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벧전1:17
성도가 경건함과 거룩함에 이르는 길은 주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주와 주의 말씀에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는 성경을 아무리 오래 공부하고 여러 번 읽었다 하더라도 결코 진리의 지식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항상 배우나 진리를 아는데 이르지 못하는 자](딤후3:7)들이 나옵니다. 왜 그런가? 머리가 나빠서인가? 전혀 아닙니다. 무식해서도 아닙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시작이 잘못되었거나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생명이 탄생하지만 경건과 거룩함에 이르는 시작, 영적 지식의 시작, 세상 지혜가 아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의 시작은 주를 두려워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거늘](잠1:7a).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거룩한 것들을 아는 것이 명철이니](잠9:10). 주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는 아무리 배워도 영적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달변을 펼친다 해도 그는 무식한 자이지 영적 지식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이것저것 말할 수 있고, 자신을 변명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한 수 가르쳐 줄 수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정작 지식과 지혜에 전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어떻게 압니까? 주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특징은 악을 미워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코 악을 두둔하거나 변호하지 않습니다. 악인이나 죄인을 갈보리 십자가 이외의 어떤 것으로 위로하거나 동정하지 않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곧 악을 미워하는 것이니라.](잠8:13a). 성경은 거듭 말합니다. [네 눈으로 보기에 지혜롭게 되지 말지어다. [주]를 두려워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3:7). 참으로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야 말로 지식, 지혜, 명철의 첩경이요, 악을 미워하고 떠나는 길입니다. 주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악을 버리지 못하며, 떠나지도 못합니다. 적당히 육신적인 것을 문화생활을 즐긴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영화 관람, 포커, 고스톱, 경마, 복권, T.V 드라마, 연애 소설, 만화, 무협지, 인터넷 오락, 카지노, 흡연, 음주, 가무 등에 대해서 별로 죄의식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문화생활이요, 취미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 결코 주를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죄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주를 두려워함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8). 악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반면 성도들은 언제나 주를 두려워함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주를 두려워함이 없는 성도라면 그는 악인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성도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모든 죄인들의 종착역이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그들의 눈 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악을 떠나게 됩니까? 은혜와 사랑을 아무리 강조해도 그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술 · 담배 · 마약 등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주를 두려워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긍휼과 진리로 불법이 정결하게 되며 [주]를 두려워함으로 사람들이 악을 떠나느니라.](잠16:6).
오늘날 신자들이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봅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 세속화와 타협하는 것을 봅니다. 이유는 주를 두려워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하는 사람들의 삶이 왜 더러운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신학교를 졸업했다 할지라도 주를 두려워하는 법을 결코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작은 모임의 리더를 하고, 순장, 목장, 구역장 등의 직함을 가지고 성경 교사를 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실제 삶에서 경건의 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내면에 경건의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권능의 말씀을 믿고 공부하지만 실제로 권능이 전혀 없습니다. 죄를 이기는 능력이나 육신을 이기는 능력,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고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것입니까? 성경은 믿음으로 공부해야 하는 책인 동시에 두려움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 책입니다. 설교를 오래 듣고, 따로 성경 공부를 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그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있다고 하는데 왜 삶의 변화가 없고, 열매가 없습니까? 그는 두려움으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온유함과 더불어 두려움으로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오직 너희 마음 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며](벧전3:15).
성경 공부뿐만이 아닙니다. 성도는 일을 할 때도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두려움 가운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들아, 모든 두려움으로 너희 주인들에게 복종하되 선하고 부드러운 자들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벧전2:18). 우리는 회사 생활을 할 때 주를 두려워함으로 상관에게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존경심과 조직 문화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單一)한 마음으로 하라.](골3:22). 주인을 대하는 예절의 기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데서 나옵니다. 모든 순종의 기본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너희 자신을 낮추어 다른 이에게 복종하라.](엡5:21). 신하가 왕에게(벧전2:17), 부하가 상관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양들이 목자에게 순종하는 권위의 순복은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 때에 발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절과 교양과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 근원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에서 출발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현상이나 결과를 보기 전에 먼저 원인과 그 뿌리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권위에 대한 순복을 배우지 못한 자들이요, 반역자요, 거스르는 자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가 반드시 강조해서 가르쳐야 할 귀한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순종을 강조해서 가르치면서 순종의 근거가 되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이는 모래성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이 마음속에 은혜와 믿음을 가지는 만큼 주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경건한 두려움을 소유하십시오.
성도의 일생은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기본적인 자세는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공경하는 마음과 경건한 두려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시도록 섬길지니](히12:28). 마치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처럼 주님을 섬기는 자들은 주님을 거지로 만드는 자들입니다. 주님을 Caring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종과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주님을 어떻게 섬기는가를 배우지 못한 자들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자들은 반드시 주를 두려워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왕을 섬기는 신하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을 섬기는 종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물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를 섬기는 종들이 공경하는 마음과 경건한 두려움 없이 주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 역시 두려움과 떨림으로 완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완수하라.](빌2:12). 주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그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조차 의심이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안에서 밖으로 드러낼 구원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을 완수’(work out)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두려움과 떨림은 고사하고 은혜를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누구나 심판을 의식해야 합니다. 세무 감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이 거의 없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의 조사를 기뻐하는 시민은 거의 없습니다. 지은 죄가 없다면 무서울 것이 없다고 하지만 두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두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두려움 가운데 지내야 합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여기에 잠시 머물러 있을 동안을 두려움 가운데 지내라.](벧전1:17).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큼이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서 철저히 인식하고 배워야 합니다. 경건과 거룩함, 순결은 주를 두려워함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들을 가졌은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 아직 주님이 두려운 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 시간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에게 주님이 복을 베푸시는 일이 없습니다.
죄를 지은 자들도 회개하는 것을 보면 전혀 두려움이 없다. 마치 별로 대수롭지 않는 일을 한 것처럼 “친구, 미안하게 되었네!”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가볍고 태연스럽게 죄를 시인하고 회개하는 모습이 오늘날 교회 다닌다는 성도들의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을 회개라 할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죄짓는 자들은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라.](딤전5:20).
주를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불꽃같은 눈동자가 그대의 마음 속 생각까지 살피시고, 영의 무게를 달아 보시며, 내가 행한 모든 것들을 다 기록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주를 두려워하고 주의 말씀에 산천초목이 떨듯이 떠십시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 모든 것을 내 손이 만들었기 때문이라. 그것들이 지금까지 존재해 왔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오직 가난하고 영으로 통회하며 내 말에 떠는 자는 내가 보살피느니라.] (사66:2).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놀라운 복을 얻게 되지만 주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은 주님이 주시는 대부분의 영적인 복을 맛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명령이기 때문입니다.[[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하라. 야곱의 모든 씨야, 너희는 그분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이스라엘의 모든 씨야, 너희는 그분을 두려워할지어다.](시22:23). [온 땅은 [주]를 두려워하고 세상의 모든 거주민은 서서 그분을 두려워할지어다.](시33:8). 이것이 구약의 율법인 줄 압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에서는 한 층 더 강화되어 있습니다. 나는 수년 동안 성경을 배우기도 했고, 가르쳐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주가 다르게 성장하고 변하는데 비해 어떤 이는 몇 년이 지나도 좀처럼 가치관의 변화나 삶의 변화를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옵니까? 주를 두려워할 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때문입니다. 뭔가 독특한 것, 나만이 아는 듯한 지식들에는 환호하지만 삶은 엉망인 분들이나, 구원받기 전이나 구원받은 직후나 10년이 지나서도 똑 같다면 그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는 죽은 믿음의 소유자이거나 잠든 자입니다.
주를 두려워할 때 거기에는 영광스런 약속과 복이 있습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지혜와 지식이 네 시대에 확고해지며 구원의 힘이 되고 [주]를 두려워함이 그의 보배가 되리라.](사33:6). 주를 두려워함이 성도의 보배입니다.
① 주를 두려워할 때 하나님은 그의 길을 인도해 주신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 누구냐? 주께서 친히 택하실 길로 그를 가르치시리로다.](시25:12). 주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들이 금식 기도하고, 철야 기도하면서도 주의 인도함을 받겠다고 부르짖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찰 노릇입니다. 주의 인도함으로 구하려면 먼저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② 주를 두려워할 때 주님은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큰 자든 작은 자든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그분께서 복을 주시리로다.](시115:13). 복을 받고 싶다면 주를 두려워하라. 어떤 복이든지 받고 싶다면 그는 주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며 그분의 길들 안에서 걷는 자마다 복이 있나니 이는 네 손이 수고한 것을 네가 먹을 것임이라. 네가 행복하고 형통하리로다. ... 보라,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이와 같이 복을 받으리로다.](시128:1~4).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매일 복은 구하면서 주님을 전혀 두려워하고 있지 않다면 왜 응답이 없었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정의 복, 장수의 복, 재물과 명예의 복이 모두 주를 두려워함으로 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사람의/ 날들을 길게 하거니와](잠10:27a)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복을 원하고, 명예와 존귀를 원한다면 먼저 주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히 행하고 [주]를 두려워하면 재물과 명예와 생명이 오느니라.](잠22:4).
③ 주를 두려워하면 강한 확신이 생깁니다. 더 큰 믿음, 강한 확신을 원한다면 주님을 두려워하십시오. [[주]를 두려워하면 강한 확신이 있나니 그분의 자녀들에게는 피난처가 있으리라.](잠14:26).
④ 주를 두려워하면 사망의 올무들에서 벗어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사망의 올무들에서 벗어나게 하는 생명 샘이니라.](잠14:27). 주를 두려워함으로 생명의 길, 의의 길을 걷는다면 사망의 올무들에 걸리지 않습니다. 마귀는 길을 벗어나는 자들을 마귀의 올무와 사슬로(딤전3:7,딤후2:26) 묶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⑤ 주를 두려워하면 생명에 이르고, 흡족히 지내며 재앙을 당하지 않습니다. [[주]를 두려워함이 생명에 이르게 하나니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는 흡족히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리라.](잠19:23).
⑥ 확실한 기도 응답이 있습니다. [그때에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서로 자주 말하매 [주]께서 귀를 기울여 그것을 들으시고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과 그분의 이름을 깊이 생각하는 자들을 위하여 주 앞에서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3:16).
☜ 암송할 말씀: 벧전1:17, 사66:2
☜ 생각해 볼 문제:
-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 주를 두려워함으로 얻는 영적 복과 유익에 대해서 말해
보시오.
- 주를 두려워하라는 성경적 명령을 찾아 암송하시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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