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네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

말씀: 호세아 11:1-12:14
요절: 호세아 12:6 


호세아 11장입니다. 하나님은 죄악 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 주십니다. 이 장을 읽어 보면 마치 이스라엘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은 타락한 에브라임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령과 지혜로 충만한 삶을 살며, 언제나 시들지 않는 잎사귀와 가뭄 속에서도 열매를 맺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고 승리의 찬양을 부르며 사는 이도 매우 드뭅니다. 구원받은 후에 잠시 동안 타오르던 첫 사랑은 금방 소멸되어 버리고, 어느덧 세상과 육신에 젖어 살며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말씀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삽니다. 영적 메마름이 와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을 보내 주셔도 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1-4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들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 첫째,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1). 이집트는 세상을 예표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불러냄을 받듯이 교회 역시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무리들입니다. 둘째, 내 종들을 보내어 불렀다(2).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보내어 부르십니다. 구원으로 부르시고, 거룩함으로 부르시고, 사역으로 부르십니다. 셋째, 가르치고 고쳤다(3).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우리를 고치십니다. 교리로 책망하시고, 비뚤어진 것을 바로 잡으십니다. 의로 훈육하십니다. 넷째, 사랑의 띠로 이끌고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다(4). 하나님은 화평의 띠(엡4:3)와 사랑의 띠로(골3:14)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 앞에 풍성한 꼴을 두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은 현재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모두 “내 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낳으신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은 내 아들 곧 나의 처음 난 자라, 하시느니라.](출4:2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아들, 곧 나의 처음 난 자”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씨요,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거늘](1). 이 말씀은 마태복음 2:15에 인용되었는데 주님께서 이집트에 계셨다가 이스라엘로 부르신 장면의 예표입니다. [헤롯이 죽을 때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것은 {주}에 관하여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바,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 함을 성취하려 함이더라.](마2:15).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아브라함의 씨요, 다윗의 자손입니다. 유대인은 메시야의 민족입니다.

2절입니다. [/내 종/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이 저들을 떠나 가서 바알들에게 희생물을 드리고 새긴 형상들에게 분향하였느니라.](2).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계속해서 보내 주셨습니다. 요엘, 엘리야, 엘리사, 요나, 아모스, 호세아 등이 모두 주님께서 에브라임에 보낸 대언자들이며, 이들은 바알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예레미야서에는 다섯 번이나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이 날에 이르기까지 내가 너희에게 나의 모든 종 대언자들을 날마다 일찍부터 일어나 보내고 보내었으나](렘7:25). [또 내가 너희에게 일찍부터 일어나 보내고 보내었으나](렘26:5a), [[주]가 말하노니, 그 까닭은 내가 일찍부터 일어나 그들에게 보내고 보낸 나의 종 대언자들이 전한 내 말들에 그들이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너희가 듣고자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주]가 말하노라.](렘29:19), [또 내가 일찍부터 일어나 나의 종 모든 대언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보내며 이르기를, 이제 너희는 각각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너희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며 그들을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리라, 하였으나 너희는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느니라.](렘35:15), [그러할지라도 나는 일찍부터 일어나 나의 모든 종 대언자들을 너희에게 보내고 보내며 이르기를, 오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렘44:4).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불신과 불순종이었고 우상 숭배였습니다.

3절입니다. [내가 또 에브라임의 팔을 잡고 그들에게 /길/ 가는 것을 가르쳤으나 그들은 내가 자기들을 고치는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3). 주님은 일찍부터 이스라엘을 가르치셨습니다. 시편에 이르기를, [내가 너를 훈계하며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가르치고 내 눈으로 너를 지도하리로다.](시32:8)고 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배우지 않았기에 알지 못했습니다. [또 그들이 등은 내게로 돌리되 얼굴은 돌리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일찍부터 일어나 그들을 가르치고 가르쳤으나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여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렘32:33). 주님은 일찍부터 가르치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배우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IQ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교훈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움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듣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 표적은 아무리 보아도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을 듣고 믿을 때 하나님의 치유가 임합니다. 고침을 받습니다. 건강(health)이란 계속되는 치유입니다(heal/th). 우리의 몸이 건강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계속해서 고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고쳐 주시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표적적 치유만이 하나님의 은사인 줄로 압니다.

이 시간 저는 성경적 건강법, 치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합니다. 주님은 어떻게 우리를 고치시는가?

첫째, 기도할 때입니다. [[주]께서 히스기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대하30:20). 기도보다 효과적이고 강한 치료약은 없습니다. 다윗은 아플 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고침받았습니다. [오 [주]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나를 고치셨나이다.](시30:2). 죄로 인해 양심이 더럽혀지고, 영혼으로 인해 생긴 병은 몸을 고치기 전에 먼저 혼을 씻음받고 마음이 고침받아야 합니다. 이는 정신과 의사들의 상담이나 약물로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도로, 말씀의 물로, 십자가의 피로 되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도는 강력한 치료제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시41:4). [그분께서 네 모든 불법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시103:3). 주님은 말씀을 보내셔서 고쳐 주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상처를 싸매어 주십니다. [자신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며 멸망들에서 그들을 건지셨도다.](시107:20).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147:3). 마음 속에 한 줄기 광채처럼 임한 한 마디 말씀이 불치병을 치료합니다. 수십년 동안 앓던 병이 치유됩니다. 무엇보다 악한 습관, 나쁜 언행, 마음 속 생각, 고치려고 발버둥 쳐도 해결되지 않던 성격 등도 말씀이 내 안에 자리 잡을 때 놀랍게 고쳐집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몸은 물론이요, 영과 혼을 모두 치유하십니다. 사도들처럼 병든 자를 고치는 은사를 얻어야만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의 구원과 치유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믿고 기도하면 됩니다.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뜨겁고 효력 있는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약5:16). 은사주의자들이 아니어도 성경적 치유 방법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치유의 근거는 주님께서 친히 몸에 맞으신 고난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벧전2:24).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오 [주]여, 주는 나의 찬양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고침을 받으리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받으리이다.](렘17:14). 주님은 구원의 주이시며, 동시에 치유하는 주이십니다. 주님은 앞으로 모든 사람들을 다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천년 왕국이 되면 물들이 치유되고(겔47:8-9), 땅이 치유될 것입니다. 생명 나무 잎사귀들은 민족들을 치유해 주는 약이 됩니다(계22:2). 이 시대에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상한 영과 혼과 몸을 온전히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영이 상하면 몸은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영이 그의 병약(病弱)한 것을 지탱하려니와 상처 입은 영은 누가 감당하리요?] (잠18:14). 몸의 건강보다 영의 건강이 훨씬 더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 건강은 영적 양식에서 옵니다.

성경적 건강법

1. 즐거운 마음을 가지라. 즐거운 마음은 약같이 좋은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은 약같이 좋으나 상한 영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잠17:22), [즐거운 마음은 얼굴을 밝게 하나 마음의 슬픔은 영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

2.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이 내 얼굴의 건강이십니다.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심하느냐?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느냐?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이는 내 얼굴의 건강이시요, 내 하나님이신 그분을 내가 여전히 찬양할 것임이로다.] (시42:11).

3. 주를 두려워하며 악을 떠나라. [네 눈으로 보기에 지혜롭게 되지 말지어다. [주]를 두려워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배꼽에 건강이 되며 네 뼈들에 골수가 되리라.] (잠3:7~8).

4.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에 간직하라. [내 아들아, 내 말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들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한가운데 간직하라. 그 까닭은 그것들을 찾는 자들에게 그것들이 생명이 되며 그들 모두의 육체에 건강이 되기 때문이니라.] (잠4:20~22).

5. 지혜로운 자의 혀를 지니라. 말의 능력은 상상을 불허합니다. [칼로 찌르듯이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건강하게 하느니라.](잠12:18). [즐거운 말들은 벌집 같아서 혼에 달고 뼈에 건강을 주느니라.](잠16:24).

6.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임무를 다하라. [사악한 사자(使者)는 해악에 빠져도 신실한 대사(大使)는 건강하게 하느니라.](잠13:17).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들입니다. 신실한 대사란 그리스도의 명을 받아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즉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大使)가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너희에게 간청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고후5:20).

7. 구제하라. 베푸는 삶을 살라. [또 주린 자들에게 네 빵을 나누어 주며 내쫓긴 가난한 자들을 네 집에 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벌거벗은 자를 볼 때에 입히며 네 살붙이를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쏟아지고 네 건강이 신속히 솟구치며 네 의가 네 앞에서 나아가고 [주]의 영광이 네 후위대(後衛隊)가 되시리니] (사58:7~8)

4절입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띠로 그들을 이끌었나니 곧 그들에게 턱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았으며 또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4). 일반적으로 띠는 결박, 사슬, 종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띠, 진리의 띠, 화평의 띠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매어주는 띠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띠’로 이스라엘을 이끄셨습니다. 노예의 멍에를 벗기시고, 쇠사슬보다 강한 죄의 사슬을 끊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십니다. 사람은 이익을 쫓아서 일을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해 일하십니다. 사랑이 동기요, 사랑이 목적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도 ‘나를 사랑해서’(갈2:20)입니다. [옛적에 [주]께서 내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참으로 내가 영존하는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노라, 하셨도다.](렘31:3). 그리고 앞에 먹을 것을 두셨습니다. [그들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게 하시며 하늘의 곡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시78:24). 주님은 우리를 사랑의 띠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로서 모든 필요를 공급하심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영적 양식의 보고입니다. 주님 자신이 친히 우리의 빵이 되시고, 음료가 되어 주셨습니다.

5-8절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해 보여 준 이스라엘의 행위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어떻게 보답했습니까? 첫째, “이는 그가 돌아오기를 거부하였음이라”(7). 이스라엘은 회개를 거부했습니다. 고침 받지도 않고 돌이키지도 않았습니다. 둘째, 그들의 계략 대문에 칼에 소멸되었습니다(6). 셋째, 주님을 떠나 뒤로 물러갔습니다(7a). 넷째, 그분을 높이려 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7b). 영적 타락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8-9절은 다시 주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단념하지 않으십니다(8). 하나님은 맹렬한 분노를 집행하지 않으시고 멸하지 않으십니다(9). 하나님은 “내가 어찌 너를 포기하겠느냐? 단념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어 주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넘겨주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만들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매 내 마음의 돌이킴이 한꺼번에 불같이 타오르는도다.](8).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할 때 함께 멸망한 주변 도시들입니다. 에브라임은 그렇게 멸망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멸하러 도시에 들어오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맹렬한 분노를 집행하지 아니하며 돌아와서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 /나는/ 네 한가운데 있는 거룩한 자이니 내가 그 도시로 들어가지 아니하리라.](9).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후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말을 바꾸지 않으시며,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후회하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어찌 그 말씀하신 것을 행하시지 아니하리요? 어찌 그 이르신 말씀을 실행하시지 아니하리요?](민23:19).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행하십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강력하신 이는 거짓말을 하거나 후회하지 아니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후회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이다.](삼상15:29).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해 우십니다(요11:36). 하나님은 어머니처럼 사랑하십니다(사66:13). 하나님은 아버지처럼 사랑하십니다(시103:13). 하나님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아끼십니다(시103:13). 하나님은 집 나간 탕자를 맞이하시듯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눅15:20). 하나님의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은 죄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선하심을 계속해서 멸시하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거절할 때 주님은 분노하시고 조롱하시며 불타는 진노로 징벌하십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매 내 마음의 돌이킴이(My Repentings-복수형임) 한꺼번에 불같이 타오르는도다.](8b). 하나님은 한꺼번에 불같이 타오르는 진노로 심판하시더라도 이들을 아드마와 스보임같이 완전히 멸절시켜 버리시지는 않으시고 여전히 남은 자를 두시고 구원하십니다. 이는 11절에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두리라. [주]가 말하노라.](11b)는 말씀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9절 후반부에 [/나는/ 네 한가운데 있는 거룩한 자이니 내가 그 도시로 들어가지 아니하리라.](9b)는 말씀은 파괴자로서, 멸망자로서 그 도시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칼을 잡고 들어가시면 그 도시는 진멸되고 맙니다.

10절입니다. [그들이 사자같이 소리를 내는 [주]를 따라 걸으리니 주가 소리를 내면 그 자손들이 떨면서 서쪽에서부터 나올 것이요,](10). “사자같이 소리를 내는 주”란 유다 지파의 사자로서 오시는 주님(계5:5)을 묘사합니다. 주님께서 사방에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 모으시는데 동, 서, 남, 북 전부입니다. 본문에서는 ‘서쪽에서부터 나올 것이요’라고 서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8:7에는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백성을 동쪽 지방과 서쪽 지방으로부터 구원하여 내고](슥8:7)라며 동과 서를 말합니다. 동은 앗시리아와 바빌론입니다. 서쪽은 서쪽 ‘바다의 섬들’(사11:11)에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남쪽은 이집트, 북쪽은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 이일랜드, 스페인, 러시아 등 북반구에 위치한 많은 나라들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네 씨를 동쪽에서부터 데려오고 너를 서쪽에서부터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할 것이요, 남쪽에게 이르기를, 붙잡아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데려오고 내 딸들을 땅 끝에서 데려오라, 하리니] (사43:5~6). 유대인들은 사자같이 소리를 내는 주님을 따라 걸을 것이며, 주님께서 소리를 내면 두려워 떨 것입니다.

11절입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새같이 떨며 아시리아 땅에서 나와 비둘기같이 떨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두리라. [주]가 말하노라.](11). 주님은 각지에서 불러낸 모든 무리들을 그들의 집에 두십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에 세워진 왕국, 약속의 땅에 거합니다. 이전과 같이 다시 전 세계로 흩어지지 않습니다.

12절입니다.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의 집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으나 유다는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성도들과 함께 신실하도다.](12). 호세아가 이 말씀을 대언하던 당시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속임수로 하나님을 에워쌌습니다. 바알을 숭배하면서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경배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히스기야 왕의 개혁 정책과 신앙 회복으로 부흥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12장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듭해서 역사를 가르치십니다. 역사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을 예를 들어 그들이 어떻게 민족으로 형성되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들을 보존하신 역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이스라엘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말씀하신 것은 [언약의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고, ‘출애굽의 사건’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구원, 구출의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뚜렷한 영적 역사의식이 있다면 그는 결코 타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창세기 성경 공부 한 자락을 읊어 주십니다. 12:3-5이 바로 그것입니다. [야곱이 모태에서 자기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았고 또 자기 기운으로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참으로 그가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겼고 울며 그분께 간구하였으며 그분께서는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곧 [주] 만군의 하나님이시로다. [주]는 그분을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호12:3~5). 벧엘은 야곱이 주님을 만난 장소요, 육신의 길로 가다 돌이킨 장소입니다. 주님이 야곱에게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 형 에서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시니](창35:1). 야곱은 벧엘에서 영적 회복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고난의 날에 내게 응답하시고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창35:3). 하나님은 벧엘의 하나님을 말씀하심으로 이스라엘 역시 이와같은 영적 회복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벧엘은 야곱이 자신의 길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가는 장소였듯이 이스라엘 역시 그리하라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네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긍휼과 공의를 지키며 계속해서 네 하나님을 바랄지니라.](6).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돌이키면 주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보십시오.

① 돌이키면 말씀을 깨닫습니다. [너희는 내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잠1:23). ② 돌이키면 새롭게 됩니다. [오 [주]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날 같게 하옵소서.](애5:21). ③ 돌이키면 긍휼이 여김받고 용서받습니다.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이는 그분께서 넘치도록 용서하실 것임이라.](사55:7). ④ 돌이키면 치유함을 받습니다. [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 이는 그분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⑤ 범죄했을지라도, 주께서 재앙을 내리려 뜻을 정하셨을지라도 돌이킬 때 주님은 큰 친절을 베푸시고 뜻을 돌이키십니다. [/너희는/ 너희 옷을 찢지 말고 너희 마음을 찢으며 [주]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올지어다. 이는 그분께서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큰 친절을 베푸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욜2:13).

그러나 이들은 주님께 분노를 일으킴으로써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14).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통해 믿음의 선조들이 걸었던 선한 길, 곧 옛 길을 걸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전 역사를 말씀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 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그 길로 걷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며](렘6:16).



쉽고 단순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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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