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벧후 1:4
위정자들이나 조직의 리더들은 저마다 구성원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매우 강조합니다. 모임에 참여하라, 일에 동참하라, 함께 하라,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독려하는 일은 어느 회사나 어느 조직이나 거의 같습니다. 교회 역시 모임이 많고 성도들의 참여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자발적인 참여를 원합니다. 구약에서 유대 남자들은 율법적으로 일 년에 세 번씩 성전으로 모여야 했습니다. 이것은 의무였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고, 강제 조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이런 율법이 없습니다. 대신 [모이기를 힘쓰라](히10:25)는 권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유기체적인 모임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지체 의식]이라고 말합니다. 서로를 섬기기 위해서, 돌보기 위해서, 덕을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강한 지체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방관자가 아닙니다. 모임에 단순이 가담하는 참가자가 아니라 주인 정신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는 참여자들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지 않고 참여를 꺼리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들은 자신만을 위해 살고자 똑똑한 척 하지만 가장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참여하는 사람이 누리는 은혜와 특권은 방관자들이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이 잔치에 불러도 오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일이 너무 바빴습니다. 그들은 노느라고 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만 챙기느라고 오지 않았습니다. [다들 하나같이 사양하기 시작하여 첫째 사람은 이르되, 나는 땅을 사서 반드시 나가 보아야 하니 원하건대 나를 양해하라, 하고 다른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하러 가니 원하건대 나를 양해하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므로] (눅14:18~20). 이것이 오늘날 이곳 교회의 모습입니다. 사람마다 모두 자기 일이 있고, 사연이 있습니다. 오라고 부르는 것이 미안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이해하거나 동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진노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디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단지 교회라는 조직체에 가입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교인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놀라운 일들에 참여하게 하시고, 동참케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참여하게 한 것들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첫째,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곧 /주께서/ 이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사 너희로 하여금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느니라.](벧후1:4). 성도들은 하나님의 본성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은 죄의 본성에 따라 살았고, 거듭난 새 사람은 하나님의 본성에 따라 삽니다. 믿는 자라면 새로운 성품이 형성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타고난 성품과 육신적 기질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만들어진 새 사람, 새 마음, 새 성품을 가지고 삽니다. 성질이 더럽다, 악하다는 등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성품, 주님이 새롭게 창조해 주신 성품을 가지고 살면 그는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삽니다. 반대로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교양 있고, 세련되고, 고상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더럽고, 추한 삶 밖에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철학적인 것, 종교적인 것들을 잘 받아들이지만 영적인 것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적하고 배척합니다.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 까닭은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요,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 까닭은 이러한 것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죄들에 속한 몸을 벗어 버리고(골2:11), 하나님을 따라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 받은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곧 우리의 성품입니다.
둘째, 성령님께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는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님께 참여한 자가 되고](히6:4).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성령 침례를 받았습니다. 성령 속으로 깊이 잠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령님의 전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활동하시며, 열매를 맺으시며, 일을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새 생명을 통해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성령님께 참여함으로 성령의 인도함, 성령의 빛 비추임, 성령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
셋째,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처음에 가진 확신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들이 될 것임이라.](히3:14). 그리스도인이란 문자적 의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참여하며 모두가 한 지체가 됩니다. 한 지체라면 다툼이나 분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빵이요, 한 몸이며 또 우리가 다 그 한 빵에 참여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 육체를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희생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냐?](고전10:17-18). 그리스도께 참여함으로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신성과 능력과 모든 것이 마치 뿌리에서 가지로 공급되는 물과 양분처럼 흐르게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 신비의 영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골1:27). 받은 복의 말씀을 믿고, 진리를 붙든 자들은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가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 주님은 모든 일을 행하십니다.
넷째,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형제들 곧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아,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히3:1).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성도로 부르셨고, 제자로 부르셨고, 고난의 동참자로 부르셨습니다. 영광의 상속자로 부르셨습니다.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신 부르심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물과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기 때문이니라.](롬11:29).
다섯째, 우리는 거룩함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이를 위해서 주님은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은 성도들이 거룩하게 살지 못할 때 주님은 징계하시고, 훈련하십니다. 주님은 강하게 매질하십니다. 이런 예는 허다합니다. 징계와 책망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사랑의 기독교”는 성경적 기독교가 아니라 유사 종교일 뿐입니다. 사랑과 은혜만을 말하고 징계와 심판, 하나님의 두려우심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설교는 거짓 설교입니다. [진실로 그들은 잠시 자기들이 기뻐하는 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그분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하시나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히12:10). 징계가 없다면 그는 사생아일 수 는 있어도 하나님의 아들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겪는 모든 어려움은 거룩함에 이르는 길이요, 연단과 시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길 힘을 주십니다.
여섯째, 우리는 영광에 참여할 자들입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면하노니 나 역시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또한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벧전5:1).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살 곳, 우리의 변화된 몸, 우리가 받을 상급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나타날 영광의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들입니다. 이 일은 미래에 있을 일이지만 그 결정은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으로, 성령으로 산 사람들과 고난에 동참한 자들은 영광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육신의 정욕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일곱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기뻐하라. 이것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때에 너희 또한 넘치는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4:13). 고난에 참여했다는 것은 마치 우승컵을 받기 위해 훈련에 참여한 선수들의 모습입니다. 국가 대표 선수로 소집되었다는 것은 영광을 위해 고난에 동참한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롬8:17). 고난의 목적은 넘치는 기쁨으로 즐거워하기 위한 것입니다. 구원은 은혜의 선물이지만 영광은 행위의 보상입니다(골3:24). 고난 받는다는 말에 너무 떨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은 고난 중에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고, 평안이 함께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롬5:3). 환난도 기뻐한다고 합니다. 전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할 것들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당하는 어떤 환난에 기쁨과 평안이 없다면 그것은 악을 행하다가 당하는 고난(롬2:9)이거나 육신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롬8:6)이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벧전3:17). 고난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데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제자들의 혼을 굳건하게 하고 믿음 안에 거하라 권면하며 또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하리라 하더라.](행14:22). 환난 중에 인내하게 됩니다. [소망 중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늘 간절히 기도하고](롬12:12). 환난 중에도 기운을 낼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주신 평안 때문입니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환란이 없다면 여러분이 평소에 언제, 어디서 그리스도의 평안을 체험해 볼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주신 평안은 환란 때에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을 때 여러분은 낙망하지도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마십시오. 자신의 힘으로 이기려고도 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이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선을 행하는 가운데 자기 혼을 하나님 곧 신실하신 창조{주}께 맡겨 지키시게 할지어다.](벧전4:19).
여덟째,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이는 신실한 종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선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것에 신실하였은즉 내가 많은 것을 맡겨 다스리게 하리니 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25:21,23).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신실한 청지가가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몇 가지에는 참으로 신실해야 합니다. 불의한 맘몬에도 신실해야 하고, 남의 것에도 신실해야 합니다(눅16). 무엇보다 주님이 맡기신 것들에 신실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길지어다.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할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전4:1-2).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용인술, 인재 등용의 원칙과 기준은 오직 하나 ‘신실함’입니다. 똑똑함이나 재능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택하시고, 귀한 것을 맡기시는 것은 ‘신실함’입니다. *[신실하라.]-참조할 것.
아홉째, 주님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주신 약속들을 붙들고 있습니까? 저는 어떤 분이 일제 시대 때에 국가가 발행한 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채권을 골동품으로 보관하는 줄 알았는데 문의를 해 보았더니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라가 바뀌고, 체제가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런 것은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인 줄 알고 휴지처럼 버렸다가 후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국가의 약속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유효하듯이,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토록 유효합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약속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이 /신비/는 곧 복음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라.](엡3:6). 여러분이 교회에 참여한 것은 단지 교인이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주님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감추어져 온 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심이라.](엡3:9).
열 번째, 사역자들은 소망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아니면 전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냐? 정녕 우리를 위하여 이것을 기록하셨나니 밭을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소망을 가지고 타작하는 자는 자기의 소망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마땅하리라.](고전9:10).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소망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그리고 소망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열한 번째,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인내에 동참하는 동참자입니다. [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환난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로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계1:9). 주님은 여러분에게 환난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인내에 동참하라고 부르십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넘치도록 수고하는 것, 형제들의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 이런 것에 우리가 동참해야 합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렀어도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한 것을 채우려 함이었느니라.](빌2:30). 우리는 모두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울 고난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고난들 뒤에 있는 것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열두 번째, 첫째 부활에 참여자들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이들을 다스리는 권능이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계20:6).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이 한 번 죽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천년 동안 주님과 함께 이 땅을 통치합니다.
☜ 암송할 말씀: 벧후 1:4, 벧전4:13
☜ 생각해 볼 문제:
- 우리는 무엇에 동참한 사람들인가?
- 주님이 우리를 불러 동참케 한 것들에 대해서 논해 보시오.
- 앞으로 우리가 참여하게 될 것들이 무엇인가 말해 보시오.
/예언적인 것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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