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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부흥 90 - 65. 그리스도를 얻고
말씀: 빌3:7-9


오늘은 먼저 본문을 천천히   정독함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길뿐더러 참으로 모든 것을 확실히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3:7~9).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하나님께 여러 가지를 얻고 싶어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안, 주의 기쁨, 성령의 권능과 지혜, 하나님의 은혜 등등을 얻고 싶어 하며,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간절히, 뜨겁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무엇인가 더 큰 것,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소원으로 가득합니다. 은사를 사모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마치 호수를 곁에 두고, 샘이 곁에 있어도 물병에 들어 있는 물외에는 전혀 먹지 못하는 것처럼 물을 채워 주시고, 더 많은 물병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특정한 은사나 열매를 주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와 지식일 수도 있고, 병 고침이나 방언과 같은 표적적인 은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그리스도의 무엇]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체를 얻고자 하는 소원을 갖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방언의 은사를 얻고 싶어! 나는 신유의 은사를 얻고 싶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나는 드디어 소원하는 은사를 얻었어.”하며 기뻐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권능과 지혜를 얻고자 기도하고, 어떤 이들은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기도 합니다. 동기나 목적이야 어떠하든 간에 얻고 구하는 것은 가지가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주님께 무엇을 얻었습니까? 나는 축복을 얻었다. 나는 은사를 얻었다. 나는 의로움을 얻었다. 나는 죄 사함의 은총을 얻었다는 등의 여러 가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그런 것을 전혀 얻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를 얻었다”고 말하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무엇은 얻지만 그리스도를 얻지 못했다면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승리를 했다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도 하지만 그런 날이 몇 일이나 지속되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어떤 은사나 은혜, 원하는 어떤 복을 얻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얻는 길이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얻어야 하는 것, 가장 소중한 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은사나 복이나 은혜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Christ Himself)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무엇을 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 전체를 온전히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사상이나 생각이나 어록집이나 법규나 멋진 발명품이나 신성한 권능이 깃들인 어떤 물건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석가는 죽으면서 몸에서 나오는 사리라도 남겼지만 주님은 손톱하나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수의를 맡기시고, 요한에게는 못 박혔던 십자가를 고이 간직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누구에게 돈을 주신 것도 아니고, 귀한 선물을 남겨 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조각품이나 성전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우리 각자에게 자신의 생명 즉 자신을 주셨습니다.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으니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생명을 버리노라.](요10:15).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얻고 싶어 하는 모든 것들은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아들을 얻으면 다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들을 영접하고, 아들을 소유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이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무엇]이 아니라 [주님 자신(Himself)]입니다. 주님을 얻는 대신 주님의 무엇, 주님의 어떠한 것만 소유한다면 그는 여전히 잃어버린 혼이요, 구원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핵심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이것은 대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그가/ 친히(Himself)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도다, 하였느니라.] (마8:17). [친히]란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주님 자신”을 일컫습니다. [친히(Himself)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벧전2:24). 그리스도의 무엇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Christ Himself)이 우리를 대신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 그 자신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상,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인품, 예수님의 덕망,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 예수님의 감정, 예수님의 어떤 독특한 행위에 매혹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게 매혹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을 믿음의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했고,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빵이며, 생수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빛이요,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양들의 문이시며(요10:7), 예수님 자신이 선한 목자이시며(요10:11,14),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시며(요11:25), 예수님 자신이 참 포도나무(요15:1)이십니다. 예수님의 무엇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머리와 몸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유기체입니다. 나무는 뿌리만을 나무라고 하지 않고, 줄기만을 나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라고 말씀하실 때 포도나무는 뿌리에서 가지까지 전체를 다 일컬어 포도나무라고 합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의 일부입니다. 이목구비(耳目口鼻)나 사지(四肢)는 몸이라고 부르지만 머리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전부입니다.

때로 저는 오랫동안 능력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지혜와 명철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때로는 사랑이 넘치도록 기도합니다. 지금도 기도하는 중입니다. 어떤 때는 조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소유한 듯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며칠이 못되어 넘어지고, 몇 날이 못가서 좋았던 감정이 사라지고 없어져 버립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생수의 근원, 생명의 근원이요, 빛의 원천이신 주님 자신을 붙들고 그 분을 온전히 소유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주시는 무엇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님의 평안, 주님의 기쁨,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교하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가끔은 그런 것을 내 안에 소유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강대상에서 말씀을 전하고 내려와서 “함께 오늘 배운 말씀을 기초로 기도 합시다” 하면서 기도할 때 저는 적잖이 당황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추구했지만, 주님 자신을 기쁨으로 삼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모든 부족, 결핍은 주님 자신을 소유함으로 해결됩니다.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3).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권능, 그리스도의 지혜보다 그리스도를 권능으로, 그리스도를 지혜로 삼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고전1:24).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聖別)과 구속(救贖)이 되셨으니](고전1:30).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주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양이 선한 목자를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요, 어린 아이들은 훌륭한 부모가 있으면 모든 것이 족하듯이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얻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을 때에 맞게 채우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그 일을 행해 주시는 분이심을 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나는 믿음으로 고침 받았다”란 말과 “나는 그리스도에 의해 고침 받았다”는 말은 비슷해 보여도 결코 같지 않습니다. “믿음으로”(by faith)는 방법(how)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by Christ Jesus)란 말은 누구(who)에 대한 답변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마침내 믿음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방법을 찾습니다. ‘누구’를 찾는 대신 방법을 찾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HOW, WHAT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방법이 아니라 ‘누구’를 제시합니다. ‘내가 어떻게 병이 나을 것인가?’ 란 질문과 ‘누가 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가?’란 질문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누가?]란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란 답변으로 사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는 병이 들면 “나를 고쳐 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주님이 아니라 자신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믿음이 있다고 확신하거나 자신의 믿음으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성경은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믿음의 기도라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믿음의 기도]를 배우고, 드리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강한 믿음, 큰 믿음, 살아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 안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주님은 ‘울부짖는 사자 마귀’(벧전5:8)를 보내셔서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이 아무 것도 아님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된 줄 알았던 것들을 모두 붕괴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내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십니다. “육신을 신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요14:6)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빛이요, 생명이듯이 주님이 우리의 믿음이 되십니다(갈2:20).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안에 무엇인가를 부어 주시고, 통로로 삼으실 뿐입니다. 우리 자신 안에 무엇이 있는 줄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얻는 것! 그리스도 자신이 전부가 되십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중보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의 믿음, 우리 자신의 능력, 우리 자신의 의에 의지해서 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구할 뿐입니다. 능력은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다 그분 안에 있고, 그분을 통해서만 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아들로 불리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완전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줄 수 있는 그런 분이 되셨음을 말합니다. 완전하신 한 사람을 통해 인류의 모든 사람이 그 한 분을 영접함으로써 사람으로서 완전함으로 이룰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 들이면 누구나 완전한 한 사람을 모셔 들인 것입니다. 주님 안에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분을 통해서 누구라도 힘을 공급받고,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심장은 주님의 심장으로부터 필요를 끌어 씁니다. 우리의 육체적, 물리적인 생명은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어떤 자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단지 믿는 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이 바뀌어 버린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이제 우리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옛 생명이 새 생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차에 엔진을 바꾸어 끼워준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 자체를 새 생명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함으로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필요한 모든 것을 [사람의 아들]이신 그분 안에 있는 것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이후로 늘 한 가지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은혜와 기쁨과 평강이 넘쳐서 순교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가 어떤 때는 급격히 침체되어서 우울증이 걸린 사람처럼 힘이 없고 삶의 의욕도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성경을 읽지 않는 것도 아니고, 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사는 나의 삶이 이렇다면 일반 성도들의 삶은 어떨 것인가?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매우 평범한 진리 하나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지혜를 얻는 것을 추구하지 말고 그리스도 자신을 능력과 지혜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진리를 알려 주시기 위해 최근 얼마동안 참으로 극심한 침체 속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권능도 좋지만 하나님을 권능으로 삼는 것이 참된 영적 생활의 비결입니다. 이 진리는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 우리에게 드러난 신비의 진리입니다. [이것은 곧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에 관한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골1:26~27).

모든 능력은 여기서 나옵니다. 내 안에 주님이 사시고, 주님이 나의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이 진리를 선포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영혼에 받아들이듯이 몸에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A..B 심슨 목사님은 절망 속에서 이 말씀을 통해 힘을 얻은 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한 때는 축복을 구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구한다네. 한 때는 느낌을 구했지만 이제는 그분의 말씀을 구한다네, 한 때는 그분의 은사들을 원했지만 이제는 은사를 주시는 그분을 원한다네. 한 때는 치유를 구했지만 이제는 치유자 그분을 구한다네. 한 때는 고통스런 시련이었으나 이제는 완벽한 신뢰가 있다네. 한 때는 반쪽 구원이었으나 이제는 완전한 구원이라네. 한 때는 내가 주를 붙들었지만 이제는 주께서 나를 붙드신다네. 한 때는 표류하는 배였으나 이제는 항구로 향하는 든든한 배라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주님 자신이 우리의 힘이시요, 방패시오, 산성이시요, 요새시요, 망대시요,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심을 배웠습니다. 시편의 다윗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방패를 주시기를 구한 것이 아니라 방패이신 주님을 신뢰했고, 새 힘을 구하는 동시에 새 힘을 주시는 이이신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상급을 주시는 분이시지만 가장 큰 보상은 주님 자신이심을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주셨듯이 우리의 일생 역시 그러해야 합니다. 주님을 놓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요, 주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 암송할 말씀 :빌3:7-9, 골1:26-27

☜ 생각해 볼 문제 :

- 사람이 진정으로 소유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리스도 자신을 소유하는 것의 차이를 말해 보시오.
-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해 보시오.



쉽고 단순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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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