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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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때-


말씀: 다니엘 11:36-12:13

요절: 다니엘 12:


[36 그 왕이 자기 뜻대로 행하며 자기를 높이고 모든
신들보다 자기를 크게 하며 놀라운 말들을 하여 신들의 하나님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그분의/ 격노가 다 이루어질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분께서/
그 작정된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이라. 37 그가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과 여자들의 바라는 것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며 어떤 신도 중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모든 것보다 자기를 크게 할 것임이라. 38 오직 그는 자기 영토에서 세력의 신을 공경할 것이요, 금과 은과 귀한 보석과
아름다운 것들로 자기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을 공경하리라. 39 그가 가장 견고한 요새에서 한 이방 신을 힘입어 이같이 행하며 그 신을
인정하고 그 신에게 영광을 더해 줄 것이요, 또 그들로 하여금 많은 사람을 다스리게 하고 이득을 얻고자 하여 그 땅을 나누어 주리라. 40 끝이
임하는 때에 남쪽 왕이 그를 향하여 밀고 나올 것이요, 북쪽 왕도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를 거느리고 회오리바람같이 와서 그를 치며 여러 나라에
들어가서 흘러 넘치며 지나갈 것이요, 41 그가 또 영화로운 땅으로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뒤엎을 것이나 오직 이들 곧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우두머리는 그의 손에서 피하리라. 42 그가 또 자기 손을 여러 나라 위로 펼치리니 이집트 땅도 피하지 못할 것이요, 43 또 그가
권세를 가지고 금과 은의 보물과 이집트의 모든 귀한 것을 관할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들과 이디오피아 사람들도 그의 발 밑에서 /섬기리라/. 44
그러나 동쪽과 북쪽에서 소문이 이르러 그를 근심하게 하므로 그가 크게 격노하여 나아가서 많은 사람을 멸하며 완전히 없앨 것이요, 45 또 그가
자기의 장막 궁궐을 바다들 사이의 영화롭고 거룩한 산에 세울 것이나 그의 끝이 이르리니 그를 도와 줄 자가 아무도 없으리라.]

(36-45).


36절에서 갑자기 왕이 등장하는 것은 이 인물이 전혀 새로운
인물이 아니라 전에 이미 언급된 인물 중의 하나이며, 다시 소개할 필요가 없음을 뜻합니다. 여기서 ‘한 왕’(a king)이 아니라 ‘그
왕’(the king)임에 주목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다니엘서에는 3명의 왕이 소개되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네 번째 짐승의
작은 뿔(little horn)로써 마지막 로마 황제(단7:7-8)이며, 두 번째는 숫염소의 네 뿔 가운데 작은 뿔(단8:9-12)로써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이며, 셋째는 이 장에서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자기 뜻대로 하는 왕’(willful king)으로써 적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여주려고 한 적그리스도에 관한 점진적인 계시의 향상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세 인물 중 둘은 작은 뿔로써 계시되어 있고, 하나는 ‘자기 뜻대로 하는 왕’으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이 셋은 모두 ‘마지막 때’라고
말씀하는 같은 시기에 나타나며, 모두 똑 같이 자기 뜻대로 행하며, 다 같은 방법으로 멸망당하는 것으로 보아 이 셋은 다른 인물이 아니라 동일
인물을 계시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 인물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로, 다른 표현으로, 다 자세하게 말함으로써 계시의 분명한 실체를
볼 수 있게 합니다. 이는 성경의 기술 방법이기도 합니다. 자기 뜻대로 하는 왕이 메시야 통치자와 마지막 때 사이의 시대적 간격
말(33-35)에 나타난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다니엘의 69주와 70주 사이의 간격에 상응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며,
그가 바로 ‘장차 올 통치자’임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단9:26-27).


‘장차 올 통치자’가 마지막 로마 황제이면, ‘자기 뜻대로 하는
왕’의 신분은 자동으로 로마 황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인물이 바로 다니엘서의 네 번째 짐승의 ‘작은 뿔’인 것입니다. 40절에서 그는 다시
‘북쪽의 왕’으로 불립니다. 어떤 이는 ‘마지막 때’에 [끝이 임하는 때에 남쪽 왕이 그를 향하여 밀고 나올 것이요] 북쪽 왕도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를 거느리고 회오리바람같이 와서 그를 치며 여러 나라에 들어가서 흘러넘치며 지나갈 것이요(40) 란 말씀 속에 있는 대명사
him(그)은 ‘자기 뜻대로 하는 왕’이며, 후에 북쪽 왕과 남쪽 왕이 동맹을 맺고 군사를 일으켜 그(willful king)를 대적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다음 두절(42-43)과 내용이 전혀 맞지 않습니다. 42절과 43절에서 북쪽 왕은 남쪽 왕을 원수처럼 여기며,
이집트를 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40절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마지막 때에 남쪽 왕이 그(willful king)을 밀어 올릴 것이며, 북쪽
왕(willful king)은 남쪽 왕을 대적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북쪽 왕이 돌아와서 남쪽 왕의 공격을 모두 받아 낼 것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미 8장을 공부하면서 알렉산더 대제가 죽고 나서
4왕국으로 분할 된 그 제국들이 다시 회복될 것이며, ‘그들의 왕국 나중 때’에 한 무서운 용모를 한 왕이 나올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단8:21-23). 그들 네 왕국 중의 한 왕국이 북쪽 왕국으로 알려진 시리아이며, 8장에서 ‘작은 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8장에
등장하는 ‘무서운 용모를 한 왕’은 회복된 시리아 왕(북쪽 왕)임에 틀림없으며, 그가 바로 11장에 나오는 북쪽 왕, 즉 ‘자기 뜻대로 하는
왕“(willful king)입니다. 7,8장의 작은 뿔과 자기 뜻대로 하는 왕은 한 명이며 같은 인물임입니다.


적그리스도인 ‘자기 뜻대로 하는 왕’과 마지막 로마 황제를
혼동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계시록 13:1-10절에 기록된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이 마지막 로마 황제이며, 계시록 13:11-18에 기록된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짓 대언자(선지자)와 왕을 구분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계시록 10:13,19:20, 20:10에서 세 번이나 거짓 대언자(false prophet)라고 나와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공식적인
활동(임무)은 첫 번째 짐승을 높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왕(king)일 수가 없습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왕이 아니라면 ‘자기
뜻대로 하는 왕’은 직책이 왕입니다. 게다가 ‘자기 뜻대로 하는 왕’이 적그리스도라면 “거짓 대언자(선지자)”는 적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며, 이 둘은 같지 않습니다.


자기 뜻대로 하는 왕(Willful king) 자기 뜻대로
행하며, 자신을 높이며, 모든 신들보다 자기를 높이고, 신들의 신이신 하나님을 대적하여 ‘기이한 것들’을 말하며, 멸망의 때(대 환란)까지
번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를 위하여 일을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이란 말씀을 통해 볼 때, 그가 유대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여자들의 갈망’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유대 여자들은 메시야의 어머니가 되고 싶은 갈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들의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적그리스도는 아들(The Son)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이런 적그리스도의
특성은 사도 요한이 잘 예언해 놓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곧
적그리스도이니라”
(요일2:25). 그러나, “그는 세력의 신”을 공경할 것입니다. 즉 그는 이 세상의 왕국을 자신에게 넘겨줄
이 세상의 신(사탄)을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은 한 때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왕국을 넘겨주려고
제안했습니다(마4:8-9).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에게서 이 세상 왕국을 받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그것들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단7:13-14, 계11:15).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사탄의 손에서 세상 왕국을 받습니다. 계시록 13:2에
“용(사탄)이 자기의 능력과 자리(throne)와 큰 권세를 그 짐승(적그리스도)에게 주더라” 이상한 신의 도움으로 자기 뜻대로 하는 왕은
요새들, 즉 열 왕국의 성읍들을 확고하게 하고, 평화와 일치를 명목으로 자신의 군대를 주둔시킬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사탄)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영광을 더해 줄 것이며, 그들로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게 하며,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gain-이득:오역) 땅을 나누어 줄 것입니다.


이때 남쪽 왕이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지 우리는
정확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열 왕국 연합국’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북쪽 왕인 ‘자기 뜻대로 하는 왕’의 권세와
군사적 계승권을 반대할 이집트 왕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쪽 왕과 남쪽 왕은 원수지간임을 기억하면 쉬울 것입니다. 이에 북쪽 왕은 남쪽 왕을
즉각적으로 공격할 것이고, 병거들과 기병들과 많은 선박과 함께 와서 회오리바람처럼 쓸어버릴 것이며, 많은 나라들을 쓸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관장하고 있을 때 동쪽인 바빌론과 그의 수도가 있는 북쪽에서부터 나쁜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 소식들에 격노한 그는 큰
분노를 품고 이집트를 떠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궁전 장막 즉 궁전을 지중해와 사해 바다 사이에 위치한 영광스러운 거룩한 산 위에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는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종국을 맞이하게 됩니다(슥14).


[그때에 네 백성의 자손들을 위하여 일어서는 큰 통치자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
(단12:1). 여기서 우리는 더 이상 장의 구분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앞으로 다루는
주제에 더 이상 휴지기(Break)가 없기 때문입니다. 12장에는 “그 때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 때란 무슨 때를 말하는가? 우리가 본
자기 뜻대로 하는 왕의 때인 “마지막 때”입니다(단11:40). 그 때에 미카엘은 일어설 것입니다. 일어서는 것은 다니엘의 민족을 위해서
일어서는 것입니다. 미카엘이 누구인가? 그는 다니엘에서 3번이나 언급되어 있다(단10:13, 21,12:1). 다니엘서에 미카엘은 다니엘의
민족인 유대인을 상징하는 통치자입니다. 미카엘은 유다서 9절에서 천사장(Archangel)이라 불립니다. 그는 계시록 12:7에서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하늘의 천사들의 군대 사령관으로 보인다. 그의 사역은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 내는 것이며, 특히 유대인들을 사탄의 권세로부터
그리고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하늘에서 내어 쫓는 것이다(계12:7-9). 그는 또한 죽은 사람들의 부활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니엘 12:1-2에 나오는 부활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모세의 부활 문제로 마귀와 다투었으며(유9) 천사장의 목소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날 때 듣게 될 것입니다(살전4:16).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미카엘의 것인데, 이는 성경에서 천사장이라고
언급된 유일한 인물이 바로 미카엘이기 때문입니다.


12절입니다. [또 환난의 때가 있으리니 이것은 민족이
있은 이래로 그때까지 없었던 환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 중에서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건짐을 받으리라.]
(12:1b). 성경은 지상에
닥칠 ‘대환란’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 화요일 저녁 ‘올리브산 강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21,22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을 것임이니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때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이는 그 때에
대환란이 있으리니, 그와 같은 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으며, 또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 만일 그 날들이 단축되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받지 못하리라. 그러나 택함 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단축될 것이기 때문이라. /주께서/ 그 날들을 짧게 하지 아니하시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로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짧게 하시리라.]
(마24:21-22).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
환란은 A.D 70년에 예루살렘에 닥칠 파멸의 때에 유대 민족들에게 닥칠 끔찍한 고통을 말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A.D. 70년의 사건은
지역적이며 유대인에게만 닥친 일입니다. 반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 환란은 전 세계에 임할 환란이며, 곧이어 큰 물리적 변화가 뒤따를 것이며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인자가 친히 돌아오시는 일입니다. [그 날들의 환난 뒤에 곧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支派)가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마24:29-30). 이런 일들은 예루살렘이
파괴당한 후에 전혀 일어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말씀들, 예를 들면, 태양이 어두워진다던가 기타 이적
현상들은 정부의 몰락, 통치자의 멸망과 같은 비유적이거나 은유적인 사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물리적 변화로 실제 발생한
적이 있었던 일이므로 앞으로도 실제 있을 일들입니다. 태양이 어두워져서 흑암이 드리운 일은 모세의 때에 이집트에 3일 동안 발생했던
기사(출10:21-23)이며, 계시록의 책에 등장하는 호리병들이 쏟아질 때, 다시 일어날 일들입니다(계16:1-21). 왜냐하면 4개의 호리병을
쏟을 때 나오는 역병들은 이집트 땅에 재앙으로 임했던 역병들의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에서 문자적이었다면 마찬가지로 여기 계시록에서도
문자적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때”라고 언급하신 “대 환란”의 때에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현재의
하늘의 권세들, 즉 사도 바울이 말한 “하늘에 있는 영적 악”의 권세들과 정사들(엡6:12)은 아직 현재 흔들리지 않았으며, 다니엘의 70째 주
대 환란이 시작될 때, 하늘에 전쟁이 있고, ‘공중 권세 잡은 자’요 통치자인 사탄이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흔들릴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발붙이지 못하고 하늘 밖으로 쫓겨나 당으로 흔들려 떨어질 것이며 그의 성육신 한 마귀, 곧 적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대 환란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대 환란 직후에 하늘에는 인자의 표적이 즉시 보일 것입니다. 그 표적은 바로 ‘구름’입니다. 인자는 구름 속으로
승천하셨고, 구름 속에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마24:30). 그러나, 인자는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나타나지 않으셨으며, 이
사건은 마태가 말한 대 환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예언은 홀로 한 구절만 있는 법이 없습니다.
예언은 늘 신, 구약에 있는 다른 말씀으로 뒷받침됩니다. 구약을 펴보면 다니엘서 외에도 이 부분에 대해 예언해 놓은 다른 선지자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 시기를 “야곱의 환란”이라고 예언했으며, 그때의 고통은 아이 밴 여인이 겪는 산고의 고통에 비유했습니다(렘30:4-7).
에스겔은 이 시기를 ‘막대기 아래를 지나간다’라고 말했으며(겔20:34-3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으로 모으실 때, 그들을 그분의
‘용광로’ 속으로 던지셔서 은처럼 정련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겔22:18-22). 스카랴 13:9과 말라기 3:1-3을 읽어 보십시오. 구약의
선지자들과 주 그리스도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계시록에서 말한 ‘환란의 때’를 동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계12:1-19:21). 계시록은 세부
사항까지 훨씬 자세히 기술해 놓았습니다. 이 참조 구절들을 통해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대 환란은 유대인들에게 임할 심판이며, 정련 과정이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목적에 부합되는 민족으로 빚으시는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 환란은 성도들과 하등의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계시록은 연대기적
순서로 씌어져 있으며, 계시록 4:1절 즉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열린 문을 통해 들림 받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어린양의 신부로써 다시 나타날
때까지 보이지 않습니다(계19:6-9). 만약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다면 우리는 하늘로부터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환란을
대비하기 위하여 깨어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살전1:10). 다니엘이 말한 ‘고통의 때’에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다니엘의 민족 모두는
기적적으로 구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를 일컬어 ‘마지막 때에 남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잠자는 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 얼마는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겠고 얼마는 수치와 영존하는 치욕에 이를 것이며]
(단12:2). 성경은 세 가지 종류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영적 부활 - 이것은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부활하는 것을 말합니다(엡2:1-16, 5:14, 롬6:11). 이는
현재적 부활이며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써 죄와 허물로 죽었던 상태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며 이것이
영적 부활입니다(요5:24). 2. 육체적 부활- 이것은 죽은 몸의 부활입니다. 사람의 영은 죽지 않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무덤으로 가는 것은 몸뿐이며, 무덤에서 나오는 것도 몸 뿐입니다. 의인이든지 악인이든지 몸은 부활하지만 시기는 다릅니다. 천년의 시간적 차이가
납니다. 의인은 천년 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생명의 부활로 일어나며, 악인은 천년 왕국이 끝날 무렵 ‘저주의 부활’로
일어납니다(요5:28-29). 3. 민족적 부활- 이것은 현재 민족들의 공동 묘지에 죽어서 묻혀 있는 이스라엘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살아나고 회복되어 자신들의 고토로 돌아 올 것입니다(렘16:14-15).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그들 자신의 땅을 회복할 때, 열두
지파 모두 돌아 올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11:26). 에스겔은 ‘마른 뼈들의 골짜기’의 환상에서
말씀하기를 ‘그 뼈들이 이스라엘 온 집’을 나타낸다고 합니다(겔37:11).


어떤 이는 다음 구절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서 천년 왕국 이전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을 부활시켜 팔레스타인 땅으로 되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로 하여금 너희 무덤들에서 나오게 하며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을 그들이 가서
/거하던/ 이교도들 가운데서 취하여 내고 사방에서 그들을 모아 그들의 땅으로 데려오며 이스라엘의 산들이 있는 그 땅에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어 한 왕이 그들 모두에게 왕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겠고 다시는 두 왕국으로 나뉘지 아니하리라.](
겔37:12,21,22).
주목해서 볼 것은 족장들, 재판관들, 선지자들, 이스라엘의 왕들이 묻혀있는 이스라엘의 땅에 있는 어떤 무덤도 열렸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즉
이스라엘 땅에서 죽은 모든 유대인들의 일반적 부활이 아니라 이국 땅에서 죽은 사람들만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음 두 구절에서
의문들이 풀어집니다. 이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를 너희 무덤들에서 이끌어 올릴 때에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또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하여금 살게 하겠고 너희를 너희 자신의 땅에 두리니 나 [주]가 이것을
말하고 이행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주]가 말하노라.]
(겔37:13-14).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모여 그들의 본토로 돌아오며(렘16:14-15,사43:5-7,암9:14-15),
자기들의 땅에서 ‘환란 기간’동안 ‘불같은 심판’을 받을 것이며(겔20:34-38, 22:19-22, 슼13:9 말3:1-3), 환란의 고통으로
인해 그들은 자기들을 건져 내어 주신 주 하나님을 부를 것이며 그 때 주님께서 그들 위에다 “은혜와 간구의 영”(슥12:10)을 부으시며,
그들이 민족적으로 회개하고(슥12:11-14)돌이킬 것입니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으리라. 그들이 또한 내 법도 안에서 걸으며 내 법규를 지켜 행하리라. 그들이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너희 조상이 거하던 땅에 거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자녀들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통치자가 되리라. 또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어 그들과 함께하는 영존하는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에게 처소를 정하여 주고 그들을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들의 한가운데 세워
영원히 있게 하리라. 내 장막도 그들과 함께 있으리니 참으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겔37:24-27).
이 말씀은 이사야 66:8절에서 성취될 것입니다. 이사야 66:8,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냐? 이러한 일들을 본 자가 누구냐? 땅이
하루에 만들어져 열매를 내겠느냐? 혹은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이는 시온이 진통하자마자 자기 자녀들을 낳았음이로다.]
(사66:
8). 여기서 ‘한 민족’이라고 하면 당연히 유대 민족이며, 이들이 어느 하루 한 날에 회심하여 다시 태어날 것임을 말합니다. 에스겔이 본 마른
뼈들의 골짜기의 환상의 해석은 ‘두 막대기’의 객관적 가르침에서 분명하게 확인됩니다(겔37:15-28). 선지자는 막대기를 한 개 잡고 그 위에
쓰라는 명령을 받는다. “유다와 그의 동반자 이스라엘의 자손을 위하여”. 두 부족은 유다로 알려진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요셉 즉 에프라임의 막대기와’란 말을 쓰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에프라임은 요셉의 아들이며
여로보암의 반란 후에 그들은 열 지파로 불렸습니다. 선지자가 막대기들을 표시했을 때, 하나님은 그것들의 끝과 끝을 결합시켜 한 막대기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한 막대기로 결합시켰을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백성의 자녀들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는 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요셉의 막대기와 그의 동료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데려다가 그들을 유다 곧 유다의 막대기와 함께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라. 네가 /글을/ 쓴 막대기들이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 손에 있나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을 그들이 가서 /거하던/ 이교도들 가운데서 취하여 내고
사방에서 그들을 모아 그들의 땅으로 데려오며 이스라엘의 산들이 있는 그 땅에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어 한 왕이 그들 모두에게 왕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겠고 다시는 두 왕국으로 나뉘지 아니하리라.]
(겔37:18-22). 이를 통해 볼 때, 우리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모두 다시 그들의 고토로 모여 에스겔서 48장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을 재건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예레미야 3:18의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유다의 집이 이스라엘의 집과 함께 걷고 북쪽의 땅에서 함께 나와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상속으로 준 땅에
이르리라.]
(렘3:18). 지금 우리가 여기서 잊어서 안될 것이 “진리의 성경”안에 있는 이런 내용들을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깨닫게
해 주기 이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내가 마지막 날들에 네 백성에게 일어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려고 왔나니 이는 그 환상이
많은 날 뒤의 일이기 때문이니라.](단10:14) 즉 ‘마지막 때’에 있을 일들입니다(단11:35, 12:4).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가 고난의
때가 끝나고 나서 뒤따르게 될 유대민족의 부활에 대해 뭔가 좀더 깊은 내용의 말을 해 줄 것을 기대하는 당연합니다.


다니엘 12:2에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잠자는 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 얼마는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겠고 얼마는 수치와 영존하는 치욕에 이를 것이며]
이 말씀을 죽은 유대인들의 개개인적인
부활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가르치는 부활과 모순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신약 성경은 의인들의
부활은 천년 왕국 이전에 있고, 악인들의 부활은 천년 왕국이 끝날 무렵에 있습니다. 반면 지금 다니엘 12:2절은 “많은 사람(모든 사람이
아님)이 몇몇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어떤 이는 ‘수치와 영존하는 치욕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부활에는 약간의 혼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부활의 때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야곱의 환란의 때 이후에 있는 것이며, 신약 성경이 말하는 첫 번째 부활은 소위 고난의
때 이전으로써, 그리스도를 믿은 의인들의 부활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의인들의 부활이 환란이 끝날 무렵에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 때 부활하는 사람들이 바로 환란 성도들의 부활입니다(계20:4-6).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서로 섞어서는
안됩니다. 환란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는 환란 기간 동안에 죽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며, 그들은 환란 때에 예수의 증인이 되기 위해, 말씀의
증거 때문에 목베임의 순교를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짐승에게 경배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부활이 바로 환란 성도의 부활입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본문을 바꾸어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난제들을 풀기 위해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트리겔레스(Tregelles)는 그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땅의 흙 속에서 잠자는 자들 가운데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요; 이 사람들이 영생을 얻을 것이며, 그러나
나머지(잠자는 자들의 나머지)는 수치와 영원한 모욕을 받으리라”(단12:2의 자의적 해석). 그러나 이것은 충분한 해답도 아니며 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깨어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직 그대로 무덤 속에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땅의 흙 속에서 잠을 자는’이란 말씀은 육체적 죽음을 내포하는 것이며,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런 의미로 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문맥에서 볼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지막 날들’에 다니엘의 민족들의 상태를 언급하는 구절이란 점입니다. 인간의 육체적 죽음의 상태가
아니라 유대 민족이 죽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에스겔서의 말씀과 똑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로 하여금 너희 무덤들에서
나오게 하며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겔37:12). 우리는 이 구절이 마지막 때 유대 민족의 민족적 부활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의미 또한 너무나 분명합니다. 즉, 육체적인 몸이나 영적 부활이 아니라 환란이 끝난 후 천년 왕국 이전에 있을 유대인들의
민족적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올리브산 강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들의 환난 뒤에 곧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支派)가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마24:29-30). 여기서 택함 받은 자란 구원받은 교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환란 전에 이미 모두 들림을 받고
없습니다. 여기서 택함 받은 자란 환란 후에 들림 받을 자들이며 문맥에서 볼 때 유대인들이며, 이스라엘 가운데서 택함 받은 자들임이
틀림없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들은 지금 ‘들림 받는 것’(caught up)이 아니라 ‘함께 모이는 것’(gathering
together)입니다. 무대는 지상입니다. 유대인들은 현재 흙에 거하는 자들로 보여지고 있지만 그들은 “깨어서 노래하라”(사26:19)는 말을
듣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을 버린 것이 세상의 화해가 되거든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롬11:15). 이스라엘은 잃어 버린 바 되었지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잃어 버린 바 된 탕자는 “죽은 자”라고
일컬어졌지만 그가 집으로 돌아 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가 살아서’ 다시 돌아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눅15:24). 우리가 이스라엘의 부활에
대한 이 해석을 수용한다면, 깨어날 많은 유대인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계시해 줍니다.
게다가 ‘영생을 얻게 될 몇몇 사람들’은 의인들일 것이며, ‘수치와 영원한 모욕’을 받은 자들은 ‘불의한 자’들일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지혜 있는 자들은 궁창의 광채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들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들은 별들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단12:3). 오늘날 우리 시대와 마찬가지로
현명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 해줍니다. 우리는 왕국 복음이 다시 전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왕국 복음은 온
세상에 모든 민족들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대의 끝이 옵니다(마24:14). 우리는 신약에서 말해지는 복음이
4가지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 왕국 복음-The Gospel of Kingdom 2.
은혜의 복음- The Gospel of Grace 3. 영광스런 복음- The Glorious Gospel 4. 영원한 복음- The
Everlasting Gospel


복음(Gospel)이란 말뜻은 좋은 소식(good
news)입니다. 왕국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다윗의 아들 예수가 다스릴 왕국을 이 땅위에 세우실 것이란 기쁜 소식을 말합니다(눅1:32-33).
이 복음은 침례인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선포한 그것입니다. 회개하라고 선포할 때, 그 대상은
각 개개인이 아닌 민족 전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 민족은 회개하기를 거부하였고, 왕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왕국 복음은 온 세상이 아닌 팔레스타인 지역에만 전파되었습니다. 교회가 휴거되고 나면 왕국 복음은 다시 전파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팔레스타인
지역만이 아닌 전 세계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이스라엘이 회개하도록 부르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돌 왕국 즉 천년
왕국(단2:34-35,44-45)을 세우실 것이란 선포입니다. 이 복음은 지상의 모든 왕들이 싫어하며, 특히 자신의 왕국을 박살내겠다고 선언하기
때문에 적그리스도가 가장 싫어하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선포는 유대인들을 향한 적그리스도의 증오와 그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에 대한 박해할
것이란 사실을 잘 설명해 줍니다. 앞서 전해진 왕국 복음과 마지막 때에 전해지는 왕국 복음 사이에서 우리가 현재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놀라운 희생을 믿는 믿음을 통한 구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영광스런
복음”이란 주님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 즉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복음입니다(딛2:13). “영원한 복음”은 이 지상에서
호리병 심판이 있기 직전에 천사들에 의해 전해지는 복음으로써 환란을 통과 중인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겪는 고통이 곧 그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이 될
것이요,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에겐 심판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나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계14:6-7). 또한 “다른
복음”(another gospel)이라고 하는 복음(갈1:6-12,고후11:4)은 바울이 전한 기쁜 소식이란 의미의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변질시켜 속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복음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만으론 불충분하며, 구원을 유지하고 완성하기 위해 ‘선행’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을 말합니다(골2:18-23,히6:1,9:14). 바울 사도는 그런 가르침을 퍼뜨리는 자들에게 무서운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마지막 때”의 현명한 자들이란 ‘때(times)를 이해하는’
잇사갈의 자손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대상12:32). 그들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구약 성경을 이해했으며, 특히 이스라엘과 관련된
예언에 대해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명한 자들이 되었으며, 맑은 겨울 하늘 밤 궁창에 빛나는 별처럼 밝은 빛을 비추었습니다. 예언의
하늘들에 떠있는 별들은 옛 선지자 모세,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처럼 영원히,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이 풀어줄 때, 너무나 진실하고 분명하고 힘이 있어 듣는 자들을 확신시켜 주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의의 길로 돌이키게 할 것입니다.



4절입니다. [오 다니엘아, 오직 너는 끝이 임하는
때까지 이 말씀들을 닫아 두고 이 책을 봉인(封印)하라.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음질하겠고 지식이 증가하리라.]
(단12:4). 선지자
다니엘과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명령에 차이가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다니엘은 그가 받은 계시를 봉인하라는 명을 받습니다. 반면 요한은 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봉인하지 말라는 명을 받습니다(계22:10). 이유는 분명합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말했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아버지께서/ 하늘의 왕국의 신비들을
아는 것을 너희에게는 허락하셨으나 그들에게는 아니하셨나니 이는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아서 더욱 풍성하게 될 것이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도 빼앗길 것임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니라. 이사야의 대언이 그들에게서 성취되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그 까닭은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그들의 귀는 듣기에 둔하고 그들의 눈은 감겼기 때문이니 이것은 언제라도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함으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마13:10-15).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이 성경의 예언을 고의적으로 무시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귀가 있으나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깨닫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죄를 더하지 않기 위해 왕국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유는 불신의 베일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가려 있으니 이는 이 날까지도
옛 /상속 언약의 말씀/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베일이 벗겨지지 아니한 채 남아 있기 때문이라. 그 베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졌으나 이
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베일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주}께로 돌아서면 그 베일이
벗겨지리라.]
(고후3:14-16).



그러므로 유대인들에 관한 한 다니엘서는 ‘봉인 된 책’입니다.
그러나 그 책은 ‘마지막 때’까지 그들에게만 봉인된 것입니다. 그 때가 되었을 때 다니엘의 민족 가운데 많은 이가 이리 저리 달릴 것이며,
그들의 지식이 (특히 성경에 대해) 증가할 것입니다. 환란의 때에 그들은 말씀으로 인해 위로를 받고 고통 가운데서 견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이상 봉인된 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역사 속에서 다니엘서의 예언들이 성취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책은 이해되어지고 있으며, 더욱더 연구되어 마지막 때가 가까워져 왔음을 알려주는 게시판입니다.



[그때에 나 다니엘이 본즉, 보라,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둑의 이쪽에, 다른 하나는 강둑의 저쪽에 서 있더니 6 /그 중/ 하나가
아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사람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들의 끝이 이르기까지 얼마나 있어야 하겠느냐? 하니 7 내가 들은즉 아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사람이 자기 오른손과 왼손을 하늘을 향하여 올리고 영원토록 사시는 이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이것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관한 것이니 그가 거룩한 백성의 권세를 흩어 놓는 일을 다 이루게 될 때에 이 모든 일이 끝나리라, 하더라. 8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이르되, 오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끝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9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너는/ 네 길을 갈지니 이는
/주께서/ 끝이 임하는 때까지 이 말씀들을 닫아 두고 봉인하실 것임이라. 10 많은 사람들이 정결하게 되고 희게 되며 단련을 받을 것이나 사악한
자들은 사악하게 행하리니 사악한 자들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들은 깨달으리라. 11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을 제거하며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우는 때로부터 천이백구십 일이 있을 것이요, 12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5-12)



우리는 지금 다니엘이 여전히 힛데켈 강변에 서 있는 중이며 10장에서 12장까지는 환상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마포를 입은 사람’은
10:5-6에서 언급된 사람과 동일 인물이며 이미 전에 언급된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때 다니엘은 환상 가운데 두 명의 다른 천사들이 강 양 옆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말을 걸어 ‘세마포를 입은 사람’이 강 위 구름 가운데서 “이러한 이적들의 끝이 언제 까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세마포를 입은 사람이 양손을 들고서 전능하신 분께 맹세하여 말하기를 ‘한 때, 두 때, 반 때, 즉 3년 반’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 이 대답에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맹세’와 ‘시간의 길이’인데 계시록 10:1-6의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계시록은 다니엘서의
해석서 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로 가서 책을 펴야 합니다. [또 내가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으로 옷 입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 머리에는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으며 그 발은 불 기둥 같더니 그가 펴 놓은 작은 책을 손에 들고 오른발로는 바다를 밟고 왼발로는 땅을 밟고
사자가 부르짖는 것같이 큰 음성으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천둥이 음성을 내어 말하더라. 일곱 천둥이 음성을 내어 말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내게 이르기를, 일곱 천둥이 말한 것들을 봉인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본 그
천사가 바다와 땅 위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고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 곧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신 분을 두고 맹세하되 더 이상 시간이 있지 아니하려니와]
(계10:1-6). 용모와 행동에서 ‘힘있는 천사’의
묘사는 ‘세마포를 입은 사람(단10:5,6)의 용모와 행동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그 둘은 상이한 인물이 아닌 동일 인물이며,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계시록 1:12-16에 촛대 가운데 서 계신 그분의 모습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구약
성경에서 주님은 “주(LORD)의 천사”로 불린다는 점입니다(출3:2-18).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의 I AM은 신약 성경의 I AM과
동일하신 분이십니다(요6:35,8:12, 10:9). 이제 다니엘의 이 마지막 장들은 이스라엘을 다루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의
천사”이셨으며 계시록 6장에서 19장에서 주로 이스라엘과 관련된 그 분이 가지신 타이틀이 힘센 천사라고 해서 이상할 것이 있겠는가? 그 분이 큰
목소리로, 마치 사자가 포효하듯이 외친다는 사실은 자신을 ‘유다 지파의 사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계5:5). 이 힘센 천사는 세마포를 입은
사람처럼 전능하신 분께 맹세하기를 [더 이상 시간이 있지 아니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의 난외주에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아니하리로다고 되어 있습니다. 힘센 천사가 다니엘의 70 주 중간에 이 말을 할 때, 3년 반 또는 42주간 활동할 시간이 남았다고
합니다(계13:5). 이는 ‘세마포를 입은 사람’이 말한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왜냐하면 42개월은 다니엘서에서 말한 한 때, 두 때, 반
때와 동일하기 때문입니(7절). 우리가 살펴보듯이 다니엘서와 계시록은 ‘마지막 때’의 기간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동일 인물, 즉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그 대답을 들었을 때, 그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직접 다시 한번
질문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자기의 길을 가라’는 명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들은 마지막 때까지 닫혀 있고
봉해져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현명한 자들이 그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두 개의 다른 날짜들이 계시되었습니다(1290일과
1335일). 이 날짜들은 ‘희생제가 폐해지는 날’부터 계산된 것이며,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세워지고, 다니엘서의 70째 주 중간에 있을 일이란
것은 배웠습니다(단9:27). 다니엘서에는 3개의 다른 치수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모두 70째 주의 중간에서부터 계산된 것입니다. 첫째, 다니엘
8:13-14에서 2300일이며, 위의 구절에서 말한 1290일과 1335일입니다. 이 세 기간들은 각각 1040일, 30일 그리고 75일이
깁니다(70주는 1260일이므로). 2300일이란 성소를 정결케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기간은 무엇을 나타내는지
정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그 주의 마지막에 돌아 온 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날은 유대인들에 가장
중요한 국경일이 될 것이며 천년 왕국을 세우기에 앞서 있게 될 가장 위대한 날일 것입니다.



다니엘의 나이 90이 넘었습니다. 그는 바빌론에 살았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땅과 도성을 멀리 떠나 70년이란 세월을 낯선 이국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의 삶은 게으른 인생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2명의 황제 밑에서 바쁜 공무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신앙은 혹독한 시험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주를 깊이 신뢰하도록 하심으로써 그를 영예롭게 하였고, ‘이방인들의 때’의 역사를 그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가 본 마지막 환상에서는 주를 보고 그 분의 음성을 듣는 복된 특권을 누렸으나 이제는 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제 너의 길을
가라”는 말씀을 하셨으며, 다니엘은 집으로 갔습니다. 이제 집에서 쉬면서 바빌론에서 곧바로 천국으로 올라오라는 소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의 때가 끝날 때, 다니엘은 그의 몫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가 받을 몫이 무엇인지 우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보좌에 앉아(마19:28)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되면(마19:28), 왕들의 신실한 참모였으며 국정에 참여했던 다니엘의 몫은
무엇이 될 것인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