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말씀: 마6:9
요절: 마6:9

주님께서 무리들과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청원해야 할 것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무엇을 구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구하라고 하신 기도는 깊이 생각해보고 음미해 보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에는 그 사람의 소망, 꿈이 들어 있습니다. 기도 속에는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 미래가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사람이 추구하는 영적 방향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의 예를 들어 주시고,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그 속에 간구의 대상, 올바른 기도의 방향, 기도의 내용 등이 모두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우리는 아무 것도 기도할 수 없고, 기도해도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들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순간 우리는 기도의 특권과 의무가 동시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아들로서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저마다 가르치는 다양한 기도가 있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리는 특권이요, 영광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그 사정에 따라 구하는 것이 천차만별이요, 나름대로 필요를 구하겠지만 우리 주님은 공통적으로 구해야 할 것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할 때 처음 구해야 할것은 나의 필요가 아닙니다. 나의 소원이나 간구가 아닙니다. 우리 가족의 필요, 이 사회의 안녕, 민족이나 국가의 번영, 더 나은 세계의 건설, 가문의 영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구하라고 한 첫 번째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것이 자녀 된 우리가 처음 올리는 간구이며, 주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그 이름 역시 거룩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보좌 곁에서 나는 찬양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네 짐승이 저마다 자기 둘레에 여섯 날개를 가졌고 안쪽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 오실 이시라, 하고] (계4:8). 이 장면은 하늘의 환상을 보았던 이사야의 대언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왕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 그 위에는 스랍들이 서 있는데 저마다 여섯 날개를 가졌더라. 그가 두 /날개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날며 /그들이/ 서로 크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사6:1~3).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찬양을 받으시며 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을 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은 저 하늘에서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합니다. 주님은 그 누구라도 거룩한 주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특히 자신의 자녀들, 자신의 백성들이 [주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 욕되게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 자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힐 때 딱하게 여기시고, 그 이름을 위해서 일하시며, 질투하십니다. [그들이 이교도들에게로 들어갔을 때에 자기들이 다니는 곳에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나니 이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들은 [주]의 백성이지만 주의 땅에서 떠나간 자들이라, 하였음이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집이 이교도들에게로 들어가 그들 가운데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딱하게 여겼노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의 집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내가 이것을 행하는 것은 너희를 위해서가 아니요, 너희가 이교도들에게로 들어가 그들 가운데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니라.](겔36:20-22). 영광을 받아야 할 이름이 던져지고, 존귀와 찬양을 받아야 할 이름이 멸시되고, 잊히고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할 이름이 비난과 조롱거리가 될 때 하나님은 “너희가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동안 교회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 얼마나 욕되게 했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을 얼마나 더럽혔는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외치면서 행위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 먼저 우리 자신의 기도를 돌아봅시다. 우리의 기도 생활은 은밀하였는가? 입술로만 형식적으로 드리는 기도는 아니었는가? 우리는 먼저 무엇을 구했는가? 우리의 첫 번째 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 생각해 봅시다. 주님의 첫 번째 관심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성도들 역시 그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눈, 우리의 마음, 우리의 애정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 자신에게 두기를 원하십니다. 땅이 아니라 하늘,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기도에서부터 드러나야 하며, 확실하게 정립되어야 합니다. 때로 필요를 구하다 보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선물에만 관심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 때는 누가 자신에게 무엇을 주면 그 주는 것 때문에 좋아합니다. 우리는 점점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 역시 성숙, 성장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9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우리의 관심은 첫째도 하나님, 둘째도 하나님, 셋째도 하나님이어야 하며, 이는 우리가 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고, 거룩히 여김을 받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필요와 소원에만 관심이 있다면 이는 잘못된 기도요, 잘못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할 때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다(set apart for a sacred use)란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세상 사람들의 이름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영웅들, 정복자들, 왕들, 성현들이라 불리는 사람들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세상의 많고 많은 신들의 이름과는 전적으로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 그 누구도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많고 많은 이름들 중의 하나로 여길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성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은 자녀들은 [아버지의 이름]이 전적으로 독특하고 영광스러우며 하늘이나 땅이나 그 어디에도 그분의 이름과 비교할 수 있는 이름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다양한 이름을 접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한 가지 방법이셨습니다. 성경에서 무려 2,570번이나 사용된 엘로힘(Elohim)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권능과 힘을 계시합니다. 아도나이(Adonai)란 이름은 “주인이신 주님”(Master, Lord)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모든 창조물들을 소유하고 계신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심을 계시합니다. 성도들에게 익숙한 이름 가운데 하나인 여호와는 무려 6,823번이나 등장하는데 하나님의 언약(창2:4)중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모두 9개의 이름들과 혼합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주님은 제공하실 것이다(The Lord will provide)란 뜻으로 “여호화 이레”(Jireh)가 있고(창2:13-14), 주님은 나의 깃발(The Lord, my Banner)이란 뜻으로 여호와 닛시가 있습니다. [이에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닛시라 하였으니](출 17:15). 주님은 평화이시다(The Lord is Peace)란 의미의 여호와 살롬(Shalom)이 있습니다(삿6:24). 그리고 익숙한 이름 중에 하나는 여호와 라파(Rapha)입니다. 이는 주님은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는 분(The Lord our Healer) 즉 치유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참조: 군대들의 주님-여호와 사바오스(Sabaoth)(68:17, 104:4, 148:2, 마 26:53). dug와 마케데츠셈(Maccaddeschcem)- 주님은 우리를 거룩히 구별하는 분(The Lord thy santifier)/출 31:13. 여호와 로히(Rohi; Raah): 주님은 나의 목자(The Lord my Shepherd)/시23:1, 여호와 티드케누(Tsidkenu) - 주님은 우리의 의(The Lord our Righteousness)/렘23:6. 여호와 샤마- 현존하시는 주님(The Lord who is present)/겔48:35. 이런 이름 위에 또 하나의 위대한 이름, 지극히 뛰어난 이름이 있으니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라는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또 모든 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9~11). 주 예수님의 이름은 너무나 흔히 들을 수 있고, 쉽게 부르는 이름이지만 이 이름은 거룩한 이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하옵시며”라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이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함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마음 속에 인식할 때부터 우리는 그 이름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들로 하여금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이는 그 이름이 거룩하기 때문이니이다.](시99:3). 동양인들은 이곳 서양 사람들과 달리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게 교육합니다. 나이가 들면 친구끼리도 함부로 이름을 부르거나 남발하지 않습니다. 특히 자신이 존경하거나 두려워하는 분의 이름은 입에 올릴 때 각별히 조심합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감히 ‘여호와’란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주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거나 속되게 여겨지게 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거룩하다는 사실을 알고 믿을 때 그분의 이름은 우리 안에서부터 거룩히 여김 받게 됩니다. [이는 높고 높으시며 영원히 거하시고 이름이 거룩이신 이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고](사57:15a). 거룩(holy)은 주님의 이름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구속(救贖)함을 보내시며 자신의 언약을 영원히 명령하셨으니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시111:9).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한 이름이요, 영화로운 이름이요, 크신 이름이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이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하옵시며] 란 말씀은 단지 기도문에 꼭 삽입해야 할 성구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홀로 거룩한 이름이요, 위대한 이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게 하려면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들의 비행, 불 의, 범죄는 아버지를 수치스럽게 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 것, 불순종하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에 가장 큰 수치를 끼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을수록 나 역시 그만큼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자기 하나님께 거룩할 것이며 자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지니라.](레21:6a). [너희는 내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지니 오직 나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거룩하게 될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주요,](레22:32).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하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수록 나의 영적 삶 역시 거룩해지고 경건해지고 의로워 집니다. 이는 필연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집중할수록 나는 더욱 풍성해 집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 받도록 구할 때 나의 이름 역시 하나님께 기억되고,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원리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높이기 위해 발버둥 치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 이름이 땅에 기록되는 것이 전부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고, 거룩히 구별하면 하늘에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됩니다.

성경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가? 보여 주십니다. [그들이 가난한 자의 머리 위에 있는 땅의 티끌을 탐내며 온유한 자의 길을 굽게 하고 한 남자와 그의 아버지가 같은 젊은 여자에게로 들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려 하며](암2:7). 탐욕적이고 부정한 삶, 음란한 삶이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또한 거짓 종교 행위, 위선과 가식으로 행하는 종교 생활 역시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에 관하여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아니하면 가서 각각 자기 우상들을 섬기고 이후에도 그리할 것이며 다시는 너희 예물들과 너희 우상들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지니라.](겔20:39).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거룩히 여김 받도록 기도함으로써 이 세대를 거슬러 살 수 있는 영적 힘을 공급받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이름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자녀들에게 언제나 자랑스러운 이름입니다. 이 땅에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는 아버지란 존재를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신 하나님 아버지는 부끄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신 그분의 이름을 증거 하는 일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에 따라 내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높이고자 하나니](빌1:20)란 말씀대로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자랑하십시오. 예수를 믿지 않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이들에게 ‘아버지’를 자랑하십시오. 마귀의 자녀들에게 나의 아버지의 이름을 들려 주시고, 자랑하십시오. [너희는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주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기쁠지로다.](대상16:10). [너희는 이르기를, 오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함께 모으시고 이교도들로부터 건져 내사 우리로 하여금 주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며 주 찬양하는 일을 자랑하게 하소서, 할지어다.](대상16:35).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 받기를 기도하는 것은 주의 이름을 자랑하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받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을 자랑하는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드릴지어다. 헌물을 가지고 그분 앞에 들어갈지어다. 거룩함의 그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할지어다.](대상16:29). 우리는 누구의 영광을 구합니까? 저는 한 때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꿈꾼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저 역시 어릴 때부터 그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공부의 목적이 출세 지향적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학업에 매진하고, 어떤 이는 돈벌이에 정열을 쏟고, 어떤 이는 연예계나 운동을 합니다. 자신의 꿈을 포기한 이는 자식을 뒷바라지함으로써 마지막 인생의 정열을 쏟아 붓습니다.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자들이니라.](행15:26). [이에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슬피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결박 당하는 것뿐 아니라 죽는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노라, 하니](행21:13). 내가 내 자신의 무엇을 하기 위해 주님께 힘과 도움과 지혜를 요구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고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하기 위해 필요를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위해 한 일이 아닌 것에 상급을 주시지 않습니다. 주의 이름을 위해 일한 것 외에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한 수고’에는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의 행위와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사랑의 수고 곧 너희가 지금까지 성도들을 섬기며 지금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라.](히6:10). 참된 보람은 자신이나 자녀를 위해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일하는데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은 주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은 찬양의 대상입니다. 거룩하지 않다면 찬양할 수 없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이는 그 이름이 거룩하기 때문이니이다.](시99:3).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도록 기도하는 이의 입술에는 찬양이 끊이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 노래가 있고, 입술에도 노래가 있습니다. 주의 위대하심, 주의 은혜에 대한 놀라움이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경이로움이 있습니다. 이런 놀라움의 표현이 바로 찬양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놀라움이 있습니까? 날마다, 매 순간마다 아버지의 어떠하심을 발견해 나가는 그런 기쁨이 있습니까? 이 지식은 너무나 경이로워서 배울 때마다 자연스럽게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오 내 혼아, 주를 찬송하라.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아,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찬송하라.](시103:1).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함으로써 내 안에 찬양이 풍성해지고 넘칠 수 있습니다. 심중에 주의 노래가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허무를 느낀 이는 허무를 노래하고, 세상의 부정과 불법에 분노한 이들은 사회 고발성 노래를 합니다. 사람들 간의 사랑을 느낀 이는 사랑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체험하고 아는 이들은 그분의 거룩함을 찬양합니다. 마음속에 무엇이 담기고, 무엇이 느껴지고, 체험되어지는가에 따라 입에서 나오는 노래 역시 다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할 때 그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은 주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이름은 신뢰할만한 이름이란 말입니다. 자신에게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거룩한 이름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을 신뢰할 때 기쁨이 오고, 도움이 오고, 구원이 오고, 승리가 옵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신뢰하였으므로 우리 마음이 그분을 기뻐할 것임이로다.](시33:21).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는 것은 주를 향한 신뢰를 더욱 굳건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 마음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은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 받습니다. 감사는 입술의 희생물입니다.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이교도들 가운데서 모으시고 주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며 주를 찬양하는 일을 기뻐하게 하소서.](시106:47). 주님의 이름을 들을 때면 자연스럽게 감사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말씀으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감사를 통해 거룩히 구별됩니다. [내가 주께 감사의 희생을 드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시116:17).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하고, 은혜에 감사하고, 돌보심에 감사하고...감사하다 보면 주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20).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행위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3:17). 이는 강압적인 명령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동의 표출이요, 아버지의 이름에 합당한 영적 반응으로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 아버지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풍요로움과 긍휼과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마음 속에 받고 믿을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모든 일에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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