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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부흥 90 - 86. 타락(backsliding)이란?
말씀: 고전10:12


교회 내에서 믿음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나 직분을 맡은 사람들, 선교사나 부흥사나 목회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종종 완전히 타락하여 무신론자보다 더 형편없는 사람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다음에는 누가 떠날 것인가?”를 묻게 되고,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떠난 것이란 사실을 알 때 충격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 역시 타락할 수 있는 존재란 사실을 늘 기억하며 깨어서 주의를 해야 합니다. 타락이란 말은 킹제임스 성경에서 backsliding입니다. 뒤로 넘어지는 것, 뒤로 미끄러지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성도들이 자아 중심이 되고, 성경 중심에서 눈이 세상으로 돌아갈 때 그는 뒤로 미끄러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반이나 주님을 따랐고 배웠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모두 실족/타락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제자들이 모두 도망가는 그 장면을 봅니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마지막에는 저주하는 것을 봅니다. 구약을 통해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의 타락을 봅니다. 아브라함과 동행하던 롯의 타락을 봅니다. 바울과 동역했던 동역자들이 바울을 떠났던 것을 봅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해서 떠났다고 말합니다. 교회 내에도 타락한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후메내오, 알레산더 등을 비롯해서 디오드레베(요삼1:9)와 같이 사도 바울과 요한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동일한 믿음, 동일한 주님을 믿으면서 이런 일이 발생합니까? 마음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엄중히 경고합니다. [그런즉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할지니라.] (고전10:12). 아무리 위대한 성도라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쓰러지고 자빠질 수 있습니다.

시편 73편의 저자인 아삽은 자신이 타락할 뻔 했던 경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로 말하건대 내 발은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내 걸음은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사악한 자의 번영을 보고 어리석은 자를 부러워하였음이로다.] (시73:2~3). 시편을 지을 정도로 경건한 성도였던 아삽이 넘어지고 미끄러질 뻔 했던 이유는 ‘사악한 자의 번영과 어리석은 자’를 부러워하였기 때문입니다.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사람, 불의한 자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넘어질 수 있는 위험에 빠집니다.

오늘 우리는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 타락하게 하는 것들을 살펴보고 함께 경고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마음이 주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적 요인이 아니라 내적인 것입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솔로몬의 마음이 돌아서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나므로 [주]께서 그에게 분노하시니라. [주]께서 전에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왕상11:9). 세상에서 주님을 향해 마음이 돌아서는 것을 회개라 하고, 주님으로부터 세상을 향해 마음이 돌아서는 것을 타락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은 교회 내에서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조금 책망할 것이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음이라.] (계2:4). 첫 사랑을 버린 것 역시 타락입니다. 타락은 처음 사랑이 식어지거나 첫 사랑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타락의 전진 기지입니다.

둘째, 탐심입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골3:5). 아브라함과 함께 순례 길을 떠났던 롯이 왜 타락했습니까? 탐심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사의 종인 게하시는 왜 타락했습니까? 탐심 때문이었습니다. 아간이 왜 망했습니까? 하나님이 금하신 재물에 대한 탐심 때문입니다. 불의한 재물에 대한 탐욕이야 말로 아무리 좋은 교회,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과 동행한다 해도 타락을 막을 수 없습니다. 바울의 동역자였던 데마가 왜 타락했습니까?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금과 은을 사랑하거나 돈을 사랑하는 것, 높임을 받고 싶어하는 그런 탐심으로 인해 타락했던 것입니다.

셋째, 두려움입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성도들을 비겁하게 만들고 거짓말을 하게 하거나 타락하게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려니와 누구든지 [주]를 신뢰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베드로는 사람을 두려워하다 주님을 배반했습니다(마26:70-74). 빌라도는 사람을 두려워하다 무죄한 주님을 정죄했습니다.

넷째, 교만과 거만입니다. [멸망에 앞서 사람의 교만한 마음이 있고 명예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잠18:12). [멸망에 앞서 교만이 있으며 넘어짐에 앞서 거만한 영이 있느니라.] (잠16:18). 교만은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낮추는 것입니다. 교만은 남보다 나를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외 없이 타락합니다.

다섯째, 이기심입니다. 이기심은 마음이 타락한 자들의 특징입니다. [마음이 타락한 자는 자기 자신의 길들로 채워지려니와 선한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만족을 얻으리라.](잠14:14). 영적 이기심이라 할지라도 자아는 언제나 타락을 부추깁니다.

여섯째, 불순종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이는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내 명령을 수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주]께 부르짖으니라.] (삼상15:11). *후회, 회개--돌이킴/ ‘하나님의 후회’는 죄에 대한 회개가 아니다.

일곱째, 이방 여인들입니다. 이방 여인이란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유대인들은 같은 혈통보다 같은 신앙의 유무로 이방인을 구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동일합니다. 우리는 같은 믿음을 소유하지 않는 자들을 이방 여인이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공평하지 못한 멍에를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으며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으며] (고후6:14). 결혼 문제로 인해 믿음이 파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특히 자매들은 나이가 들면 믿음 외에 다른 것들을 배우자의 조건으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는 살면서 전도해서 다니면 된다고 믿는 듯합니다. 위대했던 솔로몬조차 이방 여인들로 인해 타락했다면 여러분의 믿음을 스스로 너무 높이 평가하지 않는 한 감히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도 자신이 타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교만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또 이르기를, 전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많은 민족들 중에서 그와 비길 왕이 없었고 또 그는 자기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자였느니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 풍습의 여인들이 그로 하여금 범죄하게 하였나니] (느13:26). 불신자와의 결혼은 타락으로 이미 발을 디딘 것입니다.

여덟째, 하나님과 빛의 교제를 하지 않음. 모든 타락은 빛 되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을 때입니다. 어떤 형제가 요즘은 영 엉망입니다. 믿음이 생기질 않고, 일은 꼬여만 갑니다. 기도도 잘 안되고... 이때 물어 보십시오. “지난주와 이번 주에 성경을 얼마나 읽으셨습니까?” 100% 다 이렇게 답합니다. “요즘 성경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성경 못 본지 꽤나 되었습니다.” 두 주 정도 성경 읽기와 기도를 하지 못했다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많이 읽고 있는데,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면 이렇게 물어 보십시오. ‘내가 성경 읽고 또 뭐 했지?’ 여러분은 성경 읽고 또 무엇을 했습니까?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주님은 빛이시기에 우리는 양다리를 걸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빛이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빛이라고 하십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어떤 이는 도둑질하려고 불을 밝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의 말씀을 읽으면서 죄를 함께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읽고, 배운 성경 지식으로 형제들을 판단하고 욕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타락은 서서히 진행됩니다. 타락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나 저나 어느 날 갑자기 타락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물론 외부의 갑작스런 변화와 충격으로 우리의 죄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타락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서서히 일어납니다. 롯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첫 단계- 탐욕. 타락은 믿음으로 걷지 않고 보는 것으로 걸을 때 시작됩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믿음 대신 무엇을 보았습니다. 롯은 소돔을 향해 눈을 들어 보았습니다(항13:10). 게하시도 보았고, 롯의 부인도 눈을 돌려 보지 말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브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을 잘못 들어 타락합니다. 자신의 눈에 따라서 타락한 예는 허다합니다. 사람의 눈은 참으로 독특하게도 자신이 하는 일은 다 옳아 보입니다. [사람의 길이 자기 눈에는 모두 옳게 보여도](잠21:2a). 자기 눈에는 다 깨끗해 보입니다. [사람의 모든 길이 자기 눈에는 깨끗하여도 [주]는 영(靈)들을 깊이 살피시느니라.](잠16:2). 자기 눈에는 옳게 보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잠16:25). 이것이 사람의 눈입니다. 어떤 것은 어려운데도 쉽게 보이고, 쉬운 것도 어렵게 보입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자신의 눈을 표준으로, 기준으로 삼지 말기 마랍니다. [네 눈으로 보기에 지혜롭게 되지 말지어다. [주]를 두려워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3:7). 그래서 자기 눈을 기준으로 삼는 자들에게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자기 눈에 지혜로운 자들과 자기가 보기에 분별 있는 자들이여!] (사5:21).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눈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히12:1). 예수를 바라보는 눈이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어여쁘고, 비둘기의 눈입니다(아1:15, 4:1,4:9, 5:12).

두 번째 단계- 너무 낮은 것을 선택함. 롯은 산 대신 평지를 선택했습니다(창19:17). 산으로 도망가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는 산 대신 소알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땅이 아닌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위에 있는 것들에 애착(愛着)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지니](골3:2). 성도들은 좋은 것을 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타락은 하나님이 제시하는 가장 좋은 것 대신 그 보다 낮은 것을 선택할 때 시작됩니다.

세 번째 단계-타협. 롯은 자기 장막을 소돔을 향해서 쳤습니다(창13:12-13). 이 세상을 향하여 장막을 치면 일시적으로 유익이 있고, 핍박이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야 합니다. 죄는 피해야 합니다. *딤후2:22, 살전5:22, 엡5:11

네 번째 단계- 적들에게 사로잡힘. 하나님의 전신 갑옷을 입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적들에게 사로잡힙니다. 마귀의 올무(딤후2:26)에 사로잡힙니다. 세상을 향해 내가 미소를 지었다고 해서 세상이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해 주지 않습니다. 롯은 평안히 살 것 같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털렸습니다.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도 취하여 갔더라.] (창14:11~12). 세상은 싸워 이겨야 할 원수이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잠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습니다. 마귀는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롯은 원수를 친구로 생각했으며, 싸워야 할 때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평소에 힘을 길러 두지 않으면, 마귀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 단계-육신적. 롯은 정신을 차린 것이 아니라 여전히 소돔을 사랑했습니다. 그곳을 떠나기는 고사하고 더 깊숙히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롯의 삶을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사악한 자들의 더러운 행실로 인하여 괴로움을 받던 의로운 롯을 구해 내셨으니 (이는 이 의로운 사람이 그들 가운데 거하여 그들의 불법 행위를 보고 들으면서 날마다 자기의 의로운 혼을 괴롭게 하였음이라.)] (벧후2:7~8). 그는 영적인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소돔에 살았으며, 자신의 삶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미워해야 할 대상임을 알지 못합니다.

여섯 번째 단계- 영적 무기력. 롯은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말은 소돔 사람들에게 씨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롱과 야유를 받았습니다. 롯은 자신의 타락으로 인해 자신의 가족에게도 큰 피해를 입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19:8,33 참조

일곱 번째 단계- 흥청거림. 롯은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평생을 모아 온 재산도 날려 버렸고, 마누라는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간신히 소알의 작은 성읍에 피하여 겨우 목숨을 부지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이나, 회개의 눈물이 없었습니다. 롯에게 남은 것이라곤 시름을 잊게 해 줄 술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술과 같이 따라 다니는 것이 바로 음행입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만고의 법칙입니다. 롯의 잘못된 선택은 점점 더 깊은 죄의 늪으로 빠뜨렸으며, 하나님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게 한 것입니다. *창19:34.

타락한 성도들을 향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되, 타락한 이스라엘아, 너는 돌아오라. 나는 긍휼이 많은 자니 그런즉 나의 분노가 너희 위에 임하지 아니하게 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나는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느니라.](렘3:12b). [타락한 자녀들아, 너희는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타락한 것을 고쳐 주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이는 주께서 [주]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이다.](렘3:22).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 [주]여, 우리의 불법들이 우리를 치려고 증거할지라도 오직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그 일을 행하소서. 이는 우리의 타락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렘14:7). 주님은 고침과 용서를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타락한 것을 고치며 그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리니 이는 내 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호14:4).

☜ 암송할 말씀: 고전10:12, 호14:4

☜ 생각해 볼 문제:

- 타락이란 무엇인가?
- 타락으로 이끄는 것들은 무엇인가?
- 타락의 단계를 말해 보시오.



쉽고 단순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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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