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이유ㅡ |
첫째, 시련을 통해
믿음을 연단하기 위함입니다.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듭니다. [너희 믿음의 단련이 인내를 이루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약1:3). 믿음, 인내, 소망, 체험은 한 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환란을 통해 믿음은 단련되고, 인내를 이룹니다. [이것은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단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훨씬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1:7). 단련된 믿음만이 주님의 재림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납니다.
둘째, 믿음의
연단은 곧 우리 자신의 배움과 성숙을 이룹니다.
성도는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믿은 후에 받는 갖가지 고난을 통해 진리를 확실히 알고 깨닫게 됩니다. 성장하게 됩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길을 잃었사오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하오니 이로써 내가 주의 법규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이것이 고난이 주는 유익입니다. 욥은 말하기를,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고 합니다. 이는 모두 고난의 유익을 정확히 말한 것들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세상에 증거를 삼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이교도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율법에 따른 독특한 생활 방식을 통해 증거 했습니다. 먹는 것이 다르고, 결혼 방식이 다르고, 명절이 다르고, 종교와 문화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런 차이를 통해 이교도들에게 이 땅의 많고 많은 신들 중에 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과 분리된 삶,정반대의 가치관, 추구하는 목표의 차이, 물질과 육이 아닌 영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모든 세상 종교는 모두 기복주의, 현세주의, 물질주의, 육신의 안락과 복을 추구하지만 환란과 시련을 기쁨으로 여기는 유일한 무리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땅이 아닌 하늘, 육신이 아닌 영, 현세가 아닌 내세, 물질이 아닌 믿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눈에 보이는 무엇이 아닌 약속의 말씀을 더 추구하고 의지함으로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믿음을 통해 은혜로 값없이 받은 구원이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장차 다가올 영광을 받게 됩니다. 로마서 8:17-18,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면 이것은 우리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 내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롬8:17-18).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고난을 받게 하심으로써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받게 하십니다. 현재 이 땅에서 믿음으로 인해, 의로 인해, 복음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은 영원한 영광을 이루어 갑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중(重)한 것을 이루느니라.](고후4:17). 하나님은 현 세상의 악함을 통해서 성도들이 받아 누릴 영광을 더 크고 많도록 하십니다.
다섯째,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대적, 하나님과 원수된 것들에 동화되고 사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배척과 박해, 고난을 받으면 성도들은 땅이 아니라 하늘을 사랑하고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들을 함께 미워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여섯째,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를 쏟아 붓기 위해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세상이 성도들을 괴롭히고 죽이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불같은 진노를 세상에 쏟아 부으실 것입니다. 세상에 불법이 충만하게 찰 때까지 주님은 참고 기다리십니다.
일곱째,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참과
거짓을 구별하십니다.
육신적인 성도들, 교회만 다니는 거짓 신자들은 자신의 믿음이 거짓이요, 헛것임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습니다. 누가 지적해
주면 강하게 반발하고 대적합니다. 만약 그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면 자신은 믿었는데도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나님을 욕하며 저주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닥치는 각종 시험과 고난을 통해서 참된 믿음과 거짓 믿음은 확연히 드러납니다. 순금과 찌꺼기를 구분해 주는 곳은 용광로입니다.
순은과 불순물을 구분해 주는 곳은 도가니입니다. 마찬가지로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순식간에 드러납니다. 평소에 우리는 거짓
성도들의 화려한 언변과 외모로 인해 그들을 높게 평가하고, 매력을 느낍니다. 그러나 불같은 시험이 닥쳐보면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거짓 믿음의 소유자들은 금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성경을 공부하지만 참된 믿음의 소유자들은 금을 팔아가면서
진리를 사고, 그것을 다시 팔지 않습니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잠23:23)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의 소유자들은 금이 아니라 ‘금보다 귀한 믿음’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히브리서 11장 강해
위의 설교 본문 전체 내용을 듣고 싶은 분들은 http://av1611.biz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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