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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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상징(01)-물
말씀: 요4:14



오늘 아침에는 성령의 상징들에 대해서 공부합니다. 성령의 상징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은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데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성령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성령은 여러 가지로 상징됩니다. 물, 불, 바람, 호흡, 기름, 비둘기 등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몇 시간에 걸쳐 성령의 상징을 통해 성령 하나님의 사역과 속성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성경은 예표와 비유가 많은 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증 있는 예를 통해 우리의 이해를 도우십니다. 주님은 자신을 일컬어 많은 상징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양의 문, 길, 빵, 목자, 포도나무 등이 그런 예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도 자신에 관련된 진리들을 우리 일상생활에서 눈에 보이고 접하는 것들을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으시고, 이해되지 않고, 파악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이런 예증과 상징들을 통해서 우리의 지성에 분명하게 각인시켜 주십니다.

성령이 무엇과 같은가? 우리는 이 말에 선뜻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 “...와 같다”란 식으로 표현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예수님은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가? 에 대해서 계속 강의 한 적이 있고, 말씀의 상징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만 성령의 상징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은 처음인 듯합니다. 성령은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 생수의 강, 하나님의 호흡, 숨, 바람, 기름, 비둘기, 나무, 이슬, 비, 불, 세미한 음성, 인(*도장) 등에 비유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WORD)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기록된 말씀(words-Bible)인 성경에 대한 유사성에 대해서도 많이 설교되고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만 말씀과 성령에 대한 그런 유사성에 대한 연구는 매우 드문 듯합니다. 성령의 명칭 역시 성경을 찾아보면 총 100여 가지는 거뜬히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이 시간부터 몇 차례 다루는 [성령의 상징들]에 대한 공부를 통해 더 깊은 영적 성숙과 성령 충만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통해 성령에 대한 지식이 깊어지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기를 빕니다.

성령의 상징으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첫 번째 예는 물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물로 비유합니다. 물의 속성을 통해 성령이 어떤 분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성령을 물에 비유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이 되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하리라.](요4:14). 여기서 물, 우물은 성령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땅에서 나는 물이 아니라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누구나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주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있습니다. 이 샘을 통해 갈증이 목마름이 없어지고, 영혼의 씻음을 받습니다. 성령은 우물과 같습니다. 우물은 먹고 마시는 식수와 용수로 쓰입니다.

사람들은 물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약수, 생수, 알칼리수, 천연 암반수, 이온수 등 별별 명칭을 붙여 가며 물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물이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은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물’입니다. 이런 물이 지상에 존재합니까?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한 바가지를 떠서 들이키면 늙지도 않고, 힘이 솟으며, 영원히 사는 그런 생명수가 존재합니까? 지상에는 그런 우물이 없습니다. 이는 성령을 일컫습니다. 주님이 주시겠다는 물,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물이란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입니다. 물을 길으러 온 여인에게 주신 [우물]은 결코 작은 우물이 아닙니다. 크고도 넘치는 우물이며, 강들을 이루는 그런 물입니다. 생수란 말은 그냥 시원한 물이 아니라 ‘생명수’(living water) 즉 생명의 물이란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는 누구든지 값없이 생명수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잠시 동안, 단 몇 회란 제한이 없습니다. 값없이, 무제한 취할 수 있습니다. 컵이나 잔으로 한 두 잔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생수가 솟아나는 샘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물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목마른 자들에게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계21:6). 목마른 자는 누구든지 주님께로 오십시오. 주님이 물을 주십니다. 물을 구하려고 혼자 애쓰지 말고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성경은 “오라” 말씀하십니다. 오라. 오라.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물을 취하라고 하십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하시더라.](계22:17). 영혼의 갈증이 있습니까?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주님이 성령이란 물을 주시고, 영원히 솟아나는 우물(샘)을 주십니다.

성령은 생수의 강(江)과 같습니다. [그 명절의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한 것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이것은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니 이는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주께서/ 아직 성령님을 주시지 아니하셨음이더라.)] (요7:37~39). 여기서 [생수의 강들]이 무엇인지는 달리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이 친히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에서 솟아나는 우물들은 생수의 강들이 되어 흘러나옵니다. 우물이 있으면 집과 촌락이 들어서 마을이 됩니다. 강이 있으면 도시가 만들어집니다. 큰 강이 있는 곳에 큰 나라가 세워집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황하 강, 양자강 등 거대한 강이 있는 곳에 세계 최대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이 있기에 지금의 이라크가 있습니다. 나일 강이 있기에 이집트가 있습니다. 갠지스 강을 신성시하는 힌두교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강이 생명의 젖줄이라고 믿습니다. 한강이 있기에 서울이 있습니다. 강이 있는 곳에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고 짐승이 살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상식입니다. 우물이나 강이 없으면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강물이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물을 제공해 줍니다. 성령이 물로 비유되는 것은 성령의 역할이 사람에게 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해 성령이 흘러 넘치게 되면 우리는 복음을 전할 수 있고, 혼을 이겨올 수 있으며,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생명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강이 내 배에서 흘러넘칠 때 목이 갈한 자들이 찾아 모이게 됩니다. 양떼들이 찾아 쉼을 얻게 됩니다. 물이 없는 곳에는 생명의 성장도 번성함도 안식도 평안도 수확도 열매도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물이 솟아나는 곳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머리나 입, 목이나 가슴(heart)에서 ‘물’이 솟아나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배]에서 솟아난다고 말씀하십니다. 호흡이 거하는 곳은 가슴이 아니라 [배]입니다. 먹는 것이 거하는 곳도 가슴이 아니라 배입니다. 주님은 이 배 속에 성령의 거처를 마련하십니다. 배를 샘과 강의 수원지로 삼으시고, 거기에서 출발하게 하십니다. 배는 인간에게는 탐욕의 상징입니다. 불신자들의 신(神)은 배입니다(빌3:19). 그들은 배를 채우고, 배를 위해 일합니다. 반면 성도들의 배는 성령이 흘러나오는 강의 발원지요, 우물입니다. 주님은 생명의 빵을 먹고, 생수의 강을 마시게 하심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배는 지금 어떠합니까?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생명의 원천지입니까? 탐욕과 이기심의 상징입니까?

1. 물- 생명의 출생

물은 어느 민족, 어느 사회에서나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되어 왔고, 그렇게 이해합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물이 없이는 생명이 없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물에서 생명이 나온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물들은 생명이 있어서 움직이는 피조물(被造物)과 땅 위 하늘의 열린 궁창에 나는 날짐승을 풍성히 내라, 하시고](창1:20).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바다의 생물들과 조류가 물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이 생명의 근원이듯이, 성령은 새로운 생명 출생의 근원입니다. 성령을 통해서만 거듭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통한 중생이 구원입니다. 물에서 생명이 나오듯이 성령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이 나옵니다.

여기서 잠깐 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대부분 수분과 단백질로 이뤄져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도 수정란은 97%가 물이며, 신생아는 80%, 성장이 멈추는 24세 전후는 70% 정도가 물입니다. 노화와 함께 인체에서 차지하는 물의 비율은 50% 정도로 줄어들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인체의 3분의 2가 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뇌는 그 85%가 물이며, 극미한 탈수나 수분 결핍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마신지 불과 30초 만에 혈액에 도달하고, 1분 후면 뇌조직과 생식기에, 10분 후에는 피부에, 20분 후에는 장기에 도달합니다. 30분이면 인체의 어느 곳이든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처럼 물은 인체에 가장 중요한 물질이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사람은 체내의 지질과 단백질의 절반을 잃고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체내 수분의 10%만 잃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3일 정도는 쉽게 굶을 수 있지만, 하루도 물을 마시지 않으면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또 물을 마시지 않고서는 3일도 의식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사람은 매일 2.5ℓ 정도의 물을 음료수와 식품의 형태로 섭취합니다. 사람의 수명이 80년이라고 할 때 일생 마시는 물의 양은 73t에 이릅니다. 하루에 필요한 물의 양은 키와 체중을 합한 값을 100으로 나눈 정도라고 합니다. 키 1m70, 체중 60㎏인 사람의 경우 2.3ℓ의 물을 섭취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마시는 물의 양은 이보다 적습니다. 필요한 나머지 물은 다른 음식물과 함께 섭취하기 때문입니다.

혈액 중의 물 1 리터에는 약 70~80g이나 되는 80여 종류의 물질이 녹아 있습니다. 각종 호르몬, 면역 작용을 하는 항체, 산소, 단백질, 포도당, 아미노산, 지방산, 미네랄, 전해질 등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성분들이 물 속에 있습니다. 물은 또 열을 저장하기 쉬운 특성 때문에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도 합니다. 철(Fe)은 열을 받기도 쉽고 잃기도 쉬운 물질입니다. 이에 비하여 물은 열을 간직한 채로 안정되는 성질이 10 배나 강합니다. 이것을 비열이라고 하는데 철은 비열이 0.1이고, 물은 1입니다. 공기에 비해 물은 무려 400 배나 많은 열을 간직할 수가 있습니다. 물의 이러한 독특한 성질이 바로 인간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지요. 바깥 기온이 변해도 인체의 75 %나 되는 많은 물이 우리 몸의 온도를 언제나 같은 상태로 지켜 주는 것입니다. 한편, 사람의 몸에서는 하루에 약 5000 ㎈의 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몸 안에 수분이 없다면, 계속 발생되는 열 때문에 체온은 100 C까지 올라 결국 죽고 맙니다. 이 몸 속의 물 때문에 사람은 체온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항온 동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성령을 물로 비유 했는지 쉽게 이해되실 것입니다. 물을 통해서 체온이 유지되고, 생명의 영양소가 온 몸 구석구석에 전달되고, 더러운 노폐물들을 씻어내고, 배출하는 이런 모든 기능이 성령의 역할과 같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물처럼 영혼의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공급하시며, 죄와 더러움을 씻어 내십니다. 성령은 물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2. 물 -섬김과 정결

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물이 없으면 누구도 정결함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손과 발을 제대로 씻기만 해도 질병의 80%는 감소한다는 의학자들의 주장이 있습니다.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는 일은 목욕을 한 후에라도 필요한 것입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여] (요13:4~5). 우리의 몸속만 아니라 몸 밖에 역시 물을 통해서 정결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 영혼만 관장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말과 행동, 생활 습관 등 외적 행위 역시 친히 주관하심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정신 영역만 주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마음과 몸의 행동이 따로 노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씻어 주실 뿐 아니라 우리 몸을 씻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정결한 물로 씻겨졌으니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히10:22). 성령께서는 선한 생활에서 나오는 선한 말과 선한 습관들이 나오게 하십니다. 물이 온 몸의 안과 밖에서 하는 역할과 성령의 역할은 동일합니다.

추하고 더럽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물이 있으면 됩니다. 물로 씻음 받으면 됩니다. 성령은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 내십니다. 성경은 죄를 씻어내는 3 가지 액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말씀의 물, 성령의 물입니다. 비누나 화학 약품은 몸의 때를 씻지만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더러움을 씻어 내 주십니다. 스스로 자신을 씻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자신의 방법대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죄는 씻겨지지 않습니다. [이는 네가 천연소다로 네 몸을 씻고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불법이 여전히 내 앞에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렘2:22). 그러나 주님 앞에 나아와 말씀을 듣고, 주님을 믿을 때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있습니다(딛3:5).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딛3:5). 순결함과 정결함은 사람의 행위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습니다.

3. 물 - 생명의 성장, 열매 맺음

물은 생명의 성장과 열매 맺음에 필수적입니다. 물은 한번의 사건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물은 어제 많이 먹었다고 해서 오늘, 내일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물은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물로 비유된 또 한 구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내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부어 주며 마른 땅에 큰 물들을 내고 내 영을 네 씨에게 내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줄 것임이니 그들이 풀 가운데 있는 것같이 솟아나며 수로(水路) 옆의 버드나무같이 솟아나리라.](사44:3-4). 주님은 목마른 자에게 물을 부어 주신다고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되십시오(마5:6). 주님이 물을 부어 주십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영적 생활에 대해서 더욱 깊이 각성하고 앞을 향해, 높은 곳을 향해 달릴 때 주님은 여러분에게 물을 부어 주십니다. 물을 부어 주시는 것과 성령의 역할이 그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물을 통해 성령의 사역과 속성을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나무는 물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한 때 성령으로 충만한 경험이 있고, 한 때 성령의 열매를 맺고, 한 때 성령과 깊은 교제가 있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은 물과 같이 계속적으로 있어야만 합니다.

욥은 한 때 자신이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았다고 말합니다. [내 뿌리는 물가에서 뻗어 나갔고 내 가지 위에는 밤새도록 이슬이 내렸으며](욥29:19). 이보다 좋은 환경에 있는 나무는 없을 것입니다. 물가에 뻗어나간 뿌리에 밤새도록 이슬이 내리는 가지가 바로 욥의 행복하고 부유했던 시절입니다. 이는 그의 육체적, 물질적인 풍요로움 뿐 아니라 영적, 정신적, 도덕적인 상태 역시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욥은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는 생활을 했고, 지혜가 출중했으며, 하나님과 깊은 친교를 유지했던 의인 중의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열매인 인내, 오래 참음에서 탁월했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고 경배하는 참된 경배자였습니다. 이런 그의 삶이 욥의 인격이나 인간성에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뿌리가 오랫동안 물가에 뻗어 있었고, 밤새도록 이슬을 맞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으로 젖어 있는 삶을 살고, 성령과의 깊은 친교 가운데 산다면 우리는 환란이나 시련 속에서 결코 자신의 순전함을 잃어버리는 일들은 없을 것입니다. 강가에 뿌리는 내리는 삶이란 성령으로 늘 충만한 생명이요,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린 삶이란 뜻입니다. 나무가 어디에 거하며, 어디에 뿌리를 내리는가? 에 따라 그 나무의 운명이 결정되듯이 우리 역시 그러합니다.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 속에 거하게 하옵시고 또 너희가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엡3:17),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아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넘치도록 감사를 드리라.](골2:7).

말씀 묵상을 통해 성령 충만(充滿)에 이르십시오. 가르침을 받은 대로 거기에 거하십시오. 성령은 물과 같아서 여러분의 생명에 활기를 줄 것이며,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시편의 다윗은 체험을 통해 이런 영적 비결을 깊이 깨우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강가에 심은 나무가 제 철에 열매를 맺으며 또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형통하리로다.](시1:3). 다윗이 말한 [강]이란 성령을 말합니다. 나무에 수액이 가득한 것처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될 때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한 사람이 성령이 고갈되거나 소멸되는 법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또 한 가지 방법은 주를 신뢰하며 주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이 역시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주]를 신뢰하며 [주]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가 물가에 심은 나무 같아서 그 뿌리를 강가에 뻗치고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아니하며 그 잎이 푸르르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으며 열매맺는 일을 그치지 아니할 것임이라.] (렘17:7~8). 물은 성령을 예표합니다. 성령을 통해 항상 열매를 맺는 비결은 믿음입니다.

4. 물이 주는 교훈

우리는 매일 물을 마시며 삽니다. 이 물이 성령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 물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곧 영적 교훈이 되고, 진리가 됩니다. 물은 매우 소중하지만 지극히 평범하여 사람들에게 그 소중함이 거의 잊혀진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물이 부족해지면서 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졌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평소 생활할 때는 거의 잊혀진 존재나 다름없다가 점점 그 중요성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물은 어디에나 스며듭니다. 물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거부하지 않는 이상 물은 속으로 스며드는 속성이 있습니다. 꼭 밀봉을 해두지 않으면 틈새로 살며시 스며들어 그 속에 거합니다. 물이 종이나 스펀지 솜에 스며들듯이 성령은 믿는 자들의 영혼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거기에 거합니다.

물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물은 자신을 감추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무에 물이 올라도 밖에서 볼 수 없습니다. 물관은 나무 안에서 흐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성도들 안에 거하시며, 안에서 일합니다. 자신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열매를 통해 드러내 보이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감추시는 분이십니다. 물은 겸손합니다. 물은 결코 아래에서 위로 흐르지 않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갑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은 아래로 개울을 이루고, 개울은 개천을 이루고, 개천은 강을 이루고, 강이 바다로 모여 듭니다. 점점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그곳에 바다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결코 차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들어 올리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주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높이는 일을 할 뿐 자신을 높이는데 전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 역시 입으로 들어가 아래로 내려갑니다.

물은 맑고 순수합니다. 물은 담백합니다. 물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물입니다. 물은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성령 역시 이와 같습니다. 성령은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뜨거운 체험을 원했지만 체험을 못했다고 실망하는 이유는 성령의 불같은 속성만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뜨거운 여름에 땀을 흘린 후에 물을 찾습니다. 몇 잔을 들이키고 시원함을 느끼지만 그 느낌이 몇 시간 며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시는 그 순간과 불과 몇 분이 전부입니다. 갈증이 해결된 후 우리는 시원한 느낌은 없지만 몸은 평안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고, 성령을 체험한 성도들은 순간적으로 기쁨과 평안과 같은 놀라운 체험을 누리지만 그 느낌이 영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평안함과 기쁨은 느낌과 상관없이 우리 마음을 지배합니다.

물은 유연합니다. 물은 싸우지 않습니다. 물은 길이 막히면 기다립니다. 정면으로 돌파할 수 없을 때는 우회합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끝없이 전진합니다. 물은 항상 자기가 나아갈 길을 찾아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 물은 고요하게 흐르지만 앞을 향해 전진합니다. 성령의 역사도 이와 같습니다.

물은 흐르면서 일합니다. 물은 흐르면서 생물을 살립니다. 물의 특징은 순환입니다. 물은 흐르면서 물고기를 살리고, 모든 만물을 소생시킵니다. 물은 스스로를 움직여서 다른 것을 움직입니다. 물은 항상 살아서 움직입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거기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움이 돋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씨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고 먹는 자에게 빵을 주는 것같이](사55:10). 이는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비와 눈은 물입니다. 주님이 땅에 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던 비와 눈이 땅으로 내려옵니다. 성령은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 땅으로 스며듭니다. 물이 흙 속으로 스며드는 일이 자연스럽듯이 영이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 속으로 스며드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입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은 하늘의 비와 눈처럼 그 안에 내려와 그 사람 안에 영원히 거하십니다.

물은 생명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물에게 생명을 낳을 것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창1:20). 물에 잠기면 새 생명이 잉태됩니다. 물의 근원이 생명이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온 /물을/ 그들에게 주어 마시게 하셨으며 또 반석에서 시냇물을 내사 물들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시78:15~16).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란 반석을 통해서 나온 물만이 영생을 주는 물이요, 다시 목마르지 않는 물입니다.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어떤 영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며, 성령이 아닙니다. [이는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음이니 곧 그들이 생수의 샘인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물 저장고들을 판 것인데 그것들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저장고니라.](렘2:13). 우리는 물을 가려서 마시듯이 성령과 마귀의 영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오 [주]여,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여, 주를 버리는 자들은 다 부끄러움을 당하며 나를 떠나는 자들은 땅에 기록되리니 이는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주]를 버렸음이니이다.](렘17:13). 사람이든 짐승이든 식물이든 물을 버리고는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수의 근원이신 주를 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모습을 보십시오. 사람들마다 성령을 외치고, 성령을 떠들지만 정작 성령의 인도함을 받거나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수의 근원이신 성령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너무나 무관한 종교 생활을 하다 보니 막상 성령의 조명이나 인도함을 받으면 오히려 당황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는 성령을 통한 경건의 능력보다 헌금이나 교인들의 수를 바탕으로 한 물리적 능력을 더욱 의지합니다. 성령을 통한 믿음, 성령 안에서의 기도, 성령을 통한 거룩함을 추구하기보다 사람들 간의 교제와 종교 생활로 만족하려 합니다.

물은 겉으로 볼 때 힘이 없고, 열정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물은 자신의 모든 힘과 열정을 안으로 감추고 있습니다. 물은 부드러우면서 강인한 열정입니다. 물이 힘이 없지 않습니다. 물의 힘이야 말로 어떤 힘보다 강력한 힘입니다. 물은 부드럽고 약해 보여도 압축이 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눌러도 물은 다른 어떤 물질과 달리 전혀 압축이 되지 않습니다. 성령은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강력합니다.

물은 큰 바다를 채웁니다. 큰 바다에 모든 것을 품고, 더러움을 씻어 줍니다. 큰 바다는 맑음과 더러움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맑음과 더러움을 모두 품습니다. 큰 바다는 더러움을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러운 것까지 받아들여 맑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가 됩니다. 성령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별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지만 일단 성령 안에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성령은 물과 같습니다. 모든 것을 품고,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합니다. 벌레와 같고 누더기 같은 우리 인생들을 품으십니다.

광야를 여행한다 해도 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도 주님께서 물을 주십니다. [그들이 거기서 브엘로 가니 브엘은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백성을 함께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그때에 이스라엘이 이 노래를 부르되, 오 우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우물에게 노래하라.](민21:16-17). 주님이 말씀하시는 이 우물들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뻐하며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12:3). 물이 있으면 사막도 초원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중동의 사막에 비가 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전 세계에 그런 옥토가 없을 것입니다. 비가 내리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듯이 비가 내리면 완전히 변화됩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께서/ 위로부터 영(靈)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열매를 많이 맺는 밭이 되며 열매를 많이 맺던 밭은 숲으로 여겨지리라.](사32:15). 성령을 부어주시면 누구라도 다 변화됩니다. 성도들이 예전에 믿는 순간 나는 성령을 받았어! 란 한 마디로 성령을 구하지도 않고, 성령 충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것이 오늘날 교리 공부를 했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약점입니다. 그들은 입으로만 누구나 믿는 순간 성령을 받았죠! 라고 말해 버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구원받을 때 받은 성령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가 누구라도 성령께 순종하고 자신을 내어 드리고, 인도함을 받지 않는 한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성령과 철저히 무관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양떼를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주께서 너를 항상 인도하사 가뭄 속에서도 네 혼을 만족시키시며 네 뼈를 기름지게 하시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으리라](사58:11). 주님께서 물을 통해 성령의 사역을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도우시고 계십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는 물댄 동산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과 같은 체험 가운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상징으로 사용된 [물]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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