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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성령의 열매(10)- 오래참음
말씀.롬5:3,4


성령의 열매 중 네 번째 [오래 참음]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는 말이 [인내]입니다. 오래 참음과 인내는 그 차이를 구부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거의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는 않습니다. 오래 참음이 성령의 열매로 언급되어 있지만 인내는 성령의 열매로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내는 성경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곧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께서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서로 같은 마음을 갖게 하사](롬15:4-5). ‘성경이 주는 인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인내는 성경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인내와 위로를 얻습니다. 말씀을 통해 믿음이 오듯이 말씀을 통해 인내가 옵니다. 인내를 성령의 열매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하나님은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시란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내의 말씀’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계3:10a)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인내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노를 보이시고 자신의 권능을 알게 하고자 하사 파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들에게 심히 오래 참으심으로 인내하시고](롬9:22). 오래 참음 < 인내. 이런 공식이 성립됩니다. 인내로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으심으로 인내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인내는 분명히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입니다. [그분의 영광스런 권능에 따라 모든 강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인내와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1:11). 인내와 오래 참음은 구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둘 다 성령의 역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통한 인내, 성령을 통한 오래 참음이 동시에 언급되어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의 교리와 삶의 방식과 목적을 설명해서 오래 참음과 인내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나의 교리와 삶의 방식과 목적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딤후3:10). 오래 참음과 인내를 각기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둘은 다른 단어임에 틀림없습니다만 둘 다 같은 뿌리입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성품이요, 우리 안에 맺어져야 할 열매입니다. 특이한 것은 오래 참음은 주님의 성품으로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반면 인내란 말은 신약 성경에만 등장하고 구약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신 신약 성경에서 구약의 욥이 인내의 본으로 언급되어 있음을 봅니다.

인내는 은사가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단과 시련을 통해 점진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필요하듯이 모든 영적인 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경을 펼쳐 보면 [인내와 박해](고후6:4), [인내와 간구](엡6:18), 인내와 오래 참음(골1:11), 인내와 믿음(살후1:4, 계13:10), 인내와 온유(딤전6:11), 인내와 핍박과 고난(딤후3:10-11), 인내와 행위(계2:19)등 모든 것에 감초처럼 들어가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인내를 통하지 않고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인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말씀을 받으면 인내로 열매를 맺어야 하고(눅8:15), 인내로 혼을 소유하고(눅21:19),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면 인내로 기다리고(롬8:25), 약속들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믿음과 더불어 인내가 있어야 하며(히6:12), 믿음의 경주 역시 인내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히12:1).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하여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히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다.” 이 말은 믿음의 보상과 상속을 소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요? 돈이나 재능이 아닙니다. 인내입니다. 서류에는 서명이 필요하듯이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약속한 것 즉 어음이나 Credit을 현찰(cash)로 바꾸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소망을 현실로 바꾸는 것 역시 인내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소망하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인내는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인내는 환란의 부산물입니다. 인내는 순간순간 절제해야 하며, 참고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환난을 충분히 당해 보지 않았고, 환란을 당했다고 해도 거기서 배움을 얻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사람은 삶에서는 엄청 고난을 당해보고, 가시밭길을 살아왔다고 하지만 영적 시련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인내의 열매가 아니라 단지 ‘고생’으로만 그치고 마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로다.](롬5:3-4). 인내의 앞뒤에 있는 말들에 주목하십시오. 인내를 이루는 것은 환란입니다. 환난이 없으면 인내 역시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이 “나는 인내가 부족해!”라고 말한다면 사실 인내에 앞서 그 인생에 ‘환난’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내는 체험을 이룹니다. 이 말은 인내가 없으면 체험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영적 체험을 많이 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환난을 통해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인내를 통해 체험(경험/experience)을 하게 됩니다. 영적 체험이 많다는 뜻은 그만큼 환란을 통해 인내를 열매로 맺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인내는 환란의 부산물이요, 결과라고 했습니다.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이나 죄로 인해 당하는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당하는 고난은 유익이 없습니다. [너희가 너희 잘못으로 인하여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영광이 있으리요?](벧전2:20a). 물론 회개를 하게 되면 영적 유익이 되긴 합니다만 그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죄로 인한 고난은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악을 행하는 자나 남의 일에 참견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는 말라.](벧전4:15). 이런 고난을 주를 위한 고난인 것처럼 둔갑시켜는 안 됩니다. 이런 고난을 통해서 인내의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환난은 믿음으로 인해 받는 것이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으로 인해 받는 고난을 말합니다. 이런 것을 흔히 ‘믿음의 시련’이라고 합니다. 이런 시련은 인내를 이룹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이루는 줄 너희가 알기 때문이라.](약1:3).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이룹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끊임없이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가 항상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내게 닥치는 어떤 일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내는 환란의 결과요, 믿음의 시련이 이룬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참고 견디는 힘을 인내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딘다고 할 때 견디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고린도전서 13:7에 사랑의 속성 4가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절제) 모든 것을 믿으며(믿음) 모든 것을 바라며(소망)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인내).](고전13:7)고 말하는데 이중에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 인내입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절제, 믿음, 소망, 오래 참음, 인내는 그 속에 포함됩니다. 사랑은 이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는 띠입니다(골3:4).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고 해도 인내하고 있으면 그는 이미 성령의 열매를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으로 인내한다면 인내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① 인내는 받은 말씀이 열매를 맺게 하는데 필요합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있는 자들은 이들이니 곧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자들이니라.](눅8:15).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고,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열매가 없다고 하는 분들은 자신 안에 인내가 있는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인내가 없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환란을 보내시고 인내를 배우도록 하실 것입니다. 성경을 외우다시피 읽어도 환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요즘 저희 교회 성도들이 기도회를 하고, 성경 읽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겪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열매를 맺기, 부흥, 성장, 변화를 주시도록 기도하고 열망했기 때문에 겪는 자연스런 일입니다. 성경 공부만 해서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면 우리는 고시 공부하듯이, 연구원들이 공부하듯이 성경을 공부하면 되겠지만 그렇게 성장하는 법은 없습니다.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통해 믿음의 시련을 당해 보면서 이겨 나갈 때 성장이 있고, 열매를 맺습니다.

② 인내는 체험을 이룹니다.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로다.](롬5:3-4). 환난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환난 뒤에 있는 무엇을 볼 수 있다면 기꺼이 즐거워하고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보십시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하여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하여 십자가를 견디셨다고 증거 합니다. 우리 역시 환난이 낳게 될 인내와 체험과 소망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인내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인간의 육신이 하는 인내는 쓰라림과 눈물과 한숨의 인내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인내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하는 인내입니다. [그분의 영광스런 권능에 따라 모든 강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인내와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1:11).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그냥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환란 중에도 기뻐하고, 주님의 영광스런 권능에 따라 모든 강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기 때문에 기쁨으로 인내하고 오래 참는 것입니다.

③ 우리는 모두 인내하고 기다리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인내로 기다릴지니라.](롬8:25). 여러분이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보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바라는 것은 현재 없는 것들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몸 등은 현재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한 처소 즉 맨션도 볼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야 기다릴 일도 없지만 이것을 사모하고 바란다면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영광스런 오심을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다윗은 기다림에 익숙한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무엘에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왕이 되기 위해 전쟁을 벌이거나 정치 공작을 행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백성들을 규합해서 정당을 만들거나 언론을 장악해서 여론을 조성하거나 사울 왕을 대적하는 반정부 시위나 데모를 주동하거나 정통성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거나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저주하기는 고사하고 욕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타국에서 고생할 때 항상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오니 주의 진리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가르치소서.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25:5). 이것이 오늘날 인내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본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혼이 [주]를 기다리나니 그분은 우리의 도움과 우리의 방패시로다.](시33:20). 다윗은 이미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주의 영이 그 안에 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주님을 기다리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이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성령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주를 바라고 기다리고 소망하는 그런 인내의 삶을 삽니다. [[주] 안에서 안식하고 끈기 있게 그분을 기다리라. 자기 길에서 형통한 자나 사악한 꾀를 이루는 자로 인하여 초조해 하지 말지어다.](시37:7).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인내입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한 후에 기다림이 있습니까? 아니면 기도한 후에 금방 잊어버립니까? 여러분의 절실하고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단 인내로 기다리십시오. 초조해 하지 말고 안식하고, 기쁨으로 소망가운데 인내하십시오.

④ 인내는 소망을 줍니다. 인내는 과거 지향이 아니라 미래 지향입니다. 우리의 눈은 언제나 앞과 위를 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뒤를 보거나 아래를 향하게 하지 마십시오. 소망이 없는 것은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가 말하기를, [환상이 없는 곳에서는 백성이 망하려니와 법을 지키는 자는 행복하니라.](잠29:18)했습니다. 환상은 망상이 아닙니다. 환상(vision)은 말씀을 통해 갖게 된 믿음이 마음 속에 영상으로 자리 잡는 것입니다. 저의 선배 한명은 지방에서 어느 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지 못해서 오토바이를 끌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개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느 수련회에 가자는 권유를 받고 수련회에서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설교를 듣고 로마에 가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로마를 가리라는 열망이 솟아올랐고 그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품은 환상(vision)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로 가는 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는 로마 국립대학에 진학해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대학생 선교를 훌륭하게 감당했습니다. 그가 한국에 선교 보고 대회를 하러 왔을 때 만나 보았는데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을 품은 사람, 주의 말씀으로 환상을 지닌 사람을 그대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절감했습니다.

나는 인생의 낙(樂)이 없다. 젊을 때는 꿈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없다. 내가 가진 꿈이 성경적인지 욕심인지 모르겠다. 소망이 없다는 분들은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성경이 여러분에게 주는 어떤 소망이 있을 겁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곧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롬15:4).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 가진 소망이라면 늦더라도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단 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나의 항로를 그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전혀 모르겠다면 여러분이 품은 뜻, 이상,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말씀을 통해 얻게 된 비전(vision)이 여러분의 도착점입니다.

⑤ 인내는 기도 생활에 핵심입니다. [/성/령 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엡6:18). 여러분의 기도는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어떤 기도는 이미 기도한지 몇 십년이 지났건만 이루어질 기미조차 없을지도 모릅니다. 기도한 당사자조차도 아무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라고 말합니다. 인내로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 가족들에 대해서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막막 그 자체일 뿐 이루어질 어떤 기미도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조금도 낙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내로 기다립니다. 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솔직히 기도한 대로 되는 것보다 반대로 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기대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마침표를 찍지 않습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결국 이루어진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형제의 변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고사하고 교회를 떠나 버렸거나 이 교회를 비난하거나 저를 욕합니다. 그렇다면 저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직도 여전히 기도는 유효하며, 진행 중에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되지 않았다고 해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내로 기다리게 하시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방식, 원하는 시간에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다 해 주면 성숙한 신앙 인격을 갖출 수 없습니다. 완전히 개망나니가 되고 맙니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다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알지 못하고,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와 간구는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항상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떤 선원이 배를 타고 항해하다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선원들의 소원은 언제나 집에 무사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는 풍랑을 만나 난파되었습니다. 그는 부서진 판자 조각을 하나 잡고 있었는데 풍랑과 파도로 급격히 쓸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도착해야 할 항구와 가장 가까운 어느 갯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한 대로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물론 그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그는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기도한 대로 집에 돌아 올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 방법, 시각이 아니더라도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마십시오. 성령 안에서 행한 간구와 기도라면 늦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기도를 함으로써 기도 응답이 없고 절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주의 깊게 인내하며 살피면 잘못된 동기로 구한 것들은 모두 취소하게 되고, 회개하게 되며 바른 기도를 하게 됩니다.

⑥ 모든 사람에게 인내하라. 인내는 일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인내해야 합니다. [형제들아, 이제 너희를 권면하노니 제멋대로 행하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마음이 약한 자들을 위로하며 힘이 없는 자들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인내하라.](살전5:14). 인내가 없으면 사람을 양육할 수 없습니다. 영적 성장 과정은 육신의 성장 과정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갓 태어난 아이들은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납니다. 이후로는 본격적인 교육과 현실에서 부딪히면서 진리를 몸으로 익히게 됩니다.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이 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향해서 인내하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⑦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는데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히12:1). 생각해 보십시오. 경주를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운동 삼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보다 무미건조하고 힘든 일도 없을 것입니다. 목표 지점까지 달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무엇으로 경주합니까? 인내로 경주합니다. 경주를 하는데 필수적인 것은 인내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달려야 할 길(course)이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은즉](딤후4:7). ‘나의 달려 갈 길’(my course)입니다. 남이 대신 달려 줄 수 없습니다. 누구와 비교할 필요도 경쟁할 필요도 없습니다. 묵묵히 자신이 달려갈 길만 달리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인내가 있는가? 없는가? 입니다.

⑧ 인내는 모든 것을 완전하고 완벽하게 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이루는 줄 너희가 알기 때문이라. 오직 인내를 완전히 이루라.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완전하고 완벽하여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3-4). 성도들이 인내를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완전하고 완벽하고 부족함이 없게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하고 완벽하게 하려는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자면 인내를 이루어야 하고, 인내를 이루자면 불같은 믿음의 시련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인가의 부족이나 결핍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경건이 부족하다, 어떤 이는 지혜가 부족하다, 어떤 이는 사랑이 부족하다, 어떤 이는 ***가 부족하다고 스스로 고백합니다. 저도 그런 부족을 체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주님은 우리의 이런 부족을 절실히 깨닫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는데 우리는 그런 부족을 충분히 채움 받기 위해서 인내를 이루라고 하십니다. [오직 인내를 완전히 이루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완전과 완벽과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게 하는데 필수 조건이라고 합니다.

우리 몸 속에 어떤 영양분이 부족할 때 몸은 완전하지 못하고 어딘가 이상 작동을 일으킵니다. 심지어 비타민의 어떤 성분이 부족해도 증상이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영적 요소들의 결핍을 느낄 때 금방 육신의 행위들로 증상이 나타납니다. 말이나 생각으로 먼저 나오고 행동으로 나옵니다.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다.’ 이 말씀은 내가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등이 부족하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먹고 입을 것이 부족하지 않게 하시며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빌4:19)는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속 사람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복 주시면 광야를 걸어도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주님이 복주시고 함께 하시면 여러분의 가정이나 일터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는 [주] 네 하나님이 네 손의 모든 일에서 네게 복을 주었기 때문이요, 또 네가 이 큰 광야를 걸어서 지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니라. [주] 네 하나님이 이 사십 년 동안 너와 함께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에](신2:7).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완전하고 완벽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찾을 때 부족함이 없다고 하십니다. [오 [주]의 성도들아, 너희는 그분을 두려워하라. 이는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로다. 젊은 사자들은 부족하여 굶주릴지라도 [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34:9-10). 하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인내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이런 모든 부족함이 없게 하는데 인내가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오직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달아 보실 때 부족함이 있다(단5:27)고 하시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인내를 완전히 이루어야만 합니다.

⑨ 참는 자들은 행복하다. 인내의 결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대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참는 자들을 우리가 행복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지극히 동정심이 많으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니라.](약5:10-11). 인내의 본으로 제시된 욥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그 인내에 대한 결말을 보여 주셨습니다. 참는 자들을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인내에 주어지는 결말 때문입니다.

대언자들은 고난과 인내의 본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믿음의 발자취를 따를 뿐 아니라 인내의 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참는 자들은 행복합니다. 참을 수 없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고 맙니다.

오늘 우리는 인내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오래 참음과 인내 이 둘을 이루어 주시도록 주님께서 주시는 모든 시련과 환란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과 더불어 /너희는/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한즉 너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빈약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벧후1:5~8).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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