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 드물다.
A. W. 토저
동방의 지혜자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무엇을 드리려고 왔다. 새로 태어난 유대의 왕을 찾아 동방으로부터 왔던 지혜자들에 관해서 알려진 바가 많지는 않으나 우리가 아는 간단한 사실은 그들이 문자 그대로 “지혜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유대인과 달리 어떤 기록된 말씀도 갖지 못했다. 단지 소망 중에 하나님을 기다리며 선한 양심으로 찾고 있었고 급기야는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늘 마음에 그리던 구속자, 왕이 이스라엘 땅에 나타나실 것을 들었고 배웠기 때문에 그분께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려는 기쁨으로 아마 유대인들의 관습처럼 희미한 별빛을 따라 찾아온 것이다.
그들의 신앙이 불완전하고 미약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믿음을 귀히 보시고 머지않아 구세주가 오실 것에 대해 마음에 알려주신 것이리라. 그들은 확실히 고등 신학자나 종교적 몽상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곧 장거리 여행의 출발을 작정했고 별을 따라 마침내 구세주 앞까지 인도를 받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종교적 허무주의가 판을 치는 현대에 깊이 생각게 하는 훌륭한 것이다.
근 2,000여년이 지나오도록 해마다 읽혀지고 얘기되는 그 기록은 읽을 때마다 귀하고도 고상하게 우리의 믿음에 자극을 준다. 거기에 얽힌 많은 깨달음과 설명이 있겠지만 이번 성탄절에는 두 가지만 잠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우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비록 신학적 지식은 부족할지라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성경에 박식하지만 자만심에 가득한 마음보다 훨씬 낫다.
이 지혜자들은 이방인들로서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며 약속의 연약들에 대해서는 낯선 자들이고 세상에서는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별을 보고 난 후 예수께 귀한 예물을 바치려는 마음으로 길고도 위험한 여행을 떠났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을 믿고 시작했는데 결국 “메시아”를 만난 것이다. 이젠 영원한 안전을 찾은 것이다. 그때에는 대제사장, 제사장들, 서기관, 바리새인, 공회원, 또 성경을 연구하는 박식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 중에는 한 사람도 이 위대한 사건을 예측할 만한 영적인 깨달음이 없었다. 그들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게 이스라엘의 왕이 태어날 곳이 어디냐고 묻기는 했으나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요동이 난 것도 아니고 다만 헤롯왕이 걱정이 되어 메시아를 없애려고 흉계를 꾸민 것뿐이다.
둘째, 그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무엇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드리려고 왔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오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그리스도께 오는 사람 중에 무엇이든지 얻고자 하는 생각도 없이 오는 사람이 있을까? 이 마음의 태도는 굉장히 귀한 것이다. “마리아”는 후에 옥합을 깨뜨려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적이 있으며 부활의 아침에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허전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려고 무덤에 나왔다. 그러나 이보다 지혜자들의 순결하고도 고상한 예배드리는 마음은 가히 놀라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은 너무 드물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당시의 사람들 대부분은 그분을 ‘다만’ 어떤 자선가나 돕는 분으로만 생각했고 그분을 ‘다만’에 해당하는 이유 때문에 놓치고 말았다.
물론 그리스도는 우리를 돕는 분이시고, 사막의 생명이시오, 배고픈 자에게는 양식이 되시며 눌리고 병든 자에게는 건강이 되실 뿐 아니라 버림받은 자에게는 친구와 이웃이 되셨다. 그렇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분은 우리의 구주, 우리의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온전한 경배와 헌신을 바쳐야 할 주님이시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아주 많았는데 거기엔 동기도 가지 가지였다. 정치적으로 한 나라를 차지하려는 욕심이나, 병을 고치려는 것, 또는 자신이나 식구들의 도움을 위해 따르기도 했다. 여기서 공통적인 것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따라 다녔다는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그런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나병환자가 찾아왔다.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하루라도 빨리 무섭고 징그러운 나병에서 나아 고통과 수치와 절망을 벗어버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물론 예수님께 올 때에 무얼 얻고자 해서 왔고 사실 그 동기는 특별히 아름다운 것도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간청을 들으시고 기꺼이 병을 치료해주셨다. 그런데 그는 성한 사람이 된 후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예수님께 다시 찾아와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경배했다. 처음에 병을 낫기 위해 왔을 때에도 주님은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후에 감사하러 왔을 때에는 더 기뻐하셨을 것은 의심치 않는다.
[자료출처: 승리의 생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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