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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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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 왕과 남쪽
왕의 미리 씌어진 역사-


말씀: 다니엘 11:1-35

요절: 다니엘 11:2


이 장에서 우리는 가브리엘이 ‘진리의 성경’이란 말을 한 것을
봅니다. 이 성경에는 남쪽 왕인 이집트의 프톨레미(Ptolemes)와 북쪽 왕인 시리아의 “셀루시데”(Selucidae)간에 있었던 전쟁에 대해
미리 기록된 역사입니다. 비평가들은 흔히 다니엘의 기록 연대를 이 전쟁이 일어난 훨씬 후라고 주장하는데, 이들은 다니엘이 어떻게 프톨레미와
셀루시데간의 전쟁을 미리 정확하게 알고 기록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비평가들의 주장은 다니엘이 아닌 그 누구도 전쟁이 발발하기도 전에 그
전쟁에 관한 정확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성경과 비평가들이 정확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장하기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한 것”(벧후1:19-21)이라고
합니다. 예언이란 미리 기록된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역사가 일어 난 후에 뿐만 아니라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 그 역사에 대해 기록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 예언에 의해 벗겨지는 역사는 항시 역사보다 앞서 읽혀지는 성경에 의해서입니다. 예언은 역사에 끼워 맞추려고 할 때 항상
해석이 틀리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적 사건을 예언에 인위적으로 맞추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에 대한 역사의 관계는 해석의 문제가
아닙니다. 명확성의 문제입니다. 예언은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입니다(벧후1:19). 즉 예언은 미리 말씀해 주심으로써 미래를 밝혀 줍니다.
예언의 예리한 정확성이 우리는 매우 놀라게 됩니다. 예언은 앞의 환상들에서 본 바와 같이 비유나 상징으로 옷 입혀져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예언은 환상이 아니라 다니엘의 민족과 예루살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문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언을
풀기 위해서 관련 구절들을 구절들과 더불어 비교해 보면 됩니다. 필요하면 좀 더 많은 구절들을 같이 참조해 보면 됩니다. 예언은 11:2에서
시작됩니다.


[이제 내가 진실을 네게 보여 주리라. 보라, 페르시아에서
다시 세 왕이 일어날 것이요, 넷째는 그들 모두보다 훨씬 부요할 것이며 그가 자기 재물과 자기 힘으로 모든 사람을 선동하여 그리스의 영토를 칠
것이며]
(2). 고레스 제위 3년째에 예언을 받은 이래로(10:1, B.C 533) 아직 세 왕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즉, 그 후에
아하수에르, 아탁세르세스(아닥사스다), 그리고 다리오(에스라4:1-24)가 등장했습니다. 알려진 역사 자료에 따르면, 캠비시스(Cambyses,
B.C. 529-522), 수도-스메르디스(Psuedo-Smerdis, B.C. 522-521), 그리고 다리오 히스타스페스(Darius
Hystaspes B.C. 521-425), 제 4대 왕이었던 쎄르쎄스(Xerses B.C.485-465)는 다리오 히스타스페스의 아들로써,
너무나 부유하여 엄청난 군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를 휘저어서 그리스와 전쟁을 했으며, B.C.480년에 침공했습니다. 하지만
정복에는 실패했습니다. 예언은 항상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만 다루기 때문에 나머지 페르시아 왕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생략되어 있는 채, 거의
15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B.C.336-323년에 재위했던 알렉산더 대왕에게로 갑니다.


3-4절입니다. [또 앞으로 강한 왕이 일어나서 큰 통치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며 자기 뜻대로 행하리라. 그런데 그가 일어날 때에 그의 왕국이 깨져서 하늘의 네 바람을 향하여 나뉠 것이나 /그것이/ 그의
후손에게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가 다스리던 통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의 왕국이 뿌리째 뽑혀서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임이라.]
(3-4). 이 구절은 우리에게 ‘양과 숫염소’의 환상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단8:3-8, 20-22). 거기에서
우리는 숫염소의 양 눈 사이에 솟아난 두드러진 뿔이 꺾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8:8). 이는 두드러진 네 뿔이 하늘의 네 바람을 향하여
나왔기 때문입니다. “힘있는 왕”은 알렉산더 대왕을 일컫는 말이며, 그가 죽자 그의 왕국이 자기 수하에 있던 4명의 장군에 의해 네 개의
왕국으로 분할 통치 됩니다. 캐센더(Cassander)는 서부 지역과 마케도니아를, 리시메쿠스(Lysimachus)는 트레이스와 북부 지역을
셀리쿠스(Selecus)는 시리아와 동부 지역을, 프톨레미(Ptolemy)는 이집트와 남부 지역을 차지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가족 중 아무도
그를 계승하지 못했으며, 그가 죽은 지 15년이 채 못 되어 그의 가문은 멸절되었습니다.


5절입니다. [남쪽 왕이 강할 것이나 그의 통치자들 가운데
하나가 그보다 강하여 통치 권세를 가지리니 그의 통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11:5). 예언은 지금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분할된
4개의 왕국이 다시 2개의 왕국으로 좁혀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그의 민족에 속한 예언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부에 있는 시리아와 남쪽에 있는 이집트 사이에 있는 영광스러운 땅(glorious land, 16,41,45절)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백년 동안(B.C320-A.D ?) 다니엘의 민족은 위, 아래에 끼어 무거운 짐을 지고 살 것입니다. 이 전쟁들이 다니엘의
민족에게 줄 고통과 그 나라에 일으킬 엄청난 황폐함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 일들이 그의 민족이 다시 국가를 재건하기 전에 있을 먼
훗날, 아직도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고 하십니다(10:4). 알렉산더 휘하에 있던 네 장군의 왕국 가운데, 이집트가 처음 등장합니다. 이집트는
알렉산더의 부하였던 프톨레미 소테르(Ptolemy Soter) 장군이 세운 것입니다. 알렉산더의 또 다른 장군인 셀리쿠스 니케이터(Selecus
Nicater)가 바빌론의 대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안티고누스(Antigonus)에 의해 쫓겨나 이집트로 도망쳤습니다. 거기서 그는 프톨레미(Ptolemy)의
총애를 받아 지방 통치자 중의 하나가 됩니다. 프톨레미의 조력자로써 그는 영토를 회복하고 확장하는 일에 공을 세워, 영토는 인더스(Indus),
시리아(Syria)를 포함해서 앗시리아(Assyria)까지 넓힙니다. 이렇게되자 프톨레미보다 더 강하게 되었고, 그의 권세가 아주 큰 권세가
되었습니다.


6절입니다. [여러 해 끝에 그들이 함께 연합하리니 이는
남쪽 왕의 딸이 북쪽 왕에게 와서 협약을 맺을 것임이라. 그러나 그녀가 팔의 권세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요, 그나 그의 팔이나 서지 못하며 오히려
그녀와 그녀를 데려온 자들과 그녀를 낳은 자와 그때에 그녀를 강건하게 한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6). 프톨레미 소테르(Ptolemy
Soter)와 셀리쿠스 니케이터(Selecus Nicator)가 통치하는 동안 이집트와 시리아 사이에는 평화로왔습니다. 하지만 프톨레미 소테르가
친자식인 프톨레미 프톨레미에게 왕권을 넘기지 않고, 그의 이복 형제인 메가스(Megas)를 안티쿠스의 딸과 정략 결혼시켜 그가 셀리쿠스
니케이터의 뒤를 이어 시리아의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 결혼은 이집트와 시리아 간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메가스(Megas)는 그의
장인인 안티쿠스 소테르를 부추겨 이집트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도록 했습니다. 안티쿠스 테오스(Antichus Theos)는 아버지를 계승해서
프톨레미와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결국 여러 해 싸운 끝에 프톨레미는 안티쿠스 테오스에게 전쟁을 끝내기 위해, 자기 딸 베르니스(Bernice)를
엄청난 지참금을 딸려 뇌물로 보내 줘야 했습니다. 여기에는 이런 불법 계약이 있었습니다. 시리아 왕이 전에 한 라오디체(Laodice)와 한
결혼을 무효화하고, 그녀와 사이에서 난 두 아이는 불법(사생아)이라고 선언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프톨레미 필파델푸스가 죽자, 그의 딸
베르니스는 더 이상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안티쿠스 테오스가 그녀를 버리고, 그녀가 전에 버린 전부인 라오디체를 다시 데려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서지 못했습니다. 다시 온 라오디체는 왕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아들을 왕위에 안전하게 앉히기 위해 남편을
독살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셀리쿠스 캘리니쿠스(Selecus Callinicus)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계속해서 라오디체는 아들을 설득하여
베르니스를 암살하도록 하였고, 베르니스에게서 난 자식들(이들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약속했었다)도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강건하게 한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7-8절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뿌리들에 속한 한 가지에서
나온 자가 그의 영토에서 일어나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북쪽 왕의 요새로 들어가 그들을 쳐서 이기고 또 그들의 신들과 그들의 통치자들과 금과
은으로 만든 그들의 귀한 그릇들을 노획하여 이집트로 가져갈 것이요, 그가 북쪽 왕보다 몇 년을 더 지내리라.]
(11:7-8). “그녀의
뿌리들에 속한 한 가지”란 말은 베르니스의 부모들의 자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즉, 자기아버지 프톨레미 필라델푸수를 계승한 그녀의 오빠 프톨레미
유에르게투스(Ptolemy Euergetus)를 언급합니다. 그는 왕이 되자 자기 누이에 대한 부당한 취급에 분개하여 많은 군대를 이끌고
시리아로 쳐들어가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누이와 그의 자식들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분노한 나머지 시리아의
성을 포위하고 보복으로 베르니체와 그의 자식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시리아 전 왕국을 다 차지한 후 그냥 맨손으로 귀환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왕자들을 포로로 데려가고 4만 달란트의 은과 2500개의 귀한 기명들과 우상들의 신상들을 모두 가져갔습니다. 특히 전에 캠비시스(Cambyses)가
이집트로부터 약탈해서 페르시아로 가져갔던 모든 것들을 회수했습니다. 이것들은 거대한 의식과 함께 이집트 신전에 다시 놓였으며, 이 신상들을
복원해 준 프톨레미에게 너무 감사해, “은혜를 베풀어 준”이란 뜻의 유에르게투스(Euerguetus)란 칭호를 붙여 주었습니다.


9-10절입니다. [그리하여 남쪽 왕이 /북쪽/ 왕의
왕국으로 들어갔다가 자기 땅으로 되돌아가리라. 그러나 /북쪽/ 왕의 아들들이 분발하여 큰 군대의 무리를 모을 것이요, /그 중/ 하나가 반드시
와서 흘러 넘치며 지나가리라. 그때에 그가 되돌아와서 분발하여 /남쪽/ 왕의 요새에까지 이를 것이요,]
(9-10). “그리하여 남쪽 왕이
북쪽 왕의 왕국으로 들어갔다가 자기 땅(이집트)으로 돌아가리라.” 그는 우리가 성경에서 본 그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북쪽 왕의 아들들이
부추김을 받아(남쪽 왕의 침략에 의해서) 큰 군대들의 무리를 모을 것이며” 이 말씀은 우리가 읽는 그대로 역사에서 정확하게 그대로 일어났던
사건들입니다. 셀리쿠스 켈리니쿠스, 셀리쿠스 세라누스, 안티오쿠스, 메그너스의 아들들은 힘을 합해 큰 군대를 모았습니다. 셀리쿠스 켈리니쿠스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그는 큰 군대를 모아 아버지가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고자 했으나 약하고 소심한 왕이어서 자기 군대를 훈련시키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2-3년 통치하다가 자기 부하 장수들에게 독살당합니다. 그의 형제인 안티쿠스가 그를 이어 왕이 됩니다. 그는 거대한 군대를
모아 훈련시켰습니다. 성경 본문에서 ‘한사람이 반드시 와서 홍수처럼 휩쓸며 진군하리라’
할 때 가리키는 사람이 이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모든 힘을 남쪽 왕 프톨레미 쿠에르게테스를 뒤이어 왕이 된 프톨레미 필로페이터를 치는데
쏟았습니다. 그는 투로와 프톨레미아스를 잡았고, 팔레스타인을 홍수처럼 휩쓸며 진군했으며 예언에 의해 정해진 남쪽 왕의 성채가 있는 가자 지역으로
군대를 끌고 갔습니다. 이 일은 B.C. 218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11-12절입니다. [남쪽 왕은 성을 내며 흥분하여 앞으로
나아와서 그 곧 북쪽 왕과 싸우리라. 북쪽 왕이 큰 무리를 배치할 것이나 그 무리가 그의 손에 넘어가리라. /남쪽/ 왕이 그 무리를 제거한 후에
그의 마음이 높아져서 수만 명을 넘어뜨릴 것이나 그로 말미암아 강하게 되지는 못하리니]
(11-12) 타락하고 육욕에 빠져있던 남쪽의 왕
프톨레미 필로페이터는 북쪽 왕 안티오쿠스가 자기 영토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는 큰 군대를 모으고, 안티오쿠스의 잘
훈련된 정예 군사들을 가자에서 멀지 않은 라피아(Raphia)에서 격퇴시킵니다. 프톨레미는 이 승리로 마음이 높아져서 이들을 추격하며
안티오쿠스의 궁전까지 점령합니다. 그러나 승리에 도취해서 자기의 관능적 욕구에 이끌려 제국의 통치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맙니다. 그는 큰 승리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13절입니다. [이는 북쪽 왕이 돌아와서 전보다 더 큰
무리를 배치하고 몇 년 뒤에 반드시 큰 군대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올 것임이라.]
(13) 프톨레미와 안티쿠스 사이에 체결된 평화는
13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안티쿠스는 꾸준히 군사력을 증강시켰습니다. 그의 군대는 잘 훈련되었으며, 수(數)도 훨씬 늘었습니다. 무기도
잘 갖추었으며, 많은 승리를 통해 사기충천해 있었으며, 약탈을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프톨레미 필로페이터가 죽고 그의 어린 아들(infant
son) 프톨레미 에피파네스가 왕위를 계승하자 그는 드디어 때가 무르익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큰 군대와 많은 부를 바탕으로 아주 쉽게 승리할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이집트를 향해 진군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성공할 지에 대해서는 곧 살펴보겠지만 이들 두 왕국 사이에 새로운 복잡한 사건이
끼어들면서 새 인물이 역사에 등장합니다. 우리가 이 두 왕국을 연구할 때,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왕국들은 같은데, 비록 그들의 공식 직함은
변하지 않지만 북쪽 왕과 남쪽 왕이 뒤바뀐다는 사실입니다.


14절입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이 일어나 남쪽 왕을 칠
것이요, 또 네 백성을 강탈한 자들이 자기 자신을 높여 이 환상을 확증하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넘어지리라.]
(14) 남쪽의 어린
왕을 대적하여 일어난 많은 사람 사람들 가운데는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필립이 있었습니다. 그는 안티오쿠스와 동맹을 맺고 프톨레미 에피파네스의
왕국을 분할하여 차지하고자 했습니다. 이집트는 격렬한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는 안티오쿠스의 환심을 사려는 유대인들도
있었는데, 성경은 이들을 강도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의 행동이 당시 유대인 형제들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들은 ‘환상을 세우려고
스스로를 높일 것’이나 다니엘의 백성들의 고통만 가중시킵니다. 안티오쿠스는 이 강도라고 불리는 유대인들을 대적함으로써 이들은 결국 넘어지게
됩니다. 이 구절은 다음에 나오는 안티오쿠스의 전쟁에서 잘 성취됩니다.


15-19절입니다. [그리하여 북쪽 왕이 와서 작은 산을
만들고 성벽을 두른 지극히 견고한 도시들을 취하리니 남쪽의 군사들이 견디지 못할 것이며 그가 택한 백성도 그러하리라. /그들에게/ 견딜 기력이
없으므로 오직 그를 치려고 오는 자가 자기 뜻대로 행하리니 그 앞에 설 자가 없겠고 또 그가 영화로운 땅에 서리니 그 땅이 그의 손으로 말미암아
소멸되리라. 그가 자기 얼굴을 세우고 자기의 온 왕국의 힘을 다하여 들어가되 자기와 함께한 곧바른 자들과 더불어 들어갈 것이요, 또 그가 이같이
행하리니 곧 여자들의 딸을 더럽게 하고 그에게 그녀를 주리라. 그러나 그녀가 그의 편에 서지도 아니하고 그를 위하지도 아니하리라. 이 일 후에
그가 자기 얼굴을 돌이켜 섬들을 향하게 하고 많이 취할 것이나 한 통치자가 /일어나/ 자기 이익을 위하여 그가 주는 모욕을 그치게 할 것이요,
자기는 모욕을 받지 아니하고 그 모욕을 그에게 돌릴 것이므로 그가 또 자기 얼굴을 돌이켜 자기 땅의 요새로 향할 것이나 걸려 넘어지고 쓰러져서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15-19) 이 구절들은 북쪽 왕 안티오쿠스 대제의 전쟁에서 나머지 부분들을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영광스러운 땅”은 현재 남쪽 왕인 프톨레미 에피파네스의 관할 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집트를
정복하러 가기 위해서는 필히 이 영광스런 땅을 먼저 정복해야 했습니다. 그가 진격을 하자, 프톨레미의 부하 장군인 스코파스(Scopas)가
강하고 견고한 요새로 된 시돈(Sidon)을 도피처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곧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이집트는 이 도시를 구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스코파스는 결국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티오쿠스는 ‘자신의 뜻대로 행할 것이며, 아무도 그
앞에 설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광스러운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왕국의 온 힘을 집결하여 이집트를 향해 진군할
채비를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집트가 로마에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이집트에 힘과
군대를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안티오쿠스는 외교에 의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딸 클레오파트라(Cleopatra)를 당시 7세인 어린
프톨레미 에피파네스 왕과 결혼하도록 청혼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당시 매우 어리고 미성숙한 나이였기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와 유모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여인들의 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결혼은 5년 후에 이루어집니다. “그녀를 부패시키려 할 것이나”란 말은 안티오쿠스가 자신의 딸인 클레오파트라를 이용해 남편 대신 아버지인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한 계획을 언급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 대신 남편의 편에 섰으며,
자기 아버지에게 패배를 안겨준 로마군에게 자기 남편을 축하 사절단에 함께 가도록 했습니다. 로마에 보복을 가하기 위해, 안티오쿠스는 300척의
함선을 갖추어 해변들과 소아시아의 섬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B. C. 199년 예언에 언급된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Scipio
Asiaticus)란 왕에 의해 마그네시아(Magnesia)에서 패배합니다.


그때서야 그는 자기 고국을 향해갔습니다. 안디옥에서 그는 화해를
청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조건은 너무나 과중한 것이었습니다. 유럽뿐만 아니라 타소 지방의 아시아를 포기해야 했고, 2500 달란트를
전쟁 배상금으로 물어야 했으며, 매년 1000달란트 씩 12년간 공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몇 개월 후 안티오쿠스는 공물을 징수하기 위해 동부
지역을 지나는 동안 엘리마이스에 있는 벨 신전을 급습하려 했다가, 주민들이 일어나 그를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걸려 넘어지리니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란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20절입니다. [그때에 그 왕국의 영화 속에서 조세를
징수하는 자가 그의 영토에서 일어날 것이나 그는 몇 날이 못되어 분노나 전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멸망할 것이요,]
(20). 안티오쿠스
대제의 왕위는 그의 장자인 셀리쿠스 필로페이터(Selecus Philopater)가 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에게 부과된 무거운 공물의
부담을 그대로 졌기에 “세금을 거두는 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12년간 통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기간이 끝날 무렵, 그는 그의 보물
징수관인 헬리오도로스(Heliodorus)를 위의 말씀에 “왕국의 영화”라고 언급된 예루살렘에 보내 성전의 보물을 몰수해 오도록 보냈습니다.
하지만 왕은 비밀리에 독살당하고 맙니다. 그는 분노함이나 전쟁도 없이 멸망하였습니다.


21-31절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B.C. 175-164)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또 그의 영토에서 일어날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사람들이 그 왕국의 존귀를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화로이 들어와서 아첨하는 말로 그 왕국을 얻을 것이며 홍수/같이 밀려오는/ 군사들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 앞에서 휩쓸림을 당하고 참패를 당하리니
참으로 언약을 맺은 통치자도 그러하리라. 그와 동맹을 맺은 후에 그가 속임수를 행하리니 이는 그가 올라와서 소수의 백성으로 강하게 될 것임이라.
그가 평화로이 들어가서 그 지방의 가장 기름진 곳에 이를 것이며 자기 조상들과 조상들의 조상들이 행하지 아니한 일을 행할 것이요, 또 탈취물과
노략물과 재물을 그들에게 흩어 주며 참으로 자기의 계략을 미리 세우고 여러 요새를 치되 한 때 동안 /칠 것이라/. 그가 자기의 권세와 용기를
불러 일으켜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쪽 왕을 칠 것이요, 남쪽 왕도 분발하여 심히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싸울 것이나 그가 서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계략을 미리 세워 그를 칠 것임이라. 참으로 그가 정해 준 양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멸할 것이요, 그의 군대가 흘러 넘치되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여 쓰러지리라. 이 두 왕이 다 같이 마음에서 해악을 행하고자 하여 한 상에서 거짓말을 할 것이나 그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정한 때에 끝이 있을 것임이라. 그때에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자기 땅으로 돌아가며 자기 마음으로 거룩한 언약을 대적하고 착취를 행하며 자기
땅으로 돌아갈 것이며 정한 때에 그가 되돌아와서 남쪽으로 향할 것이나 그 일이 그전이나 나중만 못하리라. 이는 깃딤의 배들이 와서 그를 칠
것임이라. 그러므로 그가 근심하며 돌아가서 격노하여 거룩한 언약을 대적하리라. 그가 이와 같이 행하며 돌아가서 그 거룩한 언약을 저버린 자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것이요, 군사들은 그의 편에 서서 견고한 성소를 더럽히며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을 제거하고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둘
것이며]
(21-31).


북쪽의 다음 왕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로써 위에서 ‘비열한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는 안티오쿠스 대제의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비열하고, 추잡스러운 욕구를 물려받았으며, 잔인하고,
야비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용기와 능력은 뒤지지 않는 자였습니다. “왕국의 영예”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조카
데메테리우스(Demeterius)가 정당한 법적 상속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페르가멈(Pergamum) 왕국의 유메네스(Eumenes)와 그의
형제 아탈루스(Attalus)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넘쳐나는 군대들 같던 그의 원수들은 모두 일소되었으며, 언약의 통치자로
묘사된 유대의 대제사장 오니아스(Onias) 3세는 그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로마를 설득하여 자기를 승인하도록 했을 때, 자기를 도와
준 유메네스와 형제인 아탈루스와 맺은 연맹을 깨뜨립니다. 그러는 한편 자신은 추종자가 아주 적은 것처럼 거짓 되이 행세합니다. 그러나 그는 곧
“적은 백성으로 강하게” 되었으며, 평화롭게 그 지역의 가장 기름진 곳을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는 자기 전임 왕들과는 달리 정복지에서 얻은 약탈물들을 아낌없이, 후하게 동료들과 부하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마음 가운데
이집트를 공략할 음모를 늘 꾸미고 있다가 펠리시움(Pelesium), 나우크레티스(Nowcratis), 멤피스(Memphis) 세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는데는 실패하였습니다. “얼마동안” 이 일을 하지만 결국 로마에 의해 저지당했습니다.


그가 이집트를 공략하려고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진격했을 때,
이집트 또한 대규모의 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는 전쟁에서 패하여 그 세력이 소멸되었고, 프톨레미 필로미테르는 안티오쿠스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그의 음식의 몫을 먹는 자들”이란 그의 형제인 피스콘(Physcon)을
일컫습니다. 피스콘은 프톨레미를 대신하여 자신을 왕으로 선포해 버렸습니다. 안티오쿠스는 프톨레미를 깊은 존경심으로 가지고 받아 들였으며, 그가
제의한 화친 조약도 호조건으로 체결 해 주었습니다. 안티오쿠스는 프톨레미의 형제이자 정적인 피스콘을 대항해서 도와준다는 핑계로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했습니다. 한편, 필로미테르는 안티오쿠스를 의심하여 형제인 피스콘과 서로의 주권을 인정하는 조건하에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 알렉산드리아를
받기로 했습니다. 두 형제가 힘을 합쳐 안티오쿠스를 대항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은 또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이 두 왕(안티오쿠스와
필로미테르)이 다 같이 마음에서 해악을 행하고자 하여 한 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할 것이나 그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정한
때에 끝이 있을 것임이라.]
안티오쿠스는 그 때 다시 이집트에서 얻은 엄청난 약탈물을 싣고 시리아로 돌아갑니다. 그가 돌아가는 도중,
전에 유대의 대제사장이었다가 쫓겨난 제이슨(야손)은 안티오쿠스가 죽었다는 잘못된 보고를 듣고 예루살렘을 공격했으며, 잃어버린 자신의 지위를 다시
찾고자 하였습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에 많은 유대인들이 기뻐한다는 사실에
안티오쿠스는 격분하여 예루살렘을 맹렬히 습격하여 4만 명의 주민들을 살해하고,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성전을 약탈하여 1800
탈란트의 보물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거룩한 언약”을 거슬러 그의 분노를 표출한 뒤 계속해서 안티옥으로 진군했습니다.


B.C.168년 봄에 프톨레미 필레미터와 프톨레미 피스콘 두
형제를 굴복시키기 위해 자신의 군대를 이집트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성공이 다시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프톨레미는 이미
로마에 원군을 요청해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리아 반경 4Km 이내까지는 그 어느 누구도 안티오쿠스의 군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장군 포필루스 라에나스(Phopillus Laenas)가 그의 군대를 항구에 정박시켜 놓고 안티오쿠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포필루스 장군은 안티오쿠스에게 로마 원로원이 로마와 동맹 관계를 맺은 친구를 괴롭히지 말 것과 안티오쿠스가 현재 가지고 있는
영토로만 만족하라는 명을 전했습니다. 로마 원로원에서 보낸 칙령을 읽고 난 안티오쿠스는 자기의 참모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필로푸스는 자기의 지휘봉으로 안티오쿠스의 둘레에 원을 그려놓고 “왕께서 저 원을 벗어나기 전에 제가 원로원에 보고할 답변해 주기 바랍니다”고
협박했습니다. 이에 안티오쿠스는 “원로원의 뜻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떠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안티오쿠스는 이집트에서 그의 군대를 철수하면서, 그 분풀이를
거룩한 땅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안티오쿠스는 유대인들을 대량 살상하였고, 학대하였으며, 성전을 더럽히고, 마카비서 1장에 기록된
모든 가증한 짓을 행했습니다. 그는 다윗 성의 거대한 벽과 탑을 수리하여, 자기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안티오쿠스는 자기가 다스리는 모든 백성은
한 민족이어야 하며, 같은 종교와 같은 법률에 의해 통치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해 그는 성소를 더럽히고 성전에
지내는 희생제를 금지했습니다. 성소는 더럽혀 졌으며, 주의 전위에 우상 제단을 세워 그 위에 돼지를 얹어 놓고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멸망케
하는 가증한 것”이란 본문의 말씀은 주 예수께서 마태복음 24:15에서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미래에
있을 일입니다. 이 말씀은 다니엘서 12:11에서 언급된 것이며, 다니엘서 9:27의 “가증함을 확산시킴”이란 말씀의 성취입니다. 안티오쿠스의
유대인에 대한 가혹한 정책은 마카비 혁명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한편으로 안티오쿠스는 페르시아로 군대를 끌고 가 승승장구하였습니다. 후에 그는
바빌론으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마카비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비탄에 잠긴 채 안티오쿠스는 B.C. 164년 죽음을
맞았습니다.


여기 21절에서 31절까지 기록된 것은 매우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21절에서 31절은 안티오쿠스에 관한 이야기이지 적그리스도나 미래에 예언된 어떤 특정인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21절에서 31절의
말씀은 미리 예언된 대로 문자적으로 완벽하게 성취된 말씀입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적그리스도의 예표로써 연관성조차도 별로 없는 인물입니다.
적그리스도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둘다 분명한 역사적 실존 인물이며, 자기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들의 유대인을 괴롭히는 행적을 볼
때, 유사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둘을 절대 서로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이 예언적이고 미리 기록된 역사적 설명은 2-31절에 잘 나와
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 제국간의 전쟁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 제국이 분할된 후 B.C. 536년에서 B.C. 164년 사이 372년간 행해진
시리아와 이집트와의 전쟁에 대해 특히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놀라운 예언이며, 하나님의 전지하심이 극명하게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는 2절에서 31절에서만도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이란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고도 남습니다.


32-33절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서 메시야 통치자 시대
사이의 기간(B.C. 164-A.D. 30년)입니다. [그가 또 사악하게 행하여 그 언약을 대적하는 자들을 아첨하는 말로 부패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공적을 세우리라. 백성 중에서 깨닫는 자들이 많은 사람에게 교훈을 줄 것이나 그들이 여러 날 동안 칼과
불꽃과 포로로 사로잡힘과 노략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32-33).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압제하에 있던 유대인들의 행동은 32절에
나와 있습니다. 어떤 유대인들은 ‘악하게 행하고’ 그들 조상의 종교인 ‘언약’을 던져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아첨으로 부패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자들도 몇몇 있었으며, 이들이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며 강해져서 스스로 일어섰습니다. 이 말씀은 나이든 제사장 맛디아와 마카비
형제들이라고 하는 그의 아들들을 일컫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B.C. 166년에서 B.C. 47년 이스라엘의 민족적 생명을 회복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안티오쿠스에 분풀이로 절망적인 된 맛디아는 자기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이끌고 산으로 피하여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맛디아는 이스라엘의 믿음을 위한 불타는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2년 후 맛디아가 죽고
그의 망치란 별명을 지닌 셋째 아들 유다가 아버지의 뒤를 이었습니다. 유다는 천재적인 전술가로써 정면 전투를 피하고 게릴라 전법을 펼쳐
자기에게로 오는 모든 시리아 군대를 격퇴시켰으며 B.C. 165년 예루살렘을 탈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유다는 성전을 정결케하고, 날마다 드리는
희생 제사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는 B.C. 160년 전투에서 전사하자 동생이자 대제사장이었던 요나단이 형을 지휘권을 잡았습니다. 요나단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 시리아는 내전에 휘말렸기 때문에 유대지역은 평화롭게 남았습니다. 이 틈을 타 요나단은 로마와 스파르타와 조약을 맺음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요나단은 B.C. 143년 시리아 장군에게 배반을 당해 살해되었고 맛디아의 마지막 남은 아들이며 동생인 시몬이 뒤를
이었습니다. 시몬과 그의 두 아들들은 B.C. 135년 자신의 장인의 배반으로 살해당했습니다. 시몬의 아들 요한 히라카누스(John
Hyracanus)로 알려진 요한이 뒤를 이었습니다. 요한은 산으로 피신하여 오래도록 순조로운 통치를 하였습니다. 요한의 뒤를 이어 이 가문에서
나온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 통치를 하였습니다. 이두메인 안티파테르가 B.C. 47년 왕위를 계승하였고 B.C. 43년에 암살당했습니다.
안티파테르가 죽자 마르크 안토니(Marc Anthony)가 시리아를 방문하여 안티판테르의 두 아들인 파셀루스(Phaselus)와 헤롯(Herod)-이
사람은 헤롯 대왕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B.C. 4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때 왕이었습니다.-에게 유대를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마카비 가문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와 그리스도 탄생 때까지 중간 가교 역할을 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의 후반기간 동안에 성경의
예언을 이해하는 새로운 영적 지도자 부류가 출현했으며, 사람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알았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과 안나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33-35절은 메시야 때부터 마지막 때까지(A.D. 30 -
A.D. ?)입니다. [백성 중에서 깨닫는 자들이 많은 사람에게 교훈을 줄 것이나 그들이 여러 날 동안 칼과 불꽃과 포로로 사로잡힘과
노략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이제 그들이 넘어질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이 아첨하는 말로 그들에게 붙을 것이며 또 그들 가운데
명철(明哲)한 자 몇이 넘어져서 그들을 단련하며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하되 끝이 임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일이 정한 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라.]
(33-35). 때가 차서 그리스도께서 나셨으며,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메시야로써 드러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배척받았으며,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끊어지심). 40년 후(A.D. 70년) 예루살렘은 로마에 의해 파괴되며 33절 후반부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러 날 동안 칼과 불꽃과 포로로 사로잡힘과 노략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많은 날들(Many days)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언급한 이 세대(this generation)의 날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들이 칼날에 쓰러지고 모든 민족들에게 사로잡혀 가며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임이라.]
(눅21:24).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눈앞에서 현재 성취되어 가는
중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약탈당하였다는 말은 많은 날들 동안 반복적으로 그들의 재산을 빼앗길 것을 말합니다. 비록 그들이 쓰러졌지만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며, 때때로 적은 도움을 받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일에서 아첨과 약속을 받지만 이런 약속들은 설령 지켜진다 해도 거의
이루어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백성 가운데 깨달은 자들”은 심지어 적그리스도의
때에도 속아서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정화되고(겔20:34-38) 제련되기 위해(겔22:19-22, 말3:1-3, 슥13:9)
그렇게 되는 것이며, 그들을 깨끗케 함으로써 자신들뿐만 아니라 마지막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본이 되어 깨끗케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수백 년에 걸쳐, 심지어 마지막 때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유대인들이 받는 고난과 박해에는 어떤 목적과 뜻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메시야 통치자로부터 마지막 때까지의 시간적 간격을 숙고해 볼
때, 우리는 그것이 다니엘의 69주와 70째 주 사이의 간격(Gap)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볼 때 다니엘이 본 모든 환상은
유대인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본 것이지, 교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현 교회 시대는 다니엘의 환상에서 빠져있음이
눈에 확연히 띕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늘 기억하는 한 마디는 이미 성취된
역사적 사건이라도 이 사건은 “예언적 사건”의 모델이 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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