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말씀: 마6:11
요절: 마6:11
주님께서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고,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입니다. 이 기도는 모든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정, 모든 성도 개개인이 항상 일순위에 올려 두고 항상
뜨겁게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위해 구해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총 일곱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처음 셋은 아버지와
관련된 것이고, 나머지 넷은 우리 자신의 필요에 관한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사는 동안 우리 자신이 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꿈이 있는 자는 꿈을 이루어 달라고 구할 것이고, 야망이 있는 자는 야망을 구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부(富)를 구하고,
어떤 이는 건강과 장수를 구하고, 어떤 이는 원수의 생명을 구할 것입니다. 학업에 매진하는 자는 지혜와 지식을 구할 것이고, 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은 넘치는 영감을 구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갓 왕이 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내가 네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너는/ 구하라, 하시니]
(대하1:7) 솔로몬은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들어오고 나가게 하시옵소서.] (대하1:10a) 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지혜와 지식을 구한 것은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백성을 바르게 재판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문구, 기도에 사용된 어휘, 표현법 보다 먼저 기도하는 이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구합니까?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를 통해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니 그녀가 그분께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왕국에서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하소서, 하거늘](마20:21).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와
권세를 구합니다. 명예를 구합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건강을 구합니다. 실패한 이들은 성공을 구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소경은 주님께 자신의 눈이 떠지기를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하시니 그 눈먼 사람이 이르되, {주}여, 시력을 받게 해
주옵소서, 하매](막10:51). “우리의 눈을 열어 주소서”(마20:33)라고 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이 그런 능력이 있음을 믿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지 않으면 구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으면 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구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성전의 아름다운 문 앞에서 구걸하던 거지를 보십시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무엇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기대한 것은 동전 몇 푼이요,
좀 더 많은 돈을 넣어 주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얼토당토 않는 그런 것을 구하는 것을 볼 때면 비웃습니다. 베데스다 연못 곁에
있던 38년 된 병자는 주님께서 자신을 찾아 왔지만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고,
믿는 만큼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응답이 있고,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원하는 것을 얻고, 필요를 채움 받은 놀라운
이야기들을 성경을 통해 볼 때, 우리 역시 기도함으로써 그런 것들을 얻기를 원합니다. 기도로 병이 고침 받고, 기도로 지혜와 지식을 얻고,
기도로 이것저것 원하는 것들을 신속하게, 더 많이 얻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우리의 주 관심이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왕국,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나머지 구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응답될 것입니다.
문제는 앞의 세 가지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것만 구할
때 발생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구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 자신의 명예를 구하고,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기를 구합니다.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기를 구하지 않는 이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며, 이 땅에 있는 것에 애정을 두고 삽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보상과 유업, 상급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육신적이 되고 타락하게 됩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더욱 육신의 정욕을 추구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지 않을 때
자신의 뜻을 구하는 기도만 하게 됩니다. 나는 주님께 행복을 구하지만 주님은 내게 ‘거룩함’을 원하십니다. 나는 자랑할 만한 외모를 구하지만
주님은 내게 ‘마음의 순수함’을 원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뜻은 내가 무엇을 얼마나 소유하는가? 얼마나 벌었는가? 지위는 어떠한가? 에
있지 않고 나의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에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들을 차례대로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아버지께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첫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입니다. 11절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日用)할 양식을 주옵시고](11).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지구촌의 3/4은 날마다 잠이 들 때면 공복감을 느끼면서 무엇인가 좀 더 먹었으면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잠을
잡니다. 오늘 먹을 빵을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평소에는 물론이려니와 전쟁이나 기근이나 여러 가지 재앙이 닥칠 때 필수적입니다. 대환란 때
유대인들은 광야에서처럼 기적적으로 주님이 공급하시는 양식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광야의 칼로 인하여 우리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야 우리의
빵을 얻사오며 우리의 살갗은 무서운 기근으로 말미암아 솥같이 검게 되었나이다.] (애5:9~10). 짐승의 표가 없으면 매매할 수 없는
그런 시대에 사는 환란 성도들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란 기도를 수없이 드릴 것입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범죄함으로 인해 이런
심판과 징계로 기근을 겪었지만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함으로써 이런 환란을 겪었습니다.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은 로마 교회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님으로써 이런 기근의 고통을 겪으며 주님께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했습니다.
지금 21세기를 사는 이곳 미국이나 유럽이나 한국의 교회와
성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가련한 것과 비참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도다.] (계3:17). 재산을 불린 것이 축복이요, 경건이요, 주님의 은혜인 줄로
생각하고 자랑합니다. 교회마다 교인 수를 늘리고, 교회 규모를 늘리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합니다. 교회가 영리 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의
죄악 중의 하나는 부동산 투기입니다. 어떤 지역에 기도원, 묘지, 교육관 등의 명목으로 땅을 사 두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을 지어서 몇 개 층은
세를 줍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란 기도는 형식적으로 되 뇌이는 구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믿고 적용해야
합니까? 다시 11절을 보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일용(日用)할 양식을 주옵시고](11). 이 말씀은 몇 몇 성도들에게 약간 혼란을
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곧 이어지는 말씀인 6:25절부터 주님은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말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31-32절은 놀랍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마6:31~32). 이 구절에 따르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란 기도는 약간 모순이 있어 보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지 성도들이 구해야 할 것이 아닌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유념해서 보는 독자들이라면 전혀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염려하며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기도하기를, [헛된 것과 거짓말들을 내게서 아주 멀리 옮기시오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며
오직 알맞은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30:8)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잘못된 기도가 아닙니다. 이방인의 기도도
아닙니다. 주를 믿는 ‘아굴’이란 신실한 한 성도의 기도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아버지 이삭의 집을 떠나 삼촌 라반에게로
갔습니다. 형 에서에게 쫓겨 가는 몸이었습니다. 그는 가는 도중에 벧엘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런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면 그에 걸맞은 놀라운
기도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구한 것은 자신을 지켜 달라는 것과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빵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하여금 평안히 내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오게 하시면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더라.] (창28:20~22). 야곱의 기도가 잘못된 기도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6:10절과 병행
구절이 되는 누가복음 12:22절을 보면 [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생명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눅12:22).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해서는 전혀 “기도하지 말라. 구하지
말라.”가 아니고 전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풀도 입히시며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입을 것이 필요하면 필요를 구해야 합니다(빌4:6). 다만 기도할 때에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 (빌4:6). 그렇게 할 때 주님은
먹고 입을 것을 포함해서 우리의 모든 필요(원함이 아니라)를 채워 주십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염려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특히 먹고 입을
것으로 인해 염려하는 성도들을 향해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6:30)하시며 책망하십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먹을 것에 욕심을 내면 탐식가가 됩니다.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에 끌려 다니지 말지니 이는 은혜로 마음을 굳게 함이 선한 일이요, 음식으로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음식에
전념하는 자들에게 음식이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느니라.] (히13:9). 우리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네가 만일
식욕에 빠진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지니라. 그의 맛있는 음식들은 속이는 것들이니 그것들을 바라지 말라.] (잠23:2~3).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유행을 따르는 옷을 구하고, 멋을 내기 위해 옷을 구하면 역시 탐심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누군가의
시선과 관심을 끌기 위해 골라 입는 옷이라면 그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골3:5). [너희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라.]
(히13:5). 이 말씀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인 성도들에게는 삶의 좌절을 안겨 주는 말씀입니다. 돈이 없으면 장래가 불안한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사형 선고와 같은 말씀입니다. 지금이야 젊으니까 그럭저럭 살지만 애들은 커 오고, 나이는 들어가고 그 때는 어떻게 살란 말인가?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치 주님이 나를 떠날 때를 대비해서, 주님이 나를 도와주지 않을 그 날이 올 것처럼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는 돈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당장 이번 달에 지불해야 할 집세, 보험, 자동차 할부금, 생활비가 없는 이들이 걱정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딤전6:8)는 말씀은 사치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게
하셨는데 이 말씀은 단지 먹을 것(daily bread-빵)만 말씀하지 않습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생활의 모든 필요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말로 바꾸어 말하면 “오늘 우리에게 생활비를 주옵소서”와 같은 것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주님께서 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 말며 마음에 의심하지도 말라.](눅12:29). 먹을 것, 입을 것에
대해서는 “염려하지도 말고, 구하지도 말고, 의심하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죄를
지은 죄인들도 감옥에 넣어서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하물며 자신의 자녀 된 성도들을 먹이지 않겠습니까? 공중의 새들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자녀들을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의로운 자의 혼이 주리는 것은 [주]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나 사악한 자의 재산은 내던지시느니라.] (잠10:3).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늙었으되 지금까지 의로운
자가 버림을 받거나 그의 씨가 빵을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도다.](시37:25).
나를 도우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구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 것을 구하지 말고 각각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구하라.](고전10:24). 이 말씀을
마음에 받으면 자신을 위해 기도하던 많은 기도 제목들이 바뀌어 질 것입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10:33). 이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는 구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동시에 부지런히 뜨겁게 인내하며 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어떤 이에게 이것은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통장에 돈이 있고, 창고에 먹을 것이 가득하고, 오히려 살을 빼려고 운동을 하고 먹는
것을 줄여야 하는 이곳 현대인들에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란 기도는 필요 없는 기도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소돔과 고모라는 이곳
캘리포니아의 어느 부유한 도시보다 빵이 넘쳐나는 도시였습니다. [보라, 네 동생 소돔의 불법은 이것이니 곧 그녀와 그녀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빵의 풍족함과 게으름이 많이 있는 것과 그녀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손을 강하게 하지 아니한 것과] (겔16:49). 롯이 소돔을
선택한 것은 거기가 평야였고, 어느 곳이나 물인 넉넉하였고 주의 동산 같았기 때문입니다(창13:10). 양식이 풍족한 곳에 타락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주님께 감사하고 거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 때부터 문화란 이름으로 다양한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먹고 살 것이 해결되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고,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리라 결심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먹고
즐길 생각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교도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소돔과 마찬가지로 참으로 좋은
땅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잘 섬겼습니까? [내가 광야 곧 심히 메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그들이 자기들의 초장이 내는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매 그들의 마음이 높아져서 나를 잊었느니라.] (호13:5~6). 이것이 사람입니다.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생할 때는 주님을 찾고, 새벽 기도를 하고, 금식도 하고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다행히 먹고 살만한 환경이 되면 그 때부터 그동안 돈 버느라 고생한 시간이 생각나고, 놀지
못했던 세월들이 생각납니다. 어떤 이는 여행을 다니고, 어떤 이는 골프채를 잡고 운동을 하고, 어떤 이는 친구들과 만납니다. [그러나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기름지고 비대하고 기름으로 덮이매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소홀히 여겼도다.](호4:7).
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주일에 교회를 오면 어떤 이는 성도들 가운데는 등산이나 낚시나 골프를 위해서 예배를 마치자마자
떠납니다. 반면 어떤 이는 전혀 쉬지 못하고 허겁지겁 일터로 떠납니다. 일하느라 못 나오는 이도 있지만 그 시간에 놀러 다니느라 못 나오는 이도
있습니다. 누가 더 많은 죄를 짓고 있는가? 누가 더 교회를 업신여기고 주님을 차 버리는가? 보십시오. 먹고 살만한 자들입니다. 주님은 좋은
것을 주신 후에 함께 경고도 주십니다. [이는 [주] 네 하나님께서 좋은 땅으로 너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니 그곳은 시내가 있고 골짜기와
산에서 흘러나오는 샘과 깊은 곳이 있는 땅이요, 밀과 보리와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요, 기름과 올리브와 꿀이 나는 땅이라. 또 그곳은
네가 먹는 빵이 부족하지 않은 땅이요, 네게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은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쇠요, 산에서는 놋을 캐리라. 네가 먹어 배부르게 되고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좋은 땅을 주셨으므로 그분을 찬송하리라. 너는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명령과 법도와 법규를 지키지
아니함으로써 [주] 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아니하도록 조심할지어다.](신8:7-11). 주님은 이들이 배가 부르게 되면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네가 먹어 배부르게 되고 좋은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소떼와 양떼가 번성하고 네 금은이 크게 늘어나 네 소유가
다 크게 늘어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주] 네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신8:12-13).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후에 이들은 이 땅에서 완전히 멸망했는데 부요한 가운데서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한 가운데서 섬기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데도 네가 기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주] 네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므로 [주]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네 원수들을 네가 섬기되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궁핍한 가운데 섬기리니 그가 쇠 멍에를
네 목에 씌워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신28:47~48). *풍족한 가운데서 섬길 줄 모르면 궁핍한 가운데 섬기게 된다.
기억하십시오. 풍요함, 배부름이 영적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영적 평안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는 감당하지 못할 때 재앙이
됩니다. 넘치는 축복을 감당할 영적 역량이 되지 못하면 그것이 도리어 저주가 됩니다. 주님이 주신 부요함으로 인해 도리어 자신에게 해가 됩니다.
주님의 선하심으로 풍족하게 주신 것들은 주님을 섬기는데 쓰지 않을 때 그가 누구든지 간에 죄의 종이 되어 버립니다. 느헤미야는 이 진리를 역사의
체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왕국과 주께서 자기들에게 베푸신 큰 선하심과 자기들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한 행실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보소서, 우리가 이 날 종이 되었사온데, 보소서,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 열매를 먹고 그 좋은 것을 누리게 하신 그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느9:35~36).
그렇다면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11)라고
말씀하신 것은 유럽이나 이곳 미국에 사는 성도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기도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광야에 사는 백성들처럼 이
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우리들의 일상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란 기도는 모든 소유를 다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이요, 세상과 거기 거하는 자들도 그러하니] (시24:1). [누가 나보다 앞섰기에 내가 그에게
갚아야 한단 말이냐? 무엇이든지 온 천하에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니라.](욥41:11). 주님의 것을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도둑이요, 강도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정확히 직시해야 합니다. 내가 머리를 쓰고, 땀을 흘려 일해서 번 것들이지 주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마음은 심히 교만한 것이요, 강탈자입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하늘들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니이다.
세상과 거기 충만한 것으로 말하건대 주께서 그것들을 세우셨나이다.](시89:11)고 했습니다. 생물들을 자라게 하는 태양, 하늘에서
내리는 비, 시원하게 부는 바람, 생명을 내는 땅 그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소유입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샐러리맨들의 급여는 사장이 주는 것 같지만
사장께 구하지 않고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이들의 급여는 정부에서 받는 것 같아도 사실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란 기도에는 내가 버는 돈, 재물이 나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이란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이 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란 믿음을 ‘청지기 신앙’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란 기도는 우리의 수고에 대한 대가를 우리
자신에게로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때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챙긴다는 식으로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때로
일을 하고도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네 손이 수고한
것을 네가 먹을 것임이라. 네가 행복하고 형통하리로다.](시128:2). [또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부와 재물을 주사 그것을
먹고 자기의 소유를 취하며 자기의 수고한 것을 기뻐할 권능을 주셨나니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로다.](전5:19).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에서 나는 것들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을 때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또 그들의 소출을 쐐기벌레에게
주셨고 그들의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그들의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그들의 뽕나무를 서리로 멸하셨으며 또 그들의 가축을 우박에, 그들의
양떼를 뜨거운 벼락에 넘겨주셨으며](시78:46). 일을 해도 열매가 없었습니다. 수확이 없었습니다. 결과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사람에게 줄 수도 있고, 쐐기벌레에게 주실 수도 있고, 메뚜기에게 주실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땅
자체를 남에게 주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창고에 있는 모든 양식을 쥐들이 먹었다고 해서 누가 보상해 줍니까? 들판에 벼들이 병충해로 전멸을 당하고, 태풍이나 한해로 모두 죽을 때
누가 보상해 줍니까? 내가 산 회사의 주식이 부도로 휴지 조각으로 변할 때 누가 보상해 줍니까? 아무도 보상해 주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재산이
전쟁으로 잿더미로 변했을 때 누가 보상해 줍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신 것을 누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강제로 빼앗는
자가 그의 모든 소유를 취하게 하시고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자들이 노략하게 하시며](시109:11). 때로 주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
누구이며, 그 재물이 누구의 소유인가? 를 확실하게 정립해 버립니다. 헛되고 교만한 생각을 낮추시고 오직 한 분 주님만 의지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this
day)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는 오늘을 살지 내일을 살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 날(this day)이라고
하시지 ‘이번 주, 이번 달, 이번 해’에 먹을 양식을 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Give us day by day our daily bread(눅11:3)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가
양식을 쌓아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의 필요를 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을 의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곳은 주급, 월급, 연봉으로
급여를 주지만 성경은 “일당 급여”입니다(레19:13). 일을 하고 저녁에 급여를 줍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를
내려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삶 역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삶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3년 반 동안 그들은 그런 삶의
체험을 배웠습니다. [너희 돈주머니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준비하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짐보따리나 덧옷 두 벌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준비하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라.] (마10:9~10). 주님은 제자들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지만
전혀 부족하지 않았던 사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물질을 지배해야 할 성도들이 이 문제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면 재물로 근심과 염려에 쌓이게 되고,
말씀의 숨이 막히고, 믿음이 파선을 맞게 됩니다.
[오늘(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구하는 것은 날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한꺼번에 왕창 주시고 “너희들이 얼마동안은 구하지 말라. 내가
준 것으로 알아서 사용해라.” 하지 않으십니다. 날마다 구하라는 것은 날마다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은택(恩澤)을 더하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셀라.](시68:19). 주님은 날마다 은혜를 주십니다. 날마다 양식을 주십니다. 날마다
새롭게 하십니다. 날마다 성장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은 단회적이지 않고 연속적입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신실하심이
크시도다.](애3:23). 일용할 양식을 먹는 순간마다 우리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할 수 있고, 그분의 은혜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구하게 하심으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먹는 순간마다 공급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니 주는 아침마다 그들의 팔이 되시오며 고난의 때에 또한 우리의
구원이 되시옵소서.](사33:2). 고난에 처한 성도들은 날마다 주님께 기도합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는
신실한 기도 생활의 핵심입니다. [오 {주}여, 내가 날마다 주께 부르짖사오니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시86:3),
[고난으로 인하여 내 눈이 애곡하나이다. [주]여, 내가 날마다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해 내 두 손을 내밀었나이다.](시88:9). 이런
기도를 통해 우리의 필요가 채워지게 하십시오.
양식을 얻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기도하라.
-마6:10, 눅11:13, 잠30:8.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 (빌4:6).
2. 주를 신뢰하고
선을 행하라. [[주]를 신뢰하고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 거하고 참으로 /양식을/ 먹으리로다.](시37:3).
3. 주를 찾으라.
[젊은 사자들은 부족하여 굶주릴지라도 [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34:10).
우리에게는 영적 양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마4:4, 눅4:4). 때로 빵으로 주리게 될 때 우리는 이 진리를
배우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리시게 하신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고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우리의 몸이 빵을 필요로 하듯이, 우리의 영은 ‘말씀’을 필요로 합니다. 몸을 먹이고 영을 굶기지
마십시오. 욥은 말하기를, [내가 그분의 입술의 명령에서 돌이키지 아니하고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그분의 입의 말씀들을 더 귀히 여겼도다.](욥23:12)라고
했습니다. 이는 영을 먹이는 일이 몸을 먹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을 영적 양식은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잡수소서, 하거늘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하시니 그러므로 제자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끝마치는 것이니라.] (요4:31~34).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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