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제목: 내주하는 마귀 
말씀: 마12:43-45


복음서에는 마귀들에 대한 놀라운 정보가 가득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마귀들과 맞닥뜨리셨고, 마귀들과 싸우셨고, 그들을 꾸짖으시고, 내어 쫓아 주셨습니다. 마귀는 영적 존재이며 동시에 인격적 존재입니다. 마귀는 놀라운 지성과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인간이나 동물 안에 기생하기도 합니다. 마귀는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기도 하지만 사람 안에 들어가서 거하기도 합니다. 마귀는 저 외계에만 살고 있지 않습니다. 마귀들은 돼지 떼들 안에 들어갈 수도 있고, 사람들 안에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된 막달라 마리아는 본래 일곱 마귀 들린 여자였습니다. [또한 악령과 병약(病弱)함에서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마귀가 나간 자로 막달라 사람이라 하는 마리아와](눅8:2). 사람들은 마리아를 단지 병자로 보았을지 몰라도 주님은 그녀 안에 마귀가 일곱이나 있음을 보시고, 쫓아내어 주셨습니다. 마리아가 무릇 온전한 인간으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만나 자신 안에 있던 마귀들이 나간 다음부터였습니다. 빛이신 주님이 세상에 활동하실 때 마귀들의 정체는 폭로되었고, 쫓겨났습니다.

마귀들린 사람들은 결코 온전한 영적 생활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생활, 가정생활 자체도 불가능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마귀 들려서 가족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광야와 무덤가에 살던 청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사회생활은 고사하고 가정생활도 영위할 수 없었습니다. 마귀들려 질병이 걸린 사람은 죽을 때까지 아니면 마귀가 떠날 때까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20세기 이후 과학과 교육, 매스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해 마귀는 지상에서 사라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앞으로도 있습니다. 오히려 복음서 시대에 비해 이 시대에는 더욱 많은 마귀들이 설치고 있습니다. 그때처럼 마귀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예수님과 같은 강력한 빛을 비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마귀를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들은 활동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저는 구원받은 후에 마귀 들린 한 친구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매일 밤마다 마귀에게 눌림을 받아서 매일 소주 한 병씩을 마시고 잔다는 것입니다. 후에 그는 알콜 중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교회에 데려왔는데 목사님이 신앙 상담을 하고 곧 바로 안수 기도를 했는데, 교회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는 마귀 들린 것을 스스로 알았고, 고민을 이야기 했고, 결국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마귀를 몰아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영원히 폐인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마귀의 일들을 멸하려고 오셨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는 마귀가 처음부터 범죄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마귀의 일들을 멸하려 하시는 것이라.](요일3:8). 마귀는 세상의 왕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마귀를 이기고, 마귀의 일들을 멸하셨습니다. 마귀들은 무당, 접신 들린 사람, 마술사들에게만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물론이요, 성도들 안에도 마귀는 들어 와서 자기 뜻대로 역사할 수 있습니다.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모두 마귀와 교제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건대 이방인들이 희생물로 드리는 것은 마귀들에게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마귀들의 잔을 /겸하여/ 마실 수 없으며 {주}의 상과 마귀들의 상에 /겸하여/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없느니라.](고전10:20-21). 아무리 부인해도 성경은 우상 숭배자들이 마귀와 친교를 나누는 자들이요, 마귀들의 상에 참여한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추석, 설과 같은 명절에 제사를 드리는 모든 사람은 다 마귀에 이끌림을 받고, 마귀와 교제를 나누며, 마귀의 종들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교만할 때 누구든지 마귀의 정죄에 빠지게 됩니다. [초신자는 아니 되나니 이는 그가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질까 염려함이라.](딤전3:6). 교만한 성도들에게 마귀는 찾아와서 정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모든 교만한 자녀들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마귀 들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교만할 때 언제든지 마귀에게 ‘어서 내게로 들어오라’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입니다.

건전한 교리의 틀에서 떠날 때 마귀들립니다. [이제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셨으니](딤전4:1).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은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믿고, 우리가 믿는 바를 안다’는 모토로 지성과 영성의 균형을 꾀했습니다. 성경 공부를 멀리하고 오직 기도, 찬양, Q.T 등의 영성 운동에 매진하는 것은 마귀 들리기 십상입니다. 한때 독일의 경건주의를 대표하던 할레 대학은 후에 자유주의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체험과 영성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교리와 성경의 문자적 해석의 틀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체험과 느낌, 영성의 부흥을 최고로 생각합니다. 이들의 최후 종착역은 마귀 들림입니다. 야릇한 체험, 뜨거운 체험, 느낌을 추구하는 자들은 결국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오늘의 경건주의자는 내일의 자유주의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학이 없는 신앙, 건건한 교리의 틀에서 벗어난 신앙인들은 모두 마귀 들린 상태라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사역 중에 하나는 마귀 들린 자들을 깨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은 결코 다투지 아니하며 오직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우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인내하며 자기 자신을 대적하여 행동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리라. /그리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를 허락하사 진리를 인정하게 하시리니 이것은 마귀의 뜻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회복시켜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려 함이라.] (딤후2:24-26). 이는 성도들 가운데 마귀의 뜻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이 있으며, 마귀의 올무에 갇혀 있는 자들이 많음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목자는 다투지 말고, 오직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우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이런 때에 ‘목자를 대적하여 행동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들은 마귀 들린 자들입니다. 전에 이 교회에서 설교 시작 전에 ‘윤 형제...!’ 하면서 대적하여 행동하는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마귀 들린 것입니다. 그 때 목자는 맞붙어 싸우면 안 되고,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같이 다투어 싸우면 목자도 마귀 들린 상태입니다.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날 때 대부분 이 부분에서 문제가 터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 인해 갈라지고 분열됩니다. ‘그럼 내가 마귀 들렸단 말인가?’ 분노하지 마십시오. 저도 자주 마귀 들립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마귀의 심방을 받습니다. 매 순간 주님의 보호를 의뢰하고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 들려 있는 제 자신을 자주 봅니다.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는 마귀가 처음부터 범죄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마귀의 일들을 멸하려 하시는 것이라.](요일3:8). 죄를 범할 때 마다 나는 마귀 들린 상태에서 한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자유를 약속하나 정작 자기 자신은 부패의 종이 되었으니 이는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라.](벧후2:19). 이는 승리와는 거리가 먼 비참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교회는 와 있지만 주님의 종이 아니라 마귀의 노예로써 와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마귀 들린 상태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며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에 속한 것이요, 관능(官能)적인 것이요, 마귀에게 속한 것이니] (약3:14~15). 어떤 사람들은 마귀 들렸다고 하면 간질 증세를 일으키고, 눈에 흰자위만 보이는 것인 줄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 들린 상태란 마음속에 시기와 다툼, 정욕, 거짓말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육신을 자극합니다. 반면 주님은 언제나 육신을 성령 아래 복종케 합니다. 마귀는 자아를 내세우게 합니다. 주님은 자아를 철저히 무시하시며, 십자가에 처리하게 하십니다. 마귀는 육신의 행위들을 합니다. 성령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십니다. 마귀는 육신의 생각을 줍니다. 주님은 영적인 생각을 줍니다. 여러분의 생각의 세계를 보십시오. 영적인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지만 육신적 생각은 사망입니다. 마귀는 두려움의 영을 줍니다. 주님은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십니다. 마귀들이 사람 안에 들어와 일을 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깨어 있으라, 마귀를 대적하라(약4: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7),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라(엡6:11)] 경고에 경고를 거듭하지만 정작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성도들은 너무나 적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하고, 제자들이 모두 떠나 버린 것은 마귀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일상사에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듯이, 마귀 역시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울부짖는 사자” 마귀를 마치 잠자는 사자, 죽은 사자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경에는 다양한 마귀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듯, 마귀 역시 영입니다.

첫째, 부정한 영이 있습니다(마10:1). 더러운 영이란 뜻인데 이 마귀는 우리 안에 더러운 생각을 불어 넣어 주고, 음란과 호색, 술취함과 방탕함과 같은 더러운 짓을 하도록 합니다. 더러운 영이 찾아 들면 공부에만 집중하던 아이들이 어두운 영화관, 만화방을 전전합니다. 술집을 기웃거리고, 나이트클럽에 싸돌아다닙니다.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면서 음란한 책들과 내용에 빠져듭니다.

둘째, 악한 영이 있습니다(삼상16:14). 사울에게 찾아 왔던 영이요, 세겜 사람들에게 임했던 영입니다. 악한 영은 사람에게 불안과 초조를 가져다주며 정신적인 혼란을 줍니다. 살인하고자 하는 욕망을 일으킵니다.

셋째, 거짓말하는 영이 있습니다(대하18:21). 거짓말하는 영에 사로잡히면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양심에 화인을 맞아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아합과 그의 대언자들이 들렸던 영이 바로 거짓말하는 영이었습니다.

넷째로, 유혹하는 영들이 있습니다(딤전 4:1). 미혹케 하는 영은 종교적인 영으로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거나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부정하게 만듭니다. 주로 종교적인 문제, 신학적 문제를 전담하는 영이라고 보면 영입니다.

다섯째, 점치는 영이 있습니다(행16:16). 점치는 영에 들리면 과거에 있었던 일과 미래의 일을 거짓 예언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점치는 영에 사로잡히지 않았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여섯째, 질병을 가져다주는 마귀들이 있습니다(행10:38). 성경은 이를 병약케 하는 영이라고 말합니다. 의학적 관점에서 병은 몸이 약해지고, 세균성 병균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세상에는 마귀로 인해 평생 병자로 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께 성령님과 권능으로 기름을 부으시매 그분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하셨음이라.] (행10:38). 주님은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을 고치셨는데, 마귀에게 억눌린다는 것은 질병에 걸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듯 마귀는 사람의 몸을 숙주로 삼아 들락거릴 수 있고, 그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유대인들보다 훨씬 먼저 주님을 정확하게 알아보았고, 두려워했습니다. 마귀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멸하러 온 줄로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숙주로 삼은 사람의 몸을 통해 말을 하기도 하고, 비정상적인 괴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회당에 부정한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어 큰 소리로 외치며 이르되, 나사렛 예수님이여, 우리를 홀로 두소서.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오셨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이시니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를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그 마귀가 그를 무리 한가운데서 넘어뜨리고 그에게서 나오되 그를 상하게 하지는 아니하니라. 이에 그들이 다 심히 놀라며 서로 말하되, 이 어떠한 말씀인가! 권위와 권능으로 부정한 영들에게 명령한즉 그들이 나가는도다, 하더라.](눅4:33~36). 주님은 마귀 들린 사람들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그들 안에 있는 마귀를 몰아 내셨습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주님의 첫 사역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으시고, 마귀를 몰아내신 일이었습니다. 잘 보십시오. 부정한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던 곳은 술집이나 여관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말씀을 선포하시고,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회당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마귀는 무덤가나 교도소나 술집 같은 곳에만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전, 회당 등에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회당에 마귀 들린 사람이 앉아 있었듯이 교회 내에는 당연히 마귀 들린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마귀를 제압하고 쫓아내는 이 사역은 오늘날 현대 교회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역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마귀들을 분별해 낼 능력이 없고, 마귀를 대적하여 싸울 줄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을 마귀 들린 줄 모를 때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여 싸울 수가 없습니다. 마귀들은 간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귀 들릴 수 없다고 믿는 이들이 마귀에게 가장 많이 속은 것입니다. 교회는 마귀들이 공격하는 주 공격대상입니다. 승패는 우리가 얼마나 마귀를 대적하고 싸우는가? 저항하는가? 에 달려 있습니다.

마귀는 저 하늘에서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안에 기숙합니다. [(이는 그분께서 이미 그 부정한 영(靈)에게 명령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그 영이 자주 그를 사로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족쇄에 묶어 두었으나 그가 묶은 것을 끊고 그 마귀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어 이르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시매 그가 이르되, 군단(軍團)이니이다, 하니 이는 많은 마귀들이 그 사람에게 들어갔음이더라.](눅8:29-30). 얼마나 많은 마귀가 몸속에 들어가 있는지 그 수가 군단에 이를 정도입니다.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쇠사슬과 족쇄에 묶어 두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런 자를 누가, 어떻게 고칠 수 있습니까? 오직 주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마귀는 사람의 몸을 자기 집으로 생각합니다. [부정한 영이 사람에게서 나와 마른 곳으로 다니며 쉴 곳을 구하나 찾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거늘 이에 가서 자기보다 더 사악한 다른 영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나쁘게 되니라. 이 사악한 세대도 참으로 그와 같이 되리라.](마12:43-45). 주님은 성도들의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는 것처럼 마귀 역시 사람들의 몸을 자기 집이요, 거처로 삼습니다. 마귀는 ‘내가 나온 내 집’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마음대로 나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대가 마치 이러하다고 하셨는데 오늘날 마귀 들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대가 바로 지금입니다. “이 사악한 세대도 참으로 그와 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병원의 병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교회에 온 성도들을 보면 어디 아프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마귀 들림으로 인한 병이 있습니다. 모든 병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마귀 들려서 걸린 병은 마귀를 내어 쫓지 않으면 아무리 약을 먹고 수술을 해도 차도가 없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마귀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를 데려왔거늘 그분께서 고쳐 주시매 눈멀고 말 못하는 자가 말도 하고 보게 되니라.](마12:22). 봉사가 되고, 벙어리가 된 것이 마귀 들린 증상임을 사람들도 알고 주님도 아셨습니다. 눈멀고 말 못하는 것은 현대 의학에서도 불치병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귀 들린 증세라면 마귀를 쫓아내면 해결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인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서 복음서 당시의 유대인들만큼 지식이 없는 듯합니다. 여전히 마귀 들린 사람들을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병이 마귀 들린 것이라 생각하여 병원에도 가지 않고 기도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역시 마귀 들린 현상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마귀 들린 병 외에도, 질환과 병들이 나오는데 기름을 바르고 의사를 찾아가야 합니다. 반대로 모든 병은 오직 병원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면 이 역시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마귀가 병을 주는 경우에 마귀를 대적하고 싸우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저는 마귀 들린 교인들을 많이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보라,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약(病弱)하게 하는 영에 붙잡혀 몸이 구부러지고 전혀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니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병약한 것에서 풀려 났느니라, 하시며 그 여자에게 안수하시니 그녀가 즉시 /몸을/ 곧게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더라.](눅13:11~13). 병약하게 하는 영이 있습니다. 허리를 펴지 못했던 여인인데 주님은 이 여자의 척추를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마귀를 내어 쫓아 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사탄에게 18년이나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면, 보라,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그 매인 것에서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눅13:16). 주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평생 허리가 굽어진 상태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척추는 완전히 굽어져 버리고, 나중에는 펴려고 해도 펼 수가 없게 됩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몸을 마귀에게 내어 주고, 마귀에게 사로 잡혀서는 안 됩니다.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교회 목회자로서 늘 신경 쓰는 부분 중의 하나는 마귀 들린 성도들이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 공부 중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마귀 들린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귀를 대적하며 설교해야 하고, 마귀와 싸우면서 성경을 가르칩니다. 제 자신도 마귀 들린 경험이 많습니다. 지난주에는 거의 이틀이나 마귀에게 시달렸습니다. 수요기도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부터 시작된 마귀의 공격은 금요일 새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기도하며 대적하면 해소되었다가 다시 공격을 가해 오곤 했습니다. 마귀는 집요하게 덤벼들었고, 저는 그때마다 말씀과 기도로 대적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마귀를 이길 수 없고, 마귀를 내어 쫓지 않으면 계속해서 시달림을 받습니다.

주님이 사역하셨던 2000년 전 유대 사회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훨씬 더 많은 마귀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마귀는 지금 각 성도들을 부지런히 심방(visit)하며, 각 가정, 각 교회를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對敵)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마귀를 대적하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마귀를 대적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약4:7). 마귀를 대적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마귀는 대적하는 여러분에게서 도망갑니다.

마귀를 이기는 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무당 푸닥거리하듯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십자가를 들고, 성수를 뿌리며, 성경책을 들이미는 것이 마귀를 쫓는 의식이 아닙니다. 엑소시스트들이 마귀를 이기는 방법은 성경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퇴마사, 주술사들이라고 일컫는 이들은 마귀를 이기는 의식을 치르지만 성도들이 마귀를 이기는 방법은 성경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마귀를 이기는 법은

첫째,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주님께 복종하지 않으면 마귀를 이길 권세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고 마귀를 대적하다가 혼난 사람들의 기사를 보십시오. [그때에 떠돌아다니는 유대인들 가운데 마귀를 내쫓는다 하는 자들이 자기들도 흉내내어 악한 영들이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이르되, 바울이 선포하는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가 너희에게 엄히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인으로 제사장들 가운데 우두머리인 스게바라 하는 사람에게 아들 일곱이 있어 이들도 그와 같이 하매 그 악한 영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그 악한 영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그들을 눌러 이기니 그들이 벌거벗고 상한 채로 그 집에서 도망하매] (행19:13~16). 여러분은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낮추어 주님께 복종하십시오. 십자가의 피 아래 자신을 두십시오. 말씀의 권능 아래 자신을 낮추십시오.

둘째,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주님이 주신 권능과 그 이름을 사용하여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마귀는 물러갑니다. 믿음을 가지고 대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마귀를 이기셨고, 이미 승리자이심을 선포하십시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은밀히 여쭙되, 어찌하여 우리는 그를 내쫓지 못하였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런 종류는 오직 기도와 금식으로만 나가느니라.] (막9:28~29).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원 성취를 위해서는 기도하고, 금식도 하지만 마귀를 내어 쫓기 위해서는 기도와 금식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적 마귀는 영적인 방법으로 대적해야 하는데 그것은 기도와 금식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육신 안에서 행하나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이는 우리의 전쟁 무기가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통하여 요새들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라.)] (고후10:3~4). 마귀를 대적하는 영적인 방법을 찾으십시오. 기도와 금식이야 말로 마귀를 대적하는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다음에는 말씀의 칼입니다. 말씀은 마귀를 위협하는 공격무기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엡6:17). 이 칼은 베지 못할 것이 없는 칼입니다. 양날 선 칼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입에서 나온 막대기입니다. 이것은 부수지 못할 것이 없는 철장(鐵杖)입니다.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의롭게 재판하고 땅의 온유한 자를 위하여 공평하게 꾸짖으며 자기 입의 막대기로 땅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사악한 자를 죽일 것이며](사11:4). 주님께서 광야에서 마귀를 이기는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항상 성경을 인용하셨습니다. 마귀의 질문과 유혹에 정확히 성경으로 응수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말씀의 칼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칼로 마귀를 베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칼은 장식품이 아닙니다.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 달린 날카로운 칼이 나오고 그분의 용모(容貌)는 해가 세차게 빛나는 것 같더라](계1:16).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양날 달린 날카로운 칼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이는 히브리서 4:12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권능이 있어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骨髓)를 찔러 나누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니](히4:12). 하나님은 자신의 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말씀은 주님의 입의 호흡이며, 칼이며, 막대기입니다. 칼과 철장은 재림하시는 주님께서 지니신 것입니다. [그분의 입에서 예리한 칼이 나오니 그분께서 그 칼로 민족들을 치시고 친히 철장(鐵杖)으로 그들을 다스리시며 또 친히 전능자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으시리로다.](계19:15).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이 칼은 문자 그대로 사람을 죽이는 칼입니다. [그 나머지는 말 타신 분의 칼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칼로 죽임을 당하니 모든 날짐승이 그들의 살로 배를 채우더라.](계19:21). 마귀를 대적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분이 사용해야 할 칼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들을 향해 효과적인 공격 방법은 영적인 음악입니다. 사울은 불순종과 반역으로 인해 성령이 떠나고 악한 영이 들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극심한 편두통으로 고통을 알았는데 신하들은 이것이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악한 영이 들린 결과란 사실을 정학하게 파악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방법은 음악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영께서 사울을 떠나고 [주]께로부터 온 악한 영이 그를 괴롭게 하므로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온 악한 영이 왕을 괴롭게 하온즉 이제 우리 주는 왕 앞에 있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하프를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그 악한 영이 왕에게 임할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니](삼상16:14-16).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신하들이 악한 영으로 이기는 방법으로 하프를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여 하프를 타면 낫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그 악한 영이 사울에게 임할 때에 다윗이 하프를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게 되고 나았으며 그 악한 영이 그에게서 떠나니라.](삼상16:23). 음악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도 하고, 우울하게도 하며, 울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프리카의 주술사들이 악령을 부를 때 음악을 사용하듯이 성도들 역시 음악을 통해 주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찬양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오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주여, 오직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22:3). 찬양을 부를 때 주님은 찬양 가운데 거하십니다. 여러분이 고요한 가운데 찬양을 부르는 일은 주님이 내 안에 충만히 임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방법입니다. 대중 가요, CCM, Rock music 등은 마귀를 부르는 음악입니다. 찬송은 주님이 임재하시는 음악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마귀들을 내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마12:28). 주님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마귀들을 내 쫓으셨습니다. 소위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하고, 마귀들린 현상을 단지 심리적 현상, 정신적으로 미친 증세나 간질병 증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마귀에게 완전히 속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주님께서 쫓아내시고, 꾸짖으시고, 쫓아내었던 마귀를 그들은 단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보고 맙니다. 현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마귀들이 많이 활동하는 시대이며, 마귀 들린 사람들이 많은 때입니다. 저는 캠퍼스에서 마귀 들린 아이들을 유난히 많이 목격했습니다.

믿음으로 마귀를 쫓을 수 있습니다. [이 여자는 그리스 사람이요, 민족으로는 수로보니게 사람이라. 그녀가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시기를 그분께 간청하거늘 ...이에 그분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마귀가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니라. 그녀가 집에 돌아와 본즉 마귀가 나갔고 자기 딸은 침상 위에 누워 있더라.](막7:26.29-30).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기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님 앞에 끈질기게 기도하고, 믿음을 인정받음으로 자기 딸에게 있던 마귀를 내어 쫓을 수 있었습니다. 마귀들린 딸을 어머니가 오직 믿음으로 마귀를 몰아내었던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가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함을 가르쳐 주는 아주 귀한 사건입니다. 평생을 편두통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검진 결과 이상이 없다고 말합니다. 약을 먹어도, 어떤 처방을 써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무려 20 여년이 앓던 편두통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성경을 펴 보았습니다. 그는 혹시나 자신의 병이 마귀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방법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했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그 순간에 편두통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자주 같은 증세가 찾아 왔지만 단호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었고, 완전히 고침 받았습니다. 자신의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을 때에는 병원만 다녔지만 원인을 정확히 알았을 때 그는 마귀를 대적하고, 쫓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미 여러 차례 마귀를 대적하고 이기는 방법을 증거했습니다. ‘깨어 기도함, 겸손하게 복종함’ 등은 마귀 들리지 않는 정신 자세이며(방어적, 수동적 자세), ‘어린 양과 보혈의 말씀, 대적하라’등은 마귀를 공격하여 이기는 방법입니다(공격적, 능동적 자세).

마귀를 이기는 공격적 방법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내어 쫓아야 합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하지 못하게 막았나이다, 하거늘](막9:38).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사용한 사람들은 마귀를 내어 쫓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권세가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마귀는 내어 쫓길 수밖에 없습니다. [칠십 명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마귀들도 우리에게 굴복하더이다, 하니](눅10:17). 제자들은 주의 이름의 권세와 권능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들이 굴복하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우리는 신문에서 남의 이름을 팔아서 행세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이용해서 권세를 행사합니다. 사기를 치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 아버지가 대통령이거나 재벌이거나 고위 관직에 있다면 사람들은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합법적으로 권위를 부여 받아서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제자들에게 합법적으로 사용할 권위를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 마귀를 내어 쫓을 때, 무슨 일에서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들을 건져 내시고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데 있습니다. 주님은 마귀와 마귀의 일을 멸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마귀를 제어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귀도 능력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의 권세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능력은 헬라어로 ‘두나미스’라고 하는데 이는 폭발적인 힘을 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신 권세는 헬라어로 ‘엑수시아’이며, 이는 힘보다 훨씬 강한 것을 말합니다. 이제 힘과 권세의 관계에 대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수많은 자동차가 무서운 힘과 속력으로 차도를 질주합니다. 그러나 교통경찰이 손짓만 하면, 강한 속력으로 질주하던 자동차들이 일시에 멈추어 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0마력이 넘는 강한 힘을 자랑하던 자동차의 능력은 교통경찰의 권세에 압도당한 것입니다. power < authority. 권세란 힘(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자격이요, 힘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권세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귀를 내쫓으신 것같이, 교회와 세상을 좀먹는 더러운 마귀, 악한 마귀, 병을 가져다주는 마귀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일에 대해서 이것은 마귀들이 역사하는 일이란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마귀를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주의 거룩한 영이 내주하는 성전으로 자신의 몸을 거룩히 구별하십시오. 여러분의 몸과 모든 지체를 주님께 내어 드리고,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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