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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성령의 상징(03)-호흡(숨)
말씀: 욥33:4



성령의 상징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상징으로 사용된 [호흡]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단지 상징이나 예표나 비유로 볼 수 없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숨이요, 호흡이란 사실은 상징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진리입니다. 누가 성령(Holy Spirit)과 성신(Holy Ghost)의 차이를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둘은 정확히 같습니다. 다만 성령의 기능, 사역적 측면을 언급하고 강조할 때는 성령(Holy Spirit)을 쓰고 하나님으로서의 신격과 존재를 강조할 때는 성신(Holy Ghost)를 씁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만 138회나 등장합니다. 영이 비인격적 존재와 속성적 어감을 느끼게 해 주는 반면 Ghost는 인격적 존재와 속성을 느끼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숨은 하나님이 흙으로 지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생명이 탄생했고, 마른 골짜기의 뼈들 속에 들어가 그들이 부활했고, 성경 속으로 들어가 살아 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아담은 본래 흙이었지만 하나님의 숨이 들어왔을 때 살아있는 혼이 되었습니다. 에스겔이 본 골짜기에는 이미 죽어서 뼈들만 남았지만 바람에게 대언하여 숨이 들어갔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겔37:9,10). 하나님께서 대언자들을 통해 말씀을 주셨을 때 말씀의 소리는 인간의 목과 입과 혀를 통해 나오는 육성이었지만 그 말씀 자체는 하나님의 영이 들어 있는 영감있는 말씀이었습니다(딤후3:16). 영감이란 단어는 inspiration인데 이는 “숨을 들이킨”이란 뜻입니다. 어떤 물체는 밀봉을 해서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가 있음으로 생명의 말씀이 되며, 생명을 주는 말씀이 됩니다. [살아있고 영원히 거하는 말씀](벧전1:23)이 됩니다.

우리는 잠시도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도 몇 일을 살 수 있지만 호흡 없이는 몇 분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생명은 호흡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호흡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코나 입으로도 숨을 쉬지만 우리의 피부 역시 호흡을 합니다. 단전호흡, 뇌 호흡, 복식 호흡 등 호흡법에 대한 훈련도 매우 많습니다. 사람은 하루에 13,500여회나 끊임없이 호흡을 합니다. 우리는 공기에 무슨 성분이 있는지 정확히 다 알지 못하지만 호흡을 하지 못하면 죽는 다는 것은 확실히 압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무릇 모든 생명체는 호흡을 통해 삽니다. 공기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호흡이 필요 없는 것은 무생물일 뿐입니다. 보통 사람이 한숨에 들이 마시는 공기의 양은 3.9리터 전후이며 폐에는 늘 1.2리터의 정도의 공기가 잔류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잠잘 때 호흡하는 공기량은 500cc 정도로 줄어듭니다. 호흡 곤란, 호흡 장애를 느껴 보셨습니까? 고산 등반을 하는 사람들은 호흡 훈련을 합니다. 노래를 하는 사람들 역시 호흡을 조절하는 법을 배웁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숨이 차지만 않는다면 사람은 얼마든지 일하고 뛰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호흡입니다. 호흡의 활동이 인간의 활동입니다. 숨 쉬는 것이 가장 쉬운 듯하지만 호흡 곤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호흡보다 고되고 힘든 일이 없습니다. 응급 구조 훈련을 받는 사람은 가장 먼저 호흡법을 배웁니다. 사람을 구조할 때 피가 나고, 뼈가 부러진 것보다 더 급한 것은 그 사람이 숨을 쉬고 있는가? 입니다. 응급 구조자는 제일 먼저 호흡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호흡 정지 또는 호흡 감소가 있을 때는 즉시 기도를 확보한 후 기도가 열리면 환자는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할 것입니다. 만약에 환자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거나 전혀 숨을 쉬지 못하면 인공호흡을 시작해야 합니다.

호흡(숨)은 생명입니다. 숨을 거두었다고 하면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의 어휘입니다. 숨을 거두는 것이 죽는 것이고, 숨을 쉬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예전에 죽음이 무엇이냐? 언제 죽은 것으로 결정하는가 하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뇌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뇌파가 멈추는 것이 죽음이라고 말했고, 심장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심장’의 박동이 멈추는 것이 죽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성경은 뇌사, 심장사가 아니라 ‘숨을 멈추는 것, 호흡이 정지되는 것’이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 중에 아무도 [내 뇌파가 멈추어, 내 심장이 멈추어]란 식으로 죽음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주님은 아브라함의 육신의 죽음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숨을 거두니라.](창25:8a). 숨을 거두는 것이 죽음입니다. 이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이 나이 많고 날수가 차서 숨을 거두고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합쳐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묻으니라.](창35:29). 숨을 거두었다고 말합니다. 육신의 죽음은 숨을 거두는 것입니다. 야곱 역시 그러합니다. [야곱이 자기 아들들에게 명령하기를 마치고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어 자기 백성에게로 합쳐지니라.](창49:33). 숨을 거두는 것이 죽음입니다. 호흡의 유무가 생명과 죽음의 기준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께서 주의 얼굴을 숨기신즉 그것들이 떨고 주께서 그것들의 호흡을 거두어가신즉 그것들이 죽어 자기들의 먼지로 돌아가나이다.](시104:29). 이것이 정확한 죽음의 정의입니다. 하나님께서 호흡을 거두어 가시면 몸은 흙덩이에 불과합니다.

이는 [숨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호흡을 주신 분이 호흡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것이 죽음의 성경적 정의입니다. 이는 의학적 정의보다 더욱 정확하며 영적 진리입니다. 숨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두시는 것이란 점에 주목하십시오. 돈을 회수하듯이, 물건을 회수하듯이, 들에 있는 곡물을 창고로 거두어들이듯이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있는 숨(호흡)을 거두어들이신다는 것입니다. 호흡은 본래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자신의 것인 줄 아는 신체의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지만 특히 호흡은 주님의 것임이 성경에 매우 강조되어 있으며, 주님이 거두어 가시는 것임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호흡을 주셨고, 호흡의 주인이시라고 말씀합니다.

두 구절을 봅니다. 이사야 42:5, 사도행전 17:25입니다. [하늘들을 창조하여 펼치시고 땅과 땅에서 나오는 것을 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고 땅에서 걷는 자들에게 영을 주시는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사42:5).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을 선포하면서 인간을 창조하신 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호흡을 주시고...영을 주시는 [주] 하나님”. 주님은 호흡과 영을 주셨습니다. 영은 하나님의 숨입니다. 우리가 호흡을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호흡을 주관하는 신체 기관으로 폐를 지목하지만 호흡이 필요한 이유는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이는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약2:26a)라고 합니다. 영이 없는 몸은 죽은 몸입니다. 영이 없다는 것은 호흡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호흡이기에 하나님이 거두어 가십니다. 우리의 영 역시 하나님이 주신 영이기에 하나님이 거두어 가십니다.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기 때문이라.](행17:25). 주님이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돈입니까? 건강입니까? 부귀와 명예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눈을 주시지 않으셨고, 어떤 이에게는 귀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셨습니다. 호흡을 받은 것이 출생이요, 숨을 거두어 가시는 것이 육체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호흡을 불어 넣으셔서 사람을 살리십니다. 생명을 주십니다. 사람들은 기술을 이용해 로봇을 만듭니다. 기계 장치를 써서 움직이기도 하고, 일도 잘합니다. 강력한 힘을 부여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봇은 생명이 있는 것입니까? 움직이는 것이 생명이 아닙니다. 에너지가 있다고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생명입니까? 호흡이 있어야 합니다. 호흡이 생명의 유무입니다. 디즈니랜드에 가면 각종 우상들이 움직입니다. 조각들 속에 전자 장치를 달아서 관광객들에게 안내 방송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생명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호흡이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화 있을진저, 나무에게 말하기를, 깨라, 하며 말 못하는 돌에게 말하기를, 일어나서 가르치라, 하는 자여! 보라, 그것은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한가운데는 전혀 호흡이 없느니라.](합2:19). 호흡의 유무가 생명의 유무입니다. 동작의 유무, 에너지의 유무가 생명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 생명 역시 그러합니다. 호흡으로 예표 되는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영적 생명이 출생합니다. 호흡이 없으면 몸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성령이 없으면 우리의 영은 죽은 채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친교할 수 없고, 경배할 수 없고, 인도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들어오면 우리의 영은 새롭게 되며, 거듭납니다. 거듭난 영은 점점 자라나면 강성해지고, 주님의 형상과 완전히 일치할 때까지 계속 변화됩니다. 우리의 영은 완전을 향해 자라갑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호흡이 사라지면 즉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의 호흡이 떠나가면 그가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 바로 그 날에 그의 생각들이 사라지리로다.](시146:4).

그러나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몸과 영은 가는 곳이 다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한 곳으로 가나니 모두가 흙에서 나와 모두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거니와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아는 자가 누구이랴?](전3:20~21). 사람들은 몸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다 알지만 영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죽습니다. [영]은 우리에게 영을 주신 주님께 돌아갑니다. 영은 하나님이 회수해 가십니다. [그때에 흙은 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며 영(靈)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로다.](전12:7). 우리가 숨을 거둔다고 할 때 영이 주님께로 떠나는 것입니다.

호흡은 주님이 주신 것이요, 주님의 것입니다. 창세기로 가 보겠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魂)이 되니라.](창2:7). 여기서 생명의 숨이 바로 하나님의 호흡 즉 성령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세 부분으로 만드셨습니다. 영, 혼, 육입니다. 육은 땅의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타락했을 때 “너는 본래 흙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영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입니다. 몸을 지음받은 그대로 지탱하는 것은 영입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시고 전능자의 호흡이 내게 생명을 주었느니라.](욥33:4)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 전능자의 호흡이 동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주님은 영과 호흡을 동시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이라는 헬라어 "프뉴마" 와 히브리어 "루아흐"는 "바람, 숨 또는 영"을 의미합니다.

호흡은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호흡이 없이는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호흡을 통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숨을 쉬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전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힘을 발휘할 때도 호흡을 동반합니다. 역도 선수들이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릴 때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역시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임을 말해 줍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호흡, 숨)으로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말이 호흡을 통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작품을 완성하면서 [숨을 불어 넣는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듣습니다. 마치 숨을 쉬는 것 같다는 말은 살아 있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누구와 일을 같이 할 때는 호흡을 맞춘다고 합니다. 호흡이 맞지 않는다고 하면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경 역시 그러합니다. 주님은 “내 말은 곧 영이요, 생명이다”(요6:63)라고 하셨는데 이는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선포한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호흡(숨)]이 담긴 말씀이란 뜻입니다. 모든 성경은 다 하나님의 호흡(숨)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하나님의 영감(inspiration)이란 하나님의 호흡이란 말입니다. 사람들은 신선한 공기, 좋은 공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고 산을 찾고 바다를 찾습니다. 자연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시고자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숨을 받아 마시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나님의 공기는 바다나 산이 아니라 성경 속에서 맡을 수 있고, 깊이 들이킬 수 있습니다.

영감을 얻고 싶습니까? 성경을 읽으십시오. 말씀을 취하십시오. 영감이 없는 모조품들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감]의 보고인 성경을 보십시오. 그 속에서 숨을 불어 넣으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이 주신 숨은 빽빽한 숲이나 풀이 뿜어내는 자연의 공기보다 훨씬 맑고 깨끗하며, 넘치는 생명을 줍니다. 주님의 영감(숨)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사람 안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영감(靈感)이 사람들에게 명철(明哲)을 주시나니](욥32:8). 사람들에게 명철을 주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 작가의 숨결이 느끼듯이 주님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호흡이 느껴집니다. 우리를 지으신 주님의 호흡이 우리 속으로 들어올 때 우리는 명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점을 알고 꾸준히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한다면 놀라운 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숨결과 함께 나온 것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숨이 막히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가시나무 사이에 씨를 받은 자 또한 말씀을 듣되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로 인해 말씀이 숨이 막혀 열매맺지 못하는 자라.](마13:22). 어떤 사람들은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전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를 몰라 고민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숨을 막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를 처리하지 않은 채 말씀을 듣기 때문입니다. 숨을 막아 놓으면 어떤 생명도 싹을 틔우고 자라나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세상 염려, 재물의 속임, 쾌락은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은 말씀의 숨을 틀어 막고 콘크리이트 바닥보다 더 두꺼운 것들입니다. 배고픈 것보다 더 힘든 것이 목마른 것이고, 목마른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숨이 막히는 것입니다. 숨이 막힌다!!

교회를 오래 다녔고, 설교를 수 천편 들은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분이 부족하고, 숨이 막힌 관계로 들은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시나무 사이에 떨어진 자들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듣고 나아가다가 이 /세상/ 삶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으로 숨이 막혀 완전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이라.](눅8:14). 이들은 말씀을 듣지 못했거나, 듣지 않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장하지 못하고 열매 맺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누가 목을 조르거나 숨통을 조여 들면 살 수 있습니까? 하루 하루가 숨이 콱콱 막히는 것 같고 곧 질식할 것만 같다면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말씀이 활로를 얻지 못하고, 숨이 막힌 상태가 아닌지 살펴 보십시오.

호흡은 영입니다. 호흡은 생명입니다. 우상들이 왜 우상입니까? 호흡이 없기 때문입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시135:17). 호흡이 없는 것들은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호흡이 있습니다. 호흡이 없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아는 것이 짐승 같고 주물공마다 새긴 형상으로 말미암아 당황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형상이 거짓이요, 그 속에 호흡이 없기 때문이로다.](렘10:14). 호흡이 없다는 말은 생명이 없다는 말이며, 영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상은 형체는 있으나 생명과 영이 없는 존재란 말입니다.

성령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호흡을 불어 넣으셔서 숨을 쉬게 하십니다. 우리의 생명이 어디서 왔습니까? “전능자의 호흡”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호흡이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습니다. 숨이 코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생명의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증표이며, 매 순간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귀한 증거입니다. 숨을 쉬는 것은 단지 신체의 활동이 아닙니다. 숨을 쉬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영의 활동입니다. 영이 내 안에 존재하고, 살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때로 폐나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호흡 곤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흡과 신체(몸)의 관계만 규명할 뿐 호흡과 생명, 호흡과 영의 관계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호흡법에 대한 강좌나 책들이 매우 많습니다. 저는 인터넷을 통해 [호흡]에 대한 자료를 좀 찾아보았는데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자료가 이교도들의 것이었습니다. 전통 민족 종교나 인도의 종교, 불교 등에서 호흡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한계는 호흡을 통한 몸의 건강, 마음의 평안 등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요 전부였습니다. 호흡과 영의 관계를 규명해 주는 책은 성경 밖에 없습니다. 호흡이 몸에 미치는 관계는 이미 의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호흡이 영에 미치는 관계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호흡이요, 우리의 호흡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숨을 쉰다는 것은 우리 안에 영의 존재와 활동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욥은 말하기를, 자신의 육체적 생명이 살아 있는 동안이란 말을 [내 호흡이 내 속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내 코에 있을 동안에는] (욥27:3)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단지 시적으로,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영적 진리를 말한 것입니다. 호흡과 영은 같은 것입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산소를 들이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전부인 지금 세대에 성경적 진리를 들이대는 것은 우스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호흡과 영을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영의 존재나 실체에 대해서 가물가물하신 분들은 호흡/숨이 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 위에 하신 일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 위에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20:22). 주님은 그들 위에 숨을 내쉬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주님께서 그들 위에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하신 것은 '자신의 숨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지금 제자들 위에 내 쉬는 숨(호흡)이 곧 성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성령]이란 증거는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호흡은 성령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성령이란 구절들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호흡으로 서리가 내리고 물의 너비가 줄어드느니라.](욥37:10). 사람도 때로 호흡으로 물을 식히기도 하고, 언 것을 녹이기도 합니다. 입술의 호흡으로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호흡은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호흡으로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고 물의 너비가 줄어듭니다. 하나님께서 호흡으로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시고, 불을 일으키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호흡은 단지 호흡이 아니라 성령님을 말합니다. [[주]의 말씀으로 하늘들이 만들어지고 하늘들의 모든 무리가 그분의 입의 호흡으로 만들어졌도다.](시33:6). 창조 사역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십시오. 주의 말씀과 그분의 입의 호흡이 창조 사역의 주체이십니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호흡은 성령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삼위일체의 진리를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호흡, 숨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듯이 성령은 하나님의 호흡이요, 영감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은 심판의 도구입니다.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의롭게 재판하고 땅의 온유한 자를 위하여 공평하게 꾸짖으며 자기 입의 막대기로 땅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사악한 자를 죽일 것이며](사11:4). 주님은 입술의 호흡으로 사악한 자를 죽인다고 말씀합니다. 말과 호흡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말씀의 칼과 입술의 호흡 역시 분리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역시 분리할 수 없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씀, 입에서 나오는 호흡은 매 한 가지입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성령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처음 만드실 때 숨을 불어 넣으심으로 살아 있는 혼이 되게 하신 것처럼 다시 사람을 살리실 때도 동일한 숨을 불어 넣으십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숨을 너희 속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내가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너희 위에 살이 생기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덮고 너희 속에 숨을 넣으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37:5-6). 하나님이 죽은 자들을 살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숨’입니다. “내가 숨을 너희 속으로 들어가게 하리니...”입니다. 주님의 숨은 성령입니다. 주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숨을 불어 넣으셨듯이, 마른 뼈들의 골짜기에서 뼈만 남은 자들을 살리시는 방법 역시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숨이 바람처럼 몰아와 그들 속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살게 됩니다. 여기는 논리나 자연 과학적 지식이나 법칙이 아니라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와 부활의 권능이 전부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숨을 불어 넣으심으로 누구든지 살리실 수 있습니다. [이에 내가 그분께서 명령하신 대로 대언하였더니 숨이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살아서 자기 발로 서는데 심히 큰 군대더라.](겔37:10). 하나님의 숨이 들어갔다!는 말은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의 숨(호흡)이 대륙의 북풍처럼 몰아치고, 토네이도나 허리케인처럼 몰아쳐서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고요하게 임합니다. 말씀을 믿고 주님을 받아들이는 자들 속으로 하나님의 숨이 들어갑니다. 주님은 자신의 숨결을 그들 속으로 불어 넣으셔서 새로운 창조 작품을 만들어 내십니다. 에베소서 2:10에 [이는 우리가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된 자들이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이는 성령을 통해 새롭게 지음 받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새 생명을 불어 넣으셨음을 말합니다. 신선한 바닷바람이나 산바람이나 계곡의 바람과 달리 성령의 숨이 우리 속으로 스며들어 죽은 우리를 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우리를 살리며, 새롭게 빚으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저와 여러분 안에는 하나님의 호흡이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호흡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속으로 들어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소에도 쉼 없이 숨을 들이키고 내뱉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성령 역시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언제나 함께 하고 계십니다. 숨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듯이 성령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호흡이 그칠 수 없고, 중단될 수 없듯이 성령의 임재 역시 그러합니다.

호흡이요, 숨이신 성령님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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