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눅4:18
성령의 상징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상징으로 사용된 [기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기름은 성령을 가장 잘 예표 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기름은 참으로 여러 곳에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기름의 화학적 특성이나 자연 과학적 속성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기름에 대해서는 너무나 친숙하고 그 용법이나 용도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기름은 우리의 삶에 필수 요소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불을 피우기 위해 기름이 필요합니다. 기름이 없다면 우리는 불을 피울 수 없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식용으로 기름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올리브기름은 그들의 식생활에 필수적이었습니다. 기름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만나를 과자로 만드는데 사용되었습니다(민11:8). 평상시에 과자는 밀가루와 기름으로 만들어지며(왕상17:12-16), 때때로 꿀이나(레2:1,4; 겔16:13), 포도주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계6:6). 집집마다 무슨 기름이든지 기름이 없는 집은 없습니다. 기름은 요리에 필수적입니다. 기름이 없이 만들어지는 음식은 거의 없습니다. 무슨 기름이 들어가도 기름은 들어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성령의 기름을 통해 말씀을 먹고 마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맛있는 음식이 됩니다. 말씀이 꿀처럼 달고, 우유와 버터처럼 부드럽고, 물처럼 시원하며, 고기처럼 맛있는 그런 음식이 되었다면 여러분은 이미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음식 요리는 올리브기름을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모든 영적 양식은 성령을 필요로 합니다.
기름은 더러운 때를 벗기고 씻는데도 사용됩니다. 물로 씻어지지 않는 때들이 있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할입니다. 말씀의 물,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더불어 성령의 기름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깨끗이 씻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기름은 열을 식히는데도 사용됩니다. 기계의 작동에는 윤활유가 필요합니다. 윤활유는 마모를 방지하고 기계의 열을 식혀 줍니다. 모든 기계의 고장율의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윤활유의 원할한 공급이 제 때에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솔린이 부족해서 차가 상하는 것이 아니라 제 때에 엔진 오일을 점검하지 않았을 때 차는 못쓰게 망가집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은 우리 안에서 마모되지 않고, 과열되지 않고, 망가지지 않고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기름 역할을 합니다.
지금 현 시대는 거의 모든 에너지(동력)를 기름에서 얻고 있습니다. 기름은 자원이며, 에너지입니다. 기름은 산업의 자원이며, 피라고 합니다. 이전 어느 시대보다 지금 이 시대는 기름에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전적으로 성령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을 통해서만 능력(power), 힘(strength),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권능이야 말로 교회가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지 않고는 누구도 제자의 삶을 살 수 없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성도의 삶에 필수적입니다.
이제 성경으로 들어가서 기름이 예표하는 성령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주님은 창세기에서부터 [기름]이 성령을 예표하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계시며, 기름을 통해 성령의 역할과 존재에 대해 우리에게 밝은 조명을 줍니다.
첫째, 기름은 주님께 드리는 제물로 사용됩니다. 주님은 피와 더불어 기름을 제물로 받으십니다. 이 점에 주목하십시오. 피가 전부가 아닙니다. 피와 더불어 기름이 드려져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성령을 통해 드려짐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에서부터 나오는 말씀입니다. [아벨도 자기 양떼의 첫 새끼들과 그 기름 중에서 가져왔더니 [주]께서 아벨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가지셨으나](창4:4). 아벨은 주님께 처음으로 희생 헌물을 드린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께 경배할 때 양떼의 첫 새끼들과 더불어 그 기름 중에서 가져와 헌물을 드렸습니다. 후에 율법이 주어질 때 이 사실은 더욱 구체적으로 규정되었습니다. 헌물에 바쳐지는 모든 기름은 주의 것입니다. [제사장은 그것들을 제단 위에서 태울지니 이것은 불로 예비하는 헌물의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주]의 것이니라. 너희는 기름이나 피를 먹지 말지니 이것이 너희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 후손을 위하여 영속하는 법규가 될지니라.](레3:16-17).
둘째, 기름은 주님께 성별을 예표합니다. 기름을 바르면 먼지가 타지 않고, 윤기가 납니다. 기름을 바르면 녹이 슬지 않습니다. 기름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심지어 종이에도 기름이 잘 묻혀서 기름 종이를 만들면 질기고 깨끗해져서 더러움이 타지 않습니다. 기름은 정결함을 위한 성별을 위해 사용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성령 속에 충분히 잠긴다면 우리 역시 거룩함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막, 성전을 보십시오. 성막에 있는 모든 기명들은 피와 더불어 기름을 부어 거룩히 구별했습니다. 피와 마찬가지로 기름 역시 성별을 나타냈습니다. [또 기름부음에 쓸 기름을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할지니 그것이 거룩하게 되리라. 너는 또 번제 헌물 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그 제단을 거룩히 구별할지니 그 제단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라. 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출40:9-11). 기름 부음은 주께 성별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 역시 동일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거룩하게 된다는 사실을 압니다(히10:29,13:12). 동시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우리를 거룩히 구별한다는 사실 역시 성경의 명료한 진리입니다. 성막의 기명들 뿐 아니라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들 역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이 역시 주님께 구별되기 위한 것입니다. [아론에게 거룩한 의복들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히 구별하여 그로 하여금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게 할지니라.](출40:13). 기름부음은 직분과 사역을 위한 것이며, 주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주님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외 없이 기도의 사역자요, 말씀을 선포하는 선포자요, 그리스도의 증인이요, 대사들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신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주}께 사랑 받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로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마땅함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진리를 믿는 것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셨음이라.] (살후2:13).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택하심을 받고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에 이른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벧전1:2). 기름은 거룩한 구별을 상징하며 성령의 역할을 정확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역시 기름을 부어야 했습니다. 주님께 드려지는 것들 가운데 그냥 날로 드려지는 것이 없습니다. 제물에는 기름부음이 필요했습니다. 이는 성령을 통한 희생물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너는 날마다 속죄에 쓸 수소 한 마리를 드리고 또 제단을 위해 속죄할 때는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히 구별할지니라.](출29:36).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 드려지는 제물이 아니라면 주님께 드려질 수 없으며, 주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 역시 성령을 통해 거룩히 구별되셨습니다. 우리 역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우리가 주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기 위한 것입니다(롬12:2). 우리가 드리는 영적 희생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서 드려져야 합니다.
육신의 열정이나 힘으로 드려지는 예배나 희생물은 가인의 희생물이요, 사울의 희생물에 불과합니다.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해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면 주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며, 주님이 받으시는 희생물이 아니라 가증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에는 나오고 있지만 얼마나 성령의 기름부음에 대해서 인식하고,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사는지는 지극히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아직 오랜 목회 경험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갈수록 성령과 무관한 교회, 성령과 무관한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A. W. 토저 목사님은 말하기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임재 체험이 전혀 없는 높은 학위를 가진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중시하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대언자’들의 말을 외면하여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지 못한 때문이며,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변두리에서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면 오늘날 신자들이 가진 수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생명나무 실과를 먹는 대신 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을 먹고자 추구하고 있지 않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영적 열정이 있는 많은 신자들이 영적 지식을 추구하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화 되어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의 실제적 체험이 없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성령과의 살아있는 친교가 없이 단지 교리적 지식으로만 신앙 생활을 한다면 그의 삶은 종교 생활일 수는 있어도 영적 생활은 아닙니다.
물론 체험이나 느낌을 추구하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체험을 강조하다 보면 말씀보다는 자신의 체험을 내세우기 쉽고 더 신기한 체험을 추구하다 보면 성경의 가르침에 벗어나는 신비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식만을 강조하면 머리만 커지고 가슴은 차가워지고 손발은 마비된 기형신자를 양산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친교와 기름부음에서 나온 믿음은 교조적이고 이론적인 믿음을 훨씬 능가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이미 신자라면 누구나 있는 것입니다(요일2:20,27). 그러나 모두가 자신 안에 있는 기름부음대로 능력을 발휘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누구나 믿는 신자라면 성령이 내주하고 그 안에 계시지만 모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닌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성령이 거하신다는 사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성경 공부 시간에 배운 몇 가지 교리적 지식이 자신의 전부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꾸준히 성령의 더 깊은 것들을 배우고 인도함을 받도록 구하십시오.
넷째, 우리 안에 기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기름으로 작동하는 모든 기계는 기름을 제 때에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자동차이든 다른 기계이든 항상 기름의 양과 상태를 점검하고 기름을 부어 주는 일을 하는 것이 주인이나 관리자의 몫입니다. 기름이 부족하면 기계에 이상이 생깁니다. 소리가 나고, 열이 발생하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 안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확인하고 점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한번 부으시고 영원히 돌아보지도 않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늘 수시로 체크하시며, 우리 안에 합당한 기름부음이 거하도록 하십니다.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고후1:21). 이 기름부음은 주님을 알고 주님과 교제하는 근거가 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믿음으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걷고, 성령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다면 기름부음의 증거가 있습니다.
A. B. 심슨(Simpson) 목사님은 “기름부음의 외적인 표적으로 예수 충만(a fullness of Jesus), 경건하고 의롭고 순종하는 삶, 기쁨 충만, 성령의 열매, 지식과 빛”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기름부음 받은 신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 말씀이 꿀같이 달게 된다(시119:103). 이는 말씀드린 대로 기름이 음식의 요리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 진다(롬8:15). 주의 기름부음은 주님을 아는데 필수적입니다. •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신한다(롬 8:16; 살전1:5). 구원의 확신이 사람의 이론이나 감정 이 아닌 계시로 말미암는 지식이 됩니다. • 긴박감을 가지고 전도한다(행 1:8; 고후 5:13-14). 성령의 도래는 종말론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 믿음의 형제를 사랑한다(요일 4:11; 롬 5:5).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한다(고전 16:22; 요일 3:3). • 마귀들의 존재와 사역에 민감해 진다(마 12:28; 행 10:38; 엡 6:12). 영적 분별력이 생깁니다.
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교리적으로, 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름부음의 나타남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소홀히 여기고 있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성령의 기름부음이 무엇인지 감(感)도 잡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약 100년 전에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쓰는 말하기를, “20세기의 가장 큰 위험은 ‘성령 없는 종교, 회개 없는 용서, 중생없는 구원, 지옥 없는 천국’이 될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참으로 위대한 선지자의 통찰력 있는 예언입니다. 이 말은 이미 수많은 교회에서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령이 없는 교회, 성령이 없는 성도가 기독교의 주류(主流)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구원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도 잘 모른다는 사람이 교회의 집사, 장로, 주일 학교 교사를 하는 일이 허다하며, 거듭남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구원을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은 이미 구원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거짓 확신을 심어 주는 일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그렇지만 이것이 이곳 이민 교회의 특성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성령의 조명과 인도하심에 민감할 수 있도록, 제대로 알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우리 주님은 기름부음을 받아서 일하셨습니다. 구약의 대언자들, 제사장들, 왕들이 그러했듯이 주님은 주의 기름부음 받으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께 성령님과 권능으로 기름을 부으시매 그분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하셨음이라.](행10:38). 기름부음은 사역자에게 주어지는 권위와 능력의 임명장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때, 이는 [기름부음 받은 예수]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음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구원을,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짓밟힌 자를 자유하게 하며](눅4:18). 주님께서 성령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으로 충만하시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고 돌아오실 때 성령의 권능을 받으셨으며, 이미 주의 기름부음이 있었음을 유대 회당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기름부음 받은 자란 메시야(그리스도)란 뜻입니다. 이는 구약의 많은 대언자들 중의 하나, 왕들 중의 하나, 제사장들 중의 하나로서 기름부음 받은 것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메시야(그리스도)란 의미입니다.
주님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립니다. 그렇다면 기름부음 받은 자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기름부음 받지 않았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없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개솔린 차에 기름을 넣지 않고 달릴 수 있다는 주장보다 더 허무한 이야기입니다. 반면 기름만 있으면 아무 것도 없이도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큰 오류입니다. 성령의 은사나 기름부음을 오순절 사건에만 한정하는 사람들이 전자라면 성령의 기름부음을 강조하는 은사주의자들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균형 잡힌 성경적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성령을 기름에 비유하시고 줄기차게 기름을 통해 성령의 사역을 가르쳐 주신 것은 기름의 속성과 성령이 일치하는 점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기름은 불의 연료입니다. 기름은 에너지원입니다.
여섯째, 기름은 신성의 표시입니다. 왕, 제사장, 대언자들 위에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기름부음에 쓸 기름을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를지니라.](출29:7). 기름부음이 없는 대언자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대언자, 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니라 거짓 대언자요, 거짓 제사장들입니다. 올리브기름은 신성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사람을 하나님께 구별해 주는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출40:9-16, 사61:1,2; 눅4:18). 저와 여러분에게 있는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인해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사도들은 집사나 복음 전도자를 세울 때 기름부음 대신 단지 안수를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는 이들 안에 이미 기름부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기름은 위로의 상징입니다. [[주]의 받아 주시는 해와 우리 하나님의 원수갚으시는 날을 공포하고 애곡하는 모든 자를 위로하며 시온에서 애곡하는 자들에게 재 대신 아름다움을 주고 애곡 대신 기쁨의 기름을 주며 근심의 영 대신 찬양의 옷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주]께서 심으신바 의의 나무라 일컬음을 받게 하고 그분께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61:2~3). 우리는 여기서 성령을 ‘기쁨의 기름’이란 말로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은 위로자이시며, 기쁨의 기름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즐거움의 기름’이라고 말합니다. 동일한 말씀입니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을 주에게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이다, 하시고](히1:9).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한 시편45:7을 인용한 것입니다. [왕이 의를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이다.](시45:7).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으면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전혀 다른 기쁨의 원천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웃을 수는 없지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위로가 필요하십니까? 성령님이 위로자이십니다(요14:16,26, 15:26, 16:7). 성령님은 진리를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심으로 우리에게 참된 위로를 주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요14:16). 친구의 위로도 힘이 되고, 아내나 자녀들의 위로도 큰 힘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마음속에서 주는 위로는 근심과 슬픔을 일순간에 없애 버릴 수 있는 그런 위로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성도들은 위로하러 왔던 사람들이 도리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평안해 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까?”라며 묻습니다. 그들은 참된 신앙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령의 위로로 위로를 받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서 도리어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람들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저는 어떤 병자가 평생을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한 채 심한 폐병이 걸려 죽음을 맞은 형제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그는 별로 믿음이 없었고, 삶은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었습니다. 폐병을 얻어 엄청 고생하다가 어느 날 아침 심한 각혈을 했습니다. 그는 오늘 자신이 죽을 것을 예감하고 가족들과 친지들을 다 불렀습니다. 그는 가족들에게 기도한 후에 찬양을 부르게 하고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행복하고 멋지게 죽었던지라 임종을 지켜본 불신자 가족들이 슬픔대신 큰 위로와 힘을 얻고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잘 죽는 것도 전도입니다. 그는 살아 생전 한 명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했고, 여러 사람의 걱정과 근심거리였지만 죽으면서 큰 감동과 위로와 힘을 남겼고 혼을 회심시켰습니다. 죽기 전에 짧은 시간이지만 죽음을 준비하고, 주님을 믿고 눈을 감았기 때문입니다.
여덟째, 기름은 빛의 원천입니다. 성막에서 유일한 빛은 하나님께서 경배 받으시는 곳을 비추는 촛대 위에 있는 거룩한 기름에 의해서만 제공되었습니다. 이 성막의 빛 비추이는 이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강력하게 예표합니다(출27:20-21).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눈앞에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며, 그분에 관한 진리를 비추어 주십니다(요16:13-15, 요일2: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등불에 쓰기 위해 올리브로 찧어 만든 순수한 기름을 네게 가져오게 하고 항상 등불이 타게 할지니라.](출27:20).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으면 내 마음 속은 결코 어둡지 않습니다. 앞이 캄캄하지 않습니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는 물건을 찾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뿐 아니라 방향 감각도 없어집니다. 사물의 형태에 대한 구별이 없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성령의 빛이 없을 때 우리는 자신의 위치를 잊어버립니다.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사물에 대해 선악의 분별력이 사라집니다. 빛이 없으면 시간 개념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얼마나 살았고,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냥 살다가 죽는 것이 전부입니다.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부딪히기 직전까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부딪혀서 걸리고 넘어지면 어떻게 해결할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함,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우리의 인생 역시 그러합니다.
세상의 죄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모릅니다. 어두워서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의와 불의, 선과 악, 옳고 그름, 곧고 구부러진 것에 대한 구별이 모호합니다. 그들 속에는 생명의 빛이신 주님이 없고, 불을 밝힐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성도들은 작은 죄에도 민감하며, 영적 분별력이 생깁니다.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우리는 더 자세히 볼 수있듯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할수록 죄에 대해서 민감해지고, 악을 혐오하며, 불의를 미워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러나 너희에게는 거룩하신 분으로부터 기름 부음이 있으니, 너희가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압니다.
아홉째, 기름은 치료하는데 연고로 사용하였습니다. 기름은 귀한 치료제요, 약입니다. [그에게 가서 기름과 포도즙을 그의 상처에 붓고 상처를 싸매며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고](눅10:34). 선한 사마리아인은 여행 도중 고통 받는 병자의 상처에 기름을 부어주었습니다. 이는 성령의 치유하는 사역을 잘 묘사해 줍니다. 기름은 제사장들과 문둥병자를 거룩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레8:30, 14:17). [모세가 기름부음에 쓸 기름과 제단 위에 있는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의 의복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의복들에 뿌려 아론과 그의 의복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의복들을 거룩히 구별하니라.](레8:30). 오늘날과 같은 의약 제품이 많이 나온 시대와 달리 구약의 성도들의 치료법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상처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문둥병자와 같은 불치의 병에는 기름과 함께 제단 위에 있는 피를 썼습니다. [또 제사장은 자기 손에 남은 기름을 정결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 곧 범법 헌물의 피 위에 바를 것이며](레14:17).
신약 성도들에게도 올리브기름을 상처에 바르고 기도하는 일은 여전히 강력한 치유의 효력을 발휘합니다. 암이나 에이즈나 소위 말하는 불치병 환자들을 대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교회가 병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소개합니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장로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리라. 혹시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용서받으리라.](약5:14-15). 지금 교회마다 이런 일이 구체적으로 실행되지 않는 것은 이 말씀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장로들을 청해서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는 것은 의학적 견지에서나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목사도 이 구절을 무시하고, 성도들도 기대하지 않는 그런 말씀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병든 자가 있으면 기꺼이 교회의 장로들을 초청하십시오. 물론 장로교회의 장로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목사들을 말합니다.
알레이시 목사님은 자신의 아내가 불치병에 걸렸을 때 교회의 집사님들을 모두 불러내어 기름을 바르며 함께 기도했고, 그의 아내는 치유를 받았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믿음, 그 믿음대로 실행하는 실행이야 말로 보상받는 믿음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몸의 질병 뿐 아니라 영이 상하고, 마음의 상한 상처를 싸매시고 고쳐 주십니다. [[주]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들을 함께 모으시며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147:2~3). 성령은 어떤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이 손댈 수 없는 마음의 병과 상처를 모두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때로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는 분들을 봅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치유받았다는 간증보다 상처를 입었다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무엇을 뜻합니까? 그들 안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사역입니다. 성령의 위로를 받은 적이 없고, 말씀을 통해 기쁨을 맛본 적이 없다면 이제는 변화 받아야 합니다. 영이 강건해지고,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육체의 질병은 자연스럽게 치유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성령의 상징으로 사용된 기름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모두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상고하시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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