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엡5:9
선함은 성령의 열매(fruit)입니다. [선함]의 열매를 맺어서 선을 행하는 것은 주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선하신 분이시며, 선을 행하시는 분이시기에 그 자녀 된 우리 역시 선해야 하며, 선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이 바로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주님의 친 백성이요, 주님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우리를 구속(救贖)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목적이 바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셔서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선함]은 구원받은 자들이 맺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열매이요, 중요한 열매입니다.
성도들이 선이 아니라 악을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은 변함이 없다 할지라도 사는 것은 꼭 마귀의 자녀들처럼 사는 것이 되고 맙니다. 악을 행하는 자녀는 부모에게 수치를 끼치듯이 악을 행하는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독하는 자녀가 되고 맙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선함의 열매를 맺도록 중보하시며, 신음하십니다. 우리는 선함이 가득해야 합니다. [내 형제들아, 내가 또한 너희에 대하여 확신하노니 너희 역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충만하여 능히 서로를 훈계할 수 있느니라.](롬15:14). 선함은 해가 비취듯이 비쳐져야 하는 것입니다. 선함은 비가 땅에 내리듯이 모든 사람을 향해 쏟아져 나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선함의 열매를 맺으심으로 우리는 매사에 매 순간에 선한 동기, 선한 목적, 선한 방법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교회를 다닌지 꽤 오래 되었고,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나 신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 있고, 누가 말하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말도 덜 거칠고, 욕도 거의 하지 않고, 술이나 담배나 오락이나 마약 등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가지며 살 것입니다. 죄악된 친구들이나 속되고 천박한 농담이나 음란하고 더러운 대화를 거의 하지 않으며 살아 온 지가 몇 년에서 몇십년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현재도 어느 정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드러나게 하지는 않고 눈치를 보아 가면서 적당히 하는 그런 수준인지도 모릅니다. 나름대로는 선하게, 양심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선함]은 그런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세상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지 마십시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모두 [선함]의 열매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침투해 들어오는 세상의 죄와 더러움을 이길 수 있는 그런 [선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악에게 지지 말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맺으시는 열매로서의 ‘선함’입니다.
성령께서 ‘선함’의 열매를 맺으시는 것은 이 세상이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더럽다고 욕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본래 더럽고 악합니다. 문제는 그런 세상의 물결을 이길 선함이 내 안에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세상 탓, 사람 탓, 환경 탓을 하면서 합리화하고 변명하기 쉽지만 주님은 문제는 세상이 아니고, 사람들이 아니고 네 안에 ‘선함’의 열매가 없는 탓이라고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은 돈이 없으면 악해집니다. 일이 풀리지 않으면 악해집니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악해집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포악해지고, 독기만 남는다고 합니다. 자신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는데 세상이 자꾸 자신을 악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도 있고,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과 동화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이미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빌1:6).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선한 일을 해야만 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주님께 드리는 희생물입니다. 성경은 이르기를, [오직 선을 행하는 것과 나누어 주는 것을 잊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이 같은 희생을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이니라.](히13:16)고 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좀 가진 것이 있고, 생활에 여유가 있을 때는 선을 행할 수 있고, 베풀어 줄 수 있지만 자신이 힘들고 어려우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번도 성도들에게 “많이 벌어서 여유가 생기고 여력이 있으면 선을 행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하십니다. 선을 행하는 일은 먹고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로 아는 사람들이 행할 일이란 것입니다.
성도들은 선을 행하기 위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신 목적이 바로 선한 일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된 자들이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우리가 선함의 열매를 맺지 못할 때 우리는 존재 의미와 목적이 완전히 상실된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선을 행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지만 선을 행하지 않을 때 그것은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느니라.](약4:17). 선을 행하는 일은 주님께서 우리 안에 맺으시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 우리는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지니라.](갈6:10). 이것이 성경이 주는 권면이자 명령입니다.
누구나 죄를 짓기보다는 의를 행하고, 악을 행하기보다는 선을 행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려면 먼저 선한 양심과 선한 마음이 필수적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것은 너희를 가리켜 악을 행하는 자라 비방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한 행실을 거짓되이 비난하는 자들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6).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행실을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때로 악한 자들도 “오랜만에 좋은 일 한번 해 봤다”면서 자랑하는 일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일이 드문 일이요, 무슨 특별 행사인 것처럼 하는 것은 그가 본디 악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악한 일에 익숙합니다. 악한 일은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 합니다. 타고난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중에 아무도 “나는 나쁜 일은 아무리 배워도 잘 못하겠더라구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안 배워도 배운 것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디오피아 사람이 자기 피부를, 표범이 자기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리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악에 익숙한 너희”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이것이 본래 사람들이 타고난 본성입니다.
이곳 미국의 가치 기준은 “실용성과 합리성”입니다. 실용주의로 불리는 이 시대정신은 실용적이지 않으면 무가치한 것이고, 필요가 없습니다. 실용적이면 그것이 곧 좋은 것이며, 선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조금 비약해서 말하면 쓸모 있는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곧 선한다는 논리입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은 다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나 일을 잘하고, 기술을 가졌고, 어느 분야의 전문가란 사실이 그 사람의 선함과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뛰어난 의술을 통해 수많은 환자를 고쳐 주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이 선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정말 훌륭한 의사라고 칭찬해 줄 수 있습니다.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을 혁명적 발견이나 발명품을 내어 놓은 천재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선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실용주의의 요체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실용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믿음에 따라 살면 손해가 많습니다. 때로는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유익한 일입니다. 이 땅에서 유익이나 열매를 다 맛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나는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상은 반드시 주어집니다. 우리의 삶은 이 지구, 이 육신 속에서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롬14:10, 고후5:10). 믿음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믿음은 늘 이성을 초월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베푸는 일은 실용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죄인을 사랑하는 일은 이성과 지각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지식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평강 역시 지각을 초월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라.](딤전1:19). 성경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선한 양심을 소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1:5). 만약 여러분이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이익이 얼마나 예상되든지, 손해가 얼마나 올 것 같은지 간에 그 일이 선한 양심을 더럽히는 일이요, 거짓 없는 믿음을 오염시키는 일이라면 하지 마십시오. 성경에서 특정 구절을 찾지 못하고, 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잘 알지 못하지만 그 일이 양심에 걸리는 일이거나 믿음을 약화시키는 일이라면 그 일은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그 일을 해도 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고, 성경적으로 잘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 양심이 정죄를 받고, 고소를 받고, 거리끼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유익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하신 [선함]은 우리가 맺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열매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늘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골1:10). 성경을 가르치는 자는 동시에 선을 행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성경을 배우지만 선한 일을 하지 않고, 선한 일들에 부요하지 않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의 감독들은 성도들에게 반드시 이 점을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선을 행하게 하며 선한 일들에 부요하고 베풀기를 좋아하고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라.](딤전6:18). 여러분은 세대주의를 배우지 못해도 선을 행하는 것은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캘빈주의니 언약 신학이니 무슨 주의(ism)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할지라도 ‘선을 행하고 선한 일들에 부요’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진 목적이 무엇입니까? 다 같이 성경을 펼쳐 봅시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읽으면서 성경 기록의 목적을 발견하셨습니까?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사람 즉 저와 여러분을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는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서로 교제를 나누지만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 짐’이 없다면 그는 성경을 공부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선함의 열매를 맺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을 억누르고, 거역하고, 육신을 쫓아 행하지 않는다면 믿는 성도들 안에는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소멸해 버리고, 거룩한 영을 슬프시게 함으로써 신앙생활을 한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마땅히 [선함]의 열매를 맺어서 선한 양심, 선한 마음으로 선한 일들에 열심을 내는 주의 친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주의 영이 선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으로 인하여 물을 주사](느9:20). 성령은 선하신 영이십니다. 반면 마귀는 악한 영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마귀는 더러운(unclean) 영입니다. 성령께서는 빛 가운데 맺혀 집니다. 성령의 열매는 선함 가운데 있습니다. [(이는 /성/령의 열매가 모든 선함과 의와 진리 안에 있기 때문이라.)](엡5:9). 그러므로 악한 일, 어둠의 일은 결코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주의 영이신 성령은 선하십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오니 나를 곧바른 땅으로 인도하소서.](시143:10). 선한 영을 받은 사람들이 선한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악한 영, 더러운 영을 지닌 사람이 선한 마음으로 선한 말을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무엇인가 흑막이 있거나 드러나지 않는 속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선한 영으로 충만하게 됨으로 무엇이든지 선하게 됩니다. 선한 말을 하게 되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게 됩니다.
선한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선함]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 자신의 뜻에 맞추어 주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은 [좋은 사람](good man)이 됩니다. 남에게는 몰라도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말도 얼마든지 성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마음의 소유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을 펴 보십시오. [그러나 좋은 땅에 있는 자들은 이들이니 곧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자들이니라.](눅8:15).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자들이 선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매우 선해 보이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매우 완악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선한 마음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주의 영이 선한 영이듯이 주의 말씀 역시 선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권능을 맛본 자들이](히6:5)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예외 없이 모두 주의 선한 영과 선한 말씀을 맛보아 안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마음으로 선한 일들을 행하는 일은 어색하거나 힘든 일이 아니라 자연스런 일이며, 본능이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선한 영, 선한 말씀을 통해 살도록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선하다는 것이 언제나 웃으며, 아무 일에나 잘 해주고, 꾸중도 책망도 심판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인을 책망하지 않고, 악을 행할 때 징계하지 않고, 심판하지 않는 것은 선함이 아니라 악함입니다. 주님이 선하시다는 의미를 아십니까?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을 찾고 외칩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에게 먹을 것을 때마다 사주고,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 제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으로 어린 성도들 역시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이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마다 들어 주고, 징계나 심판이나 매질이나 시련이나 어려움은 모두 제거해 주는 그런 하나님을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란 무엇이나 내가 원하는 것을 언제나 들어주는 종이나 참모나 도우미 같은 분이 아닙니다.
그런 선하신 하나님이란 어떤 하나님입니까?
① 주님이 선하시다는 의미는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선한 법규를 주시고, 그 말씀을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에게 의와 불의, 거룩함과 더러움, 선과 악, 복과 저주, 생명과 화를 알게 하시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십니다. [주는 선하시며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법규들을 내게 가르치소서.](시119:68). [[주]는 선하시고 곧바르시나니 그러므로 죄인들을 그 길로 가르치시리로다.](시25:8).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으시는 선함의 열매는 결국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가르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에 성령의 열매인 선함이 있는 사람은 말씀 공부를 결코 싫어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② 주님이 선하시다는 것은 우리를 향해 하신 선한 말씀을 이행하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행하십니다. 사람들은 원수를 기억하고 선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를 잊어버리시고 선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빌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아보고 너희를 향한 나의 선한 말을 이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렘29:10). 주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의 죄를 영원히 기억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하신 선한 말을 기억하시고 이행하셨습니다. 성령의 열매인 선함이 있을 때 우리는 주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이루어짐을 소망하게 됩니다.
③ 주님이 선하시다는 것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이시란 의미입니다. [이는, {주}여, 주께서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며 주를 부르는 모든 자에게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이니이다.](시86:5). 주님의 선하심은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데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오 [주]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범법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인하여 하옵소서.](시25:7). 주님은 죄인들로 인해 자신이 받은 모독과 수치와 모든 악한 일들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리시고 기꺼이 용서하십니다. 누구를 마음으로 기꺼이 용서하는 일은 선함의 열매가 가득한 것입니다. 마음에 성령의 열매로서 선함이 있을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는 누구라도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④ 주님이 선하시다는 것은 우리를 건져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오 {주} [하나님]이여, 내게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행하소서. 주의 긍휼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시109:21). 주님은 우리를 건져 내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에 빠졌을 때 피할 길을 내시거나 건져 주시는 분이 바로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면 즉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해도 다 살 길은 있더라구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운이 좋았다, 미국이란 사회가 너무 좋다고 말하는 것 역시 주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그 무엇을 통해서 건져 주실 때 우리는 주의 선하심을 맛보게 됩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건져주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 사람 안에는 ‘선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⑤ 주님이 선하시다는 것은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주]께서 그 앞으로 지나가시며 선포하시되, [주]로다.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출34:6). 주님의 선하심은 때로는 긍휼로, 때로는 은혜로, 때로는 오래 참음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오래 참지 못한다는 것은 선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⑥ 주님의 선하심은 공평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해, 자신의 비를 악인들에게도 내려주십니다.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기 때문이라.] (마5:45b). 오늘도 우리 위에 뜬 해가 우리에게만 비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 위에 비치고 있고, 때로 내리는 비가 우리에게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내리는 비라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해는 누구의 것입니까? “그분께서 자신의 해를...” 하고 말씀하십니다. 해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은 현재 지상의 모든 악인들, 불신자들, 죄인들을 향해 무수한 은혜와 긍휼과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시며, 선을 베푸시는 중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주님을 모독하고 거역하고 무시하는 자들이었지만 주님의 것을 값없이 누리고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대해서 아테네의 철학자들에게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당대의 철학자들이 도무지 알지 못하는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하여 증거를 남겨 두지 아니하신 것은 아니니 곧 선한 일을 행하시고 우리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주시며 결실의 계절을 주사 음식과 기쁨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 주셨느니라, 하고](행14:17). 비가 내리는 것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이며, 결실의 계절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이요, 음식과 기쁨 역시 주님이 채워 주신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선한 일을 행하신 결과란 사실을 선포해 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이런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이 땅이 죄로 가득한 더러운 곳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주님의 선하심 역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침에 솟아오르는 해는 주님의 선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내리는 비 역시 주님께서 여전히 선한 일을 하고 계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들에 익는 곡식들, 나무에 맺히는 열매들,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모두 주님께서 선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그분께서 의와 공의를 사랑하시나니 땅은 [주]의 선하심으로 가득하도다.](시33:5)고 노래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진리를 마음에 담고 있으면 온 세상이 모두 주님의 선하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게 되고, 알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의 타고난 성품이 악하고 더럽고 추하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감(同感)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예절과 여러 가지 좋은 환경 가운데서 자라게 함으로써 좋은 품성과 사회성을 길러 가기는 하지만 우리 안에는 언제나 악함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유익한 것, 득이 되는 것은 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평하지만(*영어 표현을 보십시오. 조금만 유익이 되는 일이면 It's good!을 연발합니다.), 내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아픔이 되고, 어려움이 되는 것들은 결코 좋은 것, 선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교육과 예절로 인품을 포장하고 돈과 학력과 지위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란 것을 보여 주려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을 [선함]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선함(goodness)은 전적으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새로운 마음, 새 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 안에 이식하여 자라게 하심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고,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내 안에 구체화하실 때 우리는 각양 좋은 열매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 되십시오. 지금 시대는 선한 사람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선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졌고 곧바른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미7:2a). 신문이나 방송에 덕담이나 미담 코너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그런 선한 사람을 말합니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선하신 하나님, 선한 영, 선한 가르침, 선한 판단이 내 안에 풍성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없이는 누구도 육신의 사악함과 죄성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봉사 활동을 하고, 교회 일을 착실히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선이나 봉사, 시간과 금전의 희생 등으로 자신이 선해졌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물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을 하는 자체는 훌륭한 일이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는 선함의 열매는 우리가 먼저 선한 사람이 되어서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사람이 되면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매우 큽니다.
① 선한 사람은 주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주]께서 선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시37:23). 성도들은 저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렇다면 선한 사람이 되십시오. 선함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걸음을 정해 주실 것이며, 그 길을 기뻐하십니다.
② 선한 사람은 호의를 베풀고 빌려 줍니다. [선한 사람은 호의를 베풀고 빌려 주나니 그가 자기 문제들을 신중하게 처리하리로다.](시112:5). 선한 사람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즐겨하며, 후히 주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는 인생을 삽니다. 그렇다고 나는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베드로와 요한 역시 동냥하는 거지에게 줄 금과 은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줄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능, 믿음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을 줄 수 있고, 관심과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주고자 한다면 자신의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③ 선한 사람은 주의 은총을 얻습니다. [선한 사람은 [주]의 은총을 얻으려니와 사악한 꾀를 부리는 사람은 그분께서 정죄하시리라.](잠12:2). [선함]의 열매가 있으면 주님의 은총을 얻습니다. 주의 은총이 임하면 모든 것이 복되고 형통한 자가 됩니다. 이런 것을 ‘선순환’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 주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 선순환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④ 선한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만족을 얻으리라. [마음이 타락한 자는 자기 자신의 길들로 채워지려니와 선한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만족을 얻으리라.](잠14:14). 선한 사람은 만족의 비결을 배운 사람입니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탐욕을 버리고 이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만족을 얻습니다.
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보고에서 선한 것을 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보고(寶庫)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보고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12:3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보고를 지닌 사람입니다.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가는 그 사람의 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의 출구는 입입니다. [오직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증거, 신성 모독이기 때문이니] (마15:18~19). 마음에서 무엇이 나오는 가를 보십시오. 그러나 선한 사람은 이런 것이 나오지 않고 성령의 열매들이 나옵니다.
⑥ 선한 사람은 주님께 사람을 더합니다. [이는 바나바가 선한 사람이요,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라. 이에 많은 사람들이 {주}께 더해지더라.](행11:24). 선한 사람들은 구령의 일꾼이 됩니다. 그들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선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우리의 증거는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선한 사람이 되어서 선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선함]이 성령의 열매이기에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을 통해 살아가야 합니다. 열매는 은사가 아닙니다. 열매는 선물이 아닙니다. 열매는 생명의 씨를 받아 성장하고 자라난 결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열매가 없는 것은 그들이 말씀의 씨앗을 마음에 받은 후에 이런 성장 과정을 포기하거나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말 그대로 성령의 열매이지 우리의 열매 또는 교회의 열매, 신자의 열매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일하시도록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순종할 때만 맺히는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선함]의 열매는 성령께서 성도들 안에 주님의 선하심을 풍성히 열리게 하는 것입니다. 선함의 열매는 빛처럼 비추어 집니다. 열매는 행위로 드러납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로 하여금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선한 행위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선한 행위의 본으로 보여야 합니다(딛2:7). 그리고 지속적으로 선한 행위를 해야 합니다. [이 말이 신실하도다. 원하건대 너는 확고하게 이것들을 단언(斷言)하라. 이것은 이미 하나님을 믿은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행위를 지속하게 하려 함이니 이것들은 선하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딛3:8). 열매는 일시적이지 않습니다. 육신으로 하는 일은 기분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자신의 사정에 따라서 달리 반응하지만 성령의 열매로서 선함은 늘 지속적이며 변함이 없습니다.
선한 행위를 지속하는 것은 배워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 속한 사람들도 필요한 용도를 /채워 주기/ 위해 선한 행위를 지속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 그리하여야 그들이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아니하리라.](딛3:14). 무엇이든지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한 행위를 지속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격려하며 힘을 돋우어 주어야 합니다.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되](히10:24). 성도들의 교제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선함]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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