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출애굽기 27:20-21
요절: 출애굽기 27:20,21
하나님은 성막의 뜰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 계속해서 나머지 기구들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시고 27:20부터 28,29장에 걸쳐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30장부터 다시 성막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30장은 향을 태울 제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라 화평의
창시자요, 질서의 하나님이란 점에서 왜 갑자기 사이에
성막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직분에 대해서 언급하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막은 주님께서 백성들 사이에
거하시며,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시는 것들을 예표하는
것이라면 27:20부터 30장까지는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예표합니다.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등불이 타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없이는 누구도 주님의 사역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비추어 주시는 빛 아래에서만 우리는
어둠 속에 걷지 않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성막의 뜰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28, 29장에 아론의 계열에 대한 제사장 직분이
나옵니다. 27:20-21절은 단 두절로 삽입절입니다. 등불을 항상
타게 하라는 말씀을 주신 후에 제사장의 직분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제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등불이란 사실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없이 영적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대제사장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며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슥4:6).
이는 분명한 진리입니다. 모든 일은 힘과 능력이 아니라
주의 영으로 말미암습니다. 참된 변화는 훈련으로 지식으로
되지 않습니다. 3년반이나 제자 훈련을 받았던 제자들은
주님이 체포되시자 모두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의 기적을 보고, 듣고,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이 직접 마귀를 내 쫓아 보기도 했고,
병을 고쳐 보기도 했으며, 복음을 전하기도 했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일신의
위기와 위험이 닥쳤을 때 마음에 평안이나 기쁨이나
담대함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지식의 한계요,
체험의 한계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참다운 변화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기 까지 그들은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영적 사역을
단 한 가지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담대함을 갖게 되었고, 능력을 갖게 되어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를 비롯한 온 세상의 복음 전파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변화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가리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렀나니 /이것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후3:18).
마음의 변화, 생각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삶의 변화는 모두
주의 영으로만 가능합니다.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영으로만 됩니다.
20-21절입니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등불에 쓰기 위해 올리브로
찧어 만든 순수한 기름을 네게 가져오게 하고 항상 등불이
타게 할지니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회중의 성막에서,
증거/판/ 앞에 있는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
앞에서 그 등불을 점검할지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대대로 영원한 법규가 될지니라.](20-21).
제사장들의 중요한 직무는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돌보는 것입니다. 성막의 등불은 결코
꺼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무엘을 부르실 때
배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더니 그곳에
하나님의 궤가 있더라. 사무엘이 잠자려고 누웠는데](삼상3:3).
사사들의 시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 사회는 부패하고,
외적들은 자주 쳐들어 왔습니다. 대제사장 엘리는 타락했고,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사무엘이
주님을 섬기기 위해 성전에 있을 때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한 이스라엘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있는 한
언제나 다시 부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올리브로
찧어 만든 순수한 기름을 네게 가져오게 하고 항상 등불이
타게 할지니라’ 명령하셨습니다.
어두운 밤길을 한번이라도
걸어 본 사람은 등불의 중요성을 압니다. 별이나 달이 떠
있는 그런 밤이 아니라 완전히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걸어
보십시오. 등불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신약 성경에는 자신들이
들고 있던 등불을 꺼뜨려 버린 어리석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지혜로운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의 등불이 꺼졌으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달라, 하거늘](마25:8).
그들의 등불이 꺼진 것은 기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기름이 없으면 등불이 꺼집니다. 잠을 잘 때는 불이 꺼져
있어도 되지만 잠에서 깨어야 할 때는 불이 켜져야 합니다.
등불은 대낮이 아니라 한 밤중에 긴요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초림의 때에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동방의 현자들이 찾아 왔지만 예루살렘은
소동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재림의 때 역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극소수의 남은 자들만이 신랑의
오심을 기다리고 혼인 잔치에 참여할 것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기름이 떨어져 등불이 꺼진 사람들처럼 신랑의
오심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항상 등불이 타게
할지니라]는 역사적으로, 예언적으로 주님의 오심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교회 성도들은 신부이지
처녀들이 아닙니다. 신부없는 신랑의 혼인식이 있을 수
없듯이 신부가 등불에 기름이 떨어진다는 것은 교리적으로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처녀는 이스라엘 민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등불을 가져야 합니까? 우리는 빛에 주의하면 됩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도 있으니 너희
마음 속에서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벧후1:19). 우리는 기름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를 주의해야 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빛을
대하듯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의 불길이 타고 있습니다. 말씀의 등불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성도들이 현재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들은
등불에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인도함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의 비극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등불이 꺼져 버립니다. [항상
등불이 타게 할지니라]는 말씀은 항상 “성령으로 충만
하라”는 말씀과 일치합니다. 성령을 억누르면(quench) 성령은
소멸되고 맙니다.
성경에서 등불은 성령의
빛, 말씀의 빛을 예표하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리는 빛이 없으면 단 한 순간도 살아 갈 수
없습니다.
● 성막의 성소에 있는
등불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광채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타는 등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안식하지 아니할 것인즉](사62:1). 예수 그리스도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빛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빛으로 오셨고, 사람들에게 그 빛을 아는 지식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어둠은 물러가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임하게 됩니다. 이것은
종교적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일어나는 영적 진리입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이것은 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요12:46).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이십니다. [이것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요1:9), [또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명령을 쓰노니 이것은 그분에게와 너희에게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이제 참 빛이 비치기 때문이니라.](요일2:8).
● 성막의 성소에 있는
등불은 저 하늘의 등불을 예표합니다. [그 왕좌로부터
번개들과 천둥들과 음성들이 나오고 왕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타고 있으니 이것들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4:5).
금 등잔대가 일곱 개의 등불을 밝히도록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타고 있습니다. 일곱
등불은 일곱 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보여 주지
않으시면 땅에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빛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땅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태양,
달, 별 등 모든 빛은 땅에서 하늘로 비취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땅으로 비취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주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에서 주지 아니하시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요3:27). 빛이 하늘에서
비취듯이 주님의 은사들 역시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1:17). 사람은 이 땅에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지 말고, 하늘에서 구하려고 해야 합니다. 모든
좋은 선물, 완전한 선물이 저 하늘에 있습니다. 성도는
끊임없이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하늘에서 주시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농부들이 비를 바라며 하늘을 보듯이
하늘에서 보여 주신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
아그립바 왕이여, 내가 하늘에서 보여 주신 것에 불순종하지
아니하여](행26:19). 사도 바울이 하늘이 음성, 부르심에
순종했고, 하늘에서 보여 주신 것에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늘의 부르심을 쫓아 사는 성도들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은 땅 끝에 있습니다. [지혜는 명철이 있는 자
앞에 있으나 어리석은 자의 눈은 땅 끝에 있느니라.](잠17:24).
그러나 지혜로운 자들은 모든 애정과 애착이 이 땅이 아닌
저 하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말씀하시고,
하늘에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말씀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우리가
하늘로부터 말씀하시는 분에게서 돌아선다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히12:25). 우리가 가야 할 곳 역시 하늘입니다.
성막의 등불을 하늘의 등불을 예표하는 것이기에 항상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 등불의 실체는
주님이십니다. 등불을 항상 타 있도록 한 것은 주님이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오 [주]여, 주는 내 등불이시오니
[주]께서 내 어둠을 밝히시리이다.](삼하22:29). 하나님은
우리의 등불이십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는 거리 감각도
없고, 방향 감각도 없고, 모양도 실체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 것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조차도 볼 수 없습니다. 내 몸에 상처가
나도 어디가 어떻게 상처가 났는지 느끼기는 하지만 볼 수가
없습니다. 어둡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서 ‘불 좀 켜 봐!’
소리 친 적이 없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는 영적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둠 속에 거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주님없는 사람의 일생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그가 모태에서 나왔은즉 나온 그대로
벌거벗은 채 돌아가고 자기의 수고한 것 중에 아무것도 손에
들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큰 악이라. 모든 면에서 그가 온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얻으려고 수고한 자에게 /과연/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또 그가 평생토록 어둠 속에서 먹으며
질병과 함께 많은 슬픔과 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전5:15~17).
이것이 주님없이 살아가는 인생인데, 평생토록 어둠 속에서
먹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면 주님이 내
등불이십니다. 주님은 내가 보아야 할 것들에 불을 밝혀
주시고, 내 발에, 내 길을 밝혀 주십니다. 그래서 어둠 속을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그때에는 그분의
등불이 내 머리를 비추었으며 내가 그분의 빛을 힘입어 어둠
사이를 걸어다녔느니라.](욥29:3). 여러분은 등불이
타오르고 있습니까? 주님의 등불이 내 앞에서 활활 타고
있습니까?
● 주의 말씀은 우리의
등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이는 그 명령이 등불이요, 그
법이 빛이요, 훈계하는 책망들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니라.](잠6:23).
말씀은 등이요, 빛입니다. 태양은 육신의 눈에 빛을 주지만
말씀은 영적인 지각의 눈을 밝혀 줍니다. 에덴의 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아담과 하와의
눈을 밝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밝아진 눈은 자아 의식,
죄의식, 선악을 판별하는 의식 등에 대한 혼의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눈을 떴습니다. 처음으로
두려움에 눈을 떴습니다. 죄의식에 눈을 떴습니다. 슬픔에
대한 눈이 열렸습니다. 육신의 눈은 자연을 보게 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죄에 눈을 뜨게 했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눈을 뜨게 합니다. [[주]의
법규들은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 (시19:8). 주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들은 시력이 2.0이요, 아이큐가 150이 넘어도 자신이
죄로 부패한 썩은 나무란 사실을 알지 못하며, 사악한
죄인이란 사실을 결코 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지 알지 못합니다. 눈을 밝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가난한 자와 속이는 자가 서로 만나거니와 그 두 사람의
눈을 밝게 하시는 이는 [주]시니라.](잠29:13). 우리의 눈이
밝아지면 주님의 영광의 풍성함이 얼마나 큰지 볼 수
있습니다. [너희의 지각(知覺)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로 하여금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8-19).
여러분의 눈은 밝아져 있습니까? 성도들은 남이 못 본 것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눈멀었다면 죄가 없으려니와
지금 너희가 본다고 말하니 그러므로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9:41).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했습니까? 주님은 영적인 눈을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육신의 눈을 말한 것입니다.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말하니
죄가 사해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보았지만 그들은 주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보았지만 말씀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의 등불이 그들의 등불이요,
빛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믿을 때 우리는 주의 경이로운 것을
보게 됩니다. [내 눈을 여사 나로 하여금 주의 법에서
나오는 놀라운 것들을 보게 하소서.](시119:18). 주님은
보여 주십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만 믿음의 눈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를 소유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것이요,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믿으며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영적인 눈을
밝혀 주는 말씀의 등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려고 이 세상에 왔으니 이것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눈멀게 하려 함이라, 하시매](요9:39).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을 항상 타게 하십시오.
● 다윗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었습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그를 구조하고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이니 이에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께서 다시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나가지
마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삼하21:17).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 내가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왕상11:36). 이는 다윗의 씨를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나오고, 영원한 왕국이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등불을 항상 타게 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왕들의 악행, 우상숭배, 범죄, 타락
등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오래도록 참으셨습니다. 결국
유다는 망했지만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윗의
아들이 왕위에 오를 것입니다. 등불이 사라진 유다의 운명은
지나간 역사를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 주신 등불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함으로써
그들은 다시 한번 암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 사람의 영은 주님이 주신
등불입니다. [사람의 영은 [주]의 등잔불이니 뱃속의 모든
부분을 살피느니라.](잠20:27).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영, 혼, 육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영은 주님이
거하시는 곳이요, 주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통해 우리 속을 살피시고
시험하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등불을 밝히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께서 내 등잔불을 밝히시리니 [주] 내
하나님께서 내 어둠을 밝히시리이다.](시18:28). 주의
성령이 있으면 환하게 밝아집니다. 주의 말씀이 있으면
대낮같이 밝아집니다. 우리는 모두 빛이요, 빛의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영은 활활타는 등불처럼 타오릅니다. [곧바른
자에게는 어둠 속에서도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은혜롭고
동정심이 많으며 의로운 자로다.](시112:4). 반면 죄를
지으면 등불은 꺼집니다. [사악한 자의 등불이 얼마나
자주 꺼지는가! 멸망이 그들에게 얼마나 자주 닥치는가!
하나님께서 친히 분노하사 슬픔을 나눠 주시는구나.](욥21:17).
[이는 악한 자에게는 보상이 없으며 사악한 자의 등잔불은
꺼질 것임이니라.](잠24:20). 우리는 주의하여 항상 등불을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런즉 네 눈이 단일(單一)하면 네 온
몸이 빛으로 가득할 것이요,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리니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등불이 어둡게
되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마6:22-23).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즉 주의하여 네 안에 있는
등불이 어둡게 되지 않도록 하라.](눅11:35).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듯이 눈은 마음 속의 영적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해 줍니다. 악한 눈을 가진 자는 같이 식사도 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명령입니다. [너는 악한 눈을 가진
자의 음식을 먹지 말고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내지 말지니](잠23:6).
경찰보다 소방관이 더 무서운데 이는 그들이 물, 불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요, 소방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맹인인데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요, 맹인보다 무서운
사람들이 노인들인데 이들은 막가는 인생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악한 눈을 가지고 있으면 그 몸 역시 사악해
집니다. 성도들은 모두 비둘기 같이 순결한 눈, 단일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비둘기는 한 번에 하나 밖에 보지 못합니다.
시선은 한 방향으로만 향합니다. 그래서 single eye(단일한 눈,
순결한 눈)이라고 말합니다. 최고의 눈을 가지려면 주의
말씀을 보면 됩니다. [[주]의 법규들은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시19:8).
주의 말씀이 안약입니다.
우리의 눈이 무엇을
바라보는가? 에 따라 우리의 눈은 달라집니다. 흔히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사람은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애정을 가지고 보는 것대로 따라 가게 되고, 그렇게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가 말하기를, [진실로
빛은 달콤한 것이요, 눈으로 해를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로다.](전11:7)고 했는데, 우리는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몸을 어둠으로 채우고, 등불을
끄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바라봄으로써 정욕이 일기 시작했듯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있으면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문화는 Visual 문화입니다. 시선을 끌어서 마음에
탐심을 일으켜서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신문, T.V, 잡지,
인터넷, 영화, 책 등 안 그런 것이 거의 없습니다. 무엇을
바라 보는가? 눈이 어디를 향하는가?
주님은 아브라함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롯이 아브람과 갈라선 뒤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과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창13:14). 왜
바라보게 하셨습니까? 바라봄으로써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품게 하신 것입니다. 마음 속에 넓고 광대한
땅을 보게 하시며, 그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마지막으로 은혜를 주사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민27:12).
모세는 40년의 목자 생활을 종결지으며,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그 땅을 바로 보았습니다. 주님은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 하나님이
주신 땅을 바로 본 후에 죽었습니다.
심판의 말씀을 전하던
이사야에게 주님은 시온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엄숙한 날들을 지키는 도시 시온을 바라보라. 네 눈이
평온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은 무너져 내리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곳의 말뚝 하나도 결코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곳의 줄 하나도 결코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사33:20).
주님은 천년 왕국의 예루살렘, 하늘의 시온을 바라보게
하심으로 소망을 주셨습니다. 범죄한 예루살렘, 타락하고
심판받을 예루살렘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세우실
예루살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나를 바라보라.
그리하고 너희는 구원을 받을지어다.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나 외에/ 다른 이가 없기 때문이니라.](사45:22). 주님을
바라볼 때 구원을 받습니다. 바라보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주님은 바라보고 구원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바라보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광야에서 불신과 불순종으로 불 뱀에게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대에 높이 달린 놋 뱀을
바라보기만 하고 구원받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들의
몸에 퍼지는 독, 자신들이 받은 저주, 자신들이 받은 형벌과
심판이 장대 위의 놋 뱀이 그대로 담당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장대에 높이 매달려 죽은 놋 뱀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뱀에 물린 모든 독으로부터 자신들을 치유해 주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귀가 패배한 것을 보았습니다. 죽임
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바라 보았을 때 나았습니다. 이
원리는 신약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하여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무엇을 보느냐? 누구를 보느냐?의 문제는
우리 인생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보이는 것은 잠깐 있을
뿐이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니라.](고후4:18).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십시오. 장차 다가올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이 바라보는 것들이 여러분에게
현실이 될 것입니다. 비전이 없으면 망합니다. [환상이
없는 곳에서는 백성이 망하려니와 법을 지키는 자는
행복하니라.](잠29:18). 비전이 없는 가정은 망합니다.
비전이 없는 교회는 방합니다. 비전이 없는 개인은 망합니다.
여러분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요한은 타는
등불이었습니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나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동안 그의 빛을 기뻐하기 원하였느니라.](요5:35).
요한은 자신을 불태웠습니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는
타오르며 빛나는 등불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성도는
타오르는 등불입니다. 우리는 등불을 켜야 합니다. [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며](눅12:35).
주님은 우리 안에 성령의 기름을 부으심으로 등불이
타오르도록 하십니다. 등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십시오. 우리
안에 있는 자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급해 주신
것들을 자원으로 삼아 활활 태워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의로운 행위를 함으로써 빛을 비추라고 하셨습니다. [또
사람들이 등잔불을 켜서 통 밑에 두지 아니하고 등잔대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느니라.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로 하여금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5~16).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선하고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자랑하지 않아도 선행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환하게 비추어집니다. 빛은 소리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영적 제사장으로써 등불을 잘
점검하고 관리하며 결코 꺼뜨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불타는 등불을 지니고, 우리 역시 세상에 등불이 되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