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롬8:5
교회 내에는 영적(靈的)이란 말만큼이나 상대적으로 많이 쓰이는 말은 육신적이란 말입니다. 이는 성도들에게는 모욕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육신적]이란 말은 하나님이 친히 사용하신 어휘입니다. 성경에서 육신이란 말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사용되는지 성경을 몇 차례 통독해 본 사람이라면 절감할 것입니다. 육신이란 말과 결합해서 좋은 말은 거의 없습니다. 육신의 팔(대하32:8), 육신의 눈(욥10:4), 육신의 뜻(요1:13), 육신의 일(롬8:5), 육신의 정욕(롬13:14/요일2:16), 육신의 기회(갈5:13), 육신의 욕심(갈5:16/엡2:3), 육신의 행위들(*이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色慾)과 우상 숭배와 마법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갈5:19~21), 육신의 죄들에 속한 몸(골2:11) 등 육신이란 말 속에는 언제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깁니다.
육신(肉身/flesh)이란 말은 단지 몸(body)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몸은 신체, 육체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육신은 carnal, flesh로서 정신적 영역, 기질, 성향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육신(flesh)은 사람의 ‘살’을 의미할 때가 있고 옛 사람의 본성과 기질, 죄성을 포함하는 의미일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할 때는 우리와 동일한 몸을 입으셨고, 우리 육신이 안고 있는 모든 연약함과 완전히 동일한 몸을 입으셨다는 뜻입니다. 뼈, 피, 살 할 때 살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와가 아담의 뼈에서 취해졌듯이 우리는 주님의 뼈와 살의 일부입니다. [또 우리가 그분의 몸과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에 속한 지체(肢體)이기 때문이라.](엡5:30). 여기서 사용된 ‘그분의 살’이 바로 flesh(육)입니다. 결혼해서 부부가 둘이 한 몸이 된다고 할 때도 한 몸(one body)은 [한 육체/one flesh](창2:24, 마19:5, 막10:8, 고전6:16, 엡5:31)입니다. 반면 우리가 주님과 결합한 결혼 상태는 언제나 한 몸(one body)로 표현됩니다.
영적이란 말과 육신적이란 말은 상대어일 뿐만 아니라 대조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알거니와 율법은 영적이나 나는 육신적이어서 죄 아래 팔렸기 때문이로다.](롬7:14). 율법과 나의 차이를 영적인 것과 육신적의 차이로 선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계속 구절들을 살펴 봅시다.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성경은 계속해서 육신과 성령의 날카로운 대조를 보여 주며 이 둘이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해 줍니다. 육신은 죽어야 할 존재라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몸을 죽이라고 말합니다. 죽여야 하는 상대를 사랑하거나 돌보아 주는 일이라면 그는 어리석은 사울 왕이 아각을 살려 준 것과 동일한 죄악입니다(삼상15:9,20). 성경에서 아말렉은 언제나 육신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은 남김없이 철저히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백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와 살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그것들을 진멸하려 하지 아니하였으나 나쁘고 가치 없는 것은 다 진멸하니라.](삼상15:9). 아말렉에도 좋은 것이 있었고, 남기고 싶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려 두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대신 자신이 생각하기에 나쁜 것은 다 죽이고, 좋은 것은 살려 두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큰 함정입니다.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없다(롬7:18)는 주님의 음성을 불신하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견해대로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합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참으로 나는 [주]의 목소리에 순종하여 [주]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마땅히 진멸시켜야 할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주] 당신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고 양과 소들을 노략하였나이다, 하매](삼상15:20~21). 육신적 성도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사울 왕입니다. 사울은 이 죄악으로 인해 왕국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다른 몇 가지 죄악도 있지만 이 죄는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 역시 육신을 죽이라는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해야만 합니다. 육신은 아무리 아름답고 좋아 보여도 육일뿐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요3:6). 사무엘은 사울이 살려 준 아각을 끌어내어 죽임으로써 육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육신은 철저히 죽어야 하며, 또 죽여야 합니다. 주님은 육신을 남김없이 처리하셨기 때문에 처리하라고 하십니다.
신약 성경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롬8:13). 이는 우리의 손을 찍어 내고, 발을 찍어 내고, 눈을 뽑아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려면 몸을 죽일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의 생각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신체의 일부분을 언급하기 전에 그 마음속에 있는 지체들을 말합니다. 우리 손, 발, 입, 눈 등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실행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으로 죽여야 할 것들은 육신에 속한 본성과 기질들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肢體)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골3:5). 지체들을 죽이라고 한다고 해서 이 말씀을 물리적으로, 육으로 받았다가는 교회는 불구자들의 모임 밖에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 수훈에 이르기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를 실족(失足)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이는 네 지체 중의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네게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네 오른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이는 네 지체 중의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네게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마5:29~30)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골로새서 3:5과 로마서 8:13에 따라서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마18:8-9 말씀도 참조하라. 동일한 말씀이다.).
몸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마12:25). 생각한 것이 말로 나오고, 행동으로 나옵니다. 혼도 손과 눈과 발과 귀, 혀가 있고 말을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지옥에 간 부자(눅16)와 아브라함의 대화를 통해 알 것입니다. 우리 몸의 지체만이 지체가 아닙니다. 마음은 몸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라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여 버려야 합니다. 육신이란 단지 우리의 몸이 아니라 옛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성령과 육신의 날카로운 대조는 다음 구절에서도 나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5:16-17). 육신과 성령은 대조를 이루며 서로 거스르며 대적하는 관계입니다. 몸(body)이 아니라 옛 사람에 속한 본성, 자아를 일컫는 말입니다. 몸이 성령을 거스리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성령을 거스립니다. 우리 몸은 거룩한 산 제물로 주님께 드려야하는 것이며, 주님의 소유입니다.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몸은 죽을 때까지 의의 종으로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몸은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며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고전6:19을 암송할 것). 반면 육신은 죄의 법을 섬깁니다.
몇 구절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육신 안에(in the flesh) 있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들의 활동이 우리 지체 안에 작용하여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하였으나] (롬7:5). 시제를 주목하십시오. “육신 안에 있었을 때”(과거형). 그럼 거듭나면 성도는 육신 안에 있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는 여전히 육신을 입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런즉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8:8-9). 성도들은 육신 안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 안에 있습니다. 육신 안에 있던 우리가 성령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주목해서 보십시오. 우리는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 안에 있습니다.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육신 안에 있다는 의미는 몸을 입고 있다는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구절을 하나 보겠습니다. [비록 우리가 육신 안에서(in the flesh) 행하나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이는 우리의 전쟁 무기가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통하여 요새들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라.)] (고후10:3~4). 우리는 육신 안에서 행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육신 안에 있지 않다고 말하다가 이번에는 “우리가 육신 안에서 행하나”(고후10:3)라고 말합니다. 이 둘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모순이 아닙니다. 육신은 단지 육체의 살을 말합니다. 몸을 일컫는 말입니다. 혈과 육이라고 할 때 Blood and flesh란 의미입니다. “피와 살”이란 의미입니다.
육(肉)에서 난 것은 아무리 개발해도 육(肉)일 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육신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육신을 신성(神性)하게 여기고, 육신을 신뢰하는 무리들이 바로 종교인들이요, 철학자들입니다. 우리 육신 안에는 어떤 선한 것도 거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대로, [이는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알기 때문이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할는지는 내가 알지 못하노라.](롬7:18). 이것이 육신의 한계입니다. 내 육신 안에는 어떤 선한 것도 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육신을 십자가에 처리해 버리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육신의 특성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① 육신은 연약합니다(롬6:19). ② 육신은 죄들의 활동하여 우리를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롬7:5). ③ 육신은 죄 아래 팔렸습니다(롬7:14). ④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롬7:18). ⑤ 육신은 죄의 법을 섬깁니다(롬7:25). ⑥ 육신은 영적인 일들을 전혀 수행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시나니/ 곧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또 죄로 인하여 육신 안에 죄를 정죄하셨느니라.](롬8:3). ⑦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롬8:5). ⑧ 육신적인 생각은 사망입니다(롬8:6). ⑨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습니다(롬8:7). ⑩ 육신 안에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즉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8). ⑪ 육신을 따라 살면 죽습니다.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롬8:13). ⑫ 육신에게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롬13:14). ⑬ 육신을 따라 싸우면 안 됩니다(고후10:3). ⑭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대적합니다.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5:17). ⑮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둡니다. [자기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갈6:8).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한 육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육신은 십자가에 처형하는 것 외에는 달리 어떤 개선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이 육신을 향해 하신 일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처리하는 것입니다. 죽이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옛 생명을 십자가에 넘겨주고, 육신을 처리했음을 받아들이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신과 함께 그 애착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주님의 선고를 받아들이고, 주님의 십자가에 행하신 일들을 받아들일 때 나의 육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있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살아 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성경의 진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신을 신뢰하고, 육신을 자랑하고, 육신을 위해 사는 자들은 주님께서 사형에 처한 시체를 붙들고 그것을 신뢰하고 자랑하는 자들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육신을 따르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육신을 따라 살면 그는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이며, 성령을 대적하며, 복음의 원수 된 일을 합니다. 우리는 이제 육신을 십자가에 처리하고 성령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 암송할 말씀: 롬8:5, 롬8:13
☜ 생각해 볼 문제:
- 육신적이란 성경적 정의를 내리시오.
- 육신에 속한 일들을 열거하시오.
- 육신과 몸의 차이를 설명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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