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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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주와 70주의
간격-


말씀: 다니엘 9:24-27

요절: 다니엘 9:24-27


흔히 예언의 골짜기라 불리기도 하는 69주와 70주 사이의 큰
간격에 대해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70주의 시작과 종결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다니엘의 “70”주 중에서 69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승리의 입성을 통해 그 과정이 끝났다면, 그 다음 과정으로 70주가 바로 연결되어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69주와 70주 사이의 간격이 있는가? 아니면, 현세대 전체가 바로 69주와 70주 사이의 전체를 다 메우고 있는가? 69주와 70주 사이에는
어떤 시간적 간격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까지가 69주로 끝났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70주의 중간 시점이었으며, 그때 그분이 끊어졌으므로 지금도 70주의 예언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70주의 한 주가 7년인데, 전 삼년 반 후 삼년 반으로 나누어서 앞은 3년 반으로 정확한데 남은 후반의 3년 반이 무려 1900년이
훨씬 넘은 장기간임을 볼 때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논리입니다. 이미 앞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70주의 한 주도 “7년이란 시간”일 뿐 더 긴
시간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69주와 70주 사이에는 어떤 간격도 없다고
주장하며, 다니엘의 바빌론 포로기간이 70년이 중단 없이 지속되었음을 예로 듭니다. 그들은 또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430년의 기간’(창 15:13; 출 12:40; 갈 3:17)이 한날에 모두 성취되었으며(출12:41,42)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은 40여년의
방황 생활이 중단 없이 지속되었음을 지적합니다(민14:34). 그러나 그들은 다른 예언들은 다니엘의 70주 예언처럼 ‘세 부분으로
구분’(7+62+1)되어 있지 않음을 잊고 있습니다. 70주의 예언은 각 부분마다 각 성취될 할 일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시간적
구분을 두신 것은, 성경적으로 완전히 입증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사이에 “간격”(Gap)은 아닐지라도 “휴기”(break-간격)가
존재 할 수 있음을 암시해 줍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7주나 62주 사이에 간격 존재한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고 물을 수 있습니다. 7주나 62주 사이에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성경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예루살렘의 멸망 사이). 이 두 사건이 각각 별개의 사건이란 사실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격이 있다고
했었더라도 하루나 일 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7주는 49년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성전을 재건한데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성전 예배가 복원되었고, B. C 445년 아탁세르세스의 칙령과 B. C 396년
성경의 예언이 마지막으로 종결된 대와 정확히 일치한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부터 “침묵의 기간”(B. C 396)부터 A. D 30년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의 승리의 입성까지를 포함합니다.
26절을 통해 볼 때, 69주와 70주 사이에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첫째, “메시야 통치자”(그리스도)는 끊어져야 한다(십자가에 못
박히심).

둘째, 예루살렘과 성전은 로마인들에 의해 파괴되어야 한다.

셋째, 파괴된 후에는 오랫동안 전쟁 등의 소문으로 뒤덮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들이 칼날에 쓰러지고 모든 민족들에게 사로잡혀 가며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임이라.](눅21:24).
지금도 이방인의 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26절은 아무리 보아도 69주 뒤에 바로 있을 70주에 대한 묘사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70주의
한 주는 ‘7년’이란 기간인데 비해 현재 19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69주가 끝나고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가 70주의
시작이었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공생애 가역이 3년 반에 해당하는 시기이며, 십자가의 죽으심이 한 주의 중간에 있었던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분의 부활하심 후에 사람들은 더 이상 희생제와 예물을 드리지 않게 되었다는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십자가 후에도
유대인들이 “피의 희생제”를 계속해서 성전에서 행했으며, 그리스도에 의해 그것들이 폐해진 것도 아님을 잊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후에
그 누구도 유대인들에게 희생물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40여년 후에야 비로소 로마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었고, 희생제가
중단되었습니다.


<올리브 산의
설교>


마 24:1~35, 막 13:1~31, 눅 21:5~33절을
읽을 것-(독자들은 이 부분을 성경을 펴 놓고 다음을 보도록 한다.).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를 통해 69주는 이미 지나갔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있을 일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단9:26). 설교를 통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으며, 이방인들의 때가 찬 때까지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힐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현재도 여전히 이방인의 때입니다. 주님이 돌아오시고, 이 세대가 끝날 때까지 70주는 절대 시작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그 간격이 1900년이 아니라 그 이상일지라도 말입니다. 산상 설교는 다니엘 9:21~29절을 해석해 주는 열쇠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하고 확실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계시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예루살렘이 파괴된 지 26년이
지난 A. D 96년에 씌어진 책입니. 우리는 계시록이 사도 요한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점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Revelation of
Jesus Christ)(계1:1)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주님이 승천하신 후 친히 요한을 통해 산상설교에서 하신 말씀을
더욱 자세하고 정확하게 보여 주는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연대기적 순서대로 씌어져 있다1). 계시록 2장과
3장에 쓰인 “교회들에게 준 메시지”는 현 세대 동안 기독교회들의 역사에 대한 예언적 윤곽을 그려낸 것입니다. 4장에서 교회는 휴거되어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해서 하늘(셋째 하늘)로 갑니다. 교회의 휴거는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에 묘사된 대로입니다. 5~19장까지 전체가 다니엘의
70째 주에 관한 묘사이며, 이 시대의 말에 있을 역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의 “70번째 주”와(단 9:24~27),
예수님의 산상 설교(마 24:1~35)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봉인들, 나팔들, 호리병들”(계 6:1; 18:24)은 모두 같은 시기에 있는
같은 사건들이며, 교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유대인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다니엘은 그의 예언에서 윤곽을 그렸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산상설교에서 좀 더 자세히 그림을 그렸으며, 요한은 계시록에서 구체적인 것까지 다 그려 넣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요한이 13장에 걸쳐
묘사한 방대한 내용을 단한 절로 압축 요약했던 것이다.


<다니엘의 70째주, 그리스도의 산상설교, 계시록과의 비교>


다니엘의 70째 주(단9:27)













전 삼 년 반 중 간 후 삼 년 반

장차 올 통치자(적그리스도)

유대인과 7년 언약을 맺음


언약을 깨뜨림

희생제와 예물 중단


황폐한 기간


 




 


산상 설교 계시록5:1-21:27
















전 삼 년 반


중 간


후 삼 년 반


재 림


전쟁들, 기근들, 역병들,

지진들, 거짓그리스도들,

이 모든 것들은

슬픔의 시작에 불과함

(마 24:4~14)


다니엘이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출현함

(마24:15-19)


전무후무한

대환란의 시작


주님이 오심

(계19:1-21)


요한계시록
















전 삼 년 반


중 간


후 삼 년 반


재 림


봉인들과 나팔들

계5:1-11:19


용이 땅에 떨어지고

적그리스도로 성육신 함

(12:1~17)


호리병들 대환란

계13:1-18:24


계19:1-21


우리는 다니엘서가 “이방인들의 때”에 대해서 다루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더욱이 “환상들”은 이방인들의 때에 대한 전체시기를 다 포괄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금상에서 본 이방인들의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세워질 돌 왕국이 등장할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본 “짐승의 환상”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그 작은 뿔을 쳐부술 때까지 끝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70주의 환상이라 해서 예외일 것인가? 70주가 단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예루살렘의
파괴로 성취되었는가? “전체 이방인들의 때”가 종결되었고 다니엘이 자기 백성들(유대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거룩한 도시(예루살렘)에 발생한
일들에 대해 자세히 보여 주었던 환상의 목적과는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악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며, 그들은 1948년 독립하는
순간까지 전 세계에 흩어져서 여전히 이방인들의 발에 짓밟히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보건대 70주는 분명히 유대인과 연관된 해이며,
이방인들의 전체 시기가 종결되고 난 후의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구절도 교회와 연관된 것은 없습니다. 교회는 구약 성경 어디에도 예언된
적인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점이 바로 다니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뛰어넘어 예루살렘의 파괴와 적그리스도와의 언약(27)이
여전히 미래의 사건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적그리스도의 등장 사이에 존재합니다. 이는 다니엘이 예언한 69주와 70주
사이에 간격 또는 큰 시간적 공백이 있으며, 유대인과 예루살렘이 아닌 교회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70주>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는 흥미로운 사실들
중 하나는 성경에서 70주의 기간이 한번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네 번이나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네 번 모두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해서 주의
재림까지의 예언적 연대기에서 오직 한 민족, 즉 유대 민족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의 기간에 대해서
언급할 뿐 이방인의 때의 길이나 교회의 시대의 기간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주님이 다시 오셔야만 알 수 있는 영역입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70째 주>


창세기 12:1~4절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나이 70세에,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7절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언약을 430년 후에 모세가 받은
율법이 대신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출생부터 출애굽까지는 75+430 = 505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에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낳았고(창 16:16) 이삭을 낳았습니다(창 21:5). 그 사이 기간이 약 15년간이었습니다. 505년에서 이 15년을
빼내면 490년이 남는다. 이것이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70주입니다. B. C 271년 아브라함의 출생부터 B. C 1606년 출애굽까지의
기간입니다. 여기서 제시한 연대 계산은 어셔 대주교(Archbishop Ussher)가 성경에서 주장한 것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단지 근거 있는
추론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에 4번의 ‘70주’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세워진 계산일 뿐입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70주>


열왕기상 6:1절에서 우리는 출애굽에서 솔로몬 통치 4년까지의
기간이 480년이며, 솔로몬은 이때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13:18~21절에서 바울은 안디옥에서 설교를 하면서 이 부분을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40년간 이스라엘의 소행을 참으셨으며, 후에 땅을 지파별로 분배하셨습니다. 약 450년간(어떤 이는 488년
이라고 함) 그들에게 재판관들(사사들)을 주셨습니다. 이는 여호수아를 포함해서 그보다 더 오래 산 장로들로부터 시작해서 선지자 사무엘이 약
20년간 재판관으로서 활동했다. 그때 이후로 사울 왕이 40년간, 다윗 왕이 40년간 다스렸고, 솔로몬이 뒤를 이어 치리 4년 때까지입니다.
출애굽에서 성전 건축까지의 기간은 591년입니다. 사도행전의 말씀과 열왕기상의 말씀에는 약 111년간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는 이 현상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우상을 따라간 기간들이 연대에서 빠져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에서부터 성전의 건축까지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섯 번이나 노예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1. 메소포타미아에서 - 사사기 3:8

2. 모압자손들에게 - 사사기 3:12~14

3. 가나안인들에게 - 사사기 4:2,3

4. 미디안인들에게 - 사사기 6:1

5. 필리스틴과 암몬 자손들에게 - 사사기 10:7,8

6. 필리스틴들에게 - 사사기 13:1

   총 합계
8년

18년

20년

7년

18년

40년

111년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설교한 591년과 열왕기상에 언급된
480년간의 차이는 노예 생활을 했던 111년간의 기간이 빠져있기 때문이며, 출애굽에서 솔로몬의 성전 건축까지의 기간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계산하시는가를 잘 보여 주는 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 기간 동안의 역사를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성전 건축은 7년 후에도 끝나지 않으며 성전
예배를 위해 “동으로 된 그릇”과, 놋 기둥을 세우는데 3년이 더 소요되어서 공사한 지 10년만에 완공된다(왕상 7:13~51). 480년에다가
10년을 더하면 490년이란 기간이 출애굽에서 성전 봉헌식(왕상 8:1~66)까지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는 역력 계산에 따르면, 실제 기간은
480+111년의 기간(노예 생활했던 기간)으로 성전 봉헌식은 B. C 1005년2)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방인들의
때”의 길이>


“이방인들의 때”의 길이가 얼마나 될 지에 대해 계산 방법들이
큰 오류가 있음을 밝힙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성경 어디에도 ‘이방인들의 때’의 길이나 ‘교회 시대 기간’에 대한 계시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레위기 26:18~21, 24~28절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모세가 네 번이나 반복한 예언이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불복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에 대해 7배(seven times)로 갚으시며, 예수님도 이방인의 때에 대해 말씀하시며 ‘Seven Times'(일곱
번)이란 단어를 쓰셨기 때문에 이때 일곱 번을 7년으로 이해해서 예언적 연대기에 적용합니다. 1년을 360일 체계로 계산하고 하루는 1년을
나타내므로 2520년이 이방인들의 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방인들의 때는 B. C 606년에 시작해서 1914년에 끝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지금도 이방인들의 때는 계속되고 있으며, 그때(1914)에 끝났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그
계산법을 맞는다고 인정해서 2520년을 현재 쓰고 있는 태양력으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2520 × 365¼ =
920.430 ÷ 360 = 2556¾년, 이는 2520년 보다 36¾년이 넘는 길이입니다. 만약 이 계산법이 맞다면 이방인의 때는 A. D
1878년에 이미 끝나야합니다. 레위기 26:18~28절은 이방인들의 때와는 전혀 상관없는 구절입니다. 재판관 시대에 6번의 종살이를 한 것과
바빌론 포로로 잡혀간 마지막 일곱 번째를 합쳐서 일컫는 말씀입니다. 현시대에 유대인들이 흩어진 것은 계산에 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유대인들은 종살이나 노예 생활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레위기 26:18~28절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이미 벌을
받았으며 ‘7번’이란 말씀은 성취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세 번째 등장하는
70주>


B. C 1005년 아탁세르세스 왕의 성전 축조 칙령으로부터
B. C445년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재건한 연수를 계산해 보면 ‘560’년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빌론의 포로기간’ 70년을
배면 우리는 490년이 남는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은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시기를 예언적 연대기에서 빼버린 다는 점이 증명됩니다. 이로써
다니엘의 ‘70주’는 B. C 455년 아탁세르세스 (Artaxerxes Longimanus) 의 칙령과 더불어 시작됨을 또 한번 증명한
셈입니다.


<네 번째 등장하는
70주>


우리는 이제 다니엘의 70주 예언에서 가리워진 부분에
도달했습니다. 69주와 70주 사이의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A. D 30년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의 입성’을 하신 해가 바로 ‘69주’즉
‘483’년이 되는 해입니다. 예루살렘은 파괴되지 않았고 유대인은 A. D 70년이 되어서야 흩어졌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을 때 봉인되어 버렸습니다. 남은 40년은 마치 광야에서 40년처럼 ‘은총의 시기’에서 제외되어 계산되지 않습니다. 그때 이미 다니엘의
70주, 즉 490년 중 483년의 기간이 이미 만료되었습니다. 이제 성취되어야 할 시간은 ‘한 주’ 즉 7년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거의
1900년 동안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재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할 때까지 한번도 민족적으로 모여 본 저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민족적 정체성과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란 자긍심을 결코 잃지 않았습니다. 왕도 정부도 땅도 없으면서 언젠가는 당당히 주인으로써
합법적으로 살아가게 될 그들의 땅 팔레스타인을 늘 기다리며 살아온 유일무이한 독특한 민족입니다. 이들은 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호세아 3:4절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통치자도 없고 희생물도
없고 형상도 없고(그들은 이제 더 이상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다)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거하다가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주]
자기들의 하나님과 자기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들에는(latter days) [주]와 그분의 선하심을 두려워할 것임이라.](호3:4-5).


유대인들이 보존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도
“훗날들”(latter days)에 귀환될 때까지 보호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를 보건대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버리시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롬
11:1,2). 이는 [이방인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롬 11:25)는 말씀처럼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회복되어 그들의 땅으로 갈 것임을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렘 30:10,11; 16:14,15; 24:6; 사 11:11,12;
43:5~7; 암 9:14,15).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진 기간 동안, 유대인들과 연관되어있는 하나님의 시간표는 다니엘의 70주에서
69주가지만 진행되고 멈추어 버렸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기 때문입니다(행 2:22,23). 우리는 지금
69주와 70주 사이의 ‘기간’(gap)에 살고 있다. 70째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 다루실 때까지 결코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B. C
2111년 아브라함의 출생부터 A. D 2006년 현재까지 4번의 <70주>기간을 공부해 봄으로써 4187년간 세월이 흘렀음을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은총에서 벗어나 있었을 때의 수많은 시간은(약 2144년에 달합니다(15+111+70+1948 =2144).
이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반을 넘는 기간 동안 훈련(연단)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26절을 통해 우리는 69주와 70주 사이에서 ‘4가지 일’이
발생함을 알 수 있습니다.


Ⅰ. 메시야가 끊어져야 하나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다.

Ⅱ. 그 도성(예루살렘)과 성소(성전)가 파괴될 것이다.

Ⅲ. 통치자는 그 도성과 성소를 파괴할 백성과 같은 민족에서 나올 것이다.

Ⅳ. 팔레스타인은 완전히 황폐해 질 때까지 파괴될 것이다. 70주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면서 파괴자 즉 적그리스도를 멸망시킴으로써 끝날
것입니다. 이 4가지 일들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Ⅰ. 메시야가
끊어질 것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죽으시지 않았다. 주님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들을 짊어진 채 나무에 달리셨습니다(벧전 2:24). 예수님은 벌거벗은 채 수치스럽게 돌아 가셨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그녀의 아들’예수가 그들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차지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눅 1:30~33). 그러나 왕국을 차지하는
대신에, 침례인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선포한대로 천국이 가까이 오기는커녕 예수는 메시아로서 배척당했으며 아무 것도 받지 못한 채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와 앉거나 올 세상을 평화로 다스리기는 고사하고 두 도둑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메시야, 지상에서 영광과 위엄을 차지할 어떤 것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가시면류관 이외 어떤 면류관도 쓰지 못했으며 보좌나
왕국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왕국의 연기를 미리 예언해 둔 것입니다.


Ⅱ. 도성과 성소가
파괴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들의 왕으로써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을 때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더 이상 한 민족으로서 인정하지 않으셨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승리의 입성’을 한 다음날 예수께서는 성전을 방문하셔서
‘환전상들’을 내쫓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록되었으되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우리라 하였거늘 너희가 도둑들(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마 21:13).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성전을 더 이상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 23:38)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단념하셨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 다음날 저녁 예수께서 올리브 산에 오르셔서 그 온
성을 내려다보시며 우셨습니다. 주님은 그 도시가 파괴될 것을 예언하시며 그 백성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들이 칼날에 쓰러지고 모든 민족들에게 사로잡혀 가며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임이라.]
(눅 21:24). 이 일은 A. D 70년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때 이후로 예루살렘은 결코 유대인들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20번 이상 공격받았고, 다시 재건되었으며,
외국 정부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절대 그 곳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습니다. 한때 ‘시오니즘’( Zionism)이라 하여
팔레스타인의 소유권을 회복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걸어들어 가려는 운동도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의 충만한 때가 차기까지
그곳은 황폐하게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을 회복시키실 때 돈 한 푼들이지 않고도 원래 주인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그곳에
들어갈 것이며, 이로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 성취될 것입니다(창 13:14~18). 다니엘서가 안티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 B. C 175~164)시대보다 후에 경건한 몇몇 유대인들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십자가의 사건’과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뚜렷한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을 예언의 말씀으로
다루어 설명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니엘서는 이 두 사건이 모두 일어난 후 즉 190년 이후에나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Ⅲ. 통치자는 그
도성과 성소를 파괴할 백성과 같은 민족에서 나올 것이다.


이 통치자는 25절에 나오는 메시야 통치자가 아닙니다. 다가올
통치자는 로마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파괴한 사람들이 로마였습니다. 메시야 통치자는 로마인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다가올
통치자’는 로마군의 총 지휘관이였던 타이투스(Titus) 장군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로마 제국은 멸망하고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가 아닌 과거의 로마를 의미해야 타당하며, 고로 통치자는 다름 아닌 타이투스(Titus)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로마는 재건됩니다. 통치자 곧 적그리스도는 그 안에서 나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백성”과 “다가올 통치자”란
어휘의 사용은 타이투스가 그 통치자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가 올”(미래)이란 말에서 우리는 이것이 미래에 적용 시켜야 할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가올 통치자”는 타이투스 장군 때의 예루살렘 파괴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이같은 논쟁은 헤롯이란 주장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다가올 통치자”가 누군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니엘은 이미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그가 네 번째 짐승의 머리 위에 난 열 뿔 가운데 난 ‘작은 뿔’임을 알고 있었습니다(단 7:7,8, 23~27). 다니엘이 처음 세
짐승들이 상징하는 제국들(바빌론, 메데-페르시아, 그리스)이 무엇인지 알 고 있었던 반면, 네 번째 짐승이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지를 알았다고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가 알았다면 그 통치자와 도시와 성소를 파괴할 백성들이 로마인들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니엘서를 공부하면서
잊어선 절대 안 될 일은 이 책이 바로 ‘이방인들의 때’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그 목적이 작을 뿔 곧 최후의 이방인 통치자인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70주의 예언에서 그를 다루어야함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며 예언의 목적이 바로 우리들에게 ‘마지막 때’에 관하여
알려주고 ‘마지막 날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Ⅳ. 팔레스타인은
완전히 황폐해질 때까지 파괴될 것이다.


70주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서 파괴자 즉 적그리스도를
멸망시킴으로써 끝날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했을 때 그 당은 젖과 꿀이 흐르는 온갖
과일이 풍성한 곳이었습니다(신 8:7~9). 그 당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을 잘 지키고 주께 순종하기만 하면 풍성한 소산을
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불순종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하늘들을 닫아서 땅이 소산을 내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신11:13~17). 오늘날도 팔레스타인 당의 토질은 매우 비옥하지만 강우량과 관개 시설의 부족으로 황폐화되었습니다. 저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10월과 11월)와 늦은 비(4월과 5월)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비가 전에 보다는 더 자주
내림으로써 저주의 시기가 거의 풀려 나가는 시점에 가까워짐을 알 수 있긴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황폐함은 26절에서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이며 천년
왕국이 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광야와 적막한 곳이 그것들로 인해 기뻐하며 사막이 장미같이
피어 즐거워하고, 전나무가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고 은매화나무가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임이라. 이것이 [주]를 위하여 한 이름이 되며 끊어지지
아니할 영존하는 표적이 되리라. 그때에 땅이 자기 소출을 내리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그런즉 /타작/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기름진 것과 포도즙과 기름이 넘쳐나리로다. 내가 전에 너희 가운데로 보낸바 나의 큰 군대 곧 메뚜기와 자벌레와 쐐기벌레와 송충이가
먹은 햇수를 너희에게 되돌려 주리니 너희는 풍족히 먹고 만족하며 너희를 놀랍게 대접한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내 백성이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사35:1; 55:13; 시 67:6; 요엘 2:24~26).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69주 뒤에
일어날 4가지 일들 중에서 두 가지 일은 이미 성취되었고 한 가지는 진행 중에 있으며 한 가지는 여전히 미래에 있을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가올 통치자는 69주와 70주 사이의 교회 시대 전체를 포괄하는 ‘간격’(Gap) 이 지난 다음에 올 미래적 사건입니다.


<70째 주>


우리는 이제 27절의 기록된 예언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하겠고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할 것이며 또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하여 그것을
황폐하게 하되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리할 것이며 작정된 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
(27). 첫 번째 질문은 아마 대명사로
처리된 그(He)가 누구인가? 일 것입니다. 혹자는 ‘그’(He)가 메시야 통치자 또는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언약이란
신약(New Covenant)으로써 주께서 주의 만찬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잔을 돌리시면서 - [그 까닭은 이것이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라.]
(마 26:28)는 말씀과 연관시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때 주께서
선포하신 언약은 깨어지지 않는 “영원한 언약”(Everlasting covenant)임을 잊고 하는 말입니다(히 13:20). 지금 다니엘서에
나오는 언약은 주의 중간에, 3년 반 만에 깨어진다. 대명사 그(He)는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앞 절에서 언급된 마지막 사람, 장차
올 통치자인 적그리스도(Antichrist)를 말합니다.



이미 다른 성경들에서 보아서 아는 것 같이 유대인들은 마지막 때에 다 함께 모여 다시 국가를 이루게 됩니다(렘30:10-11, 암9:14-15,
렘16:14-15, 사43:5-7). 다시 모여든 유대인들은 희생제를 드리는 예배 의식을 부활시킬 것이며, 성전을 재건하며, 신정 정치를 재개할
것입니다. 그들은 잃어버린 땅을 다시 소유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외부의 도움 없이는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 안심을
하는 순간 적 그리스도는 그들과 언약을 체결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사망과 언약을 맺었고 지옥과 합의를 보았은즉](사28:15,18). 이 언약은 모든(all)
유대인이 아니라 많은(many) 유대인과 맺어질 언약이라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은 적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열왕기상에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7,000명과 계시록 7:2-10에 나오는 144,000명 등과 같이 소수의 남은
자들은 그 언약 체결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시기를 일컬어 “더러운 영”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부정한 영이 사람에게서 나와 마른 곳으로 다니며 쉴 곳을 구하나
찾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거늘 이에 가서 자기보다 더
사악한 다른 영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나쁘게 되니라. 이 사악한 세대도 참으로 그와 같이
되리라.]
(마12:43-45). “이 악한 세대”란 말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비유를 유대인들에게 적용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세대란
시간의 단위를 말하는 것이 아닌 “모든 때”를 일컫습니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바빌론 포로 생활 동안 우상 숭배를 하며 더러운 영에
잡혀 있다가 해방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어있고, 소제되고, 단장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 더러운 영은 여전히 “내 집”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더러운 영은 이미 유대인들에게 돌아와서 본 것입니다. 이제 그는 가서 자기 보다 더 사악한 일곱 영들을 데리고 다시 올
것입니다.



이 일은 언약의 중간 때쯤에 적그리스도가 언약을 깨뜨리고 그 조약서를 휴지 쪽지 정도로 취급하며, 유대인들이 지내는 희생제와 예물을 금지
시키며, 멸망의 가증한 것이 재건된 성전의 성소에 설 때(마24:15) 있을 일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짐승의 형상을 일컫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적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통해 그 형상을 세우게 선동할 것이며, 이 형상에게 절하고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누구나 모두 죽일
것입니다(계13:14-15). 이 형상은 느부갓넷살이 통치할 때 두라 평원에 세우도록 한 금상과 비슷한 것입니다. 당시 바빌론의 모든 사람들은
이 신상 앞에서 음악에 맞추어 경배하도록 강요했으며, 절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집어 던지는 벌을 받도록 정해
놓았습니다(단3:1-30). 적그리스도의 날에도 그 형상에게 무릎 꿇기를 거부하고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의 세
청년들(다니엘의 세 친구)이 경배를 거부했다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건져냄을 받은 것과는 달리 이들은 모두 목베임, 즉 참수형을 받을
것입니다(계20:4).



“가증함”(Abomination)이란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가짜 신’(false god)이란 의미로 널리 통용되는 말이었습다. 구약에서는
‘우상’(idol)을 의미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 왕이 “그의 모든 타국인 아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예루살렘 앞에 있는 산에 모압의 가증한
것인 크모스를 위하여 산당을 짓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것인 몰록을 위하여 산당을 지었으며”란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널리
퍼진’(overspreading)
이란 어휘는 문자적으로 ‘날개들’을 뜻한다. 성경에서 날개는 보호하심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그 날개 아래서
너희가 신뢰를 두나니’. 그 때에 유대인들은 멸망의 가증한 것, 즉 적그리스도의 형상인 우상 아래서 보호를 구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될 때,
악한 일곱 영을 데리고 들어와 이들의 상태는 처음보다(바빌론 포로 때 보다) 나중 때가 더욱 악화될 것을 뜻합니다. 이 일은 주의 마지막 때,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까지, 찌른 자들도 그분의 오심을 보고(계1:7), 우상으로부터 자신들을 돌이키고, 황폐케 하는
자(Desolator)인 적그리스도가 그분의 찬란히 오심으로부터 제거될 때까지 유대인들에게 계속 될 것입니다(살후2:8, 계19:20).



이를 통해 볼 때 재건 된 성전 위에는 스랍들의 날개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날개가 그 위를 덮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민족적 회개를
하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야, 왕으로 받아들인 후에 결코 깨어지지 않을 새 언약을 맺게 될 것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에 따른 것이 아니니 내가 그들의 남편이었을지라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그 날들 이후에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다시는 그들이 각각 자기 이웃이나 자기 형제를 가르쳐 말하기를, /너는/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의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나를 알 것임이요, 또 내가 그들의 불법을 용서하고 다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
(렘31:31-34). 히브리서 기자가 위의 구절을 인용해서(히8:7-13) 새
언약은 유대인들을 위해 제정된 것이지 교회를 위해 제정된 언약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비록 교회가 새 언약과 일치하는 부분을 우리가 누리고
있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새 언약은 유대인이 그들의 죄와 허물을 완전히 제거할 때 그들과 맺어질 것입니다. 이 언약은 다니엘서 9:24, 즉
70주가 끝날 때 이루어 질 일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70주는 아직 성취되지 않는 미래의 사건이란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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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가 쓴 계시록 주석을 참조할 것.

2) “성경의 70주”란 도표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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