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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 입술의 송아지로 -


- 입술의 송아지로 -

말씀: 호세아 13:1-14:9
요절: 호세아 14:2 



호세아 13장입니다. [에브라임이 떨면서 말할 때에는 이스라엘에서 자기를 높였거니와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할 때에는 죽었느니라.](1). 에브라임은 주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에 두려워 떨었을 때에는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할 때에는 죽었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이 떨었을 때 그는 높아졌고, 말년에 우상들로 말미암아 범죄했을 때 그는 죽었습니다. 여로보암 역시 그러합니다. 그가 종이었을 때에는 떨면서 말했습니다. 그때 그는 왕으로 높아졌고(왕상11:26), 그가 마음이 높아져서 바알을 숭배함으로 범죄할 때 죽었습니다(앙상12:28-32).

2절입니다. [이제 그들이 더욱더 죄를 범하여 자기들의 은으로 자기들을 위하여 형상들을 부어 만들되 자기들이 깨달은 대로 우상들을 만들었으니 이 모든 것은 장인(匠人)들이 만든 것이라. 사람들이 그것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희생물을/ 드리는 자들은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는도다.](2). 우상을 만든 것은 자기들을 위해서지만 결국 그 우상으로 인해 죽는 것 역시 자기들입니다. 우상은 마음의 상상대로 만듭니다. 어느 시대나 장인들은 나무, 돌, 쇠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형상들을 만들어 먹고 삽니다. 이들은 각종 우상들을 제작하는데 캐톨릭 교회가 주문한 것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마리아 상을 비롯해서 각종 성인들의 형상을 만들어 세우고 그 앞에서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송아지와 입을 맞추는 것”은 죽음의 키스입니다. 입 맞추는 행위는 경배를 의미합니다. 송아지와 입을 맞추라는 것은 바알을 숭배하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엘리야에게 [그러나 내가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안에 칠천 명을 남겨 두었나니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모두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들이니라, 하시니라.](왕상19:18)고 말합니다. 반대로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분께서 분노하실 것이요, ](시2:12a)라고 합니다. 입맞춤이 경배의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3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고 사라지는 새벽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겨 같고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3). 우상에게 입 맞춘 이들은 ‘아침 구름 같고, 사라지는 새벽 이슬’ 같습니다. 아침 구름은 해가 떠오르면서 모두 사라집니다. 새벽 이슬 역시 그러합니다. 우상에게 입 맞춘 이들은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겨 같고,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습니다. 겨와 연기는 바람이 부는 대로 날려 가 버립니다. 주님을 경배하던 백성들이 주님 대신 우상을 만들어 입을 맞출 때 어떻게 되는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들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복있는 자들은 강가에 심은 나무 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건치 않는 자들은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과 똑 같습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들은 그렇지 아니하니 오직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도다.](시1:4). 겨는 작은 바람에도 날려 가 버립니다.

4절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집트 땅에서부터 [주] 네 하나님이니라.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알지 말지니 이는 나 외에 구원자가 없기 때문이니라.](4). 사람이 변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배교해도 주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여전히 그들의 구원자이십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주님은 구원자(saviour)이십니다(마1:21).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자가 아니라면 그는 단 한명도 구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주 예수님을 배척함으로써 자신들의 구원자 주 하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사45:21).

5-6절입니다. [내가 광야 곧 심히 메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그들이 자기들의 초장이 내는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매 그들의 마음이 높아져서 나를 잊었느니라.](5,6). 광야에서는 배고픔과 목마름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왔습니다. 이 땅은 얼마나 좋은 땅이었는지 씨를 뿌리면 열매를 내고 나무마다 과실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 땅을 탐내었습니다. [이는 [주] 네 하나님께서 좋은 땅으로 너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니 그곳은 시내가 있고 골짜기와 산에서 흘러나오는 샘과 깊은 곳이 있는 땅이요, 밀과 보리와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요, 기름과 올리브와 꿀이 나는 땅이라. 또 그곳은 네가 먹는 빵이 부족하지 않은 땅이요, 네게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은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쇠요, 산에서는 놋을 캐리라.] (신8:7~9). 그 결과 주님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주님을 잊었습니다. 육신의 배부름은 마음까지 높아지게 했습니다. 소출이 많으면 많을수록, 수가 불어나면 날수록 주님을 더욱더 잊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풍성한 수확과 다산과 풍요가 현대의 어떤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과학적 영농법, 기계를 이용한 효과적인 농업 기술, 유전 공학을 통한 품종 개량, 농약과 비료 등을 비롯한 병충해 억제 등을 찬양합니다. 이들의 신은 과학, 기술, 기계입니다. 토양 오염을 방지하고 생태계 보호를 외치면 그 결과를 자랑합니다. 교육과 과학이 이들의 신입니다. 배가 부르자 마음이 높아져서 주님을 잊어 버린 것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보는 주님은 더 이상 선한 목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7절에 보면 “내가 그들에게 사자같이 되고, 길가의 표범같이 그들을 지켜 보리라”고 하십니다. 사자와 표범은 맹수 중의 맹수입니다. 8절에는 “내가 새끼 잃은 곰같이 그들을 만나서...사자같이 그들을 삼키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자가 아니면 심판자가 되십니다.

9절입니다. [오 이스라엘아, 네가 네 자신을 파멸시켰거니와 네 도움이 내게 있느니라.](9). 때로 사람들은 자살을 가장 큰 죄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자신을 죽이는 것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살 행위가 바로 우상 숭배란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파멸시킨 것은 남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이었습니다. [그들이 자기를 끊어 버리려고 자기의 금과 은으로 자기를 위해 우상들을 만들었도다.](호8:4b).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것은 경제 파탄, 반정이나 내란이 아니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몰락했다고 하지만 주님은 앗시리아가 아니라 “네가 네 자신을 파멸시켰거니와”라고 하십니다. 몰락, 파멸, 실패, 붕괴는 외부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에 탐욕의 우상이 들끓고, 색욕이 일어나고, 오락과 쾌락을 즐기고, 음주, 가무에 몸을 내어 주며, 성경을 거부하고, 교회를 멀리하고, 세상 노래와 책과 영화와 연극, 스포츠에 정신이 쏠릴 때 이미 그릇에 금이 가서 무엇인가 새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약간의 충격만 주면 그냥 무너져 버리는데 망한 이들은 “누가 나를 쳤어?” 분노하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일지라도 반 성경적 정책이 계속 나오고, 반 유대 정책을 노선으로 정하고, 동성 연애를 합법화하고, 부패와 뇌물로 재판이 굽어지는 등의 일이 안에서부터 계속될 때 외부의 충격 없이도 망할 것이요, 약간의 충격에도 파멸해 버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도움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은 이들에게 [네 도움이 내게 있느니라.](9b) 말씀하십니다. 한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의 영적 상태, 도덕 상태는 결코 그 나라의 물질적 힘과 반비례하지 않습니다. 이 둘은 함께 갑니다.

10절입니다. [내가 네 왕이 되리라. 네 모든 도시에서 너를 구원할 다른 자가 어디 있느냐? 또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통치자들을 주소서, 하더니 그 재판관들은 어디 있느냐?](10). 하나님 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자 하는 이가 있습니다. 자신을 왕으로 높이는 자가 있습니다. 마귀는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군림하려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왕이신 하나님을 배척하고 왕을 구했습니다.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길로 걷지 아니하니 모든 민족들과 같이 이제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재판하게 하소서, 하니라. 그러나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재판하게 하라 한 그 일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주]께 기도하매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말한 모든 것에서 그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을 통치하지 못하게 하려 하였기 때문이니라.] (삼상8:5~7).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왕이요, 인기에 부합하는 그런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왕과 통치자들을 사무엘과 같은 재판관들에게 구했지만 이제는 재판관도 사라졌습니다. 왕정이 등장하면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재판관이 없습니다. 왕이 재판관을 겸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왕이 되지 못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셨지만 그들은 다시 주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죽여 버림으로써 왕이 되지 못하셨습니다. 이들은 사도행전 7장에서 민족적 회개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스데반을 죽이고 예루살렘에서 큰 박해를 일으켜 교회를 모두 흩어 버림으로써 복음은 이방인으로 향하게 되었고, 주님은 아직도 이들의 왕이 되지 못하셨습니다. “내가 네 왕이 되리라(will)”는 말씀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대 환란이 끝날 무렵의 미래적 사건을 예언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왕이 되겠다고 하십니다. 마귀 역시 유대인들에게 “내가 네 왕이 되리라”고 합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네 모든 도시에서 너를 구원할 다른 자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당연히 없습니다. 오직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그들의 왕을 자처하고 자신을 높였던 마귀는 구원자가 아닙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친히 분노하여 네게 왕을 주고 친히 진노하여 그를 폐(廢)하였도다.](11). 과거에 이스라엘이 왕을 구했을 때, 주님은 이들에게 사울을 주셨고, 폐하셨습니다. 대 환란 때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적그리스도를 왕으로 주실 것이며 그를 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남은 자들은 결코 적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거나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이 잘리더라도 믿음과 자신들의 행위를 지킬 것입니다. 이 땅의 통치자로서 적그리스도의 권세는 3년 반 만에 폐해질 것입니다. 천년 왕국이 되면 주님은 그들의 왕이 되실 뿐 아니라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어 온 세상을 철장으로 통치하십니다.

12절입니다. [/내가/ 에브라임의 불법을 싸매었고 그의 죄를 숨겼은즉](12). 이것은 대 환란의 구절입니다. [주께서는 내 범죄를 자루에 담아 봉하시고 내 불법을 꿰매시나이다.](욥14:17).

13절입니다.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이 그에게 임하리로다. 그는 지혜가 없는 아들이니 이는 그가 아이들을 쏟아 내는 곳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말아야 할 것임이라.](13). 주목하십니다. 고통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그에게)에게 임합니다. 교회는 여자입니다. 그렇다면 해산하는 고통이 임하는 그는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은 여자로 비유될 때도 있고, 아들(남자)로 비유될 때도 있습니다.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이란 대환란의 고통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답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는 지혜가 없는 아들이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지혜가 없는 아들입니다. 주를 두려워함이 없고, 마귀와 언약을 맺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고...이루 말할 수 없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지혜가 없는 아들’이라고 불립니다. “이는 그가 아이들을 쏟아 내는 곳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말아야 할 것임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어느 한 날에 민족적 탄생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온/은 진통을 겪기도 전에 해산하고 자기의 고통이 임하기 전에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냐? 이러한 일들을 본 자가 누구냐? 땅이 하루에 만들어져 열매를 내겠느냐? 혹은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이는 시온이 진통하자마자 자기 자녀들을 낳았음이로다.] (사66:7~8). 탄생 장소는 예루살렘입니다(렘49:24, 50:43, 30:6). 이들은 한 날에 민족적으로 회심하게 되는데 이것이 민족적 출생입니다. 이 때는 대환란 중간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즉시 유대를 떠나 광야로 도망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는 그가 아들을 쏟아 내는 곳(예루살렘)에 오래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14절입니다. [내가 그들을 무덤의 권세에서 속량(贖良)하며 사망으로부터 구속(救贖)하리니, 오 사망아, 내가 네 재앙이 되리라. 오 무덤아, 내가 네 파멸이 되리라. 뜻을 돌이키는 것이 내 눈에서 숨으리로다.](14). 이스라엘의 민족적 부활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부활은 성경 곳곳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겠고 그들이 나의 죽은 몸과 함께 일어나리이다. 흙 속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할지어다. 주의 이슬은 풀잎의 이슬 같사오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어 놓으리로다.](사26:19).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로 하여금 너희 무덤들에서 나오게 하며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겔37:12).

15절입니다. [¶ 그가 비록 자기 형제들 가운데서 열매를 맺을지라도 동풍이 오리니 곧 [주]의 바람이 광야에서 올라오매 그의 근원이 마르겠고 그의 샘이 말라 버리리라. 그가 모든 아름다운 그릇의 보물을 노략하리라.](15). 15절은 문단이 바뀌는 문단 표시가 있습니다. 이 문단 표시는 예언 연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4절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문단이 전환되는 것입니다. 15절은 다시 호세아 당대로 갑니다. 에브라임은 열매를 맺을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동풍이 몰아치기 때문입니다. 동풍은 [주의 바람]이라고 말하는데 열매들을 다 마르게 하는 뜨거운 바람입니다. 주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앗시리아가 군대를 이끌고 몰려오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앗시리아에 의해 모든 것을 노략당하고 망합니다.

16절입니다. [사마리아가 자기 하나님을 반역하였으므로 황폐하게 되리라. 그들이 칼로 말미암아 넘어질 것이요, 그들의 어린아이들은 산산조각 날 것이며 아이 밴 여인들은 /배가/ 갈라지리로다.] (16). 호세아는 북 왕국의 멸망을 예언하며 14장을 마칩니다. 이는 열왕기하 17장에 잘 나옵니다.

호세아 14장입니다.

1절입니다. [오 이스라엘아, [주] 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이는 네 불법으로 말미암아 네가 넘어졌음이니라.](1). 주님은 "주 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명하십니다. 이들이 주께로 돌아오면 몸은 약속의 땅으로도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회개하면 주님 역시 우리에게 돌이키십니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심지어 너희 조상들의 날들로부터 너희가 내 규례들을 버리고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으나](말3:7a). 주님은 타락하여 떠난 이스라엘을 부르시듯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무리 육신적인 성도라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기회가 있습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떠났다 할지라도 주님은 끝까지 그를 지키시며, “주 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넘어진 것은 우리 자신의 불법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실패, 열매 없음, 육신적인 기질 등은 모두 우리 속에 있는 불법으로 인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짐으로써 자아를 처리 받지 못하면 십자가가 걸림돌이 되고 실족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자신을 넘겨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도리어 걸림이 됩니다.

2절입니다. [너희는 말씀들을 가지고 [주]께로 돌이키며 주께 아뢰기를, 모든 불법을 제거하시고 은혜를 베푸사 우리를 받아 주소서. 우리도 우리 입술의 송아지로 희생물을 드리리이다.](2). “너희는 말씀들을 취하라” 주께로 돌이키는데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취했을 때 요시야는 죄를 회개하고 우상을 제거하고 각종 개혁 정책을 실행했습니다. 말씀을 버리면 주님께 버림받지만 말씀을 취하면 주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내 안에 말씀이 풍성히 거하면 입술에는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 바알에게 입 맞추던 입술이 말씀을 취하여 주께 돌이킴으로 불법이 제거되고 주님께 받아 들여집니다. 그들의 입술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부히 거하게 하여 시와 찬송가와 영적인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며 너희 마음 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골3:16). 입술의 송아지란 감사의 희생, 찬양의 희생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3:5을 참조하십시오. 예언적으로 이들이 말씀을 가지고 주께로 돌이켜 찬송을 드리는 시기는 대 환란이 끝날 무렵입니다.

3절입니다. [앗수르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리니 우리가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 손으로 만든 것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아버지 없는 자가 [주] 안에서 긍휼을 얻기 때문이니이다, 할지니라.](3). 유다는 이집트를 의지하고 그들의 말을 들여왔지만 그것이 아무 유익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시리아를 의지했지만 앗시리아에 망했고, 말을 사서 군비를 확충하고 군대를 만들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앗수르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란 말씀은 이들의 외교적 노력이 무위로 돌아갔음이요, “우리가 말을 타지 아니하며”란 것은 육신의 군대를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겪은 가장 큰 변화는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입니다. 그들은 우상의 실체를 알고, 우상을 신뢰하고 경배했던 어리석음과 허망함을 철저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반복적인 징계와 심판에도 고쳐지지 않던 우상 숭배의 죄악이 그들 가운데서 완전히 제거됩니다. “아버지 없는 자가”란 말은 이스라엘 자신을 가르킵니다.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배교함으로 아버지 없는 고아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주님은 이들을 낳으시고, 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 이 역시 마지막 때를 가리키고 있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4절입니다. [내가 그들의 타락한 것을 고치며 그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리니 이는 내 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4).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이 주께로 돌아올 때 그들의 타락한 것을 고치십니다. 세상에서 힘든 일이 많고 어려운 일이 많지만 사람의 성격, 습성, 기질을 고치는 것보다 힘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타락을 고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분노는 갈보리 십자가 위에 쏟아졌습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에 대한 분노는 대환란을 통해 진노의 대접들이 쏟아졌습니다. 이제 주님은 이스라엘을 아낌없이 사랑하십니다. 누구든지 주께로 돌아올 때 주님은 그들을 고치십니다. [타락한 자녀들아, 너희는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타락한 것을 고쳐 주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이는 주께서 [주]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이다.](렘3:22).

5-7절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같이 자라겠고 레바논같이 뿌리를 뻗으리라. 그의 가지는 퍼지고 그의 아름다움은 올리브나무 같으며 그의 향기는 레바논 같으리니 그의 그늘 아래 거하는 자들이 돌아오리라. 그들은 곡식같이 되살아나며 포도나무같이 자랄 것이요, 그 냄새는 레바논의 포도즙 같으리라.](5-7).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 이스라엘은 백합같이 자라게 되고, 레바논같이 뿌리를 뻗습니다. 이 모습은 천년 왕국 때 완전히 회복될 민족적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8절입니다.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내가 우상들과 더 이상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하리니 내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지켜보았노라. 나는 푸른 전나무 같으니 네 열매를 내게서 얻으리로다.](8). 우상 숭배로 망했던 에브라임이 “내가 우상들과 더 이상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라고 말합니다. 우상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합니다. 주님은 그들의 말을 듣고 그를 지켜 보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결단과 입술의 고백을 할 때 주님은 그것을 들으시며 우리를 지켜 보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많고 많은 조각상들이 모두 다 사라질 것입니다. 만화 캐릭터니 신화와 전설에 나오는 조각상들이 모두 없어질 것입니다. 영웅들이라고 하는 이들의 동상이나 형상들도 모두 없어질 것입니다.

“나는 푸른 전나무 같으니”란 말씀은 주님이 언제나 변하지 않는 상록수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뒷 부분에 주목하십시오. “네 열매를 내게서 얻으리로다”(From me is thy fruit found). 참된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주님으로부터 얻습니다. 주님 안에서 발견됩니다. 이 시대의 이스라엘은 아무 열매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마21:19)에 비유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좋은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부패한 열매”(corrupt fruit)만 맺습니다. 하지만 천년왕국에서 이스라엘은 주님으로부터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얻게 됩니다.

9절입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서 이런 일들을 깨닫겠느냐? 누가 분별이 있어서 이런 일들을 알겠느냐? 이는 [주]의 길들이 올바르기 때문이니 의인들은 그 길들에서 걸으려니와 범죄자들은 그 길들에서 넘어지리라.](9). 하나님의 일은 세상 지혜로 알 수 없습니다. 20년 이상의 정규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이런 일들을 깨닫는 것이 아니고, 모든 학문을 섭렵했다고 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기록된바,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고 분별 있는 자들의 명철(明哲)을 쓸모 없게 만들리라, 하였으니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니냐?](고전1:19-20). 이 세상의 교육과 세상 지혜를 위해 온 힘을 쏟는 성도들은 사실 우상 숭배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등 교육을 배척하지 않지만 그 가치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식은 참 지식이 아니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혜는 지혜가 아닙니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께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요, 또 기록된바, 그분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신다,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을 아시며 그들의 생각이 헛됨을 아신다, 하였기 때문이니라.](고전3:19-20).

주의 길들이 올바르기 때문에 의인들은 그 길들에서 걷습니다. 주의 말씀은 다 의롭기 때문에 깨닫는 자에게는 쉬운 것입니다. [내 입의 말들은 다 의로운즉 그 중에 비뚤어지거나 뒤틀린 것이 없나니 깨닫는 자에게는 이것들이 명백한 것이요, 지식을 얻는 자들에게는 올바른 것이로다.] (잠8:8~9). 하지만 특이하게도 범죄자들은 그 곧고도 평탄한 길에서 걸려 넘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쉬운 것이요,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에게는 양식입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실족케 하는 바위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