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말씀


제목: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 요한복음 1:14
요절: 요한복음 1:14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절기를 통해 우리는 성경에서 주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과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우리의 신앙 생활 역시 참된 목적을 상실한 의미없는 종교 행위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성탄절은 캐롤송을 부르고,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노는 휴일이 되었지만, 우리는 성탄절이란 절기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깊이 상고해 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죄의 대속물이 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신을 입은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이루셔야 할 일들은 육신을 입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신이 되셔야만 했습니다. 히브리서 10:5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이르시되, 희생물과 헌물은 주께서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10:5).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 가운데 죽음을 위해 예비되었고, 죽기 위해 준비된 유일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신 주님의 목적은 십자가 위에서 모두 성취되었고 끝이 났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죄를 위한 희생물이 필요 없고, 절기가 필요 없습니다. 성전이 필요 없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모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강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연약함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우리의 연약함을 감당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으심으로 자신이 지으신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길 수 있게 되셨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단지 먼지(흙)에 지나지 않는 자신의 피조물인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는 유일한 한 가지 방법은 육신을 입으시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병자가 되어 보기 전에 병자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병자를 이해하고 그 병자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서 스스로 자원해서 병을 가져 보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병원에서 자원 봉사하며, 환자들이나 노약자들을 돌보는 헌신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접했지만 스스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병을 자신의 몸에 심어 보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애완용 개를 좋아하고 동물들을 끔찍히도 사랑하는 동물애호가라 할지라도 자신이 동물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동물 애호가이면서 윤회를 믿는 불교 신자라 할지라도 내가 다시 태어날 때는 개가 되고 싶다, 지렁이가 되고 싶다고 공양 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인의 모습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죄가 되시고, 저주가 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너무나 관계없는 일들을 이루시기 위해 주님은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예화) 데미안(1840-1888) 신부는 하와이의 모로카이 섬에서 문둥병자를 위해 일생을 바친 분입니다. 모로카이 섬에는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된 곳인데 인생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고 사납기로 유명한 곳 이였습니다. 데미안이 사랑을 가지고 찾아갔으나 아무도 그의 말을 믿고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을 사랑하신다고 말하면, 문둥병자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우리를 이렇게 나병에 걸려 죽게 하시느냐고 데미안에게 빈정대었습니다. 결국 데미안은 하나님께 자신도 저들처럼 나병이 들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데미안이 면도를 하려고 거울을 보다 얼굴에 반점이 피어나는 자신을 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 나병이 걸리게 해주시다니요"하고 기도했답니다. 그리고 나아가 "형제들이여 이제 나도 당신들처럼 나병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며 나도 그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의 육체가 어떻든지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이 깃들 수 있는 아름다운 영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도하여 많은 병자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모로카이섬에 평화가 찾아오고 삶의 소망을 불어 일으키고 자살자가 없어지는 일들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이유가 바로 이런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입니다. 죄에 빠진 벌레만도 못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은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로마서 5장 5절부터 10절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가 약할 때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원수일 때, 즉 조롱하고, 핍박하고, 은혜도 알지도 못하는 자들 일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히브리서 5:2, [그가 무지한 자들과 길에서 벗어난 자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음은 자기 자신도 연약함에 싸여 있기 때문이라.](히5:2). 히브리서 4:15, [이는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이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라.](히4:15).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러나 육신을 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형태나 주의 천사의 모습으로 잠깐씩 거하셨지만, 육신이 되심으로 먹고 마시고 자고 시험을 받으시는 온전한 인간으로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육신을 입으신 주님께서는 삶의 본으로, 말로, 행동으로 모든 면에서 직접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복음서를 통해 육신을 입으신 주님의 행적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전형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지 않으셨다면 절대로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자신이 온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셨습니다. 첫째,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사람의 아들이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고 왔음이라](마18:11), [이는 사람의 아들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음이니라](눅19:10). [...이는 내가 의로운 자를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음이라, 하시니라.](마9:13b). 성탄의 의미는 선물을 우리끼리 선물을 나누는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파함으로서 죄인들을 향해 죽은 양심을 일깨우고, 그들의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하는 귀를 열어 주는데 있습니다. 선물 보따리를 가득 실은 순록의 마차가 설원을 달리는 산타의 모습이 아니라 복음을 들고 산과 강을 건너며, 거리마다, 집집마다 외치는 그런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성탄절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전령들입니다.

둘째,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탄생은 성경의 미리 말씀하신 바 된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대언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을 주님은 자신의 몸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廢)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성취하러 왔노라.](마5:17). 성탄의 의미는 인류는 더 이상 율법의 저주아래 있지 않다는 구약의 종결이요,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지 않으시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구약의 예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요3:16). 세상에 오신 주님은 어떻게 율법을 성취하셨습니까? 몸소 사랑을 실천하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주님은 자신의 몸으로 친히 율법의 저주 아래 내어 주셔서 모든 저주를 감당하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마귀는 우리에게 성경의 기록된 율법을 행하지 않는다고 욕하거나 저주할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인해 우리를 저주하시거나 심판하실 수 없습니다. 영은 십자가에 못박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몸을 입으신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힐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이유는 바로 자신의 몸으로 율법의 저주를 갈무리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손으로 쓴 규례들 곧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골2:14).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율법의 저주와 심판을 온 몸으로 감당하기 위한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이 출현한 날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사랑에 빚진 자들이요, 이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셋째, 검을 보내러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누구든지 이 말씀을 통해 영이 거듭나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칼입니다(엡6:17). 이 칼은 전쟁을 치르는 군사들에게 지급되는 칼이며, 원수를 무찌르는 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선 날카로운 칼입니다(히4:12). 이 칼은 우리의 입에서 나갑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칼을 감춘 칼집이요, 우리의 입은 칼이 쏟아져 나가는 출구입니다. [내가 땅에 화평을 보내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보내러 왔노라.](마10:34). 주님은 칼을 주러 오신 목적에 걸맞게 가는 곳마다 영적 전투를 수행하셨습니다. 그 전투의 절정은 십자가 위에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성령의 검은 모든 것을 갈라 버리고 단절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죄를 끊어 버리고, 죄인들을 끊어 버리고, 세상을 끊어 버리고, 육신을 끊어 버리는 칼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말씀이 풍부히 거하게 하여 세상에 그것을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의 대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마귀를 대적해서 싸우셨습니다. 광야에서 사탄을 삼진 아웃 시켜 버렸습니다. 가는 곳마다 더러운 영들과 마귀들을 몰아내셨습니다. 말씀의 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 주셨고,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넷째,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사람의 아들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고 왔음이니라.](막10:45). 마땅히 섬김받아야 할 하나님께서 도리어 섬기고자 하십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을 섬기는 법은 자신의 신분을 가장하거나 낮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섬기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섬기기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일생 하나님을 섬기셨고, 제자들을 섬기셨고,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섬기셨습니다. 섬김 받기만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섬기는 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가장으로서 가족 구성원들을 섬기십시오. 직장의 상사로서 부하 직원들을 섬기십시오. 먼저 교회 나온 신앙 선배로서 후배들을 섬기십시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며 주님은 자신이 온전히 죄인들을 섬기셨을 뿐만 아니라 남은 생명마저 속죄 제물로 내어놓으심으로 섬기는 일을 다 마치셨습니다. 성탄의 의미를 생각할 때 우리는 섬기는 주님을 본받아 섬기는 종으로서의 마음 자세를 새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음이니라.](요6:38). 주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것은 이 땅에 자신이 세운 어떤 뜻을 펼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왔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내게 주신 모든 사람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이것이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켜 세우리라, 하시니라.](요6:39-40). 우리는 성탄의 의미를 묵상할 때, 이 세상에서 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후 하나님을 자신의 야망과 출세, 목적을 성취하는 든든한 후원자나 도우미로 전락시켜 버리고 맙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 생활을 통해, 믿음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신앙인 줄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요, 의지요, 결심입니다. 히브리서 10:7,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바와 같이)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하였노라, 하시느니라.](히10:7). 우리는 이번 성탄을 통해서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 역시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요, 행동의 동기(motivation)가 될 수 있도록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10,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여러분은 주님의 제자입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가 나의 기도 제목이 되도록 하십시오. 주님은 이 땅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자신의 형제요, 자매라고 칭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50, [이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 곧 그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기 때문이라, 하시더라.](마12:50). 우리는 모두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주님의 형제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아직도 자신의 뜻을 구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번 성탄절의 휴일들을 통해 이런 문제를 깊이 묵상하고 삶의 진로를 새롭게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탄생에서 죽음의 그 순간까지 철저히 아버지의 뜻만을 구하셨고, 순종하셨습니다. [조금 멀리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26:39). 주님이 보여 준 이 본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주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생명의 근원이시고 창시자이신 하나님은 절대 죽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으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시는 것입니다.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성육신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곱째, 주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육신을 입지 않으시고도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심으로 세상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려고 이 세상에 왔으니 이것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눈멀게 하려 함이라, 하시매](요9:39). 이 세상은 아담 이후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공중 권세 잡은 자인 마귀가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엡2:2). 이 세상은 마귀의 왕국입니다(요18:36, 고후4:4). 그러나, 주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이 세상의 왕국에 대한 심판은 선고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현 세상을 악한 현 세상이라고 심판하셨습니다(갈1:4, 딛2:12). 이 세상을 불살라 없애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벧전3:7). 주님의 선고는 떨어졌으며, 집행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탄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 대한 육신의 애착을 모조리 버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심판하신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저주받은 물건을 귀한 보물인양 숨기는 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이 세상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가치관 역시 그러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신과 함께 그 애착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여덟째, 주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는 마귀가 처음부터 범죄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마귀의 일들을 멸하려 하시는 것이라.](요일3:8).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귀는 살인자입니다. 마귀는 사망의 권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이유는 이런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마귀를 마음대로 다루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일들을 충분히 멸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마귀를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육신을 입으시고 오셔서 마귀를 처리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마귀에게 속한 자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기 위해 천군 천사들을 끌고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가장 천하고 약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여자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주님께서 저 무시무시한 마귀를 이기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입니다. 심지어 마귀조차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능자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입니다.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자를 멸했습니다. 육신을 입으신 것은 바로 이런 죽음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히2:14). 우리는 이번 성탄절을 통해 성육신 하신 주님,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목적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귀의 축제일이요, 세상의 축제일인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마귀의 일을 멸하고,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을 기억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연약함이 세상의 강함을 이기고,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세상의 지혜를 이깁니다.

아홉째, 주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이것은 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요12:46).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어둠을 비추는 빛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빛을 통해 사물의 모양과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빛을 통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는 어둠만 존재할 뿐 그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어떤 모습인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시기 전에 우리의 속은 우리 자신도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무엇이 있는지, 어떤 모습인지 자신도 자신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오심을 통해 세상의 어둠은 드러나기 시작했고,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악함을 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빛으로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밝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소망을 갖지 않습니다. 빛으로 내 안에 들어오셨기 때문에 나 자신이 얼마나 죄덩어리인지, 육신적인지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TREE에 있는 조명등이 아니라,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탄의 의미가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밝히신 성경적인 성탄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고, 우리들의 삶의 지표로 삼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제별(글) > 크리스마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마누엘  (0) 2005.07.04
크도다, 경건의 신비여  (0) 2005.07.03
말씀이 육신이 되어  (0) 2005.07.03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0) 2005.07.02
크리스마스 이야기(1)  (0) 2005.07.02
신약 성경의 최초의 질문  (0) 200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