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렘23:29
성령의 상징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상징으로 사용된 [불]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이며, 말씀을 예표하기도 하며, 성령을 예표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친히 자신의 말씀을 ‘불같은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산산조각 부수는 쇠망치 같지 아니하냐?](렘23:29). 하나님, 말씀, 성령은 삼위일체이기 때문에 그 속성 역시 동일합니다. 주님께서 불같으시면 주님의 말씀이 불같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령 역시 불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말씀의 속성이나 성령의 속성은 거의 비슷합니다.
불이라고 하면 그 연료에 따라 다양하게 생각이 납니다. 작은 불씨의 상징인 성냥불, 아궁이에 때는 불에서 연탄 불, 석유나 석탄으로 때는 난로 불, 낭만이 있는 촛불, 지금은 거의 사라진 호롱 불 등 무엇으로 붙이는가에 따라 불 이름이 달라집니다. 용광로에서 이글거리며 타는 불이 있고, 가마를 굽기 위해 엄청난 양의 나무를 쏟아 넣는 불들을 볼 때도 있습니다. 산에 불이나 산불, 들에서 무엇을 태우는 들 불 놀이도 있습니다. 불은 그 특성상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매료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과 들에서 불놀이를 하다가 남의 짚 볏단을 몽 땅 태워 먹은 적도 있습니다. 불은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친숙하게 접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누구나 집집마다 언제든지 불을 피울 수 있는 장비가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해마다 산불이 나는 것을 뉴스로 듣습니다. 화재 사고 역시 거의 매일 접하는 뉴스 중에 하나입니다. 불은 어떻게 사용하는가? 에 따라 유익하기도 하고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은 불에 대해서 엄청나게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처음 불에 대해서 나오는 언급된 경우를 보면 인간에게 유익이 되는 것보다는 인간을 경고하고 심판하는 경우에 사용됩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도는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완벽한 환경 상태인 에덴의 동산에서 불이 필요했을까? 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인간은 불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의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 나무에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룹들과 ‘불타는 칼’을 두어 지켰다고 말씀하십니다. ‘불타는 칼’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냥 칼이 아니라 ‘불타는 칼’ 즉 화염검을 두어 인간의 접근을 막아 버리셨습니다.
불은 하늘의 하나님에게서 직접 내려오는 경우가 있었고, 제단에서 나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성전의 제단에서 나오는 불을 [주의 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은 번제 헌물을 드릴 때 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여 말하라. 번제 헌물에 관한 법은 이러하니라. 이것이 번제 헌물인 것은 아침이 이르기까지 밤새도록 제단 위에서 태우기 때문이니 제단의 불이 그 안에서 계속해서 타게 할지니라.](레6:9). 제단의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계속해서 타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상한 불을 드리면 그는 불로 완전히 타 버리는 벌을 받았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이 이상한 불을 드렸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불이 [주]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주] 앞에서 죽으니라.](레10:2). 주님의 불은 일차적으로 심판의 불입니다. 인간의 죄는 불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란 점을 늘 일깨워 주는 것이 제단의 불입니다. 반면에 이 불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아야 할 주님의 진노는 제단의 제물 위에 쏟아지고, 대속이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사역은 불로 상징 될 때 성령은 우리 안에 늘 죄를 일깨워 주시고, 죄에 대한 형벌이 죽음이요, 지옥 불에 던져질 존재란 사실을 일깨워 주십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간에 성령은 우리에게 생생하게 지옥을 인식시켜 주십니다. 죄인들이 가야 할 곳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 놓으신 지옥이요, 영원한 불 못이란 사실을 말씀해 주십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불에 대한 기사는 인간의 죄와 반역과 연관되어 있으며,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역시 불 못으로 마감되고 있습니다. 불은 죄에 대한 심판이요, 진노요, 징벌입니다.
모세를 대적했던 250명의 지도자들은 각자 자신의 향로를 들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불에 타 죽임을 당했습니다. 불은 엄중한 주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주]께로부터 불이 나와 향을 드리는 이백오십 명을 소멸시켰더라.] (민16:35). 범죄한 자들 위에 직접 불이 내린다면 지상에 존재하는 누구도 하늘의 불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단 위에 번제 헌물에 불을 내리심으로써 우리는 주님의 진노의 불길을 피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불길이란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성령이 불로 예표되는 구절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불, 불꽃이 주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경우는 성경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이는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갈 때에 [주]의 천사가 제단의 불꽃 가운데서 올라갔음이더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삿13:20). 이런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불꽃 가운데 임하시는 모습은 죄인들로서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모습입니다. 마노아는 불꽃 가운데서 올라가는 주의 천사가 주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주님은 불 가운데 계시는 분이시며, 불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이런 모습은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장면입니다. 백성들은 주의 불이 제단에서 나올 때 소리를 지르며 엎드렸습니다. [불이 [주]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 헌물과 기름을 사르매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엎드렸더라.](레9:24). 불은 주님의 임재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성령의 임재 하는 모습이 꼭 [주] 앞에서 나온 불의 모습과 같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십시오. 오순절에 제자들 위에 임한 성령의 모습을 보십시오.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서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에 가득하며 또 불의 혀같이 갈라진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각 사람 위에 내려와 앉더니](행2:2~3). “불의 혀같이 갈라진 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불같은 성령]이라고 말할 때 대부분 이 구절에서 연상된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 위에 임한 불은 마치 제단에서 나온 불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불같으신 분이십니다. 모세가 처음 만난 주님은 불 속에 계시된 하나님이셨습니다. [[주]의 천사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나니라. 그가 보니, 보라,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떨기나무가 소멸되지 아니하므로] (출3:2). 주님은 불꽃 가운데서 자신을 계시하셨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소멸되지 않는 불이시며, 우리를 태우되 우리 자신이 결코 타지 않게 하십니다. 촛불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촛불은 초의 심지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초의 심지를 타고 올라오는 기름을 태웁니다. 기름이 다 타고 나면 심지가 탑니다. 등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다면 우리 자신이 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이 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기름을 부으시고, 불타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가시나무가 타거나 초의 심지가 탄다면 금방 다 타 버리고 재만 남게 될 것입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타게 되면 우리는 금방 사그라지고 말 것입니다. 때로 자신을 불태워 주님께 드리겠다는 헌신적인 성도들의 결단이 있지만 자신이 타서는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자신은 다만 기름을 머금고, 기름의 공급을 받아 불을 밝히는 심지의 역할이 전부여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런즉 주의하여 네 안에 있는 등불이 어둡게 되지 않도록 하라.](눅11:35). 우리 안에 있는 등불이 어둡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성령의 기름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자신을 불태우려 하지 말고 자신을 주님께 내어 드려서 성령으로 불길이 솟아오르게 하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는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바람을 받아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파도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파도를 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불을 만들어 불타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의 심지로 내어 드리는 역할입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할을 자신의 역할로 둔갑시키려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구로서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며](눅12:35). 우리 자신을 주님의 기름을 받아 들이는 심지가 되면 등불은 환히 타오를 것입니다. 세상의 빛으로, 등으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등불을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성령을 억누르지 말라](살전5:19)고 번역된 "Quench not/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씀은 “불을 꺼뜨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전 안에 항상 기름으로 불빛을 밝혀야 하듯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을 통해 우리 역시 등불을 타오르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빛을 발하고 있습니까? 성령의 기름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까? 기름이 있어도 심지가 없으면 등불은 타지 않습니다. 등불은 기름 자체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기름통에 있는 기름을 빨아 올린 심지를 태우는 불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고 진리를 위하여 공의를 베풀 것이며](사42:3). 꺼져가는 심지란 말씀이 무엇입니까? 기름이 없으면 심지만 타고 불은 꺼집니다. 기름이 많이 있지만 기름이 심지에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꺼져가는 심지가 됩니다. 성령을 대적하거나 불순종하거나 대적할 때 심지는 꺼져갑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고, 슬프게 할 때 심지는 꺼져갑니다. 성령을 모독하고 거스르며 반역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불길은 꺼지고 말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듣는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말씀이라고 해서 흘려듣거나 가벼이 들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음성(왕상19:12-13)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은 불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분께서 네게 교훈을 주시려고 너로 하여금 하늘에서 오는 자신의 음성을 듣게 하시며 땅에서는 자신의 큰 불을 네게 보여 주시매 네가 불 가운데서 나오는 그분의 말씀들을 들었느니라.] (신4:36). 주님은 자신의 큰 불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불 속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 속에 불의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이 소멸시키는 불이시기 때문이라.] (히12:29). [이는 [주] 네 하나님이 소멸시키는 불이시요, 심지어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라.] (신4:24). 불의 하나님!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불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성경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불로 심판받습니다. 이는 신자가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불로 행하는 심판입니다. [각 사람의 일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그 일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 일이 불로써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것인지 시험할 것임이라.](고전3:13). 우리가 행한 일들은 불로써 심판을 받습니다. 불에 타는 일들은 모두 사라집니다. 금, 은, 보석은 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 짚, 건초로 세운 일들은 모두 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그럴 듯하게 모조품을 만들 수 있지만 그런 모조품이 불을 통과할 수는 없습니다. 주의 제단에서 나오는 불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철저하게 시험할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구원은 어떤 구원입니까? 불로써 받는 구원입니다. [누구든지 그 일이 불타면 /보상을/ 잃게 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로써 받는 것 같으리라.](고전3:15). 저와 여러분이 받는 은혜로 값없이 받은 구원은 정금보다 귀하고 은보다 순수하고 보석보다 견고한 그런 구원입니다. 불을 통과해서 더욱 빛날 구원입니다.
성경에서 불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주의 임재입니다(출3:2). 불과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시내 산이 온통 연기로 자욱하니 이는 [주]께서 불 가운데서 그 위로 내려오셨음이더라. 그 연기가 화로의 연기같이 위로 올라가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출19:18). 하나님의 임재가 불 가운데 있었다면 성령의 임재 역시 불같은 혀로 임하는 것이 짝이 맞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위에 불의 혀처럼 임하십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불같은 체험을 간증하는 것을 듣습니다. 어떤 이는 성령 침례를 불 침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자신의 체험에 근거한 나름대로의 용어이며, 성경적 진리는 아닙니다. 성경적 용례를 통해 볼 때 [불 침례]는 지옥 불 속으로 던져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대신 불같이 뜨거운 내적 경험이나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별 문제는 없습니다. 불처럼 뜨겁게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다는 분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 체험은 분명 복된 체험입니다. 우리는 남의 체험을 깎아내리거나 폄훼할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체험에 넋이 빠지거나 홀릴 만큼 높은 평가를 주지도 않습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뜨거워졌다면 이미 주의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성령으로 마음이 뜨거워지면 입에서 이상한 방언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던 죄악이 쏟아져 나옵니다. 성령 충만했던 에스라는 성령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을 때 죄를 회개했습니다. [말하기를, 오 내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 내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의 불법이 많아 우리 머리 위로 넘치고 또 우리의 범법이 커서 하늘에까지 이르렀음이니이다.](스9:6). 성령의 불길이 마음 속에 임할 때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입니다. 어떤 이는 성령의 불을 받았을 때 온 몸이 뜨거워지고 그 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렀다고 간증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의 체험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만 성경에는 그런 예가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닌 특정 개인의 체험을 일반화시키거나 교리화 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성령으로 뜨거워지면 성령의 임재를 통해 죄의 자백과 통회를 하는 것이 성경적인 예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죄를 책망하십니다. 고로 성령이 임하면 죄에 대한 인식이 민감해 지며, 죄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지고, 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던 다윗을 보십시오. [이는 셀 수 없이 많은 재앙들이 나를 에워싸고 내 불법들이 나를 붙들므로 내가 위를 볼 수도 없사오며 그것들이 내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시40:12).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게 되는 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불꽃 가운데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게 됩니다. [시온의 죄인들이 무서워하며 두려움이 위선자들을 놀라게 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 가운데 누가 그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리요? 우리 가운데 누가 영영히 불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는도다.](사33:14). 주의 임재 앞에선 죄인들은 누구나 다 두려워했고, 떨었습니다. 다니엘과 같은 의인들도 주님의 임재 앞에서는 죽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성령의 임재로 뜨거움을 경험한 사람은 일단 죄에 대해 통회하고 민감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성경적 진리입니다.
둘째, 불같은 성령은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십니다. 성령의 불꽃은 우리 안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뜨겁게 활활 타게 하십니다. 냉랭하고 차가운 마음으로 읽던 성경이 뜨겁게 다가옵니다. 냉랭하던 형제 사랑이 뜨거워집니다(벧전1:22). 냉랭하던 전도의 열정이 강력하고 뜨겁게 일어납니다. 불은 물을 끓게 하고, 타지 않는 것들은 뜨겁게 하기 때문입니다. 불같은 성령이 임하면 대충 기도하던 사람들이 뜨겁게 기도로 수고합니다(골4:12). 그렇지 않다면 불같은 성령의 임재가 없는 것입니다.
불같은 성령이 임하면 마음 속에 있던 하나님의 말씀을 쏟아내게 됩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그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아니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내 뼈 속에 사무치니 내가 참기에 지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노라.](렘20:9). 성령으로 충만했던 사람들은 모두 말씀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전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의 소유자들이었는데 이는 성령께서 불같이 마음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불길은 말씀을 뜨겁게 하는데 반해 사람의 감정은 복수심이나 정욕이 불같이 타오르게 합니다.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 그것이 성령의 불입니다. 욥은 말합니다. [이는 내게 말할 것이 가득하며 내 안에 있는 영이 나를 강권하기 때문이로다.](욥32:18). 다윗은 스스로 침묵하기를 결단했지만 그 결단은 오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 속에 불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 길을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사악한 자가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재갈을 물려 내 입을 지키리라, 하였도다. 내가 침묵하며 말을 하지 아니하고 잠잠하되 선한 말마저도 하지 아니하였더니 내 슬픔이 복받쳤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우므로 내가 생각에 잠길 때에 불이 붙으니 이에 내가 내 혀로 말하기를,] (시39:1~3). 성령의 불길이 그 마음 속에 타올랐기 때문에 혀는 말씀을 말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순교자들은 그 안에 타오르는 성령의 불길로 인해 말씀을 전하다가 박해자들이 쌓아 놓은 장작더미 위에서, 끓는 가마 속에서 불타 죽었습니다. 이들은 마음에 타오르는 성령의 불 길이 몸을 태우는 장작더미나 숯불이나 용광로보다 훨씬 뜨거웠던지라 세상의 불을 통과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용광로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시대에서 근세에 이르는 수많은 순교자들 역시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서 초연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들 속에는 몸을 태우는 불꽃과 전혀 성질이 다른 성령의 불꽃이 안에서 활활 타올랐기 때문입니다.
셋째, 불은 빛을 냅니다. 불은 열기가 있고, 빛을 냅니다. 성령 역시 열기가 있고, 빛을 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 (요일1:5). 빛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불입니다. 불은 빛과 열을 함께 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 주님께서 어떻게 그들에게 빛을 주셨습니까? 불기둥을 통해서입니다. [[주]께서 그들 앞에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주사 밤낮으로 가게 하셨으며](출13:2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이사야에게 계시하실 때 모두 불 가운데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는 분이 참 하나님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인격적 속성입니다. 불은 성령의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빛이신 주님을 영접함으로써 빛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성도들에게 빛이 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빛이 되려고 애쓰라, 노력하라, 힘쓰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빛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빛을 비추어야 할 따름입니다. 빛을 발하라! 이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걸으라! 이것이 우리의 의무요, 특권입니다. [이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걸으라.] (엡5:8). 성령께서 우리 안에 빛으로 비추어 주지 않으시면 우리 자신 역시 어둠 속에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불을 끄지 마십시오. 어둠 속에 거하지 마십시오. 이미 저와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들입니다. 어디에 있어도 빛은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너희는 다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5:5). 빛은 어둠 속에서 빛이 납니다. 등불은 어두운 곳에 둡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삶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빛을 비추라고 우리를 거기에 두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넷째, 불은 보호합니다. [[주]께서 그들 앞에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주사 밤낮으로 가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을 백성 앞에서 옮기지 아니하셨더라.] (출13:21~22). 주님은 불로써 추격하던 이집트 군대를 막으셨고, 지켜 주셨습니다. 불로써 어둠을 밝히셨고, 불로써 광야의 추위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불은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산에서 불을 피우면 짐승들이 물러납니다. 불은 적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유력한 무기입니다. 불은 살균, 멸균 작용을 합니다. 불로써 소독하면 깨끗해집니다. 성령께서는 불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다섯째, 불의 속성은 무엇을 데우고, 뜨겁게 하는 것입니다. 철을 녹이고, 금은을 완전히 녹여서 주물공이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쇠같이 굳은 마음일지라도 성령이 임재하면 그 마음은 녹아서 부드럽게 됩니다. 기도를 해도 뜨겁게 해야 합니다(골4:12, 약5:16). 사랑을 해도 뜨겁게 해야 합니다(벧전1:22, 벧전4:8). 신앙 생활을 해도 뜨겁게 해야지 미지근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미지근한 것은 찬 것보다 더 싫어하십니다(계3:15-16).
냉냉한 마음을 뜨겁게 해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뜨겁게 사랑하게 하십니다. 엠마오로 낙향하던 제자들은 주님이 말씀을 풀어 주실 때에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불신과 회의, 두려움과 후회로 길을 가던 그들은 자신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주님인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 기록들을 풀어 말씀해 주시는 그 말씀들이 뜨거운 불길처럼 임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요6:63). [그들이 서로 이르되,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 기록들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24:32). 불신과 의심과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을 노략질할 때 성령의 불길이 그들을 보호해 주었고, 냉냉하던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었습니다. 성령으로 전해지는 말씀은 주님의 육성과 동일합니다. 우리 마음속을 뜨겁게 해 줍니다. 아볼로를 보십시오. [이 사람이 전에 {주}의 길을 배워 영이 뜨겁고](행18:25a).
여섯째, 불은 하나님의 승인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헌물을 받으실 때, 예배를 받으실 때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의 성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주]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고 불이 [주]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 헌물과 기름을 사르매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엎드렸더라.] (레9:23~24). 이 불은 주님의 불입니다. 성경에는 [주]의 불이 나옵니다. 이 불은 승인의 불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 들이셨고, 승인하셨음을 나타내는 그런 불입니다. 갈멜산으로 가 보겠습니다. [또한 너희는 너희 신들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곧 그분이 하나님이시니라, 하니 온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기를, 옳은 말씀이니이다, 하니라.] (왕상18:24). [이에 [주]의 불이 내려와서 태우는 희생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으므로](왕상18:38).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와 예배를 받으셨으며, 불로 응답하심으로 자신을 입증하셨습니다. 오순절에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릴 때 불의 혀같은 모습으로 임한 것은 주님께서 이들을 받아들이시고 승인하셨음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일곱째, 불은 정화작업을 하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물로 씻는 것이 있고, 불로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병균을 소독하거나 멸균할 때 불을 사용합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그 때는 지금처럼 제초제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봄에 논두렁을 태움으로써 병충해를 막았습니다. 불은 멸균과 소독을 통해 깨끗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우리 안에 있는 죄들을 씻기시고 태우십니다.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화로다, 나여! 이는 내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므로 망하게 되었음이니 곧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면서 내 눈으로 왕 곧 만군의 [주]를 보았음이라, 하였더라. 그때에 그 스랍들 중에서 하나가 부집게로 제단에서 불타는 숯을 취하여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 그것을 내 입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술에 닿았으니 네 불법이 사라지고 네 죄가 깨끗하게 되었느니라, 하더라.] (사6:5~7). 이사야는 불로 정화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 역시 불로 정화됩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믿음, 단련된 믿음을 위해서 주님은 불 같은 시련을 보내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단련하려고 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는 마치 이상한 일이 너희에게 일어난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벧전4:12). 불은 금과 은을 태우지 않고, 금과 은에 붙은 오염물을 태웁니다. 마찬가지로 불같은 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더럽히는 불순물들을 태웁니다. 처음부터 순수한 믿음이요, 단련된 믿음이어서 불이 필요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불같은 시련을 단련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저와 여러분 역시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건강일 수도 있고, 경제적 어려움일 수도 있고, 원수들이 득실대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오해가 빚어대는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들 간에 불화일 수도 있습니다. 이혼, 이별, 사별, 파산 등 모든 일들이 불같은 시련으로 받아들일 때 단련이 되지만 불평과 불만으로 받을 때 멸망합니다. 불같은 시련은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단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훨씬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1:7). 우리는 불같은 시련의 목적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나 성도들은 예외 없이 불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한 금을 사서 부유한 자가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나지 아니하게 하며 네 눈에 안약을 발라 보게 하라.](계3:18). 불로 단련한 금이란 믿음을 말합니다.
여덟째, 성령의 불은 주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말씀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우리가 하늘로부터 말씀하시는 분에게서 돌아선다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히12:25). 우리 주님은 소멸하는 불입니다(히12:29). 성령을 거역한 이들은 모두 불 못으로 던져질 것입니다(계20:14-15). 주님은 불꽃 가운데서 벌 주실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예에서 보듯이 이제 마지막 이 땅은 불로서 모든 것이 녹아 내릴 것이며, 모든 죄인들은 다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불의 하나님! 불같은 말씀, 불같은 성령을 저희 속에 부어 주시고 이 땅에서 우리가 등불이 되어 세상을 비출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빛도 없고, 열도 없는 그런 등불이 되지 않게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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