점점 주님을 두려워하는 성도들이 적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실상 주님에 대한 인식과 바른 이해와 믿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시편 118편입니다. [[주]께서 나를 심히 징계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겨주지 아니하셨도다.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놀라운 일이로다. 이 날은 [주]께서 만드신 날이니 이 날을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로다.](시118:18,23,24). 이 말씀은 욥이 자신의 삶을 통해서 직접 증언한 말씀입니다. 23,24절 말씀은 로마서 8:28절과 더불어 모든 성도들이 담대하게 주장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입니다. 이 시편은 시편 중 가장 긴 기도이며, 말씀장이라 불리는 가장 위대한 장입니다. 이 시편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 11절에 관하여 무디(D.L. Moody)는 "성경이 성도를 죄와 분리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성도를 성경과 멀리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홉 가지 명칭을 붙이고, 성경의 사역 열두 가지를 밝혔습니다. · 주의 법(1). · 주의 증거(2절), ·주의 길(3) · 주의 훈계(4절) · 주의 법규(5) · 주의 모든 명령(6) · 주의 의로운 판단들(7) · 주의 말씀(9) · 주의 규례(91)들입니다. 성경의 열두 가지 사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깨끗케 함(9) · 소생케 함(25) · 강하게 함(28) · 세우심(38) · 대답하게 함(42) · 위로함(50) · 지혜롭게 함(98,99) · 밝혀줌(105) ·확신케 함(114) · 격려함(116) · 평안을 가져다 줌(165) · 건지심(170)
우리는 이 시간 핵심적인 구절들을 발췌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것과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첫째, 성경은 우리에게 복을 줍니다. 시편에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은 “복되도다”(Blessed)입니다. 시편 119편도 “복이 있도다”로 시작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복(福)주는 책입니다. 시편 119편은 성경을 읽음으로써 복을 받고, 성경을 깨달음으로써 복을 받고, 성경에 순종함으로써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서로 나눌 때 큰 복을 받습니다. [주의 법 안에서 걸으며 길에서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들은 복이 있도다. 그분의 증거들을 지키고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1-2).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50,93).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지만 영적인 생명은 “기록된 말씀” 속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6:63에 이르기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들은 곧 영이요,생명이라.] 성경은 우리가 믿을 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1:2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습니다(히4:12). 말씀은 우리를 태어나게 하며, 자라나게 하며, 든든히 세워 줍니다. 우리가 약할 때, 절망했을 때, 패배했을 때 다시 일으켜 주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힘을 줍니다(28). 우리는 자주 “아, 힘들어 죽겠다!” “힘들어 미치겠다”는 말을 합니다. [내 혼이 무거움으로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에 따라 주는 나를 강하게 하소서.](28).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입니다.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4:13에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그들이 본래 학문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인 줄로 알았으므로 이상히 여기며...] D.L 무디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사람이었지만 그를 무식하다거나 무능하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무디는 어떤 학자보다도 더 지혜로왔으며 논리 정연한 사람이었으며,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존 번연은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당시 왕을 가르치던 왕사였던 쟌 오웬은 늘 그의 설교를 들으러 왔습니다. 그는 성경을 통해 힘을 얻고 지혜를 얻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자유를 줍니다(45).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성경은 한 권의 법전입니다. 그런데 속박을 주는 법전이 아니라 자유의 법전입니다. 야고보는 성경을 가르켜 “자유롭게 하는 완전한 법”(약1:25)이라고 했습니다2). 바울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왕가의 법(royal law)입니다. 사람들을 죄의 종(요8:34), 부패의 종(벧후2:19), 사망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는 진정한 법이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어느 국가에나 성경이 들어가면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었습니다. 어느 개인에게나 성경이 들어가면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내가 주의 훈계들을 구하므로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45). 성경은 지혜를 줍니다(66,97-104).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나이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주십니다. 신명기 4:6에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이 민족들의 눈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 민족들이 법규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민족은 참으로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말씀을 꽤차고 그대로 준행하는 사람은 절대 무식하다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성경의 기록목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단순한 사람, 즉 우둔한 사람에게 지혜를 주기 위함입니다. 솔로몬은 잠언의 기록 목적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단순한 자에게 민감함을 주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분별을 주기 위한 것이니](잠1:4). 성경은 친구를 줍니다. [나는 주를 두려워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훈계들을 지키는 자들의 벗이니이다](63).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복종함으로써 여러분은 가장 좋은 친구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입니다. 성경을 굳게 붙드는 사람은 성경을 굳게 붙드는 사람끼리 친구가 됩니다. 여러분의 친구를 보면 여러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여러분에게 맺어준 벗들을 사랑하십시오. 성경은 위로를 줍니다. 시편 119편은 60회 이상 시험과 박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박해와 시련이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성경은 그들에게 지속적인 위로를 줍니다. 위로자이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 마음에 심어 줍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 한없는 위로를 받습니다. [내가 고난 당할 때에 이것이 내 위로가 되었사오니 이는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바울 사도는 다윗 못지 않은 위험과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자서전격인 고린도후서를 통해 고난받는 자신을 위로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3-7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분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긍휼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어떤 고난 중에 있는 자라도 능히 위로하시는 분이시로다. ....](고후1:3-7). 이 시간 참된 위로가 필요하신 분들은 76,77절을 보십시오. [주께 간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주의 말씀에 따라 긍휼이 풍성한 주의 친절이 나의 위로가 되게하시며 주의 긍휼이 내 위에 임하게 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기쁨이니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방향을 지도하십니다. 133절을 보십시오. [내 발걸음을 명하사 주의 말씀 안에 있게 하시고 어떤 불법도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소서] 여러분이 하나님께 선택권을 드리고 믿음으로 순종한다면 주님은 가장 좋은 길로 여러분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시편 32:8에 이르기를 [내가 너를 훈계하며 너의 가야할 길로 너를 가르치고 내 눈으로 너를 지도하리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외에도 성경은 여러분에게 수없이 많은 것들을 줍니다. 그 유익을 말로 다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성경이 여러분에게 이런 것들을 주었으니, 여러분은 성경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깐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성경을 사랑해야 합니다(97,159)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성경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97), [내가 주의 훈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살피소서. 오 주여, 주의 인자하심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159)
2. 성경을 존중해야 합니다.(72,128) 죠지 뮬러는 성경의 신성을 깨달은 후 무릎 꿇은 채 100번을 읽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높이는 일은 곧 주님을 높이는 일입니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의 금은보다 좋으니이다](72),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것에 관한 주의 훈계들을 바르게 여기며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하나이다](128)
3.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다윗은 119편에서 “나를 가르치소서”란 말을 12번이나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 공부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내가 주의 말씀들을 배울 때에는 올바른 마음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7). 성경을 공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마음으로, 마음을 다하여 공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2, 10, 34, 69, 145). 성경 공부는 믿음으로 해야 하며, 순종을 통해서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15에서 성경을 어떻게, 왜 공부해야 하는지 밝혀 놓았습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솔로몬은 잠언 15:28에서 성경 공부를 촉구했습니다. [의로운 자의 마음은 대답을 위하여 연구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입은 악한 것들을 쏟아내느니라]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러나 너의 마음 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며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답변할 것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항상 예비하고](벧전3:15).
4. 성경을 암송해야 합니다. 저는 성경 읽기를 매우 강조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분들은 성경을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숨겼나이다](11) 캠벨 몰간이란 유명한 목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 “가장 좋은 책, 가장 좋은 자리, 가장 좋은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여러분 마음 속에 둔다면 여러분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챨스 피니가 쓴 마지막 외침이란 작은 책자의 맨 첫 페이지를 보면 성경이 금서가 되고 모든 성경이 수거될 때 한 자매가 울면서 “내가 왜 저 책을 좀 더 많이 외워두지 못했을까?”하며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1,000절 이상 암송한 형제들을 몇몇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암송되었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이 발휘됩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무엇을 숨겼느냐는 여러분의 입술이 스스로 증거할 것입니다. 광야에서 사탄과 영적 전투를 수행하셨던 예수님께서 얼마나 정확하게 성경을 제시했는지 생각 해 보십시오. “기록되었으되...”
5.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15, 23, 48, 78, 97, 99, 148) 묵상이 영혼에 미치는 영향은 소화된 음식이 몸에 미치는 영향과 같습니다. 묵상이란 뜻은 동양적 사고 방식으로 하는 명상과는 다릅니다. 성경에서 묵상이란 입으로 읊조리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통해 여러분은 성경 구절과 구절을 서로 연관지을 수 있고, 깊이 생각하며 그 의미를 조명받을 수 있습니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시대에 살면서 묵상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요, 힘들어 보이겠지만 성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묵상은 성경의 암송이 전제되지 않고는 매우 힘든 것입니다. [내가 주의 훈계들을 묵상하며 주의 길들에 관심을 기울이오며](15). [내가 지금까지 사랑한 주의 명령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법규들을 묵상하리이다](48). [주의 증거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더 많은 명철이 내게 있으며](99).
6. 성경을 신뢰해야 합니다(42) 성경에 이의(異議)를 제기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이의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불신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모욕하는 자에게 그것으로 대답하리니 이는 내가 주의 말씀을 신뢰함이니이다](42) 모든 책은 성경으로 판단되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전적으로 옳기 때문입니다(128). 성경의 판단을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성경이 죄라고 하면 죄이며, 성경이 불법이라고 하면 불법입니다. 성경은 저와 여러분의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모든 것의 잣대이며 최종 권위인 것입니다.
7. 성경에 순종해야 합니다(1-8) 믿음으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순종을 통해 온전해 집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순종을 의미합니다. 참된 믿음은 순종을 동반합니다. 순종이 동반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만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어떤 열매도 기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8. 성경을 선포해야 합니다(13,26) 말씀에 순종하신 분들은 말씀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증인이 되어야 하며, 진리를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 주신 역사를 가감없이 말해 주어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71:15-18에서 [내가 주의 의와 구원을 측량할 수 없으며 그것들을 내 입으로 종일토록 보이리이다. 내가 주 하나님의 힘으로 나아가겠사오며 주의 의 곧 주께 속한 그 의만을 말하리이다. 오 하나님이며 내가 어릴 때부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지금까지 내가 주의 놀라운 일들을 밝히 드러내었나이다. 이제 또한 내가 늙어 백발이 되었사오니, 오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내가 주의 능력을 이 세대에 보이며 주의 권능을 앞으로 올 모든 사람에게 보이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주셨는지 아시면 여러분은 입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낯선 사람이 눈 하나, 신장 하나를 기증해도, 헌혈을 해 주었다 해도 나는 그 사람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누가 내 몸에 휘어진 척추나 탈골된 뼈를 바로 잡아 주어도 저는 그 사람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정말 위기에 처했을 때 따스한 눈길과 말 한마디를 건네주어도 은혜와 감사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 주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허물과 죄를 위해 온 몸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셨습니다. 주님은 벌거 벗기운 채 양 손과 양 발에 13 센티미터의 큰 못이 박힌 채 높이 메달리셨습니다. 곧 이어 로마 병정이 창으로 오른 쪽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온 몸에 피와 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 죽음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한 죽음이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곳에 앉아 계신 여러분이 이 죽음과 피에 대해서 정말 제대로 알고 믿으면서도 가만히 앉아 있다면 여러분은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시편 개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공부는 매우 간략한 개요입니다. 이 공부를 통해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데 더 열심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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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과 같은 성경적 개혁과 부흥을 숙고하자. -야곱을 통하여(창 35:2-4) -모세를 통하여(출 14:31-15:21) -다윗을 통하여(대상 15:25-28/16:1-43/29:10-25) -솔로몬을 통하여(대하 7:4-11) -엘리야를 통하여(왕상 18:21-41) -아사를 통하여(왕상 15:11-15) -예후를 통하여(왕하 10:15-28) -여호야다를 통하여(왕하 11:17-20) -요시야를 통하여(왕하 22, 23장) -여호사밧을 통하여(대하 20장) -히스기야를 통하여(대하 29-31장) -므낫세를 통하여(대하 33:11-20) -에스라를 통하여(스 9,10장) -느헤미야를 통하여(느 13장) -요나를 통하여(욘 3장) -에스더를 통하여(에 9:17-22) -침례(세례) 요한을 통하여(눅 3:2-18) -구주를 통하여(요 4:28-42) -빌립을 통하여(행 8:5-12) -베드로를 통하여(행 9:32-35/2:1-47) -바울을 통하여(행 13:14-52/17:10-12/18:8/19:18)
2) [누구든지 자유롭게 하는 완전한 법을 들여다 보며 그 안에 거하는 자는 듣고 잊어 버리는 자가 아니요, 그 일을 행하는 자니 이 사람은 자기가 행하는 일에서 복을 받으리라](약1:25).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