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구약 개론-시편(1)

말씀: 시편 1:1-37편
요절: 시편 19:


시편은 성경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책일 것입니다. 150편에 걸친 각 시편은 역사와 예언과 인생의 전 부분을 통찰하는 예리한 내용들을 아름다운 운율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저자는 매우 다양합니다.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포로기 이후의 작자 불명의 시편까지 수십명이 저자입니다. 다윗은 가장 많은 73편을 썼습니다. 솔로몬이 2편(72,127), 고라의 후손들이 13편(42, 44-49, 84, 85, 87), 아삽이 50편과 73-83편까지를 썼고, 헤만이 88편을 에단이 89편을 모세가 90편을 저술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시편 120, 121, 123, 125, 126, 128-130, 132,134편을 나머지는 작자 미상의 시편입니다. 시편은 총 150편 2,416절, 43,743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약을 흔히 율법, 시편, 역사 기록으로 분류할 때 시편들(욥기, 시편, 잠언, 솔로몬의 노래, 전도서-눅24:24)로 구성됩니다.

시편은 5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41편, 42-72편, 73-89편, 90-106편, 107-150편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구분과 모세 오경의 순서와 연관지어 생각했습니다. 1-41편은 창세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중심이 되는 말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아담으로부터 각 사람이 한 세대를 대표합니다. 아담, 아벨, 셋,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끝을 맺습니다. 시편의 제 1권은 사람을 중심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참조구절은 1:1, 8:4, 25:12, 34:8, 34:12, 37:23, 37:37, 40:4입니다(...한 자,...한 사람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시편의 제 2권(42-72편)은 출애굽기에 해당되는데 이는 건짐(해방)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주요 참조 구절은 시편 50:15, 54:7, 56:13, 59:1, 69:14, 71:2, 72:12입니다(여기서는 출애굽기의 주제인 건지다, 구출하다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시편의 제 3권(73-89편)은 레위기에 해당하는데 이는 중심 주제가 성소이기 때문입니다. 참조 구절은 73:17, 74:7, 77:13, 78:69입니다. 시편 제 4권(시96-106편)은 민수기에 해당하는데 이는 불안과 방황을 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험에 관련된 책입니다. 시편 90편과 106편을 참조하십시오(시106:35). 시편 제 5권(시107-150편)은 신명기에 해당하는 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고있습니다. 단연 압권은 시편 119편입니다.

시편을 주제별로 연구하면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겠지만 크게 여덟 가지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1. 헌신의 시 2. 참회의 시 3. 저주의 시 4.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5. 할렐루야 시편 6. 역사시 7. 답관체(Acrostic)시 8. 메시아 예언시입니다. 우리는 시편 각 편에 나타난 깊은 내용을 다 다루는 시간이 아니라 outline을 다루는 시간이란 점을 생각하고 각 권의 개요, 시편의 전체적인 내용의 겉핥기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헌신의 시는 모든 신자들이 음미하여야 할 값진 개인적 약속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들 시편들을 다룰 때 흔히 아무런 논평없이 약속 그 자체만을 인용하면 충분한 것들입니다. 이 시편들에는 시편 저자의 영혼의 고뇌와 감정, 신앙 등 인간의 적나라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1편입니다. "복되도다"(Blessed)라고 시작하는 이 시편은 하나님이 복주신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분명한 대조를 보여 줍니다. 1, 32, 41, 112, 119, 128, 144편은 모두 ‘복되도다’란 말로 시작합니다. 시편 제 1권에만 “복되도다”란 말이 무려 45회나 등장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뜻대로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 시편 기자는 복있는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걷다, 서다, 앉다란 세 가지 동사를 사용해서 말합니다. 신약 성도들은 그분 안에서 걸어야 합니다(골2:6). 우리는 그분의 강건한 능력 안에서 서야 합니다(엡6:10). 우리는 하늘의 처소에 앉힌바 되어야 합니다(엡2:6). 여러분이 앉아 있는 곳, 여러분이 걷고 있는 곳,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유념해서 보십시오.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의 불순종한 예를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각기 자기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요18:8).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연행한 대제사장의 무리들을 따랐습니다(요18:15). 곧 그는 예수님을 심판하고 조롱하는 무리들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요18:18). 그는 곧 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었습니다(눅22:15). 그 결과 그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모든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입니다. 복있는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오직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2). 복된 사람은 세상이 주는 것에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공부하고, 암기하고, 묵상하고, 그것에 순종함으로써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오 [주] 만군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말씀들을 발견하고 먹으매 주의 말씀이 내게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이 되었사오니 이는 내가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기 때문이니이다.](렘15:16). 에스겔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먹으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네 배로 하여금 먹게 하고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창자를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그것을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3:3). 사도 요한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었습니다. [내가 그 천사에게 나아가 이르되, 그 작은 책을 내게 주소서, 한즉 그가 내게 이르되, 이것을 가져다가 먹으라. 이것이 네 배는 쓰게 할 것이나 네 입에서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계10:9).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속 사람의 일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는 강가에 심은<심기운> 나무가 제 철에 열매를 맺으며 또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형통하리로다.](3).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나무로 비유되어 있습니다. 이 나무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 내려야 하며, 성령의 강가에 내리 뻗어야 합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듯이 뿌리가 없는 열매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17:7,8 [[주]를 신뢰하며 [주]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가 물가에 심은 나무 같아서 그 뿌리를 강가에 뻗치고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아니하며 그 잎이 푸르르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으며 열매맺는 일을 그치지 아니할 것임이라.](렘17:7-8). 이 땅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성경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중의 가장 소중한 것은 성령입니다.

시편 4편입니다. [오직 [주]께서 자신을 위하여 경건한 자를 따로 두신 것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주]를 부를 때에 그분께서 들으시리로다.](시 4:3).,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이는, [주]여, 주께서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기 때문이니이다.](시 4:8). 다윗은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신 것과 자신의 마음 속에 주님이 주신 기쁨으로 인해 찬양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얻는 가장 좋은 특별한 유익 중의 하나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기쁨과 평안이 없다면 세상살이는 너무나 고달프고 힘들 것입니다. [[주]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힘을 주시리니 [주]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화평으로 복을 주시리로다.](시29:11),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을 실족하게 할 것이 없으리로다.](시119:165).

시편 9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대해 찬양합니다. [사악한 자들은 지옥으로 돌아가며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리하리니](시 9:17). 이는 어느 날 무서운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시 11:6/마 25:31-46/계 14:10/19:20/20:11-15/21:8 참조). 어느덧 기독교인들에게도 심판에 대한 신앙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습니다. 주의 징계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타락한 마음의 표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의 심판을 두려워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주의 심판이 닥칠 것입니다.

시편 12편입니다. 시편 12편은 킹제임스 성경을 보존된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유명한 장일 것입니다. 성경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약속이 등장합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단련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이 말씀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여기서 일곱 번이란 첫째, 구약 히브리 원어입니다. 둘째, 구약 성경의 아람어 원어입니다. 셋째, 신약 헬라어 원어입니다. 넷째, 최초의 번역복인 구시리아 역본입니다. 다섯째, 구라틴어 역본입니다(2세기). 여섯째, 종교 개혁 때의 마틴 루터 역본입니다. 이는 모든 유럽 대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곱째, 대영제국의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이는 전세계 모든 역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의 말씀들은 단련된 말씀입니다. 이 사실은 성경이 스스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시편 18:30, [하나님으로 말하건대 그분의 길은 완전하고 [주]의 말씀은 단련되어 /순수하니/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가 되시는도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입니다. 잠언 30:5,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느니라] 시편 119:140, [주의 말씀은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그것을 사랑하나이다.]

시편 13편입니다. [오 [주]여, 어느 때까지 나를 잊으시려 하나이까? 영원히 잊으시려 하나이까? 주의 얼굴을 어느 때까지 내게서 숨기시려 하나이까? 내가 내 혼 안에서 계획하며 날마다 마음 속에서 슬퍼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내 원수가 나보다 높임을 받는 것이 어느 때까지니이까?](시 13:1-2). 다윗 역시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입니다. 흔히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은 우리같은 보통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패배의 고통을 맛보지도 않고 낙담하지도 않으며 항상 성공을 거두고 거룩하며 가장 행복한 사람들인줄로 생각합니다. 이는 사실과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그들 모두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약 5:17)들입니다. 그들은 많은 경우에 패배의 쓰라린 고배를 맛보았으며 때때로 오늘날의 아담의 후손들처럼 실망에 사로잡혔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낙담의 소리가 종종 그들의 기도에 나타납니다. 시편 13편은 이렇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영혼의 간구에 대한 한 실례입니다. 시편에는 이런 실제적인 예가 넘쳐납니다(시6:1-7,31:1-4, 77:1-20,88:1-18,102:1-11,137:1-6절). 우리는 위대했던 믿음의 사람들의 평범한 기도를 통해 우리 역시 동일한 힘과 위로를 얻습니다.

시편 14편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14:1). 다윗은 여기서 무신론자의 어리석음을 기술했습니다. 바보는 누구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말할 때 어리석은 자는 머리에 문제가 있는 자가 아니고 마음에 문제가 있는 자입니다. 성경에 있는 다른 부류의 어리석은 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자는 어리석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죄를 조롱하여도 은총은 의로운 자들 가운데 있느니라.](잠 14:9).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어리석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아버지의 훈계를 멸시하거니와 책망을 중히 여기는 자는 분별 있는 자니라.](잠 15:5). 다툼을 일으키는 자는 어리석습니다. [다툼을 그치는 것이 사람에게 존귀가 되거늘 어리석은 자는 참견하고자 하느니라.](잠 20:3). 자기 영광을 구하는 자는 어리석습니다. [이에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이 날 네 눈이 내 혼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크게 잘못하였도다, 하니](삼상 26:21). 돈을 사랑하는 자는 어리석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시되, 너 어리석은 자여, 이 밤에 네 혼을 요구하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20).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어리석습니다. [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것이 죽지 아니하면 살아나지 못하겠고](고전 15:36). 그리스도인 역시 어리석기는 매 한 가지이지만 유일하게 현명한 바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며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멸시를 받으니](고전4:10).

시편 17편입니다.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밑에 숨기사](시 17:8). 여기서 다윗은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하면서 두 가지의 온유한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째, 눈동자(신 32:10/슥 2:8 참조)입니다. 신체에 위험이 다가올 때 가장 먼저 보호하고 가리는 부분이 바로 눈동자입니다. 누구나 손으로 눈을 가리는 것은 본능입니다. 몸의 빛이 바로 눈이기 때문입니다(마6:22).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가리십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지키셨습니다. 신명기 32:10, [그분께서 그를 사막에서와 황폐함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치시며 자신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스가랴 2:8, [만군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영광이 있은 뒤에 그분께서 너희를 노략한 민족들에게 나를 보내셨나니 이는 너희에게 손을 대는 자는 그분의 눈동자에 손을 대는 것이기 때문이라.] 둘째, 주의 날개 그늘(신 32:11, 12/시 36:7/57:1/91:1,4/마 23:37 참조)입니다. 주님은 특별히 유대인들의 보호를 말씀하실 때 이 구절을 인용하셨습니다. 대환란 때 그들은 주님의 날개 아래서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역시 이런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보호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울부짖는 사자와 같은 마귀와 영적 전쟁을 두려움 없이 치를 수 있는 것입니다. 뭔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이 구절을 마음에 붙드시고, 깊이 새기십시오.

시편 18편입니다. [그분께서 위로부터 보내사 나를 붙잡아 주시고 많은 물들에서 나를 끌어내셨으며](시18:16). 다윗은 많은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에 물은 종종 괴로움이나 고통을 상징하는데 사용되어 왔습니다(시69:1,2/144:7/사 43:2 참조). 물은 말씀을 상징하는 예표이기도 하지만 많은 무리들, 사람들을 예표하기도 합니다. [또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건지셨도다](시18:19). 이것은 그의 간증입니다. 24-27절까지는 주님께서 우리의 어떠함에 따라 갚으시는 인과 응보, 뿌린대로 거두게 하시고, 심는대로 얻게 하시는 원리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육신을 뿌리면서 성령을 거두려고 합니다. 바람을 헛되이 잡으려 하듯이 그런 영적 생활을 하면서 도리어 하나님께 불평을 토로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 상태, 우리의 믿음, 우리의 순종에 따라 보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내 등잔불을 밝히시리니 주 내 하나님께서 내 어두움을 밝히시리이다.](시18:28). 잠언 20:27에서 우리는 이 등잔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등잔불을 밝히는 기름이 무엇인지도 압니다. 성령 충만이 없다면 불은 희미해지고, 마침내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성령을 억누르지(소멸시키지) 말라.](살전5:19). 이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엄중한 명령입니다.

시편 19편입니다. 시편 19편은 시편 119편의 요약 축소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어떻게 계시하시는가?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인간에게 자기를 계시해 주십니다. 1-6절은 소위 말하는 자연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도록 하시며, 알도록 하십니다. 오늘날 인공 구조물과 자동차, 컴퓨터, 비행기와 같은 첨단 기구들은 하나님을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생각하도록 합니다. 별이 쏟아지는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유성이 떨어질 때 ‘우와, 대단한 빅뱅이었군!’, ‘엄청난 진화가 일어났군!’ ‘마귀는 대단해!’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까? 자연은 오늘 하루만도 인간의 마음속에 수천 가지 이상의 설교를 합니다. 매일 빛과 함께 아침이 시작되며 어둠과 함께 저녁이 됩니다. 아침에 깨고 저녁에 잡니다.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을 매일 매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불신자라도 인간이 자연을 통해서 수많은 교훈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는 방법 7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본문에 나오는 자연 계시입니다(롬1:20, 마 6:28-30). 둘째는 인간의 본성 속에 숨겨진 양심입니다(롬2:15). 셋째는 율법입니다(출24:12). 넷째는 구약 성경입니다(롬15:4). 다섯 째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일1:1-2). 여섯 째는 신구약 성경입니다(딤후3:16). 일곱 번째는 문자적으로 눈에 보이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계19:11).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回心)시키고 [주]의 증거는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주]의 법규들은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 [주]의 두려우심은 깨끗하여 영원토록 지속되고 [주]의 판단들은 진실하고 다 의로우니 참으로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또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주의 종이 또한 이것들로 경고를 받나니 이것들을 지킬 때에 큰 보상(報償)이 있나이다.](7-11). 성경은 주의 율법, 주의 증거, 주의 법규, 주의 명령, 주의 두려우심, 주의 판단,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 송이꿀보다 더 단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기능은 첫째, 혼을 회심시킵니다. 둘째,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셋째,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넷째, 눈을 밝게 합니다. 다섯째, 영원토록 지속되게 합니다. 여섯째, 부유하게 합니다. 일곱째, 만족을 줍니다. 여덟째, 경고를 줍니다. 아홉째, 보상을 줍니다.

[자기 잘못들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주여, 은밀한 허물에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을 지키사 고의로 짓는 죄들로부터 떠나게 하시고 그 죄들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곧바르게 되어 큰 범죄들에서 벗어나 무죄하리이다. 오 나의 능력이시요, 나의 구속자(救贖者)이신 [주]여,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想)이 주의 눈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12-14). 아무도 자신의 죄와 허물을 제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럽고 더 부패하기 때문입니다(렘17:9). 하지만 성경의 빛을 통해서 정확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백되어진 죄, 하나님 앞에서 용서되고, 보혈로 정결케 된 죄는 더 이상 군림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 말씀을 통해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정결함을 입은 성도는 죄들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포도원의 작은 여우를 잡지 못할 때 포도원 전체를 망치듯이 이런 작은 죄들을 회개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성도들은 큰 범죄들에 연루되고, 성도의 간증을 한순간에 다 망쳐 버립니다. 다윗은 입술의 말과 묵상이 주의 눈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 되기를 구했습니다. 입술의 말은 은혜로 소금을 뿌린 듯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은 감사와 찬양이 흘러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은 덕을 세우기에 합당한 말만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또한 건전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생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인격을 낳고, 인격이 사람의 어떠함이 됩니다. 주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말이 아니면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 드려서 받아들여질 만한 생각이 아니면 지워 버리십시오.

다음은 시편의 3중주로 알려진 22,23,24편을 살펴보겠습니다. 22편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장면입니다(요10:11).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가장 생생한 묘사이기도 합니다. 죽임을 당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의 기초가 놓입니다. 죄값을 치르신 구주의 십자가가 핵심입니다. 23편은 만족케 하시는 분, 살아계신 그리스도시요, 위로자입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죄와 세상을 이겨내도록 인도하시는 목자의 지팡이가 핵심입니다. 신약에서 연관 구절은 히브리서 13:20입니다. 24편은 천년 왕국을 나타냅니다. 목자장으로서, 주권자로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오십니다. 베드로전서 5:4이 참조 구절입니다.

시편 22편은 신약 성경에서 성취되지 않는 예언이 없습니다. 이 시편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사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을 요약해 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만큼 실제적입니다. 예언은 미리 기록된 역사라는 생생한 예입니다.

시편 23편입니다. 아마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시편이 바로 본문일 것입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분께서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참으로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들의 눈앞에서 내 앞에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긍휼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1-6).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양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과 시험은 언제나 목자의 문제입니다. 풀이 없고, 물이 없고, 쉴 곳이 없고, 이리가 닥치는 것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양들에게 목자가 있다면 그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될 것입니다. 목자가 없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더 큰 문제는 있을 수 없습니다. 목자는 영혼이 영적 양식을 필요로 할 때 푸른 초장을 제공합니다. 목자는 영혼이 피로할 때 잔잔한 물을 제공합니다. 목자는 영혼이 재생을 필요로 할 때 그를 소생시켜 줍니다. 목자는 영혼이 안내를 필요로 할 때 바른 길로 인도해 줍니다. 목자는 영혼이 죽음에 직면할 때 그와 동행하여 줍니다. 목자는 영혼이 적을 만날 때 그에게 승리의 상(床)을 베풀어 줍니다. 목자는 영혼이 상처를 입을 때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목자는 그의 영혼이 동반자를 원할 때 선함과 긍휼함이 그를 따르도록 합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육신의 장막을 떠날 때 영원한 하늘의 처소를 제공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증거합니다.

이 말은 바벨론의 한 연회석 벽에 벨사살에 대하여 쓴 말과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가 비교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벨사살 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있다 함이요,](단 5:27).

시편 32편과 51편은 일맥상통하는 다윗의 회개의 시요, 통회하는 기도입니다. 51편에서 다루겠습니다.

시편 34편입니다. [이 가엾은 자가 부르짖으매 [주]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의 모든 고난에서 그를 구원하셨도다. [주]의 천사가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지는도다. 오 /너희는/ [주]의 선하심을 맛보고 알지어다.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오 [주]의 성도들아, 너희는 그분을 두려워하라. 이는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로다.](6-9). 기도의 능력과 더불어 주의 천사가 주를 두려워 하는 성도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조명과 계시가 있습니다. 우리는 천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하지만 주님은 천사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히브리서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靈)들로서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히1:14). 우리들의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세상 자녀들을 돕고 보호하며 권면하기 위하여 천사들을 보내셨습니다.

시편 35편입니다. [거짓 증인들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내 책임으로 떠넘기며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내 혼을 노략하였으나 나로 말하건대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로 내 옷을 삼고 금식하며 내 혼을 낮추었더니 내 기도가 바로 내 품에 돌아왔도다.](11-13). 이러한 기도는 참으로 어려운 기도이다. 특히 구약 성도들에게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여 주기를 바라지도 않은 자, 그리고 같은 재난이 우리에게 덮치는 것을 더욱 기뻐할 그런 자의 어려움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나를 이용해 먹고, 선을 악으로 갚고, 루머와 소문을 퍼뜨려 나를 곤경에 빠지게 하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자들, 소위 지금 말로 하면 ‘당했다’는 원통함이 들게 만드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도들은 특별히 이러한 기도를 하도록 명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된 저와 여러분을 위해 하신 일이며, 스데반이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해 기도한 것이며, 사도 바울이 동족들을 향해 가진 마음이었습니다. 인면수심(人面獸心),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 기도는 응답될 수도 있고, 내 품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중보 기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이는 복음 전파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평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그 사람이 구원을 받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이 도로 나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누가복음 10:6, [만일 화평의 아들이 거기 있으면 너희 화평이 그 집에 머무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화평이 도로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마태복음 10:13, [그 집이 합당하면 너희 화평이 그 위에 임할 것이로되 합당하지 아니하면 너희 화평이 너희에게로 되돌아올 것이니라.] 저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부메랑의 효과입니다. 잠언 26:2, [까닭 없는 저주는 떠도는 새와 날아가는 제비처럼 임하지 아니하느니라.](잠26:2).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할 때 그것은 무조건 유익입니다. 받아들이면 혼을 얻어서 좋고, 받아 들이지 않으면 그것이 나의 품으로 돌아와서 좋습니다. 중보 기도의 유익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특별히 성도들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함은 물론, 나를 핍박하는 원수들을 향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 온유한 성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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