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말씀: 마6:10
요절: 마6:10


일반적으로 기도는 그 사람의 영적 상태, 영적 수준을 잘 보여 줍니다. 기도를 통해 영적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의 범위, 간구의 범위는 마음의 넓이와 일치합니다. 기도의 깊이는 곧 영적 깊이와 비례합니다. 순수한 기도는 순수한 마음에서만 나옵니다. 뜨거운 기도는 영이 뜨거운 가운데서 나옵니다. 기도는 단지 입술의 읊조림이 아닙니다. 마음이 형식적인 사람은 형식적인 기도를 드리고, 위선자인 사람은 위선적인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무리들과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고하시며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고,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기도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영원한 모델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 속 중심부에 이런 것들이 가득해야 하며, 마음의 열정과 소원과 기대가 이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중심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열망하며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그것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까?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왕국, 아버지의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나의 필요와 소원만 구하지는 않습니까? 때로 우리는 기도의 특별한 비결이나 요령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뜨겁게 기도하라, 끈질기게 기도하라. 낙심하지 말고 구하라. 응답이 올 때 까지 구하라. 쉬지 말고 구하라” 등등 기도하는 요령이나 방법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기도했는데 응답 받았다는 간증을 듣고 따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기도 역시 성경의 가르침이며,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기도의 동기와 목적, 기도의 대상, 기도의 우선 순위 등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른 기도란 뜨겁고도 끈질기게 하나님께 자신의 뜻을 전달하여 신속하고도 충분하게 자신의 필요를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마음에 가득한 소원 성취의 수단으로 기도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원도 하고 맹세도 해 보고, 하나님 앞에 “이것만 응답해 주시면, 이번에만 응답해 주시면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식으로 약속도 해 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향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금향로에 드려진 향이 성도들의 기도라고 말합니다(계5:8,8:3). 향은 사람이 맡기 위해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네가 만들 향으로 말하건대 그것은 [주]를 위한 것이요, 너희에게 거룩한 것이니 그 혼합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지니라. 누구든지 냄새를 맡으려고 그와 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리라.] (출30:37~38). 기도는 희생물이라고 합니다. 희생물은 사람에게 드려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먹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 역시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6:10b).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 아버지의 뜻은 이 땅에서 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결코 홀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의 뜻은 기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주의 뜻을 행할 누군가를 찾으시고, 그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의인이 없고, 중보자가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을 때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이 땅에 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음이니라.](요6:38).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땅에서 누군가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기도대로 뜻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재능있고, 똑똑하고, 유명하고, 권세 있는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이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고 열망하며 기도하는 이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교리적으로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소서.”란 기도의 응답은 요한 계시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자기 대접을 공중에 쏟아 부으매 큰 음성이 하늘의 /성/전에서 왕좌로부터 나서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하시니](계16:17). 일곱째 천사가 대접을 공중에 쏟아 부을 때 하늘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마귀는 심판을 받고, 죄악 된 세상 왕국은 멸해집니다. 이스라엘은 회복되고, 천년 왕국이 세워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다 행하셨을 때 주님께서 친히 “다 이루어졌도다!”(It is done)라고 선포하십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계21:6). 사도 요한은 모든 일을 다 보았고, 주님께서 “다 이루어졌도다”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는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졌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이 땅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 뒤에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하셨으니 그분께서 그 첫째 것을 제거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모든 사람을 위해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 (히10:9~10).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대로 몸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다시 두번째 나아가사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마26:42). 주님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셨고,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기를 원하셨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셨기에 죽음의 순간에도 그것을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죽도록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받지 않았습니다. 끈질기게 기도하고,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밤낮으로 모여서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할지라도 핵심은 “나의 뜻, 우리의 뜻”을 기어코 관철하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나의 뜻을 부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그러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친히 보여 주신 기도의 가르침이요, 몸소 행해 보이신 기도의 모범이 그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 “다 이루었다”(요1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들을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행하지 않으십니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 안에서만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고 이루십니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요15:4~5)고 하셨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5:30)고 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모든 일에 주님을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권능이 필요합니다. 권능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권능의 성령이 필요합니다. 권능의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무능력자란 오명을 떨쳐 버리고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영적 힘이 없습니다. 돈의 힘도 없고, 권력의 힘이 없고, 군대의 힘도 없습니다. 나를 도와주는 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 힘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힘이 되십니다(시18:1). [오 나의 힘이 되시는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리이다.](시18:1). 힘을 얻는 방법이 있습니다.힘이신 주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주]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그분을 신뢰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분을 찬양하리로다.](시28:7). 나는 가난하지만 주님은 부요하십니다. 나는 어리석지만 주님은 지혜이십니다. 나는 Nothing이지만 주님은 모든 것(Everything)이십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보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을 보고 사는 것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사는 삶의 비결입니다. 아버지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하기 때문이라.](골2:9).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가능하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심으로 됩니다.

이 땅에서 아버지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9).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멸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원하시느니라=will(KJV).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아들로 삼으십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생명이 있지만 아들(예수 그리스도)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진노와 정죄 아래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은 구령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구원자이신 주님을 영접하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친히 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누구라도 그 순간 구원을 받습니다. 교회마다 교파별로 구원론에 다양한 신학이 있습니다. 구원 받는 것이 무엇인지 논쟁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어떤 방법이나 요령을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 마음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내가 인격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그분을 믿을 때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한번 구원받은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영원히 지키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내게 주신 모든 사람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이것이니라.](요6:39). 구원받은 혼은 영원히 안전합니다.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귀는 죄를 짓도록 유혹할 수 있어도 주님의 손에서 우리를 강탈해 갈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이는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사회 생활에 대한 아버지의 뜻은 잘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이것은 너희가 잘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2:15). 그리하는 것이란 말은 앞 절에서 나온 말씀인 [너희는 {주}를 위하여 사람의 모든 규례에 복종하되 왕에게는 최고 권위자에게 하듯 하고 총독들에게는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께서 보내신 자들에게 하듯 하라.] (벧전2:13~14)는 말씀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사회 생활에 대한 아버지의 뜻은 권위에 순복하고, 규례에 복종하며, 왕이나 통치자들을 ‘주께서 보내신 자들에게’ 하듯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법을 어기는 자들이 아니라 지키는 자들입니다. 세금을 내고, 행정 관리들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권위주의를 싫어한다고 해서 권위에 불복종하고 저항하는 것은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 권력 역시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모든 혼들은 위에 있는 권력들에게 복종할지니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력이 없으며 이미 있는 권력들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이니라.](롬13:1)고 했습니다. 이 때 로마의 최고 권세자는 악하기로 유명한 ‘네로 황제’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많이 감옥에 넣고 죽인 황제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많은 성도들과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양심을 운운하면서 불복종과 저항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들이 말하는 양심을 위해서 오히려 복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진노로 인하여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위하여서도 반드시 복종해야 하느니라.](롬13:5).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내 마음 속에 이루어지기를 열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가 전적으로 내 안에 계신 주님께 복종할 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 아버지의 선하신 뜻, 받으실 만한 뜻, 완전하신 뜻을 이루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믿음과 헌신된 자녀가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많은 일을 행하실 수 있고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주님은 먼저 사울을 왕으로 허락하셨지만 그를 통해서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었습니다. 사울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의 자녀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서 어떤 일도 행하실 수 없고, 영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가 무어입니까? 사울은 인본주의였습니다. 다윗은 신본주의였습니다. 사울은 자기 뜻을 앞세웠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았습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일으켜 세우사 그들의 왕이 되게 하시고 또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내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그가 내 뜻을 다 성취하리라, 하시고](행13:22). 주님은 다윗을 세우시고, “그가 내 뜻을 다 성취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이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열망합니다. 내가 구원받은 이후 사는 삶은 더 이상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갈2:20)이라고 했듯이 우리 모두 동일합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의 뜻은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헌신함으로써 주님을 위해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죽은 이들만이 주님과 함께 살 수 있고,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있습니다.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만이 부활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헌신된 이들의 삶은 이것입니다. [이는 우리 중에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기 때문이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14:7~8).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행위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3:17).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은 새 생명을 얻어서 바로 이런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5:15). 그런데 여전히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살기 위해, 자신의 뜻과 꿈과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주님께 기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런즉 그는 자기 육체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리라. 이는 우리가 색욕과 정욕과 과음과 환락과 연회(宴會)와 가증한 우상 숭배 속에서 걸어 이방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한 것이 우리 삶의 지나간 때로 족하기 때문이라.] (벧전4:2~3).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갈보리에서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난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보십시오.

주님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엡5:17). 주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변명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주의 뜻을 알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려면 그분의 뜻을 행하려는 의지가 최우선입니다. [사람이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인지 알아야 하리라/알리라(KJV).](요7:17). 알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대로 행하려 하면 알게 됩니다. 주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할 때 주의 말씀을 알게 되고, 그 말씀이 내 마음 속에 거하게 됩니다.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기뻐하오니 참으로 주의 법이 내 마음 속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40:8). 우리는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음으로 ‘말씀’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순종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 성령께서는 주의 뜻을 가르쳐 주시고, 진리 한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오니 나를 곧바른 땅으로 인도하소서.](시143:10).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이들의 삶은 모든 일에 감사가 넘칩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이들은 모든 것이 불평이요, 불만입니다. 그러나 주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이들은 모든 것,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감사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5:20).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행위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3:17).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아버지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면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자의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해석해서 실행합니다. “자유, 평등, 박애는 기독교 정신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경제적 평등 없이는 누구도 행복을 누릴 수 없다.” 등등의 이상한 구호를 내걸면서 기독교의 이름을 빌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써먹습니다. 어떤 이는 자선 사업으로, 어떤 이는 평생 기부금을 얻으려 이리 저리 달립니다. 여기저기서 기부금을 얻어서 병원도 짓고, 고아원도 짓고, 장학금도 주고, 구호 활동을 합니다. 아예 단체를 하나 만들어서 전문적으로 그런 사역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도원을 만들고 교회를 짓고, 선교 회관을 만들고 출판사를 만드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경을 새롭게 해석해서 이 시대에 맞는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적 능력을 얻기 위해서 별 짓을 다하다가 방언을 얻고, 축사, 신유의 능력을 얻었다는 이들도 있고, 예언과 통역의 은사를 얻었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다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주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애를 쓰고,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때로 종교 간의 통합 운동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드리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자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였노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마7:22~23). 이 시대는 미혹의 시대입니다. 속임수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몸을 드리는 헌신을 통해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통해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들을 삶으로, 열매로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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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