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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동방 박사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찾았는가


동방 박사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찾았는가?

말씀: 마태복음 2:1-12
요절: 마태복음 2:2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는 성경을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흔히 예수님의 탄생일이라고 알려진 이 날은 성경적 사실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백과 사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은 3세기에 들어와서부터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초기에는 그 날짜가 일정하지 않아서 1월 6일, 3월 21일(춘분), 12월 25일 가운데 어느 하루가 선택되었다. 로마 교회(서방 교회)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된 것은 354년경부터로 보이며, 조금 뒤인 379년부터 그리스교회(동방 교회)가 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마스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도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던 봄의 광명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동지(冬至)의 축일, 다시 말하면 태양숭배의 습속을 이용하여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농경사회의 로마에서는 ‘사투르날리아’라는 농경신 새턴의 제일(祭日)이 12월 21~31일(혹은 17~24일까지, 또는 1월 1일)까지 계속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이 신은 본래 그리스에서 왔다고 전해지는 고대 이탈리아의 신으로서, 크로노스와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다.”(두산 세계 백과 대사전).

크리스마스는 휴일 앞에 “Merry”란 말을 붙이며, 인사하며, 온 세상 민족들이 공통적으로 즐거워하는 유일한 명절입니다. 또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이는 성경에서 보여 주는 예증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9, 10을 보십시오. [백성들과 족속들과 언어들과 민족들에서 나온 자들이 그들의 시체를 사흘 반 동안 구경하며 그들의 시체를 무덤에 두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대언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므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그들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계11:9,10). 이는 크리스마스가 매우 사탄적이란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탄생을 기념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며, 그의 제자들이나 초대 교회에서 이런 풍습이 행해진 예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탄생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을 보십시오. [이제 헤롯왕 시대에 예수님께서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매, 보라, 동방으로부터 지혜자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흔히 사람들이 오해하는 한 가지는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 박사는 세 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동방 박사가 세 명인지, 네 명인지, 일곱 명인지 전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세 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입니다. 또 한가지 자주 하는 오해는 동방의 현자들이 아라비아에서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성경적 사실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들이 단지 동방으로부터 왔다고 말할 뿐입니다. 몇 가지 성경적 사실들을 추론해 볼 때 이들은 바빌론에서 왔을 것입니다. Magi(현자)란 말이 바빌론의 이름에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렘39:13). 바빌론은 유대인들이 70년간 포로 생활을 했으며 귀환하지 않는 유대인 후손들이 계속 남아서 살았으며, 대학을 만들었고, 탈무드를 완성한 곳이기도 합니다. 또 다니엘이란 걸출한 하나님의 종이 4대에 걸쳐 그 땅에서 섬겼고, 명성을 날렸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다니엘’이란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다니엘서 2:4-7:28절까지는 히브리어가 아니라 당시의 언어였던 갈대아어(아람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다니엘서 9:25은 메시아 통치자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는/ 알고 깨달을지니라.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을 것이요, 이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될 것이며](단9:25). 바빌론의 현자들은 모두 천문학자요, 점성술가였으며,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다니엘을 통해, 아니면 유대인들을 통해 성경을 알았다면 메시야 통치자가 태어나는 시기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시기로부터 483년 뒤에 메시아 통치자가 있을 것이란 사실이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B.C. 445년 3월 14일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 재위 20년에 이 명령이 떨어 졌으므로 메시야 탄생이 임박한 것은 성경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었습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이르되,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 가운데 또 한 가지는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왔다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동방의 지혜자들은 동방에서 별을 보았을 뿐 계속해서 그 별을 보고 걸어 온 것이 아닙니다. 별은 그 때만 보았고, 9절에서야 다시 별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별을 보았다면 예루살렘이 아닌 바로 베들레헴으로 갔을 것입니다. 9절을 유념해서 보시면 “보라, 동방에서 보았던(saw) 그 별”(보아 왔던이 아님)이라고 말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왔지만 들을 인도한 것은 별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통치자 메시야 탄생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체(光體)들이 있어서 낮과 밤을 나누고 표적과 계절과 일자(日字)와 연한(年限)을 나타내는 /표가/ 되라.](창1:14). 별은 그들이 믿었던 믿음에 확신을 준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별을 보고 걷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 걷습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나오며 이스라엘에게서 한 홀(惚)이 일어나서 모압의 구석구석을 치고 셋의 자녀들을 다 멸하리로다.](민24:17). 동방의 지혜자들은 성경을 통해 지혜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일이 도적같이 그를 덮치지 않습니다.

동방의 지혜자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 계시느냐?] 그들은 부를 찾아, 명예를 찾아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꿈을 찾아 예루살렘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를 찾아 왔습니다. 이것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 하신 질문은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what seek ye?")였습니다. 그 때 요한의 제자들이었던 요한과 안드레는 “랍비여, 어디에 거하시나이까?”였습니다.(요1:38). 구약 성경에서 주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최초의 질문은 “네가 어디에 있느냐?”(창3:9)였습니다. 살인자 카인에게 하신 질문은 “네 동생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창4:9)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사람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아들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음이니라.](눅19:10).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인생의 배우자입니까? 집나간 똥개를 찾고 있습니까? 잃어버린 꿈을 찾고 있습니까? 누구라도 하나님을 찾아 나서면 만날 수 있습니다. [또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날 것이라](렘29:13). [너희는 만날 만한 때에 [주]를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부르라](사55:6). [[주]께서 이스라엘의 집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암5:4).

동방의 지혜자들은 무엇 때문에 메시아를 찾았습니까? 소원을 빌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어서 입니까? 그들의 동기와 목적은 순수했습니다.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2b). 마리아에게 경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들은 경배의 대상을 찾아 왔습니다. 별을 본 사람이 동방의 지혜자들 뿐이었겠습니까? 창공에 떠 있는 메시아의 별은 누구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찾아 나선 사람은 이들 뿐이었습니다. 정작 유대인들 가운데는 누구도 이 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별을 보고 바로 출발했다면 바빌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4개월의 거리였습니다. 에스라 7:9을 보십시오. [이는 그가 첫째 달 초하루에 바빌론에서 떠나 올라오기 시작하여 그의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그 위에 있으므로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렀음이라.](스7:9). 동방의 지혜자들이 별을 보고 출발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이 최소한 4개월 정도 소요되었다면 예수님이 계신 곳은 말구유가 아닌 어느 누구의 집에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에서 이 땅에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동방의 지혜자들은 그런 하나님을 찾아 경배하러 왔습니다.

이 땅에 약속된 메시아가 오셨다는 소식은 기쁨과 흥분에 휩싸일 특종이요, 좋은 소식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헤롯왕이 이 일들에 대하여 듣고 온 예루살렘과 더불어 불안해하더라.(he was troubled)](3). 예루살렘의 왕실에서 자신이 아닌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헤롯을 상상해 보십시오. 가장 강력한 정적이 등장한 것입니다. 헤롯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예루살렘 시민들은 왜 당황합니까? 자신들의 소망이며,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아의 탄생 소식에 왜 당황합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당장 내일이라도 오신다면 사람들은 기뻐하겠습니까? 불안해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해 할 것입니다. “벌써 오시면 안되는데, 아직 오시면 안되는데.” 걱정하시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 긴박한 재림의 소식은 근심과 불안에 불과할 뿐입니다. 주님은 믿음이 없는 모든 사람에게 불안거리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으로 인해 자살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 인해 심하게 울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으로 인해 말에서 떨어지고 눈이 멀어야 했습니다. 성도들은 예외 없이 예수님으로 인해 무엇인가 trouble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한 가지 심각한 trouble이 있었습니다. 헌신과 결단의 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만약 헌신하게 되면 주님께서 나를 저 아프리카나 오지로 가라고 하지 않을까 망설여져 도무지 헌신을 결단할 수 없었습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평생동안 하나님께 코 꿰어 살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결국 몇 년을 미적거리다 겨우 헌신을 했는데 매우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기 전까지 갖지 못했던 평안도 가졌지만 전에는 전혀 가지 못했던 고민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 이슈나 토론하고, 성경 번역이나 교열, 책을 번역하고 글을 쓰는 것, 문서 선교, 성경 학교 등은 언제든지 welcome! Lord. It's my job. 이것들은 하나님의 뜻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거리의 부랑자들이나 오지 선교, 산지에 가서 맨주먹으로 부딪혀야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면 솔직히 아찔했습니다. 저는 가끔 제가 미국이 아니라 멕시코나 제가 전혀 모르는 곳에 사는 교포들이 개척 교회를 하겠다고 나를 초청했다면 쉽게 Yes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 완전하게 헌신할 때까지 제 안에는 헤롯과 같은 trouble이 늘 있었습니다. 제가 주님 앞에 나의 뜻을 펼쳐놓고 간구하던 기도 제목을 다 거두어 들이고,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구하고 그것들을 행하리라 결심하고 헌신한 후에야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평안하십니까? 아니면 알지 못하는 불안과 소란이 내 안에서 끊이지 않습니까? 구원받지 못한 분은 구원을 받아야 평안이 찾아 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완전한 헌신이 있어야 주님의 평안이 찾아옵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십시오.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이와 같이 행하리라. 오 이스라엘아,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할 것인즉 /너는/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할지니라.](암4:12).

4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그가 모든 수제사장(首祭司長)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함께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나겠느냐고 다그쳐 물으매] 헤롯은 지체하지 않고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탄생한 것은 이미 기정 사실이고, 문제는 어디서 태어났느냐?는 것입니다. 동방의 지혜자들이 물었던 것과 헤롯이 물은 것은 표면적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둘 다 “메시아의 탄생 장소”에 대해 알고 싶어한 것은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동방의 지혜자들은 그분을 경배하려고 물었고, 헤롯은 죽이기 위해서 물었습니다. 둘 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믿음이 있었고, 둘 다 성경을 통해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둘 다 같은 믿음의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잘못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얼마든지 성경을 악용할 수 있고, 믿음의 가식을 부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질문과 거기에서 얻은 해답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답을 해주는 수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이 지닌 성경 지식은 그들을 구원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탁월한 성경적 실력을 보여 주었지만 그들의 인격과 삶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누구에게도 감화를 주거나, 증거의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성경 실력은 단 한 명의 회심자를 얻지 못했고, 그들의 설교는 단 한 명의 영혼도 소생시키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7:29과 마가복음 1:22을 보십시오. [이는 그분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음이더라.](마7:29).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깜짝 놀라니 이는 그분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셨음이더라.](막1:22). 우리는 성경 실력 그 자체가 매우 좋은 것이란 사실을 알지만 그것만으로 족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나, 우리 주변에서나 얼마나 자주 목격하는지 모릅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지혜자들에 속합니까? 헤롯과 같습니까? 아니면 서기관들과 같은 부류입니까?

5,6절을 보시고 요한복음 7:27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르되, 유대의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대언자를 통하여 이렇게 기록하신바, 유다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네가 유다의 통치자들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니 이는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임이라, 하셨음이니이다, 하매] 이렇게 똑똑하던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은 막상 예수님이 설교하실 때, 예수님을 믿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더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며 또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니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나](요7:27,28). 이런 것을 고의적 무지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된 말씀들을 다 알면서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말한 뒤에는 “현재 완전한 성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들의 후예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부활, 재림의 교리를 알면서도 모른다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죽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천년 왕국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있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성경을 들고 이런 고의적 무지 가운데서 있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7,8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헤롯이 은밀히 지혜자들을 불러 그 별이 나타난 시간을 부지런히 묻고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어린아이를 부지런히 찾아보고 찾거든 또 내게 말을 전해 주어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하니라.] 별이 나타난 시간과 이들의 여행하는데 걸린 시간을 합치면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나이를 알 수 있습니다. 많이 성화들이나 영화들에서 동방 박사들이 구유간에서 마리아에게 안긴 예수님께 보배합을 바치는 것처럼 그리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과 많이 다릅니다. 헤롯은 시각을 자세히 묻고 나서 “아기”라고 말하지 않고 “어린 아이”(young child)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간이 상당히 흘렀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또 한 가지 알 수 있는 영적 교훈은 헤롯이 지혜자들을 은밀히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는 거짓말일지라도 감히 공개적으로 그에게 경배하겠다고는 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대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앞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를 경배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신 멀리 동방에서 온 지혜자들에게 자신의 신앙심과 진실성을 보이기 위해 술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9,10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왕의 말을 듣고 떠나가더니, 보라,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어린아이가 있는 곳에 멈추어 서 있으매 그들이 그 별을 보고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성경은 분명히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별은 동방에서 보였고, 한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예루살렘 하늘에서 보였던 것입니다. 별이 현자들을 인도한 것은 동방에서부터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부터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였습니다. 이 거리는 약 10마일 정도입니다. 별은 10마일 정도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처음에 동방에서 보았을 때보다 지금 이들은 더 기뻐합니다. 처음 볼 때보다 다시 볼 때가 더 기쁜 것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찾아 나섰던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에게 왔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처음에는 단순한 계기로 믿었다가 점점 믿음 생활을 해 나가면서 더 분명한 증거와 체험과 말씀을 얻음으로써 더욱 기뻐하게 됩니다. 동방의 지혜자들이 동방에서보다 지금 훨씬 더 깊고 강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누구나 주님을 찾아 나선 사람은 궁극적으로 주님과의 깊은 인격적 만남을 갖게 됩니다. 장차 우리는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얻게 될 기쁨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 보십시오.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 그 어린아이가 자기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이에게 경배하고 자기들의 보물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乳香)과 몰약(沒藥)을 선물로 드리니라.] 동방의 현자들은 말 구유간으로 들어 간 것이 아니라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에는 아기가 아닌 어린아이가 마리아와 함께 있었습니다. 13,14,20,21절에 계속해서 어린아이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 이미 예수님이 탄생하신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절에서 어린아이란 말이 항상 어머니 마리아란 말보다 먼저 나옵니다. 이는 마리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그 순서에까지 섬세하게 개입하심으로 마리아 숭배를 처음부터 차단하고 있습니다. 동방의 현자들은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한 것이 아니라 그냥 어린아이로 자라나신 예수님에게 경배하고 보물함을 열어서 선물을 드렸습니다. 이 보물은 하나님께서 마리아와 요셉에게 주신 자녀 양육비입니다. 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가서 산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인해 헤롯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서 기거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언급된 3가지 보물은 특별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황금은 세계 만국의 공통 화폐입니다. 어디서나 황금은 최고의 가치로서 유통됩니다. 황금은 왕에게 바쳐지는 선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이는 물질적으로 영적으로나 최고의 가치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하는 선물입니다.

유향은 제사장직과 연관이 있습니다. 특히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유향입니다(계8:3-5).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쉼없이 기도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몰약은 본래 관에 넣는 방부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내가 일어나 나의 사랑하는 이에게 문을 열어 주니 몰약이 내 손에서, 달콤한 냄새를 내는 몰약이 내 손가락에서 자물쇠 손잡이로 떨어지는도다.](아5:5). 몰약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처음받는 선물인 동시에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받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합니다(막15:23).

1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꿈에 하나님으로부터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떠나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가니라.] 꿈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주 사용하시는 계시의 수단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혜자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빛을 따라 걸었습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걸음을 확증했습니다. 셋째, 말씀을 듣고 나서 의심이나 또 다른 질문없이 순종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다시 빛을 주셨습니다. 12절을 보면 그들은 주님을 뵙고 “다른 길로”(another way) 돌아갔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갑니다. 인생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동방의 지혜자들처럼 예수님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은 더 이상 말구유에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더 이상 십자가 위에도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무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교회 성전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신비한 체험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뜨거운 가슴속에 계시는 분도 아닙니다. 주님을 찾아 떠나려면 먼저 성경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화를 걸기만 발신자 추적을 통해서 그 사람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 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그 말씀하시는 분이 어디 있는지 금방 알아 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와 하나님이 송수신 할 수 있는 유일한 책입니다. 동방의 지혜자들도 다니엘서를 통해 예수님의 탄생을 알았듯이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방의 현자들은 예수님을 찾는데는 기록된 말씀과 성경을 아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보다 기록된 말씀에 더 많이 의존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전해주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고넬료에게 주님은 직접 계시를 줄 수 있었지만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아나니야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디오피아의 내시는 성경을 읽었지만 주님은 빌립을 통해 복음을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을 통해 부지런히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한 곳을 정확히 안 사람은 동방의 현자들, 서기관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헤롯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경배한 사람은 현자들뿐이었습니다. 마음이 비뚠 사람이 아는 성경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동방의 지혜자들과 같은 인생의 진지한 질문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일생동안 trouble이 생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은 지금 이곳에만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같이 2:2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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