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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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08)- 화평
말씀. 빌4:7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love)과 희락(joy)과 화평(peace)과 오래 참음(longsuffering)과 부드러움(gentleness)과 선함(goodness)과 믿음(faith)과 온유(Meekness)와 절제(temperance)니 이 같은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이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종류는 무려 아홉 가지이지만 단수로서 하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열매는 그 안에 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열매를 얻으면 씨도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씨가 있으면 열매를 얻습니다. 성령의 열매인 [화평] 역시 말씀의 씨가 뿌려지고 자라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요6:63). 하나님의 화평,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하나님의 부드러움,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믿음, 하나님의 온유, 하나님의 절제 등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divine nature-벧후1:3-4)이 우리 안에 심겨지고 우리 안에서 자라나서 우리의 몸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바로 성도가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목적이며, 존재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은 말씀이란 씨앗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이유는 지성을 단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성품과 능력에 따라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기 위한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가지’입니다(요15:5). 우리는 뿌리가 아닙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가 계획하고 힘쓰고 무엇을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지입니다. 가지의 유일한 목적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어야 그 뿌리나 줄기도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가지인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존귀와 칭찬을 받으십니다. 성도들이 기쁨을 가지고 살며, 화평을 가지고 살 때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불화하고, 다투고, 시기하고, 경쟁하고, 분노하고, 물어 뜯고, 불평하고, 불만이 가득 찬 삶을 살 때 주님께서 영광이 아니라 모독을 받게 됩니다. 성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성도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모두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시험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하여금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우리에게 있는 일은 사람들에게 공통적(common)으로 있는 시험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도가 되면 시험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약속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신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는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입니까? 내가 당하는 모든 시험은 다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뿐만 아니라 피할 길을 내시고,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주목해서 보십시오. 피할 길을 내시는 것은 도망가라고 내시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라고 내시는 것입니다. 이겨 나가란 것입니다.

말이 앞뒤가 약간 모순되어 보이지 않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피할 길이 무엇입니까? 한국에서 빚을 잔뜩 사업가가 돈을 갚지 않고 미국으로 이민 와 버리는 것이 주님이 내신 피할 길이라고 좋아하고, 이혼을 했는데 곧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주님이 주신 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한 참 말씀을 더 배워야 합니다. 주님이 내시는 피할 길이란 도망자의 삶이 아닙니다. 때로 죄악과 단절하고, 분리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포기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육신과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피할 길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피할 길이란 여러분 안에 ‘기쁨과 평강’을 주심으로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주심으로, 성령의 능력을 주심으로,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이기게 하시는 것이 바로 ‘주님이 내신 피할 길’입니다.

성도들은 때로 말로 다 못할 정도의 억울한 일, 모순된 일, 있을 수 없는 일, 너무나 분통이 터지는 일이 자신에게 발생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람들에게 있는 공통적 시험’에 불과한 것이며,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란 것입니다. 내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 이기고, 그리스도를 통해 이기고, 하나님께 맡김으로서 안식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시험받을 때 성도들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그래서 시험을 당할 때 말할 수 없는 기쁨,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기뻐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환란 중에서도 즐거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나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제자들은 이제 곧 있으면 인생의 암흑기를 거쳐야 합니다. 자신들이 믿고 따랐던 주님은 당시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유대 최고의 권력가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그들은 나사렛 이단 종파의 괴수를 따랐던 제자들이란 명목으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십니다. ‘나의 평안’(my peace)이란 주님이 지녔던 평안입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은 내가 받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마음에 받아야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곧 이어 보인 반응을 보면 얼마나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 가운데 떨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누구에게도 주님의 평안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환난을 당한다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환란이 없다면 평안을 주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환란이 있기 때문에 평안이 필요합니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주님의 평안이 있으면 마음에 근심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의 평안이 있으면 환란을 당하지만 세상을 이기고,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화평/평강/평안만 있다면 사람은 못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인재가 없어서, 경기가 좋지 않아서 무슨 일을 못한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일을 망치고 사업을 말아 먹고 자신과 가정을 파괴시키는 일은 그런 외적 요인이 아니라 마음 속에 주님이 주신 평강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평강이 마음에 넘치게 있으면 사람의 지성과 감성은 최상, 최적이 되며 일은 최고의 능률을 올립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을 다스리면 건전한 생각을 하게 되며, 악을 피하게 되고, 신체적 리듬은 피곤을 모르게 됩니다. 여러분이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이런 강 같은 평강을 누려 본 적이 없다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구원받은 후 주님이 주신 놀라운 평강을 소유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평안했던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의 능률과 집중도와 효율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만약 내가 평생토록 이 평안을 잃지 않고 소유할 수만 있다면 저는 초인적인 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평강을 오랫동안 항구적으로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곧 알면서도 죄에 연루되기 시작했고, 급격히 세상으로 기울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들을 몇 차례 거부했습니다. 이때부터 영적 능력은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흐르던 강 같은 평화는 어디론가 사라짐을 알았습니다. 다시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목이 마르고 갈증이 났습니다. 그 후로 주님께 성경을 공부하기를 결단하고 성경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 제 마음에는 하나님의 왕국이 다시 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왕국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喜樂)이기 때문이라.](롬14:17). 제게는 ‘의, 화평, 희락’이 넘쳤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곧바로 일주일 만에 성경을 쭉 한 번 통독했는데 제 마음은 하늘에 가 있는 듯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은혜 받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마음 밭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님의 평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저는 이 평안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연약하고 어렸습니다. 너무나 육신적이어서 믿음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빨리 성장해서 성경 교사도 되고, 설교도 잘 하고, 무식한 목자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신앙 서적을 읽기 시작함으로 마음은 수많은 질문과 고뇌와 번민으로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제 마음은 광야를 헤매는 까마귀의 처지였습니다. 까마귀도 먹이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마귀처럼 변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는 나름대로는 강 같은 평화와 기쁨을 찾아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서 시도해 보았지만 좀처럼 그 때 맛본 그런 영적 체험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영적 야심이 컸기 때문입니다. 겸손히 주님의 종이 되어 주님과 교회와 양떼를 돌아보려는 소원은 전혀 없고, 한국 교회가 배출한 불세출의 신학자가 되고 싶은 소원만 충만했습니다. 저의 이런 영적 야심과 교만과 육신적 성품들은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데 결코 게으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마음을 메마르게 했고,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왕국이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권능에 있기 때문이라.](고전4:20). 말이 아닌 권능, 이론이 아닌 실제적 평안과 희락이 없다면 그는 황폐한 육신적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럴 듯하게 자신을 포장할 수도 있고, 모태 신앙이라고 자랑할 수도 있고, 다양한 체험을 말할 수도 있고, 이런 저런 종교적 활동을 했던 것들을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이단 종파들도 다 하는 것이며, 타 종교의 열렬한 신자들도 다 하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랑할 것들이 전혀 아니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맺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지 우리가 한 일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일하시고 우리 속에 있는 속 사람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는가에 관심을 갖고 계실 뿐입니다. 가인이 드린 제물이 아무리 멋지고 좋아 보여도 주님은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듯이 우리가 한 종교 행위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화평을 논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가 없는 화평은 거짓 평안이요, 마귀가 준 것이거나 세상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통한 믿음의 의에 근거하지 않는 화평은 영적 평강이 아니라 영적 관심을 멀어지게 하는 독소입니다. 거짓 평안에 속으면 그들은 주님과 복음에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고 육신의 즐거움과 죄의 쾌락만을 즐기게 됩니다. 이사야 32:17과 야고보서 3:18을 보십시오. [의의 일은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확실한 안전이니라.](사32:17). 의의 일은 화평입니다. 화평은 성령의 열매이기도 하지만 의의 일이요, 의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미 오전 시간에 십자가와 보혈을 통한 화평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만 의가 없는 화평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나름대로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고, 교회의 어떤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양심을 어느 정도 순화하거나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이 진정한 평안은 아닙니다. 때로 사람들은 주님의 뜻을 거스르면서도 태연스럽게 “마음은 평안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마음이 평안한지 물어 보면, “새벽 기도를 했습니다. 철야 기도를 했습니다. ...” 등등입니다.

기도를 했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의이신 주님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불법과 불의를 버림으로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기도 자체가 능력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자신의 사정을 아뢰고 맡김으로 평안을 얻습니다. 육신적인 성도들은 기도 그 자체가 어떤 능력이 있고, 기도 행위가 무슨 효험이 있는 줄 압니다. 기도는 캐톨릭 교도들, 불교 신자들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다고 믿고, 묵주를 돌리며 기도를 하면 마음이 평안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함으로써 영혼이 맑아지고, 마음이 평안해졌다고 말합니다만 이것은 성경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은 기도를 통해 우리의 혼을 쏟아내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하고, 주님 앞에 근심과 염려를 맡기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응답을 통해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도를 하지만 마음에 믿음이 없고, 주님께 굴복하지 않고, 주님과 영적인 교제가 없다면 그것은 헛된 기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일은 매우 좋습니다. 많이 길게 오랫동안 열렬하게 뜨겁게 하는 것은 너무나 유익합니다. 깨어서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다만 기도를 했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든지, 무엇을 아뢰고 응답을 얻든지,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돌이키든지, 필요를 구하든지, 지혜를 구하든지, 찬양을 하고 감사를 하든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평안을 얻었습니까? 물으면 “기도하며 죄를 회개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평안이 임하더군요.” 이런 식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물었는데 몇 일 뒤에 말씀을 통해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안이 임했습니다.” 이런 대답이어야 합니다. 기도를 했다는 것이 대답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자신들의 뜻을 정해 놓고, 결정을 본 후에 마음이 찔리고, 혹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서 그때부터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복을 주시고,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육신적인 성도들의 상용 수법이 바로 이런 기도입니다. 자신들이 임의로 일을 결정한 후에 기도했다면서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변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속이는 일이며, 성령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얻은 평안이라면 그는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거룩함과 진리에 바탕을 두지 않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듯, 의가 없는 화평은 하나님의 화평이 아닙니다. [의의 열매는 화평케 하는 자들이 화평으로 씨를 뿌려 /거두는/ 것이니라.](약3:18). 의의 열매는 화평입니다. 화평의 씨앗이 무엇입니까? 화평의 복음입니다. 화평의 하나님이 주신 화평의 말씀입니다. 입으로만 화평을 외친다고 화평이 아닙니다. * 참조: 렘6:14. 세상에는 거짓 화평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짓 평안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평강]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평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 속에 사랑을 부어 주시고, 기쁨을 주신 것처럼 평강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평안을 주신 것처럼 주님은 화평을 주십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 2:5을 보겠습니다. [레위와 함께하는 내 언약은 생명과 화평의 언약이라. 내가 그것들을 그에게 준 것은 그가 두려움으로 나를 두려워하며 내 이름 앞에서 무서워하였음이라.](말2:5). “내가 그것들을 그에게 준 것은”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들이란 ‘생명과 화평/평강의 언약’입니다. 주님은 생명과 화평의 언약을 주심으로 우리 안에 생명과 화평을 겸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를 두려워하고 주님의 이름 앞에서 무서워 할 때 생명과 화평의 언약을 주십니다.

신약 성경에서 ‘평강을 주신다’는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제 평강의 {주}께서 친히 모든 방법으로 항상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너희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16). 참조:*요14:27,16:33. [평강의 {주}님]이란 타이틀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평강의 {주}시며, 화평의 하나님(엡6:15, 빌4:9, 살전5:23)이십니다. 주님은 [화평의 창시자]이시며(고전14:33), 화평의 복음을 통해 우리 안에 화평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친히 모든 방법으로 우리에게 항상 주시려는 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평강이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알 수 없는 불안과 짜증과 곤고함이 있습니까? 만약 평강이 없고 다른 무엇이 있다면 평강을 소멸시키는 무엇이 내 안에 있음을 알고 그것을 처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모든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화평이 없는 무엇은 있어도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없느니만 못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봅시다. 재물이 많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평강이 없습니다. 재물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싸우고, 친구들까지 군침을 흘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없는 것보다 못할 것입니다. 화평이 없다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의가 없는 소득은 결코 복이 아닙니다. 화평은 의와 함께 옵니다. 삼손처럼 넘치는 힘과 건강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덕분에 매일 육체노동이나 몸으로 때우는 일만 시킨다면 자신이 가진 힘을 원망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생각해 봅시다. 몇 일간은 축하 전화도 받고 전보도 받고 축제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귀찮은 일들이 계속 달라붙습니다. 근거 없는 소문과 음해, 중상모략, 투서가 쏟아집니다. 누군가가 나를 노립니다. 화평이 없는 권력, 화평이 없는 높은 자리는 그런 것입니다. 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도리어 화(禍)가 되고, 저주가 될 수도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화평이 없다면 그런 것입니다. [[주]의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나니 그분께서는 이것에 슬픔을 더하지 아니하시느니라.](잠10:22).

교회에서 여러분의 믿음이 좋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아 보십시오.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대신 그 때부터 여러분은 누군가의 과녁(target)이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인 시험에 들게 됩니다. 질시와 모함과 뜬소문과 추문이 끊이지를 않게 됩니다. 다윗이 언제부터 본격적인 시험을 받았습니까? 백성들에게 엄청나게 높임을 받고 칭찬을 받을 때 부터였습니다. [여인들이 뛰놀며 서로 화답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은 수만이로다, 하니라. 사울이 이 말을 기쁘게 여기지 아니하였으므로 심히 노하여 이르되, 그들이 다윗에게는 수만을 돌리고 내게는 수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이 왕국 외에 무엇이겠느냐? 하고 그 날 이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삼상18:7~9). 다윗은 이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소위 공인(公人)이 되었고, 주목을 받고,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도가니로 은을, 용광로로 금을 /단련/하듯이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잠27:21)고 말씀합니다. 유명세를 타면서 망해 버린 사람들이 모두 이 시험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副/richness)와 명예도 마음의 평강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마음속에 평강이 있을 때 모욕과 수치를 거뜬히 이겨낼 수 있고, 칭찬과 자랑과 높임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높임 받는 일은 수치를 당하는 일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승리의 입성을 하시면서 군중들에게 어떤 환호를 받았습니까?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들이 외치며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9). 영웅으로 입성했습니다. 그 후에 그는 동일한 무리들에게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란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호산나]란 환호 소리에 기뻐 흥분하시고,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마27:22-23)란 외침에 절망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나 동일한 평강을 유지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나의 평안]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신앙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을 때와 누군가에게 모욕과 비난을 받을 때의 심정이 다르다면 그것은 여전히 나는 감정에 따라 사는 사람이지 [하나님의 평강]이 나를 다스리고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란 뜻임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화평을 정하시고, 화평으로 복을 주십니다. [[주]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힘을 주시리니 [주]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화평으로 복을 주시리로다.](시29:11). 화평으로 주시는 복이야 말로 영적인 생활을 힘 있게 살 수 있는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주]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화평을 정하시리니 이는 또한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을 우리 안에서 이루셨음이니이다.](사26:12). 주님이 주시는 화평을 소유하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① 주님이 친히 모든 방법으로 항상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평강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 주어집니다. 우리가 영적인 생각, 건전한 생각을 하면 평안이 임합니다.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성령을 따르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롬8:5). 육신적인 생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롬8:7). *고전2:16-그리스도의 마음. 빌2:5.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지 않으면 우리는 평강을 주어도 누리지를 못합니다. 평강이 깨어지면 누구나 육신의 성품대로 살게 되고, 평강이 임하면 마귀처럼 살던 사람도 그리스도 예수님처럼 살게 됩니다.

②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아룀으로써 평강이 주어집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기도 시간에 기도는 하지 않고 걱정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씀과는 정반대로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조사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일에 염려하며 몇 가지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요청할 것을 불평과 더불어 혼자 중얼거리더라.” 요즘 교인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하나님께 하는 기도인지 혼자 자신에게 하는 기도인지 모를 기도를 합니다. 덕분에 기도를 한 후에도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체험은 전혀 해 보지 못하고 힘없이 돌아갑니다. 성경 말씀대로 기도를 하면 여러분 안에는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놀라운 체험을 매 순간하게 될 것입니다. 앞 부분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고 뒷부분은 주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③ 하나님께 위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시도록 완전히 위임하십시오. 하나님의 화평이 우리 마음속에서 다스리게 전권을 양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화평이 너희 마음 속에서 /너희를/ 다스리게 하라. 너희도 이 화평에 이르도록 한 몸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니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스려 봐야 여기저기서 분란만 일어나고 불평과 잡음만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화평이 다스리도록 위임하면 주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마음 속에 요동함이 없고, 불안과 근심과 염려와 걱정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통치하십니다. 교만하거나 뽐내지 않도록 완벽하게 다스려 주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전에는 우리 안에 죄가 군림했습니다. 사망이 통치했습니다. 육신의 정욕이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화평이 우리 마음속에서 다스리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통치하도록 우리 자신을 주님께 내어 드려야만 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주인이 되어 있고, 마음의 왕좌에 앉아 있는 한 주님은 우리를 도우실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죄가 군림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같이 은혜도 의를 통해 군림하여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5:21). Grace reign through righteousness. 여러분이 하나님께 통치권을 위임하지 않는다면 죄가 여러분을 정복해서 식민 통치를 할 것입니다.

④ 마음으로 주를 의지하십시오. 완전한 평강으로 지킴을 받는 길입니다. [주께서는 마음으로 주를 굳게 의지하는 자를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니이다.](사26:3).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고 마음으로 의지하는 자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완전한 평강이란 결코 깨어지지 않는 평강입니다.

⑤ 주를 기쁘시게 하십시오. 원수라도 화목하게 됩니다. [사람의 길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면 그분께서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와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여기서 주의할 것은 원수들이 우리를 잘 대해 준다, 세상이 잘 해 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도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지만 세상의 미움을 받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도가 주를 기쁘시게 하면 원수들까지 사랑하고 축복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들만큼 평강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야곱은 주님 앞에서 문제를 해결 받고 에서를 보았을 때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창33:10). 에서가 변한 것이 아니라 야곱이 변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화해했습니다. 요셉이 원수같은 형들을 용서하는 것을 보십시오. 형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요셉이 성장하고 변화되어 화목했던 것입니다. 요셉이 주님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 기쁨, 평강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압니다. (Revival90-38번 참조).

⑥ 주의 법을 사랑하십시오. 큰 평강이 주어집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을 실족하게 할 것이 없으리로다.](시119:165). 주님의 법을 사랑할 때 말씀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이 주어지고, 위로와 큰 평안이 주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귀의 공격이나 시험, 유혹과 환란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평안이 주어짐을 말합니다. 이런 평안이 없는 상태에서 시련이 오면 누구나 다 실족하고 맙니다. 말씀을 통해 평강을 경험한 사람들은 어떤 다른 영적 체험을 통해 평강을 누리는 사람들보다 더 큰 평강을 소유합니다. 그래서 큰 평강이라고 말합니다.

⑦ 주님께 가르침을 받으십시오. 큰 평강이 있습니다. [네 자녀들이 다 [주]께 가르침을 받으리니 네 자녀들에게는 큰 평강이 있을 것이며](사54:13). 무엇이든 그러하지만 우리는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공짜로 받은 전자 제품 하나라도 받을 때 사용법을 배워야 하고, 사용 설명서를 받아서 읽어 보아야 합니다. 하물며 주님이 주신 선물들과 은혜를 저절로 터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심한 일입니다. 영적인 삶은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물으라고 하셨습니다. 큰 평강을 얻고 누리는 일 역시 주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⑧ 화평은 징계를 통해서 단련된 자에게 주어집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구원받자마자 바로 영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적인 것들을 처리하고 부수고, 죽여야 합니다.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의 죽음을 전제로 하듯이 성령의 열매는 육신의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육신의 행위들을 처리하지 않고서 열매가 맺히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징계와 고난과 시련이 필요합니다. [이제 징계가 그 당시에는 기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하고 슬픈 것으로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그로 말미암아 단련된 자들에게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⑨ 화평은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들을 행함으로 주어집니다. [너희는 내 안에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들을 행하라. 그리하면 화평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빌4:9). 성령의 열매는 은사와 달리 선물로 따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물건을 주듯이 “평강”이란 선물을 주셨으면 하고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병원에서 의사가 내 몸에 약물을 투여해서 부족한 것을 채우듯이 주님께서 내 안에 평강을 투여하시고, 기쁨을 투여하시고, 인내를 투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나 기쁨이나 평강이나 매 한가지입니다만 사랑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일하신 결과요, 평강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신 결과입니다. 생명이신 주님께서 자신의 성품을 우리 속에서 성령을 통해 드러내시는 것이 바로 열매입니다. 화평의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들을 행할 때 함께 하시며 화평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스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대신 화평의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고 열매 맺으시도록 우리 자신을 주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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