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엘 1:1-3:20
요절: 요엘 2:29
요엘서입니다. 요엘은 유대의 요아스 통치 기간(대하22-24)에 사역했던 대언자로서 엘리사와 동시대의 대언자입니다. 요엘은 3장 73절이며 킹제임스 성경으로 2,034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장차 올 주의 날에 대한 기사로 넘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1:1-20절은 주의 날을 예표하는 메뚜기 재앙, 2:1-32절은 주의 날에 있을 사건, 3:1-16절은 민족들의 심판, 3:17-21절은 왕국의 충만한 복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엘이란 이름은 “주는 하나님이시다”(The LORD is God)란 의미입니다.
1-7절은 땅이 황폐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엘은 주님이 주신 거룩한 땅 예루살렘의 황폐함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끝이 납니다. 유다가 범죄함으로 예루살렘에서 떠나게 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회복하게 되는 그런 역사를 미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황폐하게 될 이런 일은 이전에 없었던 일로서 엄청난 대 재앙일 것임을 미리 경고합니다.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주]의 말씀이라.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거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날들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들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1-2). 이스라엘 역사에 결코 없었던 어떤 일이 있을 것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수없이 많은 외침과 고난을 당했지만 장차 당하게 될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란 뜻입니다. 주님은 이 일에 대해서 자녀들에게 말하고 자녀들은 자녀들에게 말함으로써 계속해서 앞으로 올 세대에게 말해 주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들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말하며 그들의 자녀들은 다른 세대에게 말할 것이니라.](3). 이전 과거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미래의 일에 대해서 말해 주라는 것인데 하나님은 ‘예언’의 하나님, 미리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재앙이 무엇입니까?
4절입니다. [송충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자벌레가 먹으며 자벌레가 남긴 것을 쐐기벌레가 먹었도다.](4). 송충이, 메뚜기, 자벌레, 쐐기벌레로 예표되는 재앙입니다. 벌레들이 남김없이 모든 것을 먹어 치움으로써 유대 땅은 황폐하게 됩니다. 송충이 하나만으로도 능히 기근이 될 만한 큰 재앙인데 송충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어 버리면 들이 나무나 풀잎도 남지 않습니다. 자벌레, 쐐기 벌레까지 동원되면 유다 땅에 있는 사람과 가축들은 모두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재앙입니다. 5절에 보면 "입에서 포도즙이 끊어지고"(5), 9절에는 "음식 헌물과 음료 헌물이 [주]의 집에서 끊어졌고"(9), 10절에는 "밭이 피폐하고, 곡식이 피폐하며, 새 포도즙이 말랐고, 기름이 떨어지고"(10), 11절에는 “밭의 추수할 것이 사라졌음이로다”(11)라고 말합니다. 굶어 죽는 일이 속출하는 그런 땅을 생각해 보십시오. 멀쩡하던 땅이 갑자기 황폐해지고, 땅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12절은 이 재앙이 전 지역에 걸친 모든 재앙임을 보여 줍니다. [포도나무가 말랐고 무화과나무가 시들었으며 석류나무와 종려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시들었으니 이는 기쁨이 말라 사람들의 아들들에게서 사라졌음이로다.](12).
이는 환경 보호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상의 기후나 환경 변화로 인해 생긴 재앙이 아닙니다. 자연 재해나 환경오염으로 인해 땅이 황폐해져서 소출이 줄거나 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곤충들이 급격이 늘어나서 농작물의 수확이 감소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곤충들은 하나님이 심판으로 쓰시는 한 민족을 의미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기 때문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없이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또 그가 큰 사자의 어금니를 가졌도다.](6). 이들은 가깝게는 바빌론의 침공을 의미할 것 같지만 근본적인 의미는 먼 미래에 있게 될 대 환란에 있을 말씀입니다. 1:15절과 2:2에 이런 일이 있을 날, 즉 그 시기를 정확히 밝혀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이는 [주]의 날이 가깝기 때문이라. 그 날이 전능자에게서 나온 멸망같이 이르리로다.](15). *그 날. 주의 날.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구름이 끼고 짙은 흑암이 덮인 날이라. /이 날은/ 아침이 산들 위로 퍼지는 것 같으니 /이는/ 크고 강한 백성으로 /인함이라/. 이와 같은 것이 지금까지 없었고 이후에도 많은 세대의 햇수에 이르도록 없으리로다.](욜2:2). 이 날은 주의 날이라 불리는 야곱의 환란 때를 가리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침공한 앗시리아, 바빌론은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정도입니다.
주의 날이 선포될 때 백성들이 보여야 할 반응은 무엇입니까? “너희는 울부짖을지어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애곡하고 울부짖으라고 하십니다. 13절입니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띠를/ 동여매고 애곡할지어다. 제단을 섬기는 자들아, 너희는 울부짖을지어다. 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옷을 입고 밤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너희가/ 음식 헌물과 음료 헌물을 너희 하나님의 집에서 드리지 못하게 되었음이라.](13). 14절, [[주]께 부르짖을지어다.](14). 성도들은 주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베옷을 두르고 금식을 하며 자신을 슬퍼하며 자신을 낮추는 것이 심판의 때에 긍휼을 입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주의 긍휼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2장입니다. 2장 역시 “주의 날”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의 날]은 어떤 날입니까? 주의 날은 크고 무서운 날입니다. 주의 날을 일요일(주일)이라고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 어디에도 주의 날을 주일이라고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주의 날”에 대해서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경고의 소리를 내어 땅의 모든 거주민들로 하여금 떨게 해야 하는 날입니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내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내어 이 땅의 모든 거주민들로 하여금 떨게 할지니 이는 [주]의 날이 이르기 때문이니라. 그 날이 매우 가까우니](1). 이는 대 환란, 전무후무한 재앙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을 것임이니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때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마24:21)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전하듯이, 살아서 ‘주의 날’에 받게 될 고통과 두려움에 대해서도 전해야 합니다. 이 땅에 임할 대 환란에 대한 경고는 살아서 직접 온 몸으로 겪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오심이 매우 가깝듯이 주의 날은 매우 가깝습니다. 이 땅에 [주]의 날이 이른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이 날을 대비할 줄도 압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는 주의 날 이전에 공중으로 들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2-11절이 구체적으로 주의 날에 대한 말씀인데 요한계시록 19:11-21절과 연관하여 읽어야 합니다.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묘사이기 때문입니다.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구름이 끼고 짙은 흑암이 덮인 날이라. /이 날은/ 아침이 산들 위로 퍼지는 것 같으니 /이는/ 크고 강한 백성으로 /인함이라/. 이와 같은 것이 지금까지 없었고 이후에도 많은 세대의 햇수에 이르도록 없으리로다. 불이 그들의 앞에서 삼키고 불꽃이 그들의 뒤에서 태우는도다. 그 땅이 그들이 /이르기/ 전에는 에덴 동산 같으나 그들이 /이른/ 뒤에는 황폐한 광야 같으니 참으로 그들을 피할 것이 없도다.](2-3). 주의 날은 어둡고 캄캄한 날입니다. 구름이 끼고 짙은 흑암이 덮인 날입니다. 이 때 주님께서 아침 해로 등장하십니다. “이 날은 아침이 산들 위로 퍼지는 것 같으니”란 말씀은 의의 태양으로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묘사입니다(S말4:1-4, 시19:4-5). 주님께서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이 땅에 오시는 것은 물리쳐야 할 ‘크고 강한 백성’ 즉 적그리스도의 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개미를 백성이라고 비유했듯이(잠30:25), 메뚜기 역시 백성으로 비유된 것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으며 이미 1장에 나와 있습니다. 불, 불꽃은 주님께서 태양을 뜨겁게 해서 사람들을 태우는 불입니다(계16:8-9). [넷째 천사가 자기 대접을 해 위에 쏟아 부으매 해가 사람들을 불사를 권능을 받으니 사람들이 큰 열기로 태워지매] (계16:8). 주의 날에 주님은 땅을 황폐하게 한 메뚜기로 예표 되는 민족을 멸망시키십니다.
4-10절에는 주의 군대의 모습입니다. 이들이 초자연적 존재란 점은 7,8절에 잘 나옵니다. [그들이 용사같이 달리고 군사같이 성벽을 오르며 각각 자기 길로 전진하고 자기 줄을 흐트러뜨리지 아니하며 서로 밀치지 아니하고 각각 자기 길로 걸으며 칼에 넘어져도 상하지 아니하고](7-8). 주의 군대를 예표하는 다윗의 군대(대상12:22), 여호수아의 군대(수6:18)가 이 모습과 일치합니다. 주의 군대의 일사 분란한 모습을 보십시오. 이들 앞에서 백성들은 심히 고통을 받고 모든 얼굴이 검게 됩니다(6). 흔히 핵무기나 화학전을 연상케 하는 구절입니다(슥14:12). 전쟁 때에 그 앞에서 얼굴이 검게 된다는 것은 이미 몇 차례의 현대전에서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강한 열기나 빛, 독성이 강한 생화학 무기는 사람을 검게 태워 버리고 녹여 버립니다. [예루살렘과 싸우는 모든 백성에게 [주]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그들이 발로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어 없어지고 그들의 눈이 눈구멍 속에서 썩어 없어지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어 없어질 것이요,] (슥14:12). 이 전쟁은 지금까지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과는 비교되지 않는 참혹한 전쟁입니다. [니느웨가 텅 비고 그 속이 비어 피폐하게 되었도다. 그 마음이 녹으매 그 무릎들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에 큰 고통이 있고 그들의 모든 얼굴이 검게 되는도다.](나2:10). 주의 날에 있게 될 일들입니다.
9절입니다. [그 도시에서 이리저리 달음질하며 성벽 위에서 달음질하고 집 위로 올라가며 도둑같이 창문을 통해 들어가니](9). 주의 군대들이 도시를 완전히 점령하고, 성벽 위에 달음질하고 집 위로 올라가며, 창문을 통해 들어가는데 마치 인질을 구출하는 유격부대의 모습과 같이 용감무쌍합니다. “도둑같이”란 표현은 주님에게도 사용되는 것인데 “예기치 않게”란 뜻입니다(계16:15). 10절은 표적입니다. [그들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들이 떨고 해와 달이 어두워지며 별들이 그 비추던 것을 거두리로다.](10). 땅에는 큰 지진이 하늘에는 누구라도 하늘이 흔들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천둥이 요란하게 칠 것이고, 해와 달과 별이 빛을 내지 않는 그런 어둠이 임할 것입니다. 단 하나도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표적으로 나타날 자연 현상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이 땅에 이런 자연 재앙은 없었습니다. 앞으로 이 땅에 있게 될 일입니다.
11절입니다. [[주]께서 자신의 군대 앞에서 친히 목소리를 내시리니 이는 그분의 진영이 심히 크며 자신의 말씀을 집행하시는 이가 강하시기 때문이라. [주]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려우니 누가 그 날을 견디어 내리요?](11). 출애굽기에는 이스라엘을 주의 군대라고 말합니다. 신약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주의 군대입니다. 환란 때 구원받은 무리들 역시 주의 군대입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 그분의 입에서 예리한 칼이 나오니 그분께서 그 칼로 민족들을 치시고 친히 철장(鐵杖)으로 그들을 다스리시며 또 친히 전능자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으시리로다.] (계19:14~15). 2억의 적그리스도의 군대를 향해 내려오는 주의 군대의 모습은 깃발을 든 군대처럼 위엄이 있습니다(렘6:22, 사13:3-5, 겔32:7-8, 솔6:10,13). 이 군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초자연적인 영적 군대입니다. [그러나 그가 임하는 날을 참고 기다리는 자가 누구리요? 그가 나타나는 때에 설 자가 누구리요? 이는 그가 정련(精鍊)하는 자의 불과 같고 세탁하는 자의 비누와 같기 때문이라.](말3:2).
12-17절은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말해 주십니다. 재앙을 피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슬피 울고 애곡하며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시나니 /너희는/ 너희 옷을 찢지 말고 너희 마음을 찢으며 [주]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올지어다. 이는 그분께서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큰 친절을 베푸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 그분께서 혹시 돌아오사 뜻을 돌이키시고 복 곧 [주] 너희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 헌물과 음료 헌물을 자신의 뒤에 남겨 두실는지 누가 알겠느냐?](12-14). 회개하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로 돌아올 때 주님 역시 그들을 향한 뜻을 돌이키십니다.
18-20절은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행하실 일들입니다. 차례대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땅을 위하여 질투하시고(18), 자신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며(18b), 자신의 백성에게 응답하셔서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을 보내시며(19), 다시는 이교도들 가운데 수치거리가 되지 않게 하시고(19b), 북쪽 군대를 멀리 떠나게” 하십니다(20). 21-32절까지도 주님이 행하실 큰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부분은 모든 교회에서 자주 설교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은사주의자들, 성령 운동을 주창하는 이들에게 크게 오용되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예언입니다. “그 때에”라고 말하는 이때는 ‘주의 날’입니다. 결코 교회 시대인 지금을 말하지 않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그때에 즐거워하며 [주] 너희 하나님을 기뻐하라. 이는 그분께서 너희에게 이른 비를 적당히 주셨기 때문이며 또 너희를 위해 비를 내려 주시되 이른 비와 첫째 달의 늦은 비를 내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니](23). 이 말씀은 초대 교회의 오순절에 임한 성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땅 위에 문자 그대로 비를 내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황무지와 같은 땅이 엄청난 소출을 낼 것입니다. 만약 지금 중동 지역에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면 그곳은 세계 최대의 곡창 지대가 될 것입니다. “그 때에”란 말씀은 대 환란이 끝난 후입니다. 이는 22,24-26절을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그런즉 /타작/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기름진 것과 포도즙과 기름이 넘쳐나리로다.](24). 비가 오고 땅이 회복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이 회복되고, 그들 가운데 주님이 거하시게 됩니다(27). 흔히 에스겔의 성전이라 불리는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게 됩니다. 이 때 이들이 받게 될 최대의 복은 모든 백성이 다 성령을 받는 다는 점입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그 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리라. 또 그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남/종과 여종들 위에 부어 주며](28-29). 이 구절은 베드로가 오순절에 천하 각지에서 모인 유대인들에게 인용한 유명한 구절입니다. 오순절에 유대인은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을 때 위로부터 성령이 부어집니다. 하지만 요엘서 본문에는 이방인 성도나 교회가 아니라 유대인들을 향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주님은 언제, 누구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에”, “그 날들에는”이란 말씀은 대 환란 후입니다. 초대 교회 때가 아닙니다. 오순절에는 모든 육체 위에 성령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오순절에는 30-31절에 나오는 표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육체는 대 환란 때 끝까지 믿음을 지킨 이긴 자들 모두를 말합니다. 유대 땅에 돌아와 정결하게 된 사람들 모두를 말합니다. 이 말씀은 갈보리 사건을 언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보리는 예루살렘 밖에 세워졌습니다. 주님은 성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재림 때는 성문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주님이 게신 곳은 예루살렘 한 중앙입니다. 이 때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데 이는 현재 우리가 구원받는 방법과 동일합니다. 32절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을 것이며 또 [주]께서 부르실 남은 자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임이라.](32). 갈보리 십자가 사건 때 예수 그리스도를 주요 그리스도로 믿지 않고 배척했던 그들이 모두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3장입니다. 3장은 [민족들의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심판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땅의 민족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언제 있습니까? 1절, [보라, 그 날들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포로들을 다시 데려올 그때에](1). 주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포로들을 다시 데려올 그 때입니다. 이 역시 대환란 때를 말합니다. 심판이 행해지는 장소는 여호사밧 골짜기입니다. [내가 또한 모든 민족들을 모아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리고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상속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법대로/ 심문하리니](2a). 여호사밧은 주께서 심판하신다는 뜻을 가진 지명인데 힌놈의 골짜기, 기드론 지역입니다. 그래서 여기를 ‘판결 골짜기’라고 합니다. [많은 무리로다. 판결 골짜기에 많은 무리가 있으니 이는 판결 골짜기에 [주]의 날이 가깝기 때문이로다.](14). 주님께서 이방 민족들이 유대 민족에게 행한 죄에 대해 심판하십니다. 교회사 2,000년 동안 반 유대 정책을 펼치며 유대인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그들을 죽였던 민족들이나 대 환란 때 적그리스도에게 동참하여 유대인들을 대적한 모든 민족들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에는 [그가 모든 민족들을 자기 앞에 모으고 목자가 염소들로부터 자기 양들을 갈라내듯 그들을 일일이 분리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편에 두되 염소들은 왼편에 두리라.](마25:32-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민족들이 유대인들에게 한 것을 ‘자신에게 한 것’과 완전히 동일하게 취급하시고 그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2-8절은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에게 행한 죄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주님은 이들이 행한 죄에 대해 심문하시고, 그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9-10절은 이방인들이 유대 민족을 대적하는 모습입니다. [너희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렇게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예비하고 용사들을 깨우고 모든 군사로 하여금 가까이 나아와 올라오게 할지어다.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너희는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는 말하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9-10). 주와 함께하는 백성들은 이방인들을 향해 당당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내게로 나아오라.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어라.” 아무리 최신 장비로 무장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민족의 군대가 연합해서 올라올지라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11절입니다. [모든 이교도들아, 너희는 집결할지어다. 사방에서 함께 모일지어다. 오 [주]여, 주의 강한 자들로 하여금 거기로 내려오게 하옵소서.](11). 모든 이교도들이 집결하고 사방에서 연합군을 만들어도 주님의 강한 자들이 그리로 내려갑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교도들은 깨어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이는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방의 모든 이교도들을 심판할 것임이라.](12). 이것이 민족들의 심판입니다. 양과 염소를 오른 편과 왼편으로 갈라놓는 심판입니다. 이 땅에 모든 민족들은 주님의 심판에 따라 천년 왕국에 참여하거나 멸망당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13절은 심판을 집행하는 모습입니다. [너희는 낫을 대라. 이는 추수할 것이 익었기 때문이로다. 너희는 와서 밟으라. 이는 /포도즙/ 틀이 가득 차고 기름진 것이 흘러 넘치며 그들의 사악함이 크기 때문이로다.](13). 이 부분은 요한 계시록 14장에 잘 나옵니다. [또 불을 다스릴 권능을 가진 또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을 가진 자에게 큰 외침으로 외쳐 이르되, 너의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들을 모으라. 이는 그 포도들이 충분히 익었음이니라, 하더라.](계14:18). 낫으로 거둔 포도송이를 포도즙 틀에 넣고 밟는 모습이 주님께서 이교도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예표합니다. 이교도들이 흘릴 피가 일천 스타디온이요, 말고삐까지 차오를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날은 표적이 있습니다. 해와 달, 별과 같은 천체가 빛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지며 별들이 자기의 비추던 것을 거두리로다.](15). 하지만 이 때에 주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이런 환란 가운데서도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게 됩니다. [[주]께서 또한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들과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그러나 [주]께서 자신의 백성의 소망이 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힘이 되시리로다.](16).
우리는 여기서 어떤 말씀도 교회에 적용해서는 안되며, 교회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백성 유대인과 이교도들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지 교회에 대해서는 전혀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때로 교회에 해당 사항이 없는 말씀을 교회에 그대로 적용하면 크게 잘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이 누구에게 말하는가? 언제 말하는가? 늘 염두에 두고 예언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17-21절은 이스라엘이 회복된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 하나님인 줄을 알고 영접함으로(슥14:20-21)이들은 온전한 복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거하는 [주]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그때에는 예루살렘이 거룩할 것이요, 다시는 타국인이 그리로 지나다니지 못하리로다.](17). 예수님을 배척하고 버렸을 때 이들은 세상에 흩어지고, 민족들 가운데 밟혔습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타국인들이 거기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예루살렘은 거룩해지고, 더 이상 타국인이 그리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됩니다. 현재 예루살렘에는 회교 사원이 모스크가 들어 서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심으로 모든 불결한 것, 가증한 것들은 다 제거될 것이며, 아무도 그리로 지나다니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는 주님이 거하는 거룩한 도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서 걸으려면 경배하기 위해서 정해진 시각에 오는 것뿐입니다(사2:1-5).
18절입니다. [그 날에는 산들이 새 포도즙을 떨어뜨리고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리며 유다의 모든 강에 물이 흐르고 [주]의 집에서 샘이 흘러나와 시팀 골짜기에 물을 대리로다.](18). 이스라엘은 그 땅이 회복되어 산들이 새 포도즙을 떨어뜨리는데 이는 포도 생산량이 엄청나서 땅이 포도즙으로 젖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린다는 것은 산에 방목되어 있는 양들과 소들이 젖을 흘리는 것을 말합니다. 목축업으로 인해 젖의 생산량이 엄청 날 것임을 말해 주며, 년 중 강우량이 채 10mm도 안되던 이곳이 그 때에는 모든 강에 물이 흐릅니다. 주의 집에서 흘러나온 물은 강을 이루고, 골짜기에 물을 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저주가 걷힌 땅의 모습은 이사야에 몇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사35).
19절입니다. [이집트는 황폐한 곳이 되고 에돔은 황폐한 광야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들의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렸음이니라.](19). 놀랍게도 천년 왕국이 되어도 몇 몇 곳은 여전히 황폐한 곳이 있다는 사실을 봅니다. 이집트와 에돔이 그러합니다. 이들은 유다 자손에게 폭력을 행하사 무죄한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 땅을 회복시켜 주지 않고 여전히 저주받은 대로 두십니다. 주님을 경배하러 올라오지 않는 민족은 비를 내리지 않으심으로써 심판하십니다. 주님은 철장으로 천년동안 온 민족들을 통치하십니다.
20-21절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영원히 거하며 예루살렘은 대대로 거하리니 이는 전에 내가 정결하게 하지 않았던 그들의 피를 /이제/ 정결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며 또 [주]가 시온에 거하기 때문이니라.](20-21). 이제 유다는 예루살렘에 대대로 거하게 되고, 모두 정결하게 됩니다. 다시 포로로 잡혀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흩어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너희 조상이 거하던 땅에 거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자녀들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통치자가 되리라.](겔37:25). 예루살렘의 피는 주님께서 불태우는 영으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때에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불태우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어내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가운데서 깨끗하게 하시리라.](사4:4). 주님께서 땅을 고치시고, 거룩한 땅으로 회복시켜 주신 예루살렘은 주의 백성들의 거처가 됩니다. 주님은 사람을 고치십니다. 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주님이 친히 거하시는 도시에 살 사람들 역시 거룩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들의 모든 더러움을 정결케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때에 내가 정결한 물을 너희 위에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되 너희의 모든 더러움과 모든 우상으로부터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 육신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너희에게 살같이 /연한/ 마음을 줄 것이며] (겔36:25~26). 그래서 예루살렘은 [주가 거기 거하신다]란 이름이 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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